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가 안 보고싶었던거야 이 씨발새끼야?"
"네"
1초의 정적을 과연 차학연은 눈치 챘을까. 눈치 못 챘으면 하고 바랬다. 당신이 나를 눈치채고 세번째 되묻는다면 나는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고 당신을 끌어 당겨 품에 안았을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결국 당신은 세번째 말은 없이 발개진 눈에 그렁그렁 눈물방울을 매달았고, 나는 더이상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시선을 낮추자 보이는 베레모를 꽉 쥐느라 터질듯이 빨개져버린 손이 보였고 당신의 어느곳을 마주쳐도 마음이 아려 결국 시선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말 다 끝났어요? 그럼 이만, 여자랑 약속이 있어서"
그는 고개를 떨구었고 나는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다. 최대한 병원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하.. 변한게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이, 예쁘고. 너무 예뻐서. 씨발. 미치는 줄 알았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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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환은 할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내 옆을 스쳐 자리를 떴다. 나 안 보고 싶었다고, 여자랑 약속이 있다고..? 씨발 웃기지마 개새끼야. 나 되게 보고싶었던 얼굴이었잖아. 여자 털끝도 못 건드리는 니가 여자랑 약속이 있을 리가 없잖아..
시선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네 모습에, 그리고 그 1초의 정적에 너는 모든것을 들켰다. 아무리 니가 기를 쓰고 숨겼어도, 마지막에 다 들켰어 너.
내 맘대로 해석하는거라고 개소리 하지말라고 그랬지. 니가 아무리 씨부려도 니가 오늘 나한테 뱉은 말 중에 진심은 하나도 없었어. 그렇게 믿고 너 지금 보내는거야. 너 도망치는거 다 알고 내가 보내주는거라고.
"나는 너 진짜 보고싶었거든 개새끼야."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네 모습을 눈에 담지도 못하고 눈물방울만 떨구며 말을 뱉었다. 울음기가 많이 섞여 네게 전달이 됐을까. 네가 들었어도 모른 척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 그런 여지같은거 남겨봤자, 너는 다시 나한테 오지 않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나만 손해잖아 씨발..
"그래, 그래 싫어졌을 수 있어. 나 안보고싶었을 수 있어. 근데..근데 말이야 재환아."
나는 지금도 니가 보고싶어 미치겠어.
네가 없어진 병원 로비에서 나는 우두커니 주저앉아 소리내 울지도 못하고 그대로 무릎을 끌어안고 숨죽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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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귓가에 스치듯이 맴돈다. 보고싶었어 개새끼야
나도 라고 말하고 싶었던 혀에서 아릿한 피맛이 나도록 깨물었다. 바닥에 주저 앉아 당신의 모든 것을 곱씹어보다 결국 허,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당신 얼굴 말투 행동 몸짓 하나하나 내 눈에 담고 싶었어. 근데, 내가 더 이상 욕심 부리면 안 되는 거니까. 그럼 당신이 힘들어질게 뻔하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우리. 아무리 운명이라 하더라도, 신이 주신 기회라 하더라도...여기까지만 해.
입안에 잔뜩 고여있던 아릿한 비린내를 모두 뱉어버리고 담배 한대를 물었다. 아..씨발 내 취향 아닌 잔소리 또 생각났어..
'손 아물때까지만이라도 담배 끊으세요. 상처 빨리 안 아뭅니다. 거 왠만하면 금연하시고, 빨리 나으시려면 운동도 좀 하시고'
좆까세요. 이미 그럴 몸 상태가 아니거든요 의사선생님아. 그냥 조용히 누워서 죽을때만 기다리면 되는 몸상탠데, 그냥 죽은 듯이 누워 있을걸. 괜히 살아보겠다고 지랄 발광을 떨어 내 발목을 내가 잡은 격이 되었네요.
손가락에 느슨하게 걸린 기다란 담배, 쭈그려 앉아 작게 말린 몸, 붕대 감긴 손이 머리로 올라와 하는 어설픈 위로, 아.. 보고싶다. 이딴 어설픈 위로 말고. 차학연 보고싶다.
방금 눈에 담았는데,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무슨 짓을 할 지 모르겠어. 나 빨리 뒤져야 할 것 같아. 그게 아니면, 그게 아니면.. 그러니까, 당신을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다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