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기회가 주어진다면02
부제: 끝없는 불행
눈을 떴다.
갑자기 추워진 온도에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 끝까지 잡아당기던 것도 잠시, 이불을 확 걷어내고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거울을 보았다.
"엄마!!!!!"
"우리 딸 왜~? 맞다, 오늘 늦으니까 지수 어머니 댁에서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미리 말씀드렸으니까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가야된다."
내가 몇살이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이상하게 쳐다보겠지..?
달력을 확인해보자!
"2004년..?"
"세월 빠르지? 초등학교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적응하는 모습 보니까 엄마가 다 뿌듯하네.."
"말도 안 돼.."
가정통신문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내가 아끼던 보석상자, 아끼던 책 사이, 혹시 몰라 분리수거함까지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제발.. 그거 꼭 찾아야 돼.. 이제야 봤다고 보여주면서 말해야 돼.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도 아니고 끝나가는 겨울이라니. 그 얘기를 어떻게 꺼내.."
"아침부터 무슨 꿈을 꿨길래 이리 울상이야? 학교 갈 준비 안할 거야?"
엄마의 말에 해탈하며 학교 갈 준비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추워진 공기에 몸속 피까지 얼을 것만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맑은 날씨였는데 하루 만에 겨울이 될 게 뭐람.
"어? ㅇ여주! 아이스께끼~!"
치마를 입은 내가 잘못일까? 아이스께끼를 하는 저 미친놈이 잘못일까?
이럴 땐 정정당당하게 고자킥을 해주는 게 인지상정.
"너 잡히면 죽을 줄 알아."
빠르게 뛰어가다가 누구와 부딪혀버렸다. 죄송하다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부딪힌 사람의 얼굴을 보고 멍을 때릴 수밖에 없었다.
"어제 한 ㅁ, 아니다. 나 먼저 가볼게."
날 지나치는 민규에 잡으려고 했지만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버렸다.
**
"공기하자!"
"난 잠깐 일이 있어서 잠시만 다녀올게!"
가려는데 붙잡는 친구 덕에 앉아서 소녀 같이 웃으며 공기놀이를 해야했다.
공기를 존나 못하는 척 다 떨어뜨려주고 머쓱한 웃음을 짓다가 "나 못한다고 했잖아!!" 하며 초딩의 박력을 선사해주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공기를 하며 추억을 떠올리고 싶지만 난 지금 민규가 더 급하다.
반을 하나씩 돌아다니다 마지막 반 앞에 멈춰서 심호흡을 했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개구쟁이같이 생긴 남자애가 뒷문을 닫으며 얄밉게 웃었다.
앞문으로 뛰어가자 앞문도 닫더니 유치하게 말했다.
"다른 반은 출입금지야! 들어오려면 천원내야 돼!"
"아오 꺼져."
"... 너 혹시 조폭마누라야?"
"급하니까 꺼지라고 미친놈아!!"
그래 애들 눈에는 내가 신기했겠지.
근데 욕이 나오는 걸 어떡해ㅠㅠㅠㅠ 조폭마누라가 뭐야 손발 오글거리게ㅠㅠㅠㅠ
밀어도 꿈쩍 않는 남자아이에게 정강이를 차려고 하는데 뒤에서 민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뭐해?"
"저, 저기. 민규야.."
"어, 어제 그 말은.. 그냥 해본 말이야. 너가 삐쳐서 나도 안 보는 걸 어떡해."
"응?? 어제..?"
"기억 안 나? 너 진짜 못됐구나.."
공기를 하다 와서 그런지 종이 쳐버렸고 난 뭐라도 기억해내려 애썼다.
어제의 나도 나인 건 마찬가지니까 기억이 남아있으리라 믿고.
어제의 기억이 남아있을리가 없지.. 허탈한 나를 뒤로하고 민규는 밖을 보며 한마디 했다.
"눈이다.."
복도 창문에서는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금 상황과는 맞지 않게 예쁜 눈.
떨어지는 눈들을 보고 있는데 민규가 내 옆에 서더니 같이 눈을 구경했다.
눈을 보던 걸 그만두고 민규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날 보며 말한다.
"예쁘다."
현재의 민규에게선 절대로 나오지 않는 말이었다.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리려고 하는데 민규는 덧붙여 말했다.
"눈이."
"어제 했던 말 있잖아.."
"...이제 기억났어?"
"가정통ㅅ"
"민규야 종치면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죠? 얼른 들어와. 여주도 얼른 반으로 들어가야지?"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들어가 버린 민규에 난 반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엇갈리는 걸까 민규야.
**
"여주야 너도 놀이터 갈 거지?"
"응? 나 할 일이 있어서.."
"너 왜 자꾸 우리랑 안 놀려고 해!? 아까도 자꾸 나가서 안 들어오더니!"
이러다 왕따 당하는 거 아니야?
그건 안 되겠다. 미래를 위해 친구는 없애지 말아야지.
"몇 시까지 만날 거야?"
"우리가 언제 시간 정하고 만났어? 집 갔다가 바로 놀이터로 와."
"그, 그래!"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생각해보니 열쇠가 없다.
집 앞을 서성이다 포기하고 놀이터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민규 집은 기억도 안 나고, 휴대폰도 없고, 집전화도 수시로 바꿔서 기억도 못하는데 뭘 어떻게 만나야 돼..?
얼른 돌아가야 하는데..
놀이터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가방을 매고 온 나를 보며 의아해했지만 난 그런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침에 아이스께끼를 한 새끼 덕분에.
"야 너 잘 만났다!"
가까이 다가가 고자킥을 날리니 겁나 아파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악마 같은 웃음을 지어줬다.
통쾌하네.
"아 ㅇ여주 진짜!!"
"너 그러다 후회하니까 적당히 해. 내가 충고해주는 거야."
"뭐라는 거야!!!"
"왜 싸우고 그래! 애들아 오늘은 뭐할까? 우리 얼음땡하자!"
얼음땡?(후비적) 겁나 식상보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콧물까지 질질 흘리며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 얼음을 했는데 술래인 원우가 내 앞에 멈췄다.
얼음 했다고 말해주려는데 크게 웃다가 옷소매로 내 콧물을 닦아준다..?
"내가 닦을게!"
"금방 닦아. 거 봐, 다 닦았지!?"
"응.."
"야 전원우! 얼른 잡아야지! 너만 술래할 거냐!?"
"기다려라 너는 내가 꼭 잡는다."
신나게 놀다 또 민규 생각에 멍을 때리다 술래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놀고 있으니 민규 생각이 없어지긴 하는데 가끔 생각나는 민규의 모습이 더 아련해서 노는 것도 못해먹겠다.
"엄마한테 혼나겠다! 나 이제 가야돼!"
"야 너 술래되니까 집에 가는 거지!?"
"아니야!!!! 내일보자!!"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지는 탓에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집에 도착했는데 들어갈 방법이 없다. 열쇠가 없네..
지수 어머니가 누군지 알아야지 찾아가든 말든 하지..
엄마는 오늘 늦게 온다고 하셨고, 아빠는 틈만 나면 야근이라 죽치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계단에 앉아서 추위에 몸을 떨다 몸을 움직이며 열을 내자는 생각으로 동네 주변을 돌았다.
열심히 돌아다니다 보니 익숙한 곳에 멈춰 섰다.
"어!? 기억났다! 민규 집!!!!"
역시 생각 없이 걷는 게 무서운 건지 민규 집을 스스로 찾았다.
민규를 크게 불러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운명같이 민규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빠르게 뛰어 팔을 잡자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여기서 뭐 해..?"
"야 김민규.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왜 너 혼자.."
"나 할 말 없어."
"없긴 왜 없어!? 난 많으니까 나랑 얘기좀 해."
"나 이제 여기 없어."
"뭔 소리야??"
"너 보기 싫어서 도망간다. 왜?"
"뭐라는 거야.."
"나중에 또 보자. 볼 수 있다면."
뭘 이렇게 마지막 인사같이 하냐.
존나 매정보스야.
"너 들어갈 거야? 나 집에 못 들어가는데.."
"또 열쇠 잃어버렸어?"
"응? 응.."
"잘하는 짓이다. 추운데 잘됐네. 감기나 걸려."
"어쩜 이렇게 못된 말만 골라서 해? 아주 넌 지금이나 예전이나 똑같아."
"너 근데 왜 갑자기 나랑 가깝게 지내? 언제는 나 싫다며."
"그건 너가 자꾸 나 피하니까 그렇지!!"
"민망하니까 피하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너가 먼저 질렀잖아!!!"
초딩답게 유치하게 싸우던 우리는 곧 서로를 보며 빵터졌다. 웃다가 민규의 집 안으로 들어오니 상자가 가득 쌓여있었다.
이곳저곳 가득 쌓인 상자에 의아하게 쳐다보다 민규한테 물어보니 버릴 것을 상자에 담아뒀다고 말했다.
"그렇구나. 헐? 이거 진짜 오랜만이다!"
"여기 처음 오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
"맞다 민규야 너네 반은 어때? 재밌어?"
빠르게 말을 바꿔나가며 옛날에 했을법한 대화를 나눴다.
서로 대화를 하다보니 조금 더 가까워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친해지겠다는 마음으로 늦은 시간까지 놀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된 것 같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 이렇게 늦게왔냐는 엄마의 꾸중에 지수와 함께 재밌게 놀았다고 해맑게 말하자 꿀밤을 세게 때리셨다.
"아! 왜!"
"지수오빠라고 해야지 지수가 뭐니!?"
"아, 오빠야..?"
"너 지수한테도 지수라고 불렀니!?"
"아뇨.."
"앞에 없다고 오빠 빼서 말하는 거 버릇된다 너? 고쳐야 돼. 알았지?"
"네.."
언제 한 번 지수라는 사람 만나기만 해 봐.
오빠라고 귀가 닳도록 불러줄 거야.
**
"내가 가정통신문에 환장해서 이런 것도 다 읽어보고 참 대견스럽다.
매서운 바람이 겨울아침을 알리는듯 합니다. 으.. 그냥 추우면 겨울이고 더우면 여름이라 치는 거지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삐뚤어진 마음으로 가정통신문을 읽다가 구석구석 샅샅이 뒤져보며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건 종이함에 넣어버렸다.
그러다 문든 나도 민규에게 뭐라도 적어줄까 싶어 가정통신문 구석에 글씨를 적었다.
[민규야 유치원 때부터 널 좋아했어.
따지고 보면 2년인데 난 왜 12년이나 널 좋아한 것 같을까?
그냥 그렇다고. 절대 지금 오글거려하는 건 아니야. 그냥 너가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오늘은 기분 좋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
"9살!? 존나 환장할일!!!!!!"
나레기는 왜 오늘만 생각하고 내일을 생각 못할까?
자고 일어나면 훌쩍 뛰어넘는 거 알면서 시발!!!!!!!!!
아니 요즘 왜 이렇게 하룻밤 자기만 하면 시간을 건너뛰냐고
기준이 뭐야!! 이딴 식으로 시간을 정해주는데 대체 어떻게 이어지라는 건지 1도 모를 일.
"9살이 된 만큼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보내야겠죠?"
그래. 그건 아는 일이고 민규는요?
나 진짜 미치고 팔짝 뛸 것 같다고.
"짝꿍아. 김민규라고 아니?"
"아 1학년 때 3반?"
"아는구나!"
"걔 전학핬는데? 벌써 꽤 됐는데?"
전학?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뛰어가 모든 곳을 뒤적였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있는 일기장을 펼쳐보자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빠르게 주워 펼쳐보자 역시나.
[왜 오늘 학교 안 나왔어?
직접 주지 못하고 사물함에 넣어놔서 미안.
아침에 바로 이사가야해서 잔깐 학교에 들린다고 말하고 왔는데 너가 업어서 사물함에 넣엇어.
꼭 너에게 말하고 가려고 햇는데 아십다
난 절대 너에게 다가갈 수 업어. 너가 날 싫어하니까.
이것도 보고 그냥 넘겨버릴 게 뻔하니까
내가 떠나면 넌 조아할 거야.
근데 난 벌서부터 너가 보고십다.]
(초등학교 민규 받아쓰기 실력 100점만점에 10점..(애도)
휴대폰이 없는 어릴 적 대화수단이 쪽지밖에 없어서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 방법이 없다.
어렸을 적이라 민규가 전학 간 건 생각이 안 나는 건가? 도저히 생각해봐도 민규는 전학을 간 적이 없는데..
나도 벌써부터 보고 싶다 민규야.
내가 하루 잘 동안 민규 너는 적게는 일주일, 길게는 1년을 기다렸겠구나.
물론 과거의 아무 것도 모르는 철없는 나와 함께.
그래요! 요즘 저 열일하고있답니다!!
새로 쓰는 글이라 재밌어요ㅠㅠㅠㅠ 이런 글은 처음이라 너무조타..♥
다음편은 과연 어떻게될지!?
햄찡이님ㅋㅋㅋㅋ 글 줄임말ㅋㅋㅋㅋㅋ다한기!
왜 다한증 생각나죠? 글에서 땀이 날 것만 같아욬ㅋㅋㅋㅋㅋ
다한기 뭔가 딱 좋아요! 이제 다한기라고 불러야겠어욯ㅎㅎ
<다음편을 얼른 보고싶은 독자님들을 위하여 다음편 예고>
"야 김민규!!! 너 어디살았어!? 왜 연락 한 번 없었어?! 이제와서 나타나면 누가 반겨줄 것 같아!?"
"니 누군데."
매정한 김민규는 오늘도 철벽쟁이.
잘해줬다가도 철벽남으로 돌아오니ㅠㅠㅠㅠ 광광우럭따.
다음편에서는 찌통이 가득할지! 해피해피가 가득할지!
하숙집 우려먹기(우롱차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