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는 분명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 생각에 신이란 작자가 나를 기만하기라도 하듯, 그는 바다에 잠식된 나를 손쉽게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나를 조롱하려던 것일까.
그 새끼들이 멍청한건지 아니면 정말 성공을 확신한건지 실험실에는 외상의 정도만 알아볼 수 있는 기계만 갖춰져 있을 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계 중에 내상을 알아볼 수 있는 장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걸 두고 천운이라고 하는 것인가, 몇 달을 그곳에 갇혀 있었던건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지랄 발광을 떨고 내 세상이 심해에 잠식되었다. 얼마가 지났는지 가늠도 하지 못한 채 뻑뻑한 눈을 떴을 때는 매번 보던 새하얀 천장이 아닌 차가운 스텐레스의 천장이 전부였다.
"이거.. 이거 특전사 훈련 받을 때 갇혀있었던 영안실 삘인데?"
작전 도중 영안실에 잠깐 갇혀볼 일이 있었는데 그때의 느낌과 유사했다. 뭐야 씨발 안되니까 영안실에 갖다 버린거야? 허, 시체 처리를 할 거면 똑바로 했어야지, 머리가 빈 놈들인가..? 머리를 긁적이며 예전에 했던 대로 똑같이 했다. 영안실은 외국이나 한국이나 다 엇비슷한 듯 했다, 서랍처럼 생긴 영안실의 구조를 생각해 내 차가운 서랍의 밖으로 나와 맨발로 발을 디뎠는데, 발을 대자마자 픽 하고 쓰러졌다.
"씨발 살긴 살았는데 말이야.. 몸 상태가 영 좆같아. 이러면 차학연을 당당하게 못 보잖아.. 차라리 잘 좀 죽이던가. 아예 미련없이 천국 가서 차학연 기다리고라도 있게."
쓰러지는 와중에도 죽지 않은 이상 차학연을 어떻게 마주할까를 걱정했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또 한번의 알콜 향이 스쳐지나갔다. 파란눈의 금발을 가진 나와 다른 그들은 내가 영안실에 쓰러져 있다는 말도, 폐도, 심장도 모두 다 비정상이라는 것도, 아무것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가끔 가다 Are you OK?만을 외치고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말하는 그들이 뻘하게 웃겼지만 못 알아 듣는 척 고개를 다시 베개에 푹 파묻었다.
2016년 2월 15일 파병 마지막 날, 아이들을 군용헬기에 태워 보냈고, 내가 또 한번의 알콜향을 맡은 지금. 오늘은 2016년 5월 24일이다. 오래도 있었네. 차학연 안 보고 산지.. 다시 팔에 꽂힌 링거를 보니 그냥 차학연이 생각 났다. 보고 싶다. 보고 싶어. 이 몸 상태로는 못 마주칠 거 알지만, 그래도 한 번만 내 눈에 담고 싶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볼 수 없으면 그냥 몸 만이라도 당신 있는 곳에 있게. 당신 밟고 있는 땅이라도 같이 밟고 있게. 한국으로 가고싶다고 간절히 빌었다. 신이 있다면, 정말 있는거라면 딱 한번만 더 내 소원 들어달라고 땡깡 부려야지. 차학연 못 만나도 좋으니까, 그냥, 그냥 차학연이 뱉은 숨이라도 있는 그 공간에 같이 있게 해달라고 한번만 빌어야지.
내 기도는 신에게 전달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