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정 단편 01
w. 깃털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이였지만 나는 깊게 잠들지 못했다. 밖에서 들리는 도둑 고양이들의 울음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계속해서 깨곤 했다. 방의 한 쪽면을 차지하는 커다란 창문에 쳐진 커튼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이 신경쓰였다. 기어코 침대에서 일어나 벌어진 커튼을 다시 곧게 닫아버렸다. 한 줄기의 빛 마저 완전히 차단되어 삭막한 공간에는 깊은 어둠만 가득찼다. 우유라도 데워마셔야 하나. 옅은 온기가 멤돌았던 방과는 달리 거실의 공기는 서늘했다. 닭살이 돋으려는 팔을 문지르며 냉장고의 손잡이를 힘주어 잡아당기는 순간,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쪽으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길 수록 일정하지 않은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쿵쿵. 쿵.. 어쩌면 긴장한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릴지도 모른다. 잠겨버린 목을 가다듬어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
문 너머의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더 이상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미약하게 들리는 바람소리와 고양이의 울음소리만이 내 물음에 대답할 뿐이였다. 땀이 찬 손을 대충 바지에 닦아버리고 현관을 열었다. 움직임을 감지한 센서에 불이 켜지고 나는 눈이 부셔 눈을 감아버렸다. 꽤나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탓이였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움직임이 없자 현관의 불은 꺼지고, 나는 그제서야 눈을 느릿하게 끔뻑이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순간 눈가가 뜨끈해지며 눈 앞이 뿌옇게 변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왜, 이제서야 왔어-.."
미안. 귓가에 무뚝뚝한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울렸다. 응, 많이 기다렸잖아. 괜한 투정을 부리자 허리를 감싸안아온다.
"밖에 많이 춥지.."
내 온기가 그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차가운 우현을 꼭 끌어안았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현관에서 꽤나 오랫동안 나는 그와의 재회를 만끽했다.
-
"손톱이 그 새 자랐네, 내가 잘라줄까?"
그의 대답이 채 들리기 전에 쇼파에서 일어나 방에서 손톱깎이를 가져왔다. 왠 닭살이냐며 나무랐지만 바보처럼 웃어보였다. 이젠 안 그럴려고. 예전처럼. 너 안 밀어내려고. 날이 추워지긴 했나보다. 두 사람이 찼는데 여전히 거실이 휑한 걸 보면. 거실에는 외도한 남편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아침 드라마의 여주인공의 고함 소리와 손톱을 깎는 소리만 들렸다. 우현의 네 번째 손가락에 딱 들어맞는 반지를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서로의 손가락에 끼어진 반지를 빼 크기를 재봤다. 뭐야, 나 손 그렇게 작은편 아닌데-. 같은 남잔데도 은근히 차이가 나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다 됐다- 봐봐, 깔끔하지?"
단정하게 깎인 손을 보니 뿌듯했다. 손을 바꿔 잡더니 대뜸 손등에 쪽,쪽 키스를 하는 모습에 웃어버렸다. 아 뭐야- 간지러워, 손등에 키스를 하던 입술이 점점 타고 올라와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이마에 입을 맞추고, 기어코 내 입술에까지 입을 맞춘다. 침대가 출렁거릴만큼이나 격하게 눕혀지고, 뜨겁게 서로를 탐하고 원했다. 두꺼운 커튼이 채 가리지 못한 찬란한 햇빛이 닿는 살갗이 부끄러워 몸을 움츠렸다. 차가운 손이 내 물건을 쥐었을 땐 나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이 멎는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예전에는 한없이 거칠기만 했던 손길이. 감당하기 너무 벅차서. 너무 싫어서 눈물이 났었는데 이제는 너무 부드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우현,아- 흐윽.. 하..ㅅ- ㅇ,우현..-"
격한 행위에 피를 보기 일쑤였던 그와의 섹스가, 이토록 간절했던 적은 없었는데. 아릿한 쾌감에 울음섞인 신음이 방안을 메웠다.
-
눈을 뜨니 그 사이 해가 져버렸는지 방 안에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난방을 틀지 않아 이불 밖으로 드러난 맨 다리가 추웠다. 손에 뭐라도 묻은 듯 이불을 끌어내리는 촉감이 껄끄러워 밍기적거리면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스위치의 위치를 각인 시켜주는 작은 불빛이 있는 곳을 누르니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누런 백열등이 켜졌다. 울어서 그런가, 부어버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나서야 손바닥에 묻은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게 대체...
"흐으... 흐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지나치게 짧게 깎아 피가 흐르다 굳어버린 손톱과 허옇게 말라 비틀어버린 정액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이건 내꺼가 아니야, 이건 우현이꺼야.... 우현이가, 우현이가 아까 나 안아줄 때 내 손에 싼거야, 우현이, 우현이가..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떨려왔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한 번 주저앉은 다리는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우현이, 우현이 침대에 있어, 침대에.. 땅을 짚고 기어갔다. 저기, 저기 위에 있잖아. 저기서 지금 나 보고 있잖아..! 누굴 향한지 모를 목소리가 처절했지만 온기 없이 공허한 침대를 담아내는 눈에는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아,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안 죽였어!!! 내가 안..! ..끄아, 하.. 아악.."
단단한 벽에 부딫혀 머리가 울렸지만 그래도 깨질 듯한 고통보다는 나았다. 이마에 생채기가 생기고 벽에 피가 묻어나와도 오히려 안아픈 것도 같아서 일부러 더 부딫혔다. 정신차려 성규 형, 제발..! 남우현은 죽었다고! 이 세상에 없다고 이젠..! 익숙한 목소리가 뇌 없이 비어버린 머릿 속에서 돌림노래처럼 멤돌았다. ..남,우현이.. 없어..? ...죽었어?
"..그럼, 그럼... 내 눈 앞에 있는 얘는, 누구야..?"
"성규 형, 제발.. 나 성열이잖아.. 남우현 아니라 이성열이잖아..!"
"우현아, 아으윽..! 아파 우현아- 너무..- 아,파..."
가끔 꿈을 꾸는데 우현아, 꿈 속에서 자꾸 사람들이 없는 사람 취급해서 가슴이 아파. 니가 죽었대. 근데 난 니가 보일 때마다 머리가 너무 아파. 아파 우현아, 나 너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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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결말이니 독자분들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