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컴패니로맨스 - 프롤로그
W.나날
뭐 이런 놈이 있나 싶다. 두시간 째 앉아서 주구장창 술만 마시고 있는 이 놈이 난 참으로 신기했다. 신입생 환영회에 오라는 선배의 전화에 (그런데도 2학년 주제에 눈치없이 자리에 낀 것 같은 느낌이 든 건 왜 일까.) 대충 후드티를 걸치고 집에서 나섰다. 신입생환영회에 도착하니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 두들기며 웃는 동우의 얼굴을 보고 함께 마주 웃어주었다. 앉다가 구석진 곳에 앉아서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는 놈을 발견하였고,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가서 놈을 계속 쳐다보고만 있는지 벌써 두시간. 쓰러질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내 시선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계속 고개만 푹 숙인채 술만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성규야, 이제 우리 다 갈꺼야. 넌 안 가려고? 동우가 살짝 물어오는 질문에도 어어..너 먼저가.. 하고 대충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미 생겨버린 놈에 대한 정체모를 호기심 때문이라고 해야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호원인지 뭔지 하는 선배를 뒤따라 나간 동우를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사람이라곤 나와 그 놈 뿐. 뭔지 모를 이상한 느낌에 끌려 비어버린 테이블 구석에 드디어 엎어져버린 놈에게로 다가갔다.
"저기.."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놈의 어깨를 살짝 흔들어봤지만 미동 조차 없는 그 놈을 한번 더 툭 쳤다.
"야."
몇 번더 툭툭 치니까 그제서야 한 눈에도 무거워 보이는 눈꺼풀을 슬며시 들어보인다. 누구야....깨우지마... 웅얼대다 다시 눈꺼풀을 내려놓는 그 놈이 재미있어 또 다시 한 번 툭툭.
"아아.."
깼다. 이번에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고개를 슬쩍 들어보이는 놈의 눈은 여전히 텅 비어있는 듯 했다.
"......"
"......"
취한 상태라 그런지 공허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놈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쿠웅-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놈이 다시 한 번 눈꺼풀을 살포시 내려놓은 채 고개를 테이블로 박았다. 결국 그 놈의 텅 비어버린 눈만 보다가 아무말도 못해버렸다. 이 공간에 그 놈과 나 둘 뿐만이 있는 듯 했다. DJ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소리치는 들뜬 목소리도, 그에 호응하는 남녀들의 목소리도, DJ가 틀어준 신난 노랫소리도, 옆 테이블에 우리처럼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 와서 술을 마시며 노는 소리도. 시끌시끌한 이 곳에서 그 놈의 눈을 보는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넌, 왜 그런 눈을 하고 있는거야? 단지 취해서? 그 뿐이라고 하기에는 물기가 가득한 눈이였다. 뭐랄까...위태위태 해보인다고 해야하나... 자꾸만 눈이 가네. 신입생인가? 사람들이 잘 안 챙겼던 것 보면 신입생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신입생이면 3학년선배새끼들이 환영회랍시고 신입생들한테 미친 듯이 퍼주었을게 뻔하지. 뭐...이 놈은 자기가 알아서 그만큼 퍼마신 것 같네.처음 보는 놈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휴대폰이 울렸을 때 였다. 내 휴대폰이 아닌 놈의 휴대폰이. (때마침 신난 음악이 끝나고 잔잔한 음악이 나왔을 때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후배 김명수'
설마 김명수라면 내가 고등학교 3학년 일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년후배 꽃미남 학생? 고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빼어난 외모와 매너가 철철 넘치는 성격 덕분에 소문이 쫘악 퍼졌었지 아마. 아, 지금 수능생이라 힘들겠다.. 으..2년 전에 내가 심장 쪼그라들이며 공부했던 생각이 나네. 뭐, 그래서 여기까지 왔지만.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친한가보네.
위이잉-
"여보세요..?"
아직도 안 끊기는 거 보니 아무래도 내가 받아야 할 것 같아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남우현 선배 휴대폰 아닌가요?
"아..맞는 것...아니 맞아요."
이름이 남우현이구나 .
-어..누구신지...
"아 지금 남우현.....이 취했거든요. 저 혼자 남아있어서.."
-........거기가 어디죠?
꼴에 친한 후배라고(늦은 밤인데 전화오는 걸 봐선 꽤 친한 것 같다.) 데리러 오겠다는 건가. 전화를 끊고 엎드린 놈의 얼굴을 한참 보고 있는데 문쪽에서 딸랑- 하는 종소리가 들린다. 김명수가 드디어 왔구나 싶어서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김명수 아니네..다른사람이다. 김명수는 언제 오는거야. 어어.. 이쪽으로 오네..? 김명수인줄 알고 뒤돌아 봤을땐 문쪽에서 우리 테이블로 걸어오는 김명수가 아닌 왠지 낯이 익은 남자아이가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었다.
"아..안녕하세요. 이 망할...아니 형 데리고 있어줘서 감사해요."
"누구...?"
"아 전 남성현이라고 해요. 우현이형 동생이에요."
아.. 동생이구나.. 아씨- 술냄새 쩔어.. 아, 형은 왜 이렇게 많이 마신거야! 이 새끼가 정신줄을 놨나. 정신차리란 말이야, 이 젠장할 놈아. 욕지꺼리를 중얼거리며 자신의 형을 들쳐메는 남성현이라는 남자아이를 쳐다보았다. 어..아.. 왠지 낯이 익다고 했더니 김명수랑 같이 다니던 그 애네.. 어쩐지 남성현이라는 이름도 어디서 들어봤다 싶었는데 우리학교 축구부 부주장이라 했나? 힘은 좋네. 다 큰 청년 한명을 들쳐메고.
"죄송해요. 형이라면서 수능생동생 불러내는 이 개자식 데리고 있느라 집에도 못 가시고..고맙습니다."
형을 들쳐메고 힘겹게 고개를 들어 말하는 놈에게 빙긋- 웃어주었다. 아니예요. 제가 이 놈 덕분에 좀 재미있었거든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
힘겨워 보이는 남성현을 더 이상 잡고 있다가는 안 될 것 같아 어서 빨리 보내고 나서야 나도 집에 올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집에 오니 누나만 깨있고 부모님은 모두 주무시고 계셨다. 저 마귀같은게 이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만.
"너 왜 이제와?"
"신입생 환영회 갔다왔잖아."
"동우가 아까 끝났다고 했는데? 사실대로 불어, 어디갔다 온 건데? 어? 어?"
"아오, 진짜 환영회 갔다왔어!"
"왜 짜증이야!"
"아, 몰라! 뭐, 뭐, 뭐뭐뭐! 자기나해!"
어이구 진짜... 방에 쾅- 하고 들어와서 찝찝한 몸을 씻기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쏴아- 하는 시원한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씻고 나와서 개운한 몸을 침대에 맡기고 눈을 감았다. 나른해서 그런지 금방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