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으로 맨발로 도망쳐 왔다. 살기 위해 뛰었다. 발끝으로 생생히 올라오는 날카로움에 찔린 고통보다, 심장을 관통하는 상처에 운은 울면서 뛰었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 그 어린아이는 몰랐다. 그냥 평소와 같이 숲속에서 연이와 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연이는 평소처럼 혼자 오지 않았다. 수많은 호위무사를 대동한체 왔다. 그리고 그 호위무사는 연과 운의 비밀장소에 미친개들을 풀었다.
"왜...왜..."
잔득 굼주려 있던 그 개들은 운에게 달려 들었다. 운은 공포에 질려 도망 다녔다. 고작 10살 때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사냥이었다. 연약한 동물을 잡기 위한 사냥. 그것은 자신의 친구가, 형제가 하고 있다는 것에 운은 믿을 수 없었다. 아닐거라, 꿈일거라, 무언가 잘못된거라 수없이 생각했다. 세상에 모든 이들이 그래도 연이는 아니라고.
"!!!"
그때, 어딘가 타는 냄세가 나서 고개를 돌렸을때, 자신이 살고 있는 정씨 일가의 집이 불에 타는 것을 보았을때, 그제야 운은 그것이 꿈이 아님을 알수 있었따.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친구로 생각했던 연이 벌인 짓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날, 정씨 일가 의문의 습격으로 몰락이라고 알려졌다. 그리고 그날이 유일한 생존자가 요양을 가있는 황자 운이라고. 그렇게 공식적으로 발표났다. 그리고 왕실에는 암묵적으로 그것이 연이 벌인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죽인 정씨 일가에 대한 복수 라고.
***
제법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마을의 장터 였다. 음식을 파는 백성, 옷이나 잡동사니를 파는 백성도 있고, 물건을 사러 나온 농민, 물건을 거래하러 나온 상인들, 그저 부모님을 따라나와 신이난 어린아이들까지. 그 안에서 한 아이는 묻혀 사라질 주 알았다.
"어머, 저기봐요."
한 아이가 촛점을 잃은 눈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 남자가 손가락으로 그 아이를 가리켰고, 일제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 아이에게로 돌려졌다. 얼굴에 흙이 잔득 묻은, 촞점을 잃은 눈과 상처투성이인 맨발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의 얼굴 반쪽에 심각한 화상자국이 있다는 것이 그들이 수근거리는 이유였다.
"뭐야 저거..."
"저거 쫒아내야 되는거 아니야? 누가 건드려봐."
"싫어. 만지는 것 만으로도 길흉이 들어 같아."
상처 투성이인 어린 아이들을 두고 수군거리기 바빴다. 그들 중 누구 한명도 그 아이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어디서 돌맹이 하나가 날아왔다.
"괴물! 저리가!"
어린아이였다.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수근거림을 듣고, 운을 정말 괴물로 여기고 돌을 던져 그를 내쫒을려 한것이다. 이윽고 돌을 던지는 돌맹이는 늘어났다. 운은 바닥에 주저 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안고 본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돌맹이가, 욕설로 바뀌고, 그것에 동조하는 어른들이 앞으로 나오면서 운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배로 늘어났다. 운은 시야가 희미하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정신을 잃는다면 분명 본인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운은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 싶었다. 모두가 죽고 사라진 마당에 말이다...
***
"..."
"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운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에 놀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에 촛점을 찾을려고 노력했다. 다행이 돌맹이가 눈을 때리고 가진 않았는지, 촞점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한 아주머니였다. 왼쪽 이마의 반을 뒤덥고 있는 검은 점이 인상적이었던 그녀는 운이 깨어난 것을 보자마자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아고 다행이다! 너 여럿 살렸어!"
"...에?"
운은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천막을 걷어,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보게들! 여기 아가 살아났네! 와서 구경들 해보게!"
"진짜!"
"사실인가?!"
그녀의 외침에, 밖에서 밭을 일꾸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쟁기를 내 던지고 그곳으로 들어왔다. 모두 옹기종기 모여 운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운이 놀라서 눈을 깜박거리는 것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하 거참 살았구만!"
"경사네 그려! 애가 살았어!"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본인 때문에 행복해 하고 있다니... 알아생전 받아보지 못한 관심에, 운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너 데리고 온 뒤로 여기 사람들 중에 맘편히 잠든 사람 아무도 없을 거다. 정신도 못차리는 애 한테 귀한 약초며, 건강식이며 다 해 받친다고 난리도 아니였어. 니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났으니 이제 그사람들도 신명나게 살겠구만."
놀랍게도 운을 데리고 온것은 도적들이었다. 몸에 이상이 있어 마을에서 쫒겨난 사람들. 그중에는 문둥이도 있었다.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아이를 강제로 뺏기거나, 잃어버린 사람들이 대부분. 그들은 운이를 정말 친자식 처럼 좋아했다. 처음으로 받는 목적이 없는 사랑이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운을 택운이라 불렀다. 한자를 할 주 아는 어느 노인이, 손자에게 지어주려 했던 이름이었다고 한다. 운은 그 곳에 도착한 뒤로 일체 입을 열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운이가 말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택운아 택운아!"
운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고 고개를 돌렸다. 초가집 한 아주머니가 운을 향해, 이리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운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실차래를 돌리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는데, 운이 앞에 오자 그것을 운의 앞에 대어보고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추 맞는거 같은데..."
"?"
"남는 천이 있어 한번 만들어 봤는데 색이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구나."
운에게 옷을 만들어 주기위해 바느질을 하고 있던 그녀. 운은 그 옷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은 그 날 이후, 말하는 법도, 웃는 법도 잊어버린듯 대부분의 시간을 무표정하게 보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양쪽으로 젓는 것만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런 운의 모습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운을 따듯하게 대해 주었다.
"택운아. 이리와서 이거 좀 먹어 보거라."
다른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운을 불렀다. 산에서 채집해온 사탕수수를 잘라 운이에게 건내주었다. 그것을 입에 물고 우물우물 씹는 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녀는 운이에게 물었다.
"달지?"
운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밖으로 나갔던 남자 어른들이 돌아왔다는 소리였다. 운은 벌덕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들 역시 운이 오는 것을 보고 밝게 손을 흔들었다.
"어이구! 우리 택운이 잘 있었어?! 어디 좀 무거워 졌나?"
그들 중 한 남자가 택운을 번쩍 들어올렸다. 어린 아이였던 택운은 한 없이 가벼웠는지 택운은 하늘로 붕하니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야야! 애 날아간다! 그만 내려놔!"
"그래임마! 니 자식이 아니라 내 자식이거든?"
"그건 또 무슨 개소리냐?!"
택운이 서로 자기 자식이라고 싸우는 상황에, 운은 멍하니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몇일을 보았어도 참 적응이 안된다. 본인이 이렇게 사랑 받을 만한 존재였는지 생각 해본적도 없는데, 이 곳에서는 모두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올리려고 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자신을 처다보는 한 아이만 없었다면 말이다.
"...!"
택운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온 몸이 얼어붙는 것처럼 공포를 주체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웅크린 채로 덜덜 떨다가 옆에 있는 아무 사람의 옷가지를 잡고 그 품안으로 달려들어 엉엉 울었다. 그들은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잠시 당황하다가, 택운을 안고는 천천히 등허리를 쓸어 내렸다.
"괜찮다. 괜찮아... 뭔일인지 모르겠지만 괜찮아..."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었다. 이들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상처 받고 외지로 쫒긴 사람들에게 또 나쁜 일을 격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운은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이 불안한 행복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더 이상 녀석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했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밤에 잠든 어른들 몰래 일어났다. 그들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울컥했지만, 애써 정신을 차리기 위해 짝 소리가 나도록 두 손으로 볼을 두어 번 때린 후 걸음을 옮겼다. 그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몇발자국을 걷기도 전에 그가 보였다. 그, 연은 웃으며 말했다.
" 더 늦었으면 그 마을에 처들어 갈려고 했는데. 스스로 왔네."
"..."
"오랜만이다 운아."
연은 운이의 앞으로 걸어갔다. 운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운은 겁에 질려 있었고, 연은 그런 운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연은 한걸음더 운에게 걸어갔고, 운은 계속 뒷걸음질 치다가 등뒤 나무에 부딧혀 주저 앉아 버렸다. 연은 주저 앉은 운이와 시선을 맞추기위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겁에 질린 운의 턱을 들어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한 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내 나약한 동생아."
"..."
"함부러 돌아다니지마. 괜히 나대지 말고, 도망다니지도 마. 내가 부를 때까지."
"..."
"얌전히 처박혀 있어."
얌전히 네 집으로 돌아가. 그럼 모두 안다치니까. 연의 말에 운은 벌벌 떠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힘에 굴복된 한없이 약한 약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운은 연의 명령대로, 다 불타버린 옛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곳에 타지 않은 가장 작은 방에서 몸을 숨긴체, 쥐 죽은듯 몇일을 보냈다. 낮과 밤. 살아있는 지도 모를 만큼, 본인이 숨을 쉬는지도 헷갈릴 만큼 오랜시간이었다. 그냥 이렇게 죽는게 아닌가 싶은, 그렇게 사라져도 나쁘지 않을 듯 싶은 지옥 같은 시간. 그때, 밖에서 들렸던 소란스러운 소리만 아니었다면 택운은 스스로 삶을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여기 도련님 있습니까?"
"!!!"
운은 본인의 귀를 의심했다.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가 헛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랬다. 운은 몇번이고 간절히 기도하며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들이 있었다. 운은 순수하게 바라보았던 사람들. 본인에게 처음으로 부모님의 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그들이 서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습니까?"
"못본사이에 얼굴이 홀죽해 졌네. 우짜누 우리 아가..."
"오늘부러 여기, 이 집에서 운이 도련님을 위해 일하게 된 사람들 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앞에 있었다.
***
연은 운을 보낸 뒤, 그 마을 사람들 앞에서 부탁했다. 그들중 대표. 한 노인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택운이...아니, 운이도련님에게 접근 할수 없도록, 운이 도련님이 그들에게 다치지 않도록, 더불어 운이 도련님이 외롭지 않도록 보호해 달라는 말씀이시지요?"
"네. 부탁드립니다."
연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부탁하고 있었다. 자신을 희생해서, 누구보다 독한 악역이 되어 운이를 지킬려 하고 있다. 운이 더러운 비밀을 알지 못하도록 보호해 달라고 하고 있었다. 그는 헛웃음 지으며 말했다.
"참 묘하군요. 온실속 화초처럼 자라야 할 사람은 누구보다 매섭게 자랐고, 매섭고 날선 늑대처럼 사람은 사실 온실속 화초이고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형이 잖아요. 배가 다르고, 한해에 태어났다고 한들 난 황세자고 그의 형이니까. 내가 지켜야죠."
"운이도련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당신을 두려워 할것입니다. 그것이 무섭지는 않으십니까?"
그에 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를 미워 하는 건 두렵지 않아요. 세상이 그를 싫어하는게 두렵지."
슬프고 괴로운 일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꿋꿋이 살아남아 줬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날 원망하게 되거나 미워하게 되도 괜찮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