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야, 경수야, 너 변백현이랑 깨졌지?”
지갑을 챙겨들고 종인과 함께 교실을 나서는 경수를 한 여자아이가 불러세웠다. 꼬물대던 노란 슬리퍼가 멈칫, 경수의 동그란 눈이 여자아이를 향했다. 너 김종인이랑 사귀는거 아니야? 대단한 것이라도 봤다는 듯 샐샐 웃음을 흘리던 아이가 여전히 멍한 경수를 살짝 흔들었다. 오래오래 가. 깨지지말고. 경수가 연히 웃었다. 옆에서 아무말없이 어깨만 들썩이던 종인이 경수의 손을 살짝 끌었다.
“병신같아.” “응.”
조소섞인 종인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과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해석을 한 그 아이가 병신인건지, 헤어지지 않았다고, 지금 그게 무슨소리냐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었으면서도 아무말 하지않았던 경수가 병신인건지. 아무래도 후자일거야, 경수가 생각했다.
“정말로, 변백현 안 볼거야?” “응.” “못됬네 도경수.” “응, 알아.”
며칠전부터 백현이 아팠다. 한참 자다가도 끅끅대는 소리에 일어나보면 화장실 변기를 붙들고 빈 속을 게워내는 백현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몇번 등을 두드려줬지만 이제는 이불부터 뒤집어쓴다. 너도 그랬으니까. 변백현 너도 그랬으니까. 내가 아플 때, 힘들 때, 울 때, 너에게 기대야 할 때, 변백현 너도 그랬으니까.
“아직도 너네집에 있어?” “응. 근데 우리 변백현 얘기 그만하자.” “...그래.”
종인이 눈을 내리깔고 경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지갑을 꽉 쥔 경수의 손이 살짝 떨렸다. 종인이 들리지 않게 입을 열었다. 병신.
* * *
“경. 수야.” “어.” “경, 수, 야. 나 아파...” “어.” “나 아파... 집에 와... 나 아파.”
미안, 나 늦게들어갈거야. 경수가 대답했다. 휴대폰 너머로 살짝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는 듯 하더니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경수의 눈썹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와이셔츠 단추를 한두개 풀었다가 다시 잠궈놓고, 풀었다가 잠궈놓고. 손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던 경수가 순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개새끼. 백현에게 하는욕이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자고, 자신에게 약속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건지, 훤히 드러내놓고 걱정을 하는 도경수에게. 하는 욕이었다. 경수가 깊게 한숨을 쉬더니 휴대폰을 찾아들었다. 단축번호 1을 꾹 누르자 통화로 연결됬다. 변백현. 두어번 신호가 가더니 물기 젖은 목소리가 따갑게 귀를 때렸다.
“끅. 흐, 경수야.” “...뭐 사가면 돼.” “끄, 흑. 도경수 사와. 도경수 사와.” “변백현.” “너 줘... 너 줘... 너 사줘...” “...” “너 내가, 아프다고, 했,는데. 아프다고 했,는. 끅.” “집에가서 얘기해.”
경수가 달리기 시작했다. 변백현이 부른거야, 내가 가는게 아니라. 미친듯이 마음속으로 되새겨놓았다. 그 말로 위안이 된다면, 백번 천번도 더 할 수 있었다. 경수의 속이 타들어갔다. 씨발, 욕지거리가 낮게 쏟아졌다. 싫다, 변백현이 싫다. 내 마음대로 모든걸 할 수 있다면 변백현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런 변백현보다 더 증오스러운건, 정말, 정말로 싫은건, 도경수였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급하게 눌렀다. 두 번이나 틀리고 난 후에야 문을 따고 들어갈 수 있었다. 집 안은 열기로 차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아내던 경수가, 겨우겨우 다리에 힘을 주고 서서 방문을 열었다. 백현은 울고 있었다.
“나 아프다고 했잖아!” “미안, 내가 미안.” “아프다고 했잖아! 밤에,도, 일어났었으면서, 나 아픈데, 무시하고.” “...” “내가 아프다고 그랬잖아... 경수야...” “울지마, 뚝.”
나도 그랬잖아, 백현아. 나도 아프다고 그랬잖아.
울컥 차오르는 말을 눌러담았다. 눈꼬리가 축 져져 헐떡이는 숨으로 낑낑대던 백현을 경수가 살짝 끌어안았다. 백현이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백현의 울음소리 말고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담배냄새가 났다. 정말로 연하게, 뜨거운 몸 구석구석 사이로, 그런 냄새가 났다.
fin
이것은 오백인가 백도인가 ????????????????? 매우짧네여 낄낄 갠홈에 싸지른거 가지고왔습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