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 너 알고 있었구나.
내가 부모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나는 그래서 병헌이에게 더욱 집착을 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생긴 마음의 안식처에게 기대고 싶었을 테니까.
또다시 버림 받는 다는 것에 대한 상처가 남아있었을 테니까.
이 집은 이병헌이 1주년 기념과 내 생일선물로 사준 것이였다.
주지도 못하면 아무 생각 없이 많은 것을 받아 놓고선 나는 바보처럼 그에게 버리지 말라고 징징댔다.
능력이 없으면 유지라도 할 걸.
다시 버려졌을 때 나는 두개나 잃었다.
너와 나.
"뭐부터 대답해야 하는데?"
"............."
"꼭 대답해야해? 하고 싶은 것만 하면 안되나."
".............."
"글쎄,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어디서부터 뭐부터 말하면 되는 지 모르겠어."
"어째서."
"너가 나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 지 모르잖아. 나는 한번도 말한 적 없는 것을 너는 알고 있고. 안 그래?"
"............."
나는 그를 비꼬려고 한 것이 아니였다.
정말로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2년 전, 내가 많은 여자들을 만나며 조금씩 모아 큰 돈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라고 설명해야할지.
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온 모양인데 나는 그런 너가 당황스럽다고.
"아니야, 됐어. 지금 당장 대답 안해도 돼. 천천히.... 천천히 말해줘."
"왜?"
".....뭐 돈에 대해 궁금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네가 나를 만나기 이전의 이야기를 네 입으로 듣고 싶었어. 네 얼굴을 보니 별로 좋은 얘기는 나올 것 같지도 않고."
"............."
"너 부모님 없다는 것은 찬희형이 말해줬어. 너를 만나려면 너를 알아야하고. 네 입으로 듣고 싶어서 다른 이야기는 안 들었지만 거기까지. 딱 거기까진 알아."
녀석은 여유롭다는 듯 웃고 있지만 손은 어색해서 방황하고 있다.
강한 척해도 너도 결국 여린 애구나.
나는 공중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종현이의 손을 잡았다.
"궁금한 거 있으면 이렇게 직접 물어봐. 아까 같이 쏘아 묻는 것은 사양이지만."
"......좋아."
"그니까 나 밥줘."
"지금 말고 조금만 기다려. 12시. 12시에 먹자. 그 때까지 나는 좀...자야겠어."
"뭐?!"
"창현아, 여기서 뭐하고 있어?"
"..........."
"울었어? 왜, 누가 괴롭혔어? 우현이가 또 때렸어?"
"형.. 우리 여기 언제 나가?"
"...나가냐니?"
"우리 여기서 계속 살아?"
"..............."
형은 입술을 깨물고 눈기 어린 내 눈가를 쓸어주었다.
항상 웃고 있지만 상처 받은 눈은 형의 상징이였다.
흔들리는 짙은 검은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창현이는 고아원을 왜 나가고 싶어?"
"원장이 맨날 잔소리하고 또 학교에서 귀가할 때 친구들이 고아원 산다고 놀린단 말이야."
"또?"
"또? 냄새나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머리 뽀글이 아줌마들은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하면 맨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봉사시간 때문에 억지웃음 지으러 오는 누나들은 우리를 더러운 애들 취급한단 말이야!"
".....그래?"
"나가고 싶어. 완전. 여기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나는 창현이랑 여기 있는게 좋은데."
"왜?!"
"그냥. 이 곳 울타리에 있을 때가 제일 안전하잖아."
"안전하지 않아! 나 언제가는 나갈거야."
"창현이와 함께라면 형은 어디든 두렵지 않지만 형은 될 수 있으면 여기서 더 오래 머물고 싶어. 이만한 보금자리가 ...."
형은 한숨을 쉬며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다 알아.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한 댓가는 모조리 형에게 돌아가는 거.
고아원 원장도 내게는 친절한 말투를 사용하지만 내가 뒤돌면 형에게는 모질게 대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쌍둥이인데도 누구는 같이 버려져도 사랑 받고 누구는 매질 당했다.
나도 다 알아. 내가 형의 전부라는 것도. 형은 언제나 나를 제일 우선시 한다는 것도 말이야.
근데 왜 그랬을까?
그 후 얼마나 지났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곳에 더 머물고 싶다는 형과 싸운 그 날 나는 형이 나를 애타게 부르는데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서 나는 새빨간 피를 보고도 나는 차갑게 뒤돌았다. 그리고 그에게서 멀어졌다.
내가 형을 버린거지.
내가 형을 버린거야.
내가 나빴어, 내가 이 세상의 전부라는 사람을 그렇게 버렸으니까.
형이 차에 치이기 직전에 꿈에서 깨어 눈을 뜰 때면 나는 늘 피비린내가 입안에서 느껴진다.
그의 기억은 내게 악몽이었을까.
형은 그 때 죽었을까. 만약 살아 있다면 나를 아직 원망하고 있을까.
"아!"
"뭐야, 왜 그래."
내 스스로 요리를 해본 적도 없으면서 괜히 욕심을 부려 칼을 잡았다.
날 알지도 못하면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시키고 앞으로는 더 고생이 많을 종현이가 일어났을 때 같이 먹으려고 밥을 해보려고 한 것이다.
서툰 칼질로 김치를 자르다 어이 없게도 손을 비었다.
"야, 너 뭐해!"
내 손가락에서 나는 피를 최종현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입에 넣고 빨았다.
"뭐야! 더럽게!"
"아, 미안. 나도 모르게... 응급박스 어딨어?"
"이씨.. 내가 붙일거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녀석은 내 손을 놓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아, 미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정말 습관 또는 조건반사인 것처럼 하는 행동인 마냥.)
녀석의 행동이 불쾌하다지는 않았지만 당황스러웠다.
자꾸 네가 거리낌없이 행동하니까 내가 놀라잖아. 넌 나를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
하아.. 그나저나 반창고가 어디있더라.
예전에 내가 다치면 병헌이가 호들감을 떨며 붙여주던 탓에 박스가 어딨는지도 모른다.
정말 나 혼자할 수 있는게 별로 없네.
하루에도 수십번 오늘도 벌써 몇번 째 네가 생각만해, 이병헌.
반창고는 티비 옆 큰 캔버스 뒤에 있었다.
- 시작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