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연이 불러주는 박자에 맞춰. 황자들은 연무 동선을 맞추고 있었다. 다리가 좋지 않은 홍과 따로 받은 명령을 받은 운을 포함해서 말이다. 연은 부체, 다른 황자들은 목검을 가지고 추는 형태. 연이 중심에 있고, 황자들이 움직이는 형태에서 거의 변하지 않는 동선. 홍은 제법 무리 없이 해내고 있었다. 연은 홍빈에게 편의를 주지 않았다. 남들과 다르게 대하기 보단, 같이 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가리쳐준다. 동생들 한명한명을 돌아가면서 가르쳐 주고, 오랫동안 연습장의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같은 동작을 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습해야 하는 홍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사실상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운이는 생각보다 잘따라 하네? 언제 한번 춰 본적 있어?"
"..."
역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연은 고개를 으슥하며 몸을 돌려, 황자들을 한명 한명 살펴 보았다.
"환! 너 방금 틀렸어! 혁이는 좀더 힘을 빼고 휘둘러. 원은 다리를 좀더 굽히고, 홍은 박자가 꼬였다. 여기선 발이 여기 와 있어야되. 그리고 운은 표정좀 풀어."
"풉."
"큭"
연의 한마디에 원과 환은 웃음이 터져 버렸다. 이에 운은 환과 원을 한번식 노려 보았고, 그들은 휫바람을 불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번 제대로 맞추면 1각(15분)정도 걸리는 춤이 2정(두시간)으로 이어졌다. 황자들을 한명한명 지적하며 동선을 맞추었고, 얼추 어색하게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휴식을 선언했다.
"잠시 휴식."
그리고 그가 말함과 동시에 원과 환, 혁은 그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고.
"으아! 역시 연이 형님! 봐주는 게 없어!"
"환이 형님은 많이 봐줬습니다. 세번 중에 한번만 지적 당하지 않습니까?"
"우씨! 혼날래!"
혁이와 장난을 치는 환. 그런 그들을 보고 웃던 원은 자신의 옆에 앉지 않은 홍에게 고개를 돌린다. 아직 성에 차지 않았는지 계속 검을 휘두르면서 연습을 하는 홍. 원은 작게 웃으며 일어나 홍의 자세를 고쳐 준다. 운은 그런 홍과 원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았다. 솔직히 운은 홍이 다리에 문제가 있는 줄 몰랐다. 몇번 마주친 적이 없는 것도 있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당당하고 자존감이 높았기 때문이랄까? 솔직히 운은 조금 놀랐다.
"왜? 놀랐어?"
그때, 연이 태연하게 와서 말을 걸었다. 운은 역시나 고개를 돌리고 대답하지 않았다. 연은 아랑곳 않고 물었다.
"어느 부분에 놀란거야? 홍이 다리를 저는 거에 놀란거야? 아님 홍의 독기 가득한 모습에 놀란거야?"
"..."
"첫번째는 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두번째에 놀란거면 좀 실망할 수 도 있을거 같아."
그제서야 운은 고개를 돌렸다. 연의 질문에 관심이 생긴 모습이었다. 연은 어깨를 으슥하며 대답했다.
"그건 편견이니까.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자존감이 낮아야 한다는 건 선입견 이니까. 조금 다르다고, 편견속에 살아야 하는게 얼마나 힘든지는 너가 제일 잘 알잖아."
"..."
운은 끝내 연의 말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은 운의 등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고는 가볍게 일어나 황자들에게 소리쳤다.
"자자! 다시 시작하자!"
"끄악!"
"살려줘요!"
뒤에 죽어가는 소리는 당연히, 혁이와 환이의 목소리였다고.
***
"...하"
연무 연습이 끝나고, 운은 혼자 도성 밖으로 나왔다. 그때, 환과 원 때문에 못찾은 암시장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역시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법. 화려하고 행복이 넘치는 웃음 소리가 가득한 시장의 반대편엔, 남의 것을 빼앗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배를 곪으며 움츠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였다. 먹고 살기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하는 곳. 그런 곳에 어둠이 기생하며 자란다.
"..."
운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가면을 벗었다. 운은 자신의 가변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손이 곪은 엄마와, 머리에 파리가 꼬이는 아이들. 앉아서 구걸을 해야 하는 아이와, 술에 취한 화상 입은 남자까지... 이곳에서 이런 흉터를 가볍으로 가린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헤헤이.. 험상 궂게 생겼구만. 짐승 같아."
"..."
술에 취해 있던 남자가, 운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운은 대꾸 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제 갈길을 가려하자, 그 남자는 다시 운을 불렀다.
"어이 짐승 젊은이. 일 구하러 왔어? 내나 용병질 하러 온거지?"
"..."
그제야 운은 고개를 돌렸다. 그 남자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운이 좋은거야. 내가 이래보여도... 사실 과거 호위무사 스승이였거든. 내가 보기에 너는 재능이 있어."
"..."
황자 앞에서 과거 왕실을 운운하다니... 거기다 물러난 왕의 이야기라... 운은 속으로 작게 웃었다. 그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여기, 향후 10년간은 문제 없을 돈입니다. 재활치료도, 여기 적혀 있는 의당에서 받으시면 됩니다. "
운은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엔 연이 있었다. 한팔이 잘린 남자와 가족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선물 봇다리를 받치고 있었다.
"똑같은 삶의 무게 인데, 신분이 다르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제 동생의 행동으로 과한 벌을 받으셨으니, 보상은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
황자가, 황세자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형제의 죄를 용서해 달라 하고 있다. 처음에 운은 당황했다. 하지만 곧 다시 고개를 드는 연의 얼굴을 보며 당황스러움 보단 공포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허나, 우리의 처사가 과한것 맞지만 당신들이 옳았다는 건 아닙니다. 제 앞에서 그런 말을 했으면, 팔은 안잘렸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고통으로 패드렸을 것입니다. 가족을 욕하는 것에 화가나는 마음은 똑같으니까요."
연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근데 솔직히 이건 시원하네요. 다르다는 이유로 욕했던 당사자가, 이제 그 수근거림을 당하는 형편이 됬으니. 다시는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운은 연의 살벌한 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변했네."
***
"운아 운아!"
어릴때, 연이 운을 만나러 오는 것은 어른들에게 비밀로 통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운과 연, 연의 신하인 하동 뿐이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비밀 장소인 산에서 자주 모였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몰래 밤에 운을 만나러 오는 연과 하동. 그들은 도읍에서 운의 친가까지 약 8각(2시간)을 걸어왔다가, 해가 뜨기전에 서둘러 궁을 돌아갔다. 운 역시 그 수고스러움을 알지만, 차마 그들에게 그만 오란 말을 꺼내지 못하는 어린 아이였다.
"오늘은 일찍 왔지? 내가 요즘 체력이 나날히 발전 중이라니까?"
"중간에 제가 업어서 왔던 걸로 압니다만."
"윽! 하동! 조용히해!"
하동의 말에 연이 소리를 지르자, 운은 피식 웃었다. 운은 한참을 떠들고 있는 하동과 연에게 도시락을 내밀었다. 연과 하동은 동시에 만세를 외치며 자리에 털석 주저 앉았다.
"역시 산에서 먹는 운이 도시락이 최고지!"
"같은 형제인데 참으로 다릅니다."
"너 진짜 황제한테 못하는 말이없어!"
밥을 먹는 와중에도, 하동과 연은 쉬지 않고 투닥거렸다. 연은 운보다 하동과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멀리서 본다면, 연과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하동이라는 아이는 연과 닮아있었다. 그것은 왕실의 관례중 하나 때문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황자와 닮은 시종은 근처에 둔다. 흔히들 액받이용, 화살받이용이라 비안냥 받는 시종이었다. 하지만, 하동은 그런걸 신경쓰지 않는 듯, 연의 옆에서 연이 외롭지 않도록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가 되어 주었고, 운에게도 더 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운은 그들과 있는 것이 나름 좋다고 생각했다. 비록 이렇게 밤에 몰레몰레 숨어서 만나는 사이지만 말이다.
"자, 그럼 어제 가지고 놀던 새총이 어디있더라?"
정씨 일가의 땅인 작은 산은 무서운 산짐승이 없는 곳으로도 유명한 그 산은 그들의 놀이터였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비밀 장소에 모닥불을 피우고 밤새도록 수다를 떨기도 했고, 과녁을 세워 놓고 새총으로 맞추는 놀이를 하기도 했으며, 몰레 풀피리를 만들어 조용한 산을 시끄럽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다 달이 가고, 서서히 날이 밝아지면, 하동은 연에게 말했다.
"도련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좀만 더 있다 가면 안돼?"
"지금 걸어가도 아슬아슬하게 안들킬껄요?"
"하동은 너무 깐깐해..."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할 수 없이 일어나는 연에게 운은 다음에 또 보자고 말했고, 그렇게 헤어졌다. 운과 연은 그렇게 살았다. 적어도 10살 전까지.
"그러고 보니..."
하동이라는 아이는 어디갔을까? 운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연은 그 일을 처리하고 난 뒤에도 도성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어울리지 않는 곳에 더욱 깊숙히 들어갔고, 연의 발걸음은 어두운 골목을 지나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의 거의 다니지 않는 산길을 제법 잘 찾아 걷던 연은 숲속에 숨어 있던 초가집을 찾아냈다. 연은 태연하게 초가집 뒷편으로 걸어갔다. 두개의 묘지가 보였다. 연은 두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
"육아. 나 왔어."
원래 세상에 없던 아이이기에 묘를 만들 수 없다. 때문에 연은 몰레 그들의 묘지를 만들었다. 피를 보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없는 곳. 그곳에서 희생된 아이. 없던 존재처럼 사라져 버린 어린 생명. 혁이와 같은 해에 태어나 먼저 세상은 등진 아이.
"혁이는 벌써 많이 컸어. 너도 살아있었으면 그렇게 컸을까?"
연은 이곳에 올때마다 그날의 지옥을 상기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그 안에서 소중한 것이 사라지는 현실. 연이 10살 때, 연은 자신의 동생 한명을 떠나 보냈다. 황자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심지어 운이 마져도... 그렇게 사라진 가여운 생명이여.
"사람은 죽어도, 이 나라는 돌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가 문제인 거겠지."
그날은 짙은 밤이였다. 별 하나 없는 하늘은 희망 한줌 없는 현실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밤하늘이 유일한 통로인 어느 곳에 한 소년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무참히 머리체가 잡혀 구석에 던져진다. 내던져진 소년은 그 행동에 대한 어떠한 화도 내지 못한체 후들거리는 다리로 기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오직 그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움직이는 그 소년은 그들이 자신을 두쪽으로 갈라 죽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만 10살도 되지 않을 법한 어린아이가 사력을 다해 도망친다해도 힘든 어른의 체구에 그 소년의 머리체는 힘없이 딸려 올라갔다. 마지막 반앙이라도 하는듯 몇번이고 허공에 휘젓는 그 소년의 애처러운 손은 계속 살기위해 움직였다.
쿵.
하지만 순간 그 소년의 앞에 떨어진 하나의 물체에 소년은 그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통하는 소리와 함께 앞에 떨어져 바닥을 한바퀴 구른 그 물체는 바로 소년의 무릎에 다았다. 동그란 모양의 끈적함이 그 소년의 무릎을 붉게 물들여 가고 빛이 서서희 그에 비침으로써 그 모양은 점점더 선명히 들어나기 시작했다. 순간 급하게 헐덕거리던 소년의 숨이 한순간에 멈춰 버렸다.
"흐으...."
그의 앞에 놓여져 있던건.
"으아아아아악!!!!"
자신의 동생의 싸늘한 시체였다. 그날, 그 어린 갓난아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은 그날 자신의 동생 한명과 친우 한명을 잃었다. 그들의 존재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날의 모든 진실을 연은 가슴 안에 넣고, 가슴을 잠궈버렸다. 영원히 열리지 않는 비밀이 되어, 자신이 사라지는 날 같이 사라질 수 있기를, 연은 바란다.
"또 큰일 나려고 여기 행차 하셨습니다."
"내가 한 큰일 하잖아."
그때, 초가집에서 문을 열고 나온 한 남자가 태연하게 연에게 말을 걸었고, 연은 장난스레 받아쳤다. 육을 낳았던 어머니의 동생, 동갑 외삼촌 민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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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그런 일을 당한 그날, 제법 감춰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