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려한, 밤임에도 밤이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밝기만 했던 그날은 궁 2체가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던 날이었다. 수없이 이어졌던 왕권 다툼으로 왕세자와 2황자가 모두 죽어버린 최악의 결말. 그 날 밤은 가장 잔인했던 황실의 비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불에 탄 궁 2체는 황자들의 궁이었다. 차황후와 차황후가 낳은 황자들이 머물었던 제 1궁, 정황후와 정황우가 낳은 황자들이 머물렀던 제 2궁. 그곳에서 살아 남은 것은 차황후가 낳은 3황자와, 정황후가 낳은 4황자 밖에 없었다고.
"아바마마! 운이는 잘못이 없는 습니다. 운이를 보내지 마십시오!"
약 4살쯤 되었을까. 어린 연은 버선발로 뛰어나와 왕에게 울며 간청했다. 누구의 승리라고도 볼 수 없는 결말. 그 안에서 임금은 연을 세자로 책봉했고, 둘째 황자는 멀리 친척집에 보내버리라고 명령했다. 때문에 운은 얼굴에 입은 화상을 체 치료하지 못한 체로 가마에 올라타야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연이 임금에게 뛰어온 것이다.
"...다 너희를 위해서 그런 것이니 물러가거라."
"아닙니다. 운이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운이는 저를 구해줬습니다! 술레잡기를 한다고 저를 숨겨줘서..."
"그 사단을 보고도 아직 모르겠느냐?!"
황제는 연이와 눈을 맞추고, 그 작은 아이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너희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아니다. 한순간일 뿐이야. 곧 엄청난 싸움이 시작될거다. 너희를 가지고 분파를 나눌려 하고 권력을 세울려 하겠지. 너희는 좋던 싫던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될거야. 너희 형들처럼."
그 것은 흠사 저주에 가까웠다. 오랜 세월부터 전해 내려온 왕권싸움에서 살아남은 자가 전해주는 끔찍한 저주. 자신의 가족에게 칼을 겨누게 되고 가족의 손에 죽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 그 말에 연은 더욱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운이 자신에게서 멀어질 까 무서워 흘렀던 눈물이, 이제는 왕의 광기에 두려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왕은 연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잃지 않고, 살고 싶으면 강해져라. 강해져서 지켜. 그전까지 네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하~ 전하!"
연은 눈을 떴다. 온 몸이 축축한게 식은 땀을 제법 흘린 듯 하였다. 아마 걱정이 되서 깨운듯 싶은 자신의 신하에게 연은 따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괜찮으십니까?"
"별거 아니다. 잠깐 좋지 않은 꿈을 꾼거 뿐이야."
"전하! 도작했사옵니다."
그때, 밖에서 가마를 들던 사병이 소리쳤다. 그에 연은 악몽따위 잊고 밝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운이 거의 유배 오다 싶이 왔던 운의 친척집. 정씨 집안의 본가였다.
***
화 상 부분을 반쪽짜리 가면으로 가린 운은 저멀리 언던 위에서 가마가 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궁에서 자신을 데리러 온다는 통보를 받은 운. 그는 지금 황실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황세자가 오래 머물러야 2~3일. 그때까지 적당히 숲속에서 지내면 알아서 포기하고 갈것이라는 게 운의 생각이었다.
"운이는 언제나 높은 곳을 좋아한단 말이야."
"!!!"
혼자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곳에서 예상외의 소리가 들려왔고, 운은 거의 본능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상대방은 춤을 추듯 매끄럽게 주먹을 피해서 운의 주먹을 잡고 돌려 운의 팔을 뒤로 비틀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윽!"
"잡았다. 오랜만이다 운아."
운은 자신을 묶고 있는 연을 발로 차 넘어트릴려고 했다. 하지만 연은 도리어 그것을 이용해 운을 쓰러트렸다. 힘이 아닌 압도적인 기술과 노련함의 차이였다.
"네가 숨어 있을 줄 알고 미리 가마에서 나왔지요. 자 이게 같이 가자."
"... 안가."
운은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싱긋 웃으며 운에게 말했다.
"술레잡기 끝났어. 운아."
그리고 그날, 황세자의 손에 이끌려 '광견' 4황자는 황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왕의 말처럼 연이 세자되어 모든 정권을 잡은 후의 이야기 였다.
***
수도는 지금 축제 분위기였다. 아직 아침이라 문을 연 가게 보다 밤 장사를 위해 준비중인 가게가 많았다. 그리고 그곳에 막 수도로 올라온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양반집 자제 분들처럼 생겼는데, 부의 상징인 가마를 타지 않고 걸어가고 있어 주변 부하로 보이는 이들이 당황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기... 저ㅎ..아아니 도련님. 말이라도 좋으니 타시는 편이."
"누구 좋으라고? 저 놈은 말을 타자마자 도망갈껄?"
"외람되오나 도련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저희가 모시고 가도..."
"건들지 않는 게 좋을껄? 아마 물거야."
"..."
운은 연을 째려보았다. 눈으로 개취급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을 연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하나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아마 자신의 신하들이 운이를 모시고 간다는 것은 포박을 하여 강제로 끌고간다는 말일 것 임이 뻔했음으로 차라리 본인이 운을 붙잡고 걸어가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한 연이었다. 실제로 끌려가는 틈틈이 운은 탈출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연에게 잡혀 돌아왔다. 이제는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 같은 연의 모습에 운은 슬슬 화가날 지경이었다고.
"자자. 이 장터만 지나면 성이니까 표정풀어."
"..."
운은 역시 대답하지 않았고, 엔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신하들에겐 먼저 들어가라 하고, 뒷따라오던 호위무사들에게 거리를 두고 따라오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이 곤란한 표정으로 사라지고, 호위무사들이 숨어서 저희를 보호하게 되고 나서야, 그 둘은 단둘이 있을 수 있었다. 연은 돌리지 않고 바로 말했다.
"별 누님이 너 보고 싶데."
"..."
운의 눈이 약간 커졌다가 작아졌다. 분명이 엄청 놀랐을 것이다. 한 별. 이번에 여왕으로 직위하여 성명여왕이되는 연과 운의 배다른 누이였다. 연은 운이 아마 연 자신이 아닌 누이가 다음 왕으로 결정났는지 궁금해 할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또 왜 별이누이가 자신을 보고 싶어하는 지도 궁금해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별이누이는...
"내가 대답해 버리면 재미없지. 나중에 계승식이 끝나고 누이에게 직접들어."
"...."
"자, 난 동생들 부탁한거나 사러 가야겠다."
동생들? 순간 운의 눈이 밝게 빛났고, 연은 그 눈을 정확하게 보았다. 연은 싱긋 웃으며 운에게 말했다.
"6명이야. 네 동생들. 남자 동생 4명과 여자 동생 두명. 참 우리 아버지 많이도 낳았지?"
들어내진 않았지만, 운의 표정은 약간의 기대감으로 차있었다. 어느새 연이보다 더욱더 동생들 선물 사는 것에 신이 나있는 모습에 연은 절로 웃음이 났다.
"참 착하다 우리 운이."
그런일을 당하고도 내말은 참 잘 믿는 구나. 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렸을 때도 동생이 있었으면 하고 바랬던 애였다. 어리고 연약한 것에 약했었고 순수하게 웃을주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운이는 웃음을 잃었고 더 이상 연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연은 그것을 슬퍼 하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그 일이 없었으면 우리는 좀더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
"으아! 죽겠다! 못해! 더는 못해!"
환은 약 세차례의 춤 연습을 끝내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것을 보고 춤을 가르치던 관리가 잠시 휴식을 명했고, 그에 다른 황자들도 한숨을 돌렸다.
"아, 진짜 이게 무슨 난리냐?"
홍은 짜증난듯 중얼거리며 근처에 있는 대나무 물병을 황자들에게 차례차례 던져 주었다.
"우리 누님 너무 속보이지 않아? 대놓고 연이형의 춤을 보고 싶다는 거잖아."
물통을 받아든 원은 겨우 한숨을 돌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왕위를 계승하게된 별은 황자와 공주들에게 부탁을 했는데, 자신의 계승식에 공주들은 음악을 연주하고 황자들은 춤을 춰 달라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 황자들에게 부탁한거지. 사실상 연의 춤을 보고 싶은 별의 속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근데 연이 형님은 언제 온데요? 계승식에 참여하려면 지금쯤 도착해야 되는데 말입니다."
혁은 땀을 딱으려는 궁녀를 막으며 손으로 땀을 털어냈다. 그에, 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운형님이 왕실 행사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죠? 그럼 아무도 운이형님의 얼굴을 모를라나? 환 형님은 운이형님 본적 있으세요? 정말 소문처럼 반쪽 얼굴이 흉악해서 가면을 써야해요?"
"나도 한 번도 본적 없어. 나도 태어나기도 전에 궁에서 나가신 분이니까."
그때, 홍이 말했다.
"근데 별이누님은 운이형님을 싫어하지 않나요? 왜 저번 일도 그렇고, 눈앳가시처럼 여기시는 분이 왜...누님께서 특별이 불러 일으킨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보나마나 연이형님이 부탁한 거겠죠. 별이누님은 연이형님이라면 껌벅 죽잖아요."
혁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혁이의 날선 대답에 다른 형들은 모두 어릴때다 라고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원은 다 먹은 물병을 던지며 대답했다.
"연이형님 한테는 한해에 태어난 형제라 더 신경이 쓰이나 봅니다."
그에 혁이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이제야 연이형님에게 약점이라는게 생기는 건가?"
"...풉."
그 말에 다들 피식 웃어버렸다고. 세상에 세상에... 저런 생각을 하다니 어리구나. 모두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 웃음이 비웃음이라 느껴졌는지, 혁은 작게 인상을 찡그렸다.
"왜요. 뭐때문에 웃는건데요?"
원은 혁의 어깨에 손을 언고 충고하듯 말했다.
"웃기니까 하는 말이지. 약점이라고? 넌 둘째 형님의 별명을 모르고 하는 소리냐? 광견이야 광견. 미친개. 월월."
"미친개? 누구 얘기야 원아?"
"그야 당연히... 히익!!!"
원은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그가 누구인지 뒤늦게 알아차리고 재빨리 도망갔다. 연은 싱글싱글 웃으며 원을 바라보고 있었고, 뒤에 운이 도복을 차려입은 체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잠시 황제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그 무서운 눈길을 연에게로 돌렸다. 연은 어깨를 으슥하며 말했다.
"동생들이 있다고만 말했지. 장난감 가지고 놀 나이라고는 말 안했다."
운은 한참이나 연을 무서운 기세로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황자들을 노려보곤, 몸을 획 돌려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가 가버리고 몇분이 지나서야, 황자들은 겨우 숨을 내쉬었다.
"와... 방금 눈빛 봤어요?! 지금 나만 무서웠던거 아니지요?"
"진짜 대박이다. 형님은 도데체 어떻게 데리고 온거예요? 막 칼로 안찔러요?"
"야야. 괜찮아. 겁내지마. 저녀석 엄청 착한 애거든."
연의 말에, 황자들은 단체로 정색을 했다. 착하다고? 저 악독함과 표독이 묻어나는 얼굴이 착하다고? 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약속할게. 한달 안에 너희는 제가 제일 편해질껄? 하찮게 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말도 안돼."
"처음으로 연이형님의 선경지명이 틀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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