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쭈쭈 우리 영은이 앞으로는 아프지 마. 알았지? 삼촌이 뽀뽀하면 우리 영은이 아픈거 다 삼촌이 가져가겠지요 그치?"
뽀뽀하면 안된다니까 결국 저 고집불통은 죽어도 뽀뽀세례라며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 누나 그거 하지마 어떤 새끼가 머리속에 지나갔단 말이야.
'아 나는 뽀뽀말고 키스가 좋단 말이야, 우리 키스하면 안됩니까?'
'싫어, 나는 뽀뽀가 좋은데 어쩔. 아 뽀뽀아니면 안 해. 나 안해'
'못 살아 차학연 진짜..'
웃지마. 그렇게 고개 저으면서 웃지마. 그 다음엔 나한테 뽀뽀 해줄거잖아.
이재환 생각을 안 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찾아갔던 마지막 도피처였는데 결국 이렇게 또 막혀버렸다. 거지같아 진짜.. 갑자기 급 우울해진 기분에 영은이를 꼭 끌어안고 영은이 얼굴에 내 볼을 부비적댔다. 영은아 삼촌 여기가 너무 아야해, 영은이가 호 해주면 안될까? 영은이는 콜록대면서 주욱 침을 늘어뜨렸다. 그러고선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실헤실 웃는 그 모습에 결국 풋 하고 웃음이 나 손으로 영은이 얼굴에 번진 침을 닦아주며 약간은 밝아진 기분에 부둥부둥 영은이를 안고 놔주지 않았다.
몇 시간을 그렇게 놀다 이제 집에 가서 부모님 좀 뵈라는 누나의 호령에 결국 엉덩이를 떼야만 했다.
"영은아 삼촌 나중에 또 올게? 그때는 삼촌 사랑해 해줘야 해 알았지?"
마지막까지 팔불출 끼를 철철 흘리며 병원을 나섰다. 얼마 안 되는 군인 월급이지만 원무과에 들러 영은이 병원비 수납까지 마치고 돌아섰던 그 순간,
찰나였다.
"하.. 나 씨발 어떻게 여기서 마주치냐."
우리 운명인가봐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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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차례를 기다리다 드디어 이름을 호명당해 진료실에 들어선 순간 진물이 뚝뚝 떨어져 칭칭 감아올렸던 휴지더미를 걷어내자 의사는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씩 웃으며 손이 이렇게 돼서 왔습니다. 이거, 고칠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고 의사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 손으로 여지껏 뭐하다 이제 온겁니까?
"아스팔트에서 당신 손 위로 자동차라도 지나간 겁니까? 아니 그러면 바로 왔어야지 상처가 이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뭘 한거예요, 통증 그런거 느낄 수 있긴 해요?"
"글쎄요.. 그런거 못 느껴 본 지가 오래라서. 그닥.."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자 의사는 기가 막힌지 허 하고 웃음을 터뜨리다 고개를 젓기에 이르렀다. 의사 인생 10년에 이런 환자는 또 처음이네.. 이것저것 들이붓고 솜으로 툭툭 치더니 치료의 마지막인 붕대를 칭칭 감으며 의사는 마지막까지 종알종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소염진통제 처방해드릴테니까 꼭 드시고, 소독 꼭 하시고, 붕대 꼭갈아끼우시고.."
계속 되는 잔소리에 머리가 아파왔다. 아 이런 잔소리 내 타입 아닌데..
'다쳤으면 곱게 누워서 치료받아 개새끼야. 더 빡치게 만들지 말고.'
그렇지. 이게 내 취향이지. 욕까지 질펀하게 섞어 침대에 나를 눕혔던 당신이 생각났다. 당신을 생각하자마자 담배가 생각났고 이 치료가 얼른 끝나길 빌었다. 당신이 보고싶어서가 아니라, 담배를 입에 물고 싶어서. 단순히 그 이유 뿐이었다.
오른손에 칭칭 감은 붕대가 벌써부터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테이프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아직까지 병원 안이라 양심상 붕대를 풀진 못하고 연신 만지작댔다. 진료비를 수납하고 약국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찰나였다.
불광낸 군화발에 각 잡힌 군복 소매. 훈련소를 벗어나자마자 손으로 내려왔을게 뻔한 베레모까지. 어떻게 당신은 하나도 변한 게 없어. 하나도 변한 거 없이 이렇게 이쁘고, 사랑스럽고.. 좆같아 씨발.
어떻게 몇 만분의 일 확률이 일어나. 말도 안돼. 말이 된다면, 이게 과연 말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건 신이 날린 경고였을까. 당신 이렇게 눈에 한번 담았으니까, 이제 영원히 담을 수 없다는, 신의 경고 같은건가..
니미 다 좆까라 그래. 운명이지. 운명이야우리. 지금 이 상황이 하나하나 너무 다 좆같은데 나 너무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