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핀잔
: 반대의 경우
01
그와 실랑이를 벌인 지도, 족히 삼십 분은 지났을 것이다. 남자는 더 이상의 대답 대신, 가로등에 제 몸을 삐딱하게 기대고는 나를 노려봤다. 아무래도 남자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제 차가 출발하지 못하게 떡하니 버티고 있는 낯선 여자가 반가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남자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애써 모른 척하며, 그의 차 밑을 보기 위해 더욱 몸을 숙였다.
*
조금 전, 오토바이 한 대가 새끼 고양이를 치고 지나가는 걸 목격했다. 나는 당장 택시를 타지 않으면 약속에 늦을 걸 알면서도,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오토바이를 향해 카메라를 최대한 확대했다. 번호판이 찍혔는지 확인할 정신도 없었다.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집어넣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내가 새끼 고양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물고 자리를 옮겼다. 아마도 어미 고양이인 듯 싶었다. 나는 그 둘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다가, 새끼 고양이가 있었던 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새끼 고양이가 있던 곳은 피가 흥건히 묻어 나 있었다. 나는 멀어지는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를 쫓았다. 부모님과의 약속은 잊은 지 오래였다.
고양이들을 따라서 오다 보니 도착한 곳은 술집이 즐비한 유흥가였다. 사실 유흥가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술집들은 아니였다. 길 위에는 고급스러운 바들이 줄지어져 있었고, 바 앞에는 이름 좀 날린다는 외제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길목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서 있기도 했다. 나는 낯선 공간 속 묵직한 공기에 괜시리 가방을 고쳐 매고, 고개를 숙여 고양이들을 찾았다. 딱히 숨을만한 공간이 보이지 않았기에, 분명 차 밑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양복을 입은 사내들은 내가 이상한 지, 나를 향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내며 바닥에 붙다시피, 자동차 밑을 확인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딱 봐도 비싸보이는 검은 세단 밑에 자리잡은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차 앞에 자리를 잡고, 고양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착하지. 이리 온.' 하며. 하지만 어미 고양이는 제 자식의 사고에 한껏 예민해진 상태였기에, 나의 호의에 이빨을 세웠다. 나는 새끼 고양이라도 먼저 꺼내야겠다 싶어, 더욱 손을 깊이 밀어 넣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미 고양이는 제 새끼를 더욱 강하게 품에 안으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꽤 오랫동안 숙이고 있었던 몸을 일으켰다. 편의점에서 참치캔이나 소시지라도 사와야겠다 싶어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며, 몸을 돌렸을 때 보인 건.
차 키를 제 손가락에 끼우고 빙빙 - 돌리는 남자였다.
"다 됐나봐요. 이제."
"...네?"
"다 했으면 좀 비키지."
"...저 그게 ㅇ"
"제가 지금 바빠서."
나는 남자에게 상황을 설명하려 조심스럽게, '저 그게' 하고 말을 꺼냈는데. 남자는 애초에 내 말은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제가 지금 바빠서.' 하며 차 키의 버튼을 누른다. 동시에 등 뒤에서 삐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나를 지나쳐 차로 향했다. 나는 남자의 뒤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저기요!"
"네."
"그 쪽 차 밑에 고양이가 있어요. 어미 고양이랑 새끼 고양이가 있는데, 새끼 고양이는 다쳤어요. 그것도 엄청. 피도 막 많이 나ㄱ"
"요점만."
"네?"
남자는 이번에도 내 말을 끊으며, '요점만' 하고 답한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유형의 인간에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네?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차 문 손잡이에 올려두었던 제 손을 거두어, 내 쪽으로 뻗는다. 남자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뺀 나였다. 그는 그런 나를 향해 실소를 뱉었다. 남자는 손을 뻗어, 내 소매 끝에 붙은 먼지를 털어냈다. 남자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민망해진 내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 쪽팔려.
"내 차 밑에 고양이가 있든, 사람이 있든."
"..."
"나랑은 상관없는 일. 맞죠?"
"...아니. 그ㄱ"
"그쪽이 저 고양이들 주인이에요?"
"그건 아닌ㄷ."
"그럼 그쪽이랑도 상관없고."
"이봐요!"
"이제 좀 비키죠. 진짜 바쁜데."
남자는 '진짜 바쁜데.' 하며 제 손목을 내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아마도 제 손에 있는 손목 시계를 보라는 의미겠지. 그는 '그럼 잘가요.' 라는 말을 끝으로, 제 차에 올라탔다. 그가 차에 올라타자 몇몇 검은 사내들이 허리를 굽혀 크게 외친다. '형님 조심히 다녀오십쇼!' 우렁찬 소리에 놀란 차 밑, 고양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차 앞에 서 있는 내게 비키라는 듯,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손가락을 까닥인다. 와. 진짜 상식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네. 나는 그를 향해 어깨를 두어 번 으쓱였다. 남자의 미간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나는 보란듯이 그의 차 앞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렇게 몰상식하게 나오면, 나도 뭐. 몰상식하게 해줘야지.
*
"정말 안 비킬 거예요?"
"네."
"생긴 거랑 다르게, 하드한 거 좋아하시나 봐요."
"글쎄요."
남자는 가로등에 기대 있던 제 몸을 일으켜 내게로 걸어왔다. 그는 단정한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물었다. 정말 안 비킬 거냐며.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 하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한 번, 실소를 터트리며 물었다. '하드한 거 좋아하나 봐요?' 나는 차 밑 고양이들을 살피며 글쎄요 -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는 '그럼 이번 기회에 알아봐요.' 하고는 빠르게 제 차에 올라탄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시동을 걸어, 핸들을 돌린다. 남자의 행동에 놀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봐요!' 하고 소리치자 그는 조금 전 나와 똑같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차를 움직인다. 그는 제 차를 뒤에 있는 건물에 닿을만큼 후진을 한 뒤에, 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고양이의 울음 소리가 뒤섞였다. 나는 멀어지는 차를 노려보다가, 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진짜 미친놈. 나는 남자의 차가 내 시야에서 모습을 사라지고 나서야, 고양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처참한 모습일까 두 눈을 꼭 감고.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고양이 울음 소리였다. 나는 여전히 두 주먹을 세게 쥔 채로, 실눈을 떴다.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새끼의 상처를 혀로 핥고 있는 어미 고양이였다. 새끼 고양이도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남자의 무식하고 무식한 운전에 다치지 않은 듯 했다.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날이 많이 더워요. 다들 몸 건강히, 마음 건강히. 잘 챙기세요!
분량이 길면 로딩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서, 1편 2편에 나눠서 이야기 할게요 :)
암호닉은 2편에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