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VS 연애 #01
무작정 한다고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담감에 하루하루 고민이 늘어만 갔다.
“선배. 선배는 연기하면서 슬럼프 같은 거 없었어요?”
“슬럼프? 많았지. 왜 없었겠어.”
“많았다고요? 그럼 그럴 때는 어떻게 했어요?”
“그냥 버텼어.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늘 똑같은 일상인 것 처럼 하던 대로 하면 지나가더라.”
“에이, 거짓말. 어떻게 아무 일도 아닌 것 처럼 지내요. 선배는 연기도 잘하고 인기도 많으니까 슬럼프가 없었던 거 아니야?”
선배는 내 말이 어이 없는 듯 작게 웃더니 이내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손을 잡아온다.
“왜- 요즘 고민 있어?”
“없어요! 아니, 없는 건 아니구. 그냥⋯ 이것 저것! 큰 고민은 아니구요.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뭐, 누구나 하는 고민.”
“잘 하고 있지, 그럼. 영화 찍는 거 부담 돼서 그래?”
아무리 숨기려고 해봐도 선배 눈에는 다 보이는 건가. 한 번에 내 고민을 맞추는 선배가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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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있을 때에는 걷는 게 최고라며 한강이라도 나가서 산책하자는 선배의 말에 코트를 챙겨입었다.
“안 춥겠어?”
“괜찮아요! 저 추위 잘 안 타요.”
“너 추위 엄청 타.”
“ㅡㅡ 예쁘게 입고 싶단 말이에요.”
“따뜻하게 입어도 충분히 예뻐.”
“아아아!!! 싫어요. 이렇게 입고 싶다고. 빨리 나가요, 이제.”
.
“내가 춥다고 했잖아.”
“안 추운데요?”
“뭘 안 추워. 지금 코 엄청 빨간데.”
킁.. 조금 추운 건 사실인데 나도 자존심이 있지.
끝까지 안 춥다고 버티는데 은근슬쩍 내 허리를 감싸고는 나를 품 안으로 끌어당기는 선배다.
“⋯뭐예요. 나 진짜 안 춥다니까.”
“응, 내가 추워서 그래.”
“그냥 내가 좋은 거면서. 왜 핑계 대요~”
“부끄럽잖아. 이 나이 먹고.”
“응?”
생각지 못한 대답에 고개를 들어 선배를 쳐다보는데 품 안에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선배 얼굴이 가까이에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며 왜- 하고 작게 속삭이는 선배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간질간질한 기분이다.
“선배 나이가 뭐 어때서요. 조금 많긴 한데 그래도 좋아요.”
“그건 칭찬이야? 아니면 욕이야? 둘 중 하나만 해.”
“응, 사랑한다고.”
사랑한다는 말에 낮게 웃으며 선배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온다.
“유빈아.”
“선배도 나 사랑한다구요? 알아요!”
“그건 당연한 거고.”
“그럼?”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지금까지 잘해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할 거고. 그게 뭐든.”
“⋯뭐야. 갑자기 왜 이런 말 해요?”
“나도 자기 나이일 때 다 했던 고민이니까. 혼자만 그런 생각하는 거 아니고, 주변 친구들도 다 하는 고민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선배다운 위로에 괜히 코 끝이 찡해져서 훌쩍 거리고는 ‘아~ 진짜 춥네!’ 하며 얼버무리고는 이번엔 내가 선배 품에 파고든다.
“ㅋㅋ 안 춥다며.”
“몰라. 갑자기 추워졌어요. 안아줘.”
꽉 끌어 안고 있으니 선배의 따뜻한 체온이 더 잘 느껴진다.
“선배. 그런 기분 알아요?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고, 이렇게 꽉 안고 있는데도 더 가까이 있고 싶은 기분.”
“보고 있으면 안고 싶고, 안고 있으면 뽀뽀하고 싶고, 뽀뽀하면 키스하고 싶고, 키스하면 하고 싶은 그런 기분인가.”
“뭐라는 거야, 진짜.”
“다 알아 들었으면서 뭘.”
괜히 부끄러워서 아무 말 없이 선배만 쳐다보다 발을 들어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면, 그대로 허리를 숙여 더 진득하게 입술을 붙여온다.
선배는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나를 따라오더니 더 이상 뒤로 갈 수 없도록 한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 안는다.
길어지는 입 맞춤에 두 손으로 선배 얼굴을 감싸고는 날씨 탓에 차가워진 귀를 만져주면 나를 더 꽉 안아온다.
귀에서 자연스레 뒷 목으로 손을 옮겨가면 잠깐 떨어졌다 다시 입을 맞추려는 선배에 고개를 돌리면 ‘왜.’하는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사진. 찍히면 어떡해요.”
이제와서 걱정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면⋯. 이제야 생각났는데 어떡하냐는 말이다.
선배도 내 말을 이해했는지 물러서면서도 ‘아~ 연예인 하지 말 걸.’하고는 투덜거린다.
뒷 목에 올려두었던 손을 내려 선배 허리에 두르는 척 하다 엉덩이를 두 어번 토닥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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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만약에 이렇게 우리 넷이서 밥 먹는데 유빈이가 우리 깻잎 떼주면 어떨 거 같아요?”
“우리는 괜찮지~”
“그게 뭐. 깻잎이 왜?”
ㅋㅋㅋㅋ 선배랑 제일 친한 사람들이라 나랑도 금방 친해진 오빠들이랑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졌는데 한참 유행이던 질문을 시작으로 이런 주제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형은 뭐가 문젠지를 모르시는 거 같은데. 본인이 나서서 남의 깻잎 떼어줄 판이야.”
지훈 오빠가 하는 말을 듣고는 다시 한 번 물어봤다.
“⋯선배, 그럼 내가 막 선배는 모르는 남사친 깻잎 떼어줘도 괜찮아요?”
“그게 문제가 있는 거야? 왜. 뭐가 문젠데.”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선배 그러면 내가 촬영을 하러 갔는데, 겉옷이 마땅한 게 없어서 너무 추워. 그래서 막 다른 배우 옷 입고 있으면? 그것도 상관 없어요?”
“그 사람은 안 추운가? 그럼 괜찮지, 뭐.”
“그럼 만약 선배랑 촬영하던 여자 배우가 춥다고 옷 달라하면 빌려줄 거에요?”
“글쎄. 내가 안 추우면.”
“미쳤구나?”
“아니, 왜 대화가 그렇게 돼.”
“진짜 짜증나요, 선배.”
혼자 신나서 얘기하다 혼자 삐져서 짜증내는 나를 보더니 그 자리에 있던 세 명이 다 웃는 상황이 더 얄미워 티가 나게 가만히 있으면 그제서야 날 풀어주려고 애쓰는 선배다.
“누가 나한테 옷 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그래도 누가 달라하면 준다는 거잖아요.”
“안 줄게~”
“유빈아 나는? 나도 형 옷 입으면 안 돼?”
“오빠는 당연히 되죠! 남자는 누구든 상관 없는데⋯”
내 말에 또 셋이 같이 웃는게 왠지 막내 여동생 보는 오빠들 같다.
오빠들이랑 선배도 다 술을 잘 하는데 나도 못하는 편은 아니라 술자리가 꽤나 길게 이어졌다.
나는 천천히 마시기도 했고 비교적 적게 먹은 편이라 멀쩡한데, 선배는 피곤해서 그런지 취기가 꽤나 올랐다.
오빠들은 계산한다고 먼저 나갔고 우리도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나가려는데 선배가 뒤에서 날 안아온다.
평소보다 더 뜨거운 몸과 쿵쾅 거리는 선배의 심장을 느끼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묘해져서 안긴 채로 가만히 있었는데 내 목덜미에 짧게 입을 맞추더니 금방 나가버리는 선배다.
“빨리 나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뭐야, 왜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어 놓고 혼자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