김남준 민윤기 김석진
가장 보통의 존재 6
“괜찮아요? 데일밴드라도……”
“아니.”
남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기가 가방을 챙기고 일어섰다. 남준의 손에 들린 데일밴드가 그대로 주머니로 들어갔다. 괜히 신경쓸까 봐 걱정이었다. 그런 남준의 걱정과는 다르게 윤기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허리는 좀 괜찮아요?”
“신경 꺼. 내가 여자애도 아니고.”
윤기가 그렇게 말하며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남준이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급하게 볼캡을 챙기고는 따라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선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남준이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고는 윤기를 쳐다봤다.
“1교시 뭐예요?”
“몰라.”
“점심 같이 먹을래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윤기의 핸드폰이 미친듯이 울려댔다. 타이밍 참. 윤기가 인상을 쓰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김석진. 그 세 글자에 윤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남준이 말없이 그 화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전화 하라는 무언의 의미였다.
-윤기야.
“……네.”
-어디야?
“아. 지금 학교요.”
-왜 전화는 안 받았어. 어제.
“아파서요.”
-아파?
석진의 목소리에 윤기가 작게 대답했다. 좀, 아팠어요. 지금은 괜찮고. 그 말에 석진이 다행이라는 듯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 대답해야 하나. 아니면 솔직하게 다른 사람이랑 잤다고 얘기해야하나. 그렇게 생각하다가 윤기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수업 들어가야 해서요.”
-아, 어, 어, 수업 끝나고 전화해.
“……”
-점심 같이 먹을까? 학교 앞으로 갈게.
그 전화 내용이 남준의 귀에도 들려왔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그 말에 윤기가 남준을 살짝 바라봤다. 남준은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윤기가 시선을 내려 남준의 신발코를 바라봤다. 하얗고 맨들맨들한 신발코가 눈에 들어왔다.
“아뇨. 속이 안 좋아서 뭘 못 먹어요.”
-그렇게 아픈 거면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알아서 할게요.”
-……무슨 일 있어?
석진의 질문에 윤기가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윤기가 앞장서 갔다. 남준이 그런 윤기의 뒤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공동현관 문을 열고 남준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윤기가 남준이 나오자마자,
“점심 니가 사. 너 돈 많잖아.”
라고 말을 툭 내뱉으며 먼저 걸음을 앞질러갔다. 남준이 한참 서서 윤기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
비가 올 줄 알았으면 좋았을 걸. 남준이 공과 대학 건물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남준이 윤기를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남준의 신발코가 흙탕물에 젖어버렸다. 남준이 쪼그려 앉아 괜히 투덜투덜 거렸다. 그때 남준의 신발 옆에 다른 신발이 나란히 놓였다. 남준이 고개를 들어 신발의 주인을 쳐다봤다.
“미안.”
“……끝났어요?”
“어.”
윤기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있었다. 남준이 쭈구렸던 몸을 일으켰다. 윤기보다 반뼘 정도 더 큰 남준이라 우산이 불편했는지 남준이 우산을 집어들었다.
“내가 들게요.”
“그러던가.”
“뭐 먹을래요?”
“아무거나.”
아침엔 맛있는 걸 사라며 지금은 아무거나 먹겠다는 윤기의 말에는 모순이 있는 거 같아서 남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왜. 윤기의 말에 남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 말에 윤기가 우산 손잡이를 잡은 남준의 손을 빤히 쳐다봤다.
“잡고 싶어요?”
“또라이 새끼.”
“아니면 말고요. 그렇게 욕할 거 까지야.”
능글맞은 남준의 말에 윤기가 실소를 터트렸다. 또라이 새끼야, 넌 정말. 윤기의 말에 남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또라이랑 같이 있는 형은요.”
“너 자꾸 하룻 밤 같이 있었다고 형, 형 하면서 친한 척 구는데.”
“같이 있었던 것 뿐만이 아니죠.”
“……”
그 말에 윤기의 말문이 턱 막혔다. 진지하게 남준과 잔 순간을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약점처럼 잡힌 느낌인데, 정작 윤기한테는 약점이 아니었다. 윤기가 남준을 쳐다봤다. 남준이 힐끔 윤기를 쳐다보고는 이내 앞을 바라봤다.
“약점 잡았다고 생각 안 해요.”
“……”
“그냥 가까워져서 좋아서 그래요.”
몸도, 마음도. 남준이 뒷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앞만 바라보는 남준을 윤기가 빤히 바라봤다.
/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나가려 했는데 석진에게서 온 문자에 그럴 수가 없었다. [교문 앞이야] 그 말에 윤기가 한숨을 내쉬며 건물 뒷문으로 빠져나와 남준을 피해 교문 앞으로 향했다.
“좀 괜찮아?”
“그럭저럭요.”
“무슨 일 있어?”
“아뇨.”
그 말에 석진이 윤기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열은 없고. 어디가 아팠어. 많이 아팠어? 그 말에 윤기가 고개를 내저었다. 많이 안 아팠어요. 그 말에 석진이 실소를 터트리듯 웃으며 윤기를 끌어 안았다.
“아팠으면 연락을 해야지.”
“……바쁠 거 같아서요.”
그 말에 석진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보다 중요한 게 어딨어. 그 말에 윤기가 석진의 옷 끝자락을 붙들었다. 석진이 윤기를 품 안에서 떼어놓고는 윤기의 손에 우산을 쥐어주었다.
“비 맞고 다니지 말고.”
“……형도요.”
“나야 차 있으니까.”
“……”
“아. 얼른 윤기가 졸업해야지 나랑 같이 차 타고 다니는데. 아주 옆에 껴놓고 살텐데.”
윤기가 그 말에 아무 말도 없이 석진을 빤히 바라봤다. 감기 걸리지 말고. 그 말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밥 먹으러 갈까?”
“밥 못 먹어요.”
“왜?”
“아파서요.”
“밥은 먹어야지.”
“안 돼요. 못 먹어요. 저녁에 이따 집으로 갈게요.”
윤기의 말에 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지 말고. 이따 저녁에 보자. 석진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의 차가 시동이 걸리더니 이내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윤기가 교문 앞에 서서 석진이 떠나간 자리만 한참 바라봤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번쩍번쩍 불빛을 내는 윤기의 핸드폰에 신경이 쓰였다. 정작 당사자인 윤기는 아무 생각도 없이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남준이 괜히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다가 젓가락을 내려놨다.
“전화 받아요.”
“안 받아도 돼.”
“……”
“자꾸 그렇게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지 말고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 봐.”
윤기가 다 안다는 듯 말하고는 물을 들이켰다. 남준이 입술을 깨물고 혀로 입술을 축이다 고개를 들어 윤기와 눈을 마주쳤다.
“다 대답해줄 거에요?”
“생각해보고.”
“근데 왜 물어보래요.”
“니가 뭘 궁금해하는지 궁금하니까. 뭐 알 것 같기도 하고.”
윤기가 심드렁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머릿 속은 복잡했다. 석진이 과연 그 여자와 잤을까? 자신은 작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앞에 앉아있는 남자와 자버렸는데. 과연 잤을까.
“애인이에요?”
그 질문에 내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 이거 뭐라고 대답해야 돼? 윤기가 그렇게 생각하며 물을 한 번 더 들이켰다. 애인인 걸까. 한 명은 다른 여자를 집에 들여서 같이 저녁 먹고, 또 한 명은 학교 후배랑 잤는데. 이게 애인인 걸까? 이게 사귀는 사이인 걸까.
“……비스무리.”
“그럼,”
……섹파에요?
그 질문에 윤기의 속이 턱 하고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단어 선택 참, 구리네. 윤기의 말에 남준이 당황하며 손사레를 쳤다.
“실수한 거라면 미안해요. 근데……”
“……딱히 뭐, 부정할 수가 없네. 비슷해.”
윤기가 그렇게 말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
“먼저 가라.”
“아. 네. 잘 들어가요.”
윤기가 남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귀에 이어폰을 꼽았다. 그리고는 버스 정류장을 빠져나와 석진의 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애인과 섹파 그 사이 어디 쯤일까. 3년을 만나면서 한 번도 섹파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애인이라고, 애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라고 하니까 그 애매한 관계가 어디쯤인지 정확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사실 조금 두려웠다. 3년 쯤 넘게 이어온 이 관계가. 몸과 마음을 모두 줘버린 관계가 애인이 아니라 섹파에 더 가까운 관계라면? 윤기는 그게 두려웠다. 자신은 애인에 더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석진은 다른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면. 남겨진 자신은.
사람에게서 버림받는 게 한 두번도 아니고 그렇게 크게 신경쓸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답답해져왔다.
“민윤기!”
윤기의 바로 옆에 차 한대가 멈춰섰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은 이어폰을 귀에서 뺀 윤기가 옆을 바라봤다. 석진의 차였다.
“몇 번을 불렀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타.”
그 말에 윤기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이어폰 줄을 정리했다. 잠깐 뭐 좀 생각하느라요.
윤기는 저렇게 생각하는데 석진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ㅠㅁㅠ 뭐해 석진아 ㅠㅠ 확실하게 말을 해줘.. 남준이는 은근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가도 또 귀엽기도 하고...(심쿵)가장 보통의 존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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