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이 끝난 날. 나는 아이들과 다른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긴장감이 내 목을 비트는 듯 한 숨막히는 그 곳에서 한 7시간 여를 상공에 있었을까, 그들은 주머니에서 뭔갈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군용식량이란걸 확인한 즉시 입에 털어넣었다. 아..이 씨발.. 식량을 입에 털어넣자마자 졸음이 쏟아졌고 그렇게 나는 어딘지도 모를 상공에서 그렇게 잠이 들었다.
아직도 눈을 떴을 때의 그 알콜의 역한 냄새를 잊지 못한다. 대체 수면제를 얼마나 넣은건지 눈을 떠도 뜬 것 같지 않았다. 마냥 흐리기만 한 시야에 들어온 실험복 두 개가 보였다.
"이상해. 분명 피부가 썩어 들어가야 하는데 왜 외상으로 보이는 부분이 전혀 없지?"
"아무래도 이번 약이 혹시 잘못 개발 된 게.. 아닐까ㅇ.."
"닥쳐. 그럼 너도 죽고 나도 죽는거야"
얼마나 눈을 감았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아려오는 팔에 시선을 돌리니 이미 수십개의 바늘구멍이 들어차 있는 팔은 바늘구멍이 없는 부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반응인지 외상적으로 일어나는 상처는 바늘 구멍이 다였다. 실험복을 둘둘 말고 있는 새끼들은 계속해서 고개를 꺾으며 일지를 적어내려갔다.
실험은 계속 되었고 외상적인 부분은 전혀 없었지만 바늘이 처음 살을 찌를때 부터 쑤셔왔던 심장 부근을 슬슬 문질렀다. 야.. 니네 약 좆도 못 만드네. 피부가 썩어 들어가?, 내폐가 썩어 들어가는거 같은데..
"씨발 사람 살리려고 만드는게 약 아니냐 개새끼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그런 가운 입을 자격이나 돼?"
주사 바늘을 꽂는 양키 새끼 머리 위로 침을 툭 뱉으며 한국식 욕을 질펀하게 해줬었다.실험복을 입은 의사들은 주먹쥔 손을 떨어가며 일지를 써내려 갔다. 그래, 나 실험체라서 건드릴 수 없다 이거지.
결국 내 성질대로 하고 말았다. 풀린 눈으로도 실험복을 똑바로 마주보며 링거 꽂은 팔을 들어 얼굴을 가격했고 순식간에 흰색으로 가득찼던 병실에 벌건 액체가 군데군데 튀었다. 결국 그들은 나를 침대에 결박했고,풀린 눈은 아예 뒤집혀 고통을 토해냈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심장은 여전히 쑤셔왔고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죽기전에, 차학연이랑 같이 하늘 보기로 약속했는데.. 씨발 좆같은것들이 그 약속도 못 지키게 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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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젠가 차학연과 둘이서 임무를 맡았을 때 주고받았던 말이 있었다. 지하에 갇혀 몇 날 며칠을 보내던 그 때, 아 우리 이제 죽겠구나 하는 공포를 처음 느꼈다.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나를 끌어 안고 몸을 웅크려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당신 귀에 속삭였다.
'우리 야외에서 한번 해야지. 그런 스릴도 못 즐기고 이대로 가면 아쉽잖아?'
'..야 이 새끼야 여기서 그런 농담이 나오냐?!'
'그러니까, 내가 당신 무조건 살려서 손 꼭 잡고 하늘 보게 만들어 줄테니까, 떨지 말라고.'
그 말이 왜 귓가에 맴돌았을까. 눈꺼플이 서서히 감기며 새하얗던 천장 대신 검은 암막이 내 시야를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