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연애의 비율 - 프롤로그
W. 나날
김성규. 보기 안타까운 배우. 작품도 많이 했고 연기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 “어? 김성규가 거기 나왔었어?” 할 정도로 항상 다른 배우들한테 묻히는 배우. 주연을 하면 그 작품이 망하고 조연을 하면 다른 역에 가려지는.. 한마디로, 아웃오브안중인 비중 없는 역할만 골라서 캐스팅되는 운도 지지리도 없는 배우. 이게 바로 나 '김성규'의 사전적 정의가 아닐까싶다. 그런데 더 심각한 건, 두 달 전부터 이때까지 맡아온 최악의 역할조차 발길이 뚝 끊겨 나한테 대본은 커녕 제의전화도 안 들어오고 있다.
“형..”
“왜.”
“제발 대본 좀 받아와..”
“그게 내 마음대로 돼?”
“그러니까 형이 좀 발로 뛰어서 사바사바 좀 해서 뭐든지 받아와달라고! 이러다 심심해서 돌아가시겠다!!”
“아 왜 나한테 성질이야, 성질은?”
매니저형이 인상을 찌푸리며 집에서 나가자마자 침대로 쓰러지듯 누웠다. 엉엉 진짜 울고 싶다. 혹시나 받았다가 폭풍잔소리부터 시작해서 걱정으로 이어질 것 같은 엄마의 전화도 계속 피하고 있는데 죄송해서 더 이상은 못 피하겠고.
“배우 때려칠까 진짜.”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으으.. 나름 고등학교 때 모범생이던 김성규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
“성규야!”
“왜....”
“대본, 대본!”
“대본? 대본?!?!”
이 얼마나 기적 같은 말인가! 대본이라니! 그래, 역시 하느님은 날 버리지 않으셨어!
“그래. 너 영화 캐스팅 됐어! 게다가 주연이다! 감독은 이규산 감독이고.”
“헐. 그 감독님 되게 유명하시잖아.. 무슨 영환데? 대본 이리 줘 봐. 연애의 비율? 어쩜 제목부터 가슴에 확 와 닿냐!”
“근데 그 영화..”
매니저형의 말 따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이 귀에 걸릴 듯 찢어지게 웃으며 대본을 펼쳤다. 어디보자.. 주인공 권시훈. 내가 권시훈인가? 오오.. 멋져 멋져. 그리고 이윤성. 음? 이윤성? 여자 이름 치곤 꽤 남성적인 이름이네.. 왠지 찝찝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장 더 넘겼다. 그리고....... 이게 뭐야!!!!!
“그 영화 동성연애영화야.”
이런 씨발.. 그래, 동성영화 그건 열 번 참고 백 번 참아서 그렇다 치고 넘어간다 해도... 이건 너무 하잖아!!!
“뭘 이런 걸 받아와!!!! 형 진짜 미쳤어??”
“니가 뭐든 좋으니까 받아오라며!”
“그렇다고 이딴 걸 받아 오냐? 지금 당장 못한다고 해! 취소하라고!”
그러자 매니저형이 픽 하고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미 상대배우랑 미팅약속도 다 잡아놨는데 취소는 무슨.”
“아오! 나한테 말도 없이 약속은 왜 잡아!!”
소파에 앉아 있다가 들려오는 매니저형의 말에 허공에 폭풍발차기를 하며 소리를 지르자 그걸 보던 매니저형이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야, 성규야. 근데 어차피 너 이거 말고는 다른 대본 들어오는 거 없잖아.”
“.....약올리냐? 어?! 그래서, 상대배우는?”
“응?”
“나 강간하는 역할, 그 거지같은 역 맡은 배우가 누구냐고!”
“아, 남우현.”
잠시만?? 팔든???? 익스큐즈 미????????? 플리즈 져스트 원 몰 타임 스피킹!!!!!!!!!
“...뭐? 누구라고?
“남우현이라고. 니 상대배우.”
오 마이 갓. 신이시여, 저 좀 죽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