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조선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픽션으로 역사적 인물, 사건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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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코하루라는 인물은 여러분입니다.
「」안에 들어있는 말은 모두 일본말입니다.
BGM 을 들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1945년 : 경성
W. 고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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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풍으로 고급스럽게 꾸며진 방 안에 네개의 시선이 침묵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아버지와 그의 사랑스러운 딸. 그리고 그 반대편에 마주 보고 앉은 다른 아버지와 그의 듬직한 아들. 그 누구도 섣부르게 말을 열지 않고 있을 무렵, 이름이의 아버지가 먼저 술잔을 입에 가져다 목을 축이고는 아비의 인자한 미소를 걸치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 " 두 가문이 좋은 연유를 가지고 이리 마주보고 있으니…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안그렇습니까 공작님? " 」
「 " 새끼들의 혼사를 가담하는 자리인데 , 안 좋을리가 있겠나. " 」
「 " 허허, 그렇고 말고요. " 」
「 " 아, 히카루 군은 올해 나이가 몇이라고 했지? " 」
「 " 열 아홉입니다. " 」
「 " 혼기가 꽉 찼구만. 꽉 찼어… . " 」
이름이의 아버지 마츠히 백작은 숨이 넘어갈 정도의 너털 웃음을 지어보이며 정국의 빈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정국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 없이 제 술잔에 서서히 채워지는 액체를 조용히 바라보았고, 술이 다 따라지자 바로 술잔을 들어 목 뒤로 흘려보내었다.
「 " 아, 자네 술을 좀 하는가보군? " 」
「 " … 예. " 」
「 " 허허, 좋구만. 아무래도 사위가 술을 하는 게 장인입장에서는 좋지 않겠나? " 」
「 " 아, 그러고보니 이 아이의 소개가 늦었구나. 코하루, 인사드려라. " 」
「 " … 마츠히 코하루입니다, " 」
「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작님. " 」
「 " 역시, 소문대로 미색이 대단하구만. 열 여덟이라 하였나? " 」
「 "… 어떻게 생각하느냐 히카루. 이 아비가 구한 혼삿감이. " 」
「 " … 나쁘지 않습니다. " 」
「 " 까칠하게 굴긴, 쯧쯧… 이 아이가 원래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지 속은 따뜻하네. 」
「 " 괜히 상처 받을 필요는 없을 걸세, 코하루. " 」
정국은 술잔을 천천히 비우며 제 앞에 있는 이름을 아무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텅 비어있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름이의 몸짓 하나하나,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단어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정국이 이름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름이는 제 앞에서 저를 계속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정국의 눈빛에 계속 신경이 쓰여 마시고 있던 찻잔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뜨거운 액체가 이름이의 손을 타고 흘러내렸고 곧, 그녀의 손은 발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이목이 이름이에게 집중이 되자, 당황한 이름이는 죄송하다 말한 후 조심스레 방을 나왔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정국 또한 이름이의 아버지에게 목례를 한 후 그녀를 따라나섰다.
이름이 밖에 나서고 사랑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무렵, 이름이의 어깨를 정국이 강하게 눌러 멈춰세웠다. 이름이는 뒤를 돌아 정국을 보고는 당황스러운 눈빛을 나타내 보였고, 정국은 그런 이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제가 이름이에게 홀리는 듯한 기분이 든 정국은 눈을 잠시 감고는 제 품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었다. 그러고는 발갛게 달아오른 이름이의 손을 제 손으로 잡더니 손수 손수건을 둘러주기 시작했다.
「 " 많이 아프셨겠습니다. " 」
「 " 아… 감사합니다, 히카루상. " 」
정국은 이름이의 손에 손수건을 다 감고도 한참동안을 이름이의 손을 붙잡고 놔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정국을 보며 이름이는 당황스러워하며 손을 조심스레 빼내었다.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며 침묵만이 공간을 휘감고 있었을까, 정국의 시선이 이름이에게 닿았고, 곧이어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 " 이 혼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
「 " 좋은일이라 들었습니다. " 」
「 " 아, 그런가요. " 」
「 " 혹여나, 이 혼사가 내키지 않으신거라면… " 」
「 " 아니요. " 」
「 "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 」
「 " … . " 」
「 " 아름다운 여인을 마다하는 사내가 어디있겠습니까. " 」
낯 부끄러운 말조차도 서슴없이 하는 정국에 이름이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갔고, 그런 이름을 보며 정국은 의미 모를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정국은 이름이에게 한발짝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레 그녀를 안았다. 세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약하지도 않게. 그녀를 결박하고 싶다고, 정국은 생각했다.
「 " …! " 」
「 "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 " 우리가 함께 할 그날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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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과 이름이 방 안을 나가고 난후, 공간 안에 남아있던 두 남자의 눈빛은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제 자식들이 있었을때는 온화한 아비의 표정을 짓고 있었노라면… 지금은 귀신도 울고갈 섬뜩한 표정이랄까. 침묵만이 공간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을때, 이번에는 정국의 아버지, 나카자와 공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 " 독립한다, 발악하는 놈들이 많아졌다 들었네. " 」
「 " 말씀드리자면, 독립 운동에 가담하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 」
「 "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조직을 만들고 있다고… " 」
「 " 그래봤자 조선놈들끼리 뭘 하겠나. " 」
「 " 그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곧 무언가에 가담할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아직. " 」
「 " 걱정 말게. 독립 운동하는 놈들 안에 간첩새끼 하나 넣어놨으니… " 」
「 " 그러니 쥐새끼들 정보 얻는 것 쯤이야, 식은 죽먹기 아니겠는가. " 」
「 " 역시 나카자와 상은… 대단하십니다. " 」
두 남자는 서로의 술잔을 부딪히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고, 그들의 속내는 까맣다 못해 새카맣게 타 이미 썩은내가 진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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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하고 작은 공간 안, 다섯명의 사내가 모두 제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 중 한 사람, 태형은 제 품 안에서 빛바랜 종이를 꺼내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종이를 보자마자 사내들의 눈에는 비장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형의 옆에 있던 윤기와 호석은 조용히 제 품안에 있던 권총을 탁상 위에 차례대로 올려놓았다. 태형, 윤기, 그리고 호석의 입가에는 미소가 자리해 있었고, 그들을 지켜보던 지민의 입가에도 미소가 깃들었다.
" 타게트 사살했고…"
" 아이고 진짜, 허벌라게 힘들었네요. "
" 우리 국수 한 그릇씩 사줘야 하것소, 안그렇냐? "
" 지랄 국수갖고 되겠냐. 짜장면은 돼야지. "
" 촌스러운 새끼. "
" 촌서 왔다고 촌놈이라 함은 안되제. "
" 으미, 저 치켜세우는 눈 꼬라지 좀 보소. "
" 조용. "
" … "
" … "
" 민윤기랑 정호석 수고했다. "
" … 그리고 김태형도 수고했고. "
" … "
" 오늘은 소개할 자가 있다. "
지민은 탁상위에 올려진 태형이 가져온 종이를 곱게 접어 제 품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제 뒤에 서 있는 새로운 사내를 태형, 지민, 그리고 윤기에게 소개하였다. 어두운 방안에서 호롱불에 비추어진 사내는 훤칠한 키를 소유하고 있었고, 어딘가 모르게 능글거리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지민이 어깨를 툭하고 건드리자 사내는 제 앞에 있는 사내들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 김남준입니다. "
" 경성 대학을 다니고 있고… "
" 앞으로 도움을 많이 드릴테니… 잘 지내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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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자리에 든 으슥한 밤, 낮에 태형, 윤기, 지민, 호석, 그리고 남준이 모였던 공간 안에 하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림자는 곧이어 공간의 구석에 위치해 있는 낡은 전화기를 들어올려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상대방은 한참이 있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고, 공간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천천히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 " …그들을 만났습니다. " 」
「 " - " 」
「 " 오늘은 별말을 하지 않더군요. " 」
「 " - 수고했다. " 」
「 " 아, 그리고… " 」
「 " 최근 죽은 타이치 공작은 저들의 소행이 " 」
「 " 아닌 것 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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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태형과 지민은 경성 시내에 위치한 '코스모스 커-피점'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 누구도 모르게 단 둘이서만. 커피점에 들어선 둘은 제일 구석에 위치한 자리에 몸을 안착했고, 커피 두잔을 시켰다. 잠시 후, 커피가 나오고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여인의 말을 끝으로 지민은 태형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그래서… 연회에서 다른 일은 없었던거야? "
" 음, 백작의 딸과 안면이 생겼지? "
"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 사심이 생겨선 안된다. "
" 언젠가는 죽여야해. 니 손으로든, 누구의 손으로든. "
" 사심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
"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역적의 딸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될리가 없잖아. "
" 하긴… "
" 근데… 예쁘긴 예쁘더라. "
" 김태형…! "
" 불쌍하기도 하고. "
이름이 불쌍하다며 말끝을 흐린 태형은 제 앞에 놓인 모락모락 김이 서려있는 뜨거운 커피로 천천히 목을 축였다. 잠시 후, 태형과 지민의 귀에 '짤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들어 커피점에 들어온 사람을 확인하는데 … 그들의 눈동자 속에 이름이 비춰졌다. 서양식 양장을 곱게 입은 이름, 그리고 그 옆에는… 정국이 함께였다.
" 젠장,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
" 먼저 아는 척 하기 전까진, 아는 척하지 말아. "
이름과 정국은 커피점에 들어온 후 어디에 앉을 것인지 정하기라도 할 것인지 공간 내부를 두리번 거렸고, 곧 이름이의 시선이 커피점의 구석에 있는 태형에게 향했다. 처음에는 태형의 뒤통수만 보아 태형인 줄 몰랐지만, 태형이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떠보이며 반가움을 표시했고, 곧 태형과 지민이 위치한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었다.
「 " 켄타로 상! 어떻게 여기서 만나네요! " 」
「 " 아… 오랜만입니다 코하루상. " 」
「 " 켄타로상의 개인.. 비서라고 하셨죠! 또 만나뵙네요. " 」
「 " 언제나 만나게 될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 」
「 " 아, 그런가요. 다시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 」
「 " 저도요, 별일은 없으시죠? " 」
「 " 그럼요, 아! 코하루상을 보니 생각난건데… " 」
「 " 전에 빌려주셨던 유카타는, 사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
「 " 까먹고 있었네요. " 」
「 " 괜찮아요, 아버님이 더이상 입지 않으시는거라서 돌려주실 필요없습니다! " 」
「 " 물론, 유카타와 함께 코하루상의 얼굴도 볼겸 들릴 것이니… 사양하지 마세요. " 」
눈썹을 씰룩거리며 능글거리는 말을 내뱉는 태형을 보며 이름이의 볼은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그런 이름이의 옆에 서있던 정국은 무언가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이름이의 손목을 잡아 태형과 지민의 바로 옆에 있는 자리에 앉히고는 자기도 따라 앉았다. 이름이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태형에게 정국을 소개하였다.
「 " 이분은… 나카자와 공작님의 아드님, 히카루 상. " 」
「 " 이쪽은 사쿠마 켄타로상이에요. 인사해요. " 」
태형은 정국에게 손을 내밀어 인사를 청했고, 정국은 태형의 손을 바라보더니 곧이어 제 손으로 태형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둘은 맞잡은 손을 흔들어보이며 인사를 나누었다. 두개의 시선은 매우 날카로웠고, 그 둘을 지켜보는 지민은 흥미롭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시작돼서는 안되는 싸움이… 시작되겠다 생각하며.
「 " 사쿠마 켄타로입니다. " 」
「 " 코하루 상과는… 친구죠. 친구. " 」
「 " 나카자와 히카루입니다. " 」
「 " 코하루상의 약혼남… 아, 남편이 될 사람입니다. " 」
「 " … 아, 지아비가 된다, 이 말입니까. " 」
「 " 예, 나중에 식에 오시죠. " 」
「 " 축하해 주셔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
「 " 친구인데. " 」
「 " 그럼요. 가고 말고요. " 」
「 " 근데, 사람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거 아니겠습니다." 」
「 " … ? " 」
「 " 친구가 연인이 될 수도 있는데. " 」
「 " … " 」
「 " 하하, 농담인데, 진지하시네요. " 」
「 " 아무래도 저희가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오붓한 시간 가지시길. " 」
태형은 식어가는 커피를 한입에 들이킨채, 지민에게 나가자는 표시를 하였다.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름과 정국에게 목례를 하였다.
태형과 지민은 곧바로 커피점을 빠져나갔고, 이름이는 그들을 향해 아쉬운 듯 손을 흔들어보였다, 정국은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조용히 응시함과 동시에 커피점을 빠져나가는 두 사내의 뒷모습을 한치의 흔들림이 없는 동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늘한 시선으로, 그들의 사라지는 마지막 뒷모습을 배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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