₁
“ 어…, 어, 응. 그래. ”
“ … …. ”
“ 아, 그래? 어. 알았어. ”
손에 든 전화기를 좀처럼 놓지못하던 백현이 뒤에서 우물쭈물하게 서있는 내게 시선을 던졌다. 뭐해. 백현의 마이를 들고 멍하니 서있자 입모양으로 말을하며 인상을 찌
푸리던 백현이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방을 빠져나왔다. …너 혹시 여자생겼니? 턱끝까지 나오는 그 말을 다시 삼켰다. 손에 들린 마이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방을 빠져나왔
다. 전화를 받으러 아예 나가버린건지 사라진 백현의 모습을 찾으려 두리번 거리다가 이내 포기하고 쇼파에 널부지러지듯 앉았다. 철컥ㅡ. 한참동안을 멍하니 시계만 바
라보고 있었을까 다시 들려오는 문소리에 기댔던 몸을 똑바로 일으키고 백현을 쳐다봤다.
“ 중요한 전화하는거 뻔히 알면서 굳이 내가 자리를 피하게 해야겠냐? ”
“ 백현…. ”
“ 넌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게 탈이야. ”
나를 탓하는 백현의 시선이 무겁게 느껴졌다. 검은 넥타이를 끌러내리며 한숨을 쉬던 백현이 따가운 눈총으로 나를 흘겨보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한숨밖에 나오
질 않는다. 또 내탓이 되는거야? 그래? 그런거야? 결혼한지 몇개월됐다고 벌써부터 다른 여자가 생긴건지, 아니면 일에 빠져든건지 모르겠지만 요즘들어 자꾸 까탈스러워
지거나 나와의 스킨쉽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쁜 아이를 품속에 안으라던 시어머님의 말씀에 나를 피하는 백현에게 용기내어 다가가보기도 했지만, 그럴때마다 나를 역겨
운것을 보는듯한 백현의 시선에 좀처럼 마음을 열수가없었다.
“ 밥 먹었어? 아니면 지금이라도 차려…. ”
“ 필요없어, 나가서 먹고올거야. ”
“ 집에 들어온지 고작 몇분됐다고 또 나가? ”
“ 왜. 내가 어디 놀러나가는 것처럼 보여? ”
“ 백현아, 너 요즘 자꾸…. ”
“ 늦게들어올거니까 기다리지마. ”
백현의 소매끝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나는 계속 너에게 다가가려 노력하는데 너는 왜 자꾸만 나를 피하려고만 하는거야. 수트가 아닌 캐주얼복으로 갈아입은 백현이 저
를 기다리지말라며 차키를 들고 나갔다. 같이 밥 먹으면서 이야기 좀 하려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백현이 나간 문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침대에 엎어지듯 누웠다. 조금만
기다릴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빨리 들어올 백현도 아닐것에 그대로 눈을 감았다.
₂
ㅡ “ 그래서. 안들어왔다고? ”
“ …응. ”
ㅡ “ 아, 진짜 이새끼가…. ”
아침밥을 꼭 먹고 출근하는 백현때문에 알람없이도 일찍 일어나는게 자동으로 습관이 되어버렸다. 어느때와 같이 내 옆에서 내게 등을 보이며 자고있어야할 백현이 보이
질 않았다. 혹시나 싶어 서재에도, 거실에도, 하다못해 욕실에도 가봤지만 그 어디에도 백현의 모습은 없었다. 설마 나갔나싶어서 옷장을 뒤적거려도 백현의 수트들은 그
대로였다. 나를 홀대한다고는 생각했었어도 외박은 절대 하지않았던 백현이기에 불안함은 두배로 커졌다.
ㅡ “ 일단 내가 전화해볼게. ”
“ 찬열아, 나 그냥…. ”
ㅡ “ …미안, 내가 미안해. ”
너무 새벽이다, 눈 좀 붙이고 있어. 수화기너머로 들리는 찬열의 격앙된 목소리에 울음을 다 멈추기도 전에 끊었다. 유일한 친구였다. 찬열과 나는. 백현을 소개시켜준게
찬열이였고, 우리가 결혼할 수있도록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고 챙겨준것도 찬열이였다. 백현이 이렇게 변해버릴줄은 몰랐던 찬열은 백현이 내게 등을 돌린 그 순간부터 나
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나 그냥 이혼할까. 그런 유일한 친구였기때문에 이혼이야기를 수없이도 했었다. 그때마다 찬열은 그어떤 대답도 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
이할 뿐이였다.
ㅡ♪♬
침대에 엎드려 눈을 감고 멍하니 생각을 하고있다가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감았던 눈을 뜨고 휴대폰을 들었다. ‘ 남편 ’ 간단하게 저장된 백현의 번호에 심장이 덜컹거렸
다.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왜 안들어왔냐고 화를 내야할까? 아니면 울고불고 소리치면서 나 좀 봐달라고 애원할까? 답이 나오질 않았다. 멍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
보다 홀더를 켜고 전화를 받았다.
“ 변백현. ”
ㅡ “ 박찬열한테 전화했냐? ”
“ … …. ”
ㅡ “ 너 박찬열한테 나랑 이혼하고싶다고 했다며. ”
“ 백…. ”
ㅡ “ 해? 해줄까? 이혼해줘? ”
“ … …. ”
ㅡ “ 원하면 해줄게. 서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서. ”
…너 진짜! 점점 화가 치밀어올랐다. 뭐? 이혼을 해준다고?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너 진짜 그러는거 아니야. 참을만큼 참았다. 어떤 무시도, 어떤 냉대도.
다 참고 이겨냈다. 그러면 네가 다시 돌아올줄 알았다. 원래의 백현으로. 무거운 공기만 흐르는 이 순간은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백현이 어디있는지도 모
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언쟁을 높이기는 싫었다.
“ 지금 어디야? ”
ㅡ “ 알아서 뭐하게. 얘기만해. 이혼해줘? 해줄까? ”
“ 너 자꾸 그런식으로 나올래?! ”
ㅡ “ 대답해. 네가 이혼하고 싶다며. ”
“ …일단 집으로 와. 집에와서 이야기해. ”
ㅡ “ 끝까지 이혼 안하겠다는 소리는 안하네. ”
“ … …. ”
ㅡ “ 내가 너한테 그딴 존재였냐? ”
“ … …. ”
ㅡ “ 집에 갈 생각없으니까, 전화하지마. 이혼할거면 문자보내. ”
상처받은건 오히려 난데, 네가 왜 화를 내는거야. 사랑하고 있는 연의 끈이 뚝하고 끊기는 것 같았다. 너는 마지막까지도 그런식이구나. 전화가 끊긴 휴대폰을 들어 멍
하니 쳐다보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우리가 왜,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너는 항상 다정했고, 나에게는 친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행복하게 느껴져야할 신혼생활이 점점 무뎌져가더니 이제는 행복한 시절이 언젠지도 모를만큼 흘러가버렸다.
[방금 변백현한테 전화왔어. 내가 미안해. 너도 이제 마음정리하고 서류준비해.]
눈을 감자마자 들려오는 알림소리에 문자를 확인했다. 단호하면서도 내 심장에 비수를 꽂는 찬열의 문자에 결국 눈물이 흘렀다. 찬열아, 너는 왜 나랑 백현이를 이어준
거야? 도대체 왜…. 원망섞인 물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아직까지도 백현이 왜 변했는지 모르곘다. 죄라면 너무 사랑한것 밖에 없는데…. 백현과 헤어지기에는
흘러지나온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백현을 잡기에는 내가 힘들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백현과의 시간들이 더이상 움직이지 못 하도록.
₃
정말 빨랐다. 결정을 한지 몇일도 되지 않았는데 시간은 흘러 결국 이 상황까지 오게되었다. 짐을 다 정리해놓고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쇼파에 쓰러지듯
몸을 뉘였다. 참 웃기다. 네가 날 힘들게 했을 때 제일 위로가 됐던게 이 쇼파라는게. 차가운 가죽쇼파에 붙였던 몸을 떼어냈다. 가득히 차있는 캐리어를 보다가 찬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ㅡ “ 어, 준비다했어? ”
“ …응. ”
ㅡ “ 금방갈테니까 기다려. ”
“ 알았어. ”
함께였던 집에는 이제 한사람밖에 남지않는다. 이혼하자는 문자를 보낸 이후로 백현은 준비하라는 말만 남기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캐리어를
질질 끌어 현관문 앞에까지 놓았다. 한참 행복했던 시절도 이제는 더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에게 실망만 안겨주었고 어쩌면 나역시도 너에게 큰 실망감을 안
겨주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비록 남남이 되어버린 사이지만, 난 네가 누군가와 이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으면 좋겠다. 나와의 힘들기만 했던 시절은 다 잊어버
리고 좋은 여자를 만나 잘 지내기를.
“ 이게 다야? ”
“ 응. ”
“ …가자. ”
빨리 온 찬열이 열려있는 현관문 앞에 놓인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정말 괜찮아? 내 결정에 후회는 없는지 묻는듯한 찬열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
였다. 어쩌면 내가 백현이를 가둬둔건지도 몰라.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던 아인데, 내가 자꾸 방해했었거든. 지난날의 내 행동을 되새겨보듯 생각을 하다가 도착한 엘리
베이터문이 열렸다.
“ …변백현. ”
“ … …. ”
“ 내 짐은 다 뺐어, …잘 지내.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한층 수척해진 백현이 엘리베이터 안에 서있었다. 한참을 말없이 나를 쳐다보던 백현이 나를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너 같은 새
끼를 좋은놈이라면서 소개시켜준게 내 죄지. 너는 잘 지낼가치도 없어 쓰레기새끼야. 뚜벅뚜벅 걷는 발걸음을 멈추지않는 백현을 쳐다보던 찬열이 욕을 내뱉었다. 하지
마, 왜 그래. 이제 다 끝났잖아. 그런 찬열의 팔을 잡고 뒤로 끌자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는듯 했다. 찬열을 쳐다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것 같아 급히 버튼을 눌렀다.
“ 가자. ”
“ … …. ”
“ 찬열아, 빨리. ”
잡은 찬열의 팔을 흔들며 애원하듯이 말을 하자 나를 잠시 내려다보던 찬열이 크게 한숨을 쉬며 다시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앞까지 도착한 백현이 도어락
을 풀다말고 나를 쳐다봤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틈사이로 백현과의 눈빛이 얽혔다. 마지막으로 본 백현의 눈빛은 뭐라 말을 할 수 없을정도로 애매했다. 네가 나때문에
아팠으면 좋겠지만, 그로인해 더이상 내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 잊어버려, 깨끗하게.
₄
ㅡ “ 그런 놈은 한대패줘야지, 그걸 참고있었냐 멍청아. ”
“ 야, 너같으면 직장상사한테 손이 올라가겠냐? ”
ㅡ “ 그럴때는 한대패주고 패기있게 사직서쓰는거야. ”
“ 그건 너고, 등신아. 나는 너같은 사람이 아니라서. ”
여전히 웃고지낸다. 정말 내가 그를 사랑했는지 모를만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오늘 하루동안 있었던 일과를 말하며 분풀이를 했
더니 그런 쓰레기같은 놈은 패줘야된다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격앙된 찬열의 목소리에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어쩌다가 한번씩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백현이 아니라 찬열이였다면 지금쯤 우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하는. 아마 조금은 더 행복했지 않을까라는 바보같은 생각도.
ㅡ “ 야, 듣고있냐? ”
“ 어우, 시끄러. 나 지금 버스타야돼. ”
ㅡ “ 뭐하러 버스를 타. 내가 데리러 간다니까? ”
“ 됐다고요. 너는 일 안하냐? ”
ㅡ “ 좀 놀아도 돼. ”
“ 웃기고 있네. 다음에 다시 전화할게, 버스왔다. ”
ㅡ “ 알았어. ”
내 앞에서 멈추는 버스를 쳐다보다 급히 발걸음을 떼었다. 하마터면 버스 앞에두고 안 탈뻔했다. 교통카드를 찍고 밤이라 사람이 그렇게 많이는 없는 버스안을 바라보다
창가쪽에 앉았다. 할게 없어 휴대폰을 뒤적거리며 놀다가 그것마저도 질려버려 하품을 하며 핸드백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네온사인 불빛을 쳐다보다
가 내가 내려야할 정거장이 다가오자 정차버튼을 눌렀다. 출구앞에 있는 봉을 잡고 있다 문이 열리자마자 곧바로 내렸다. 좀 쌀쌀하네. 더 챙겨입을걸 그랬나. 살짝 소름
이 돋는 밤공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큰 길로 들어섰다. 원래는 골목길로 다녔는데 요즘에는 야근을 하는일이 잦아져서 골목길을 다니는게 무서워졌다.
ㅡ♪♬
아, 깜짝이야! 주변을 경계하며 길을 걷는데 갑작스레 울리는 벨소리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질 뻔 했다. 핸드백을 뒤적거려 휴대폰을 찾아들자 찬열의 번호가 찍혀있었다.
‘ 박병신 ’ 조금 뜸을 들이다가 화면을 밀어 전화를 받자 왜 이렇게 늦게받았냐며 꿍얼거리는 찬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도 통화해놓고 왜 난리야. 볼멘목소리로 툴툴
대자 작게 한숨을 쉬던 찬열이 말을 했다.
ㅡ “ 오늘 변백현 귀국했다더라. ”
“ …그래? ”
ㅡ “ 별건 아닌데, 너도 아예 안궁금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
“ 그렇구나. ”
ㅡ “ 뭐 어쨌든, 과거에 인연은 지나간 인연이고. 집이냐? ”
“ 지금 집에 가는길, 근데 그거때문에 사람 심장떨리게 전화했냐? ”
ㅡ “ 왜, 내가 전화하니까 설렜냐? ”
“ 설레기는, 이게 죽을라고. 안그래도 어두워서 무서워죽겠는데 소리가 나면…! ”
ㅡ “ 소리가 나면 뭐. ”
“ … …. ”
ㅡ “ 여보세요? 야! ”
“ …잠깐만 찬열아, 내가 다시 전화할게. ”
ㅡ “ 야, 너 왜그…! ”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앞을 쳐다봤다. 변…, 백현이다. 다시 울리는 전화를 받을새도없이 멀거니 내 앞에 서있는 백현을 피해지나갔다. 잠깐만. 걸음을 바삐해 백현을 지
나가는데 내 팔을 잡는 백현때문에 다시 뒤를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얘기 좀 하자. 귀국하고 나서 집에갔다온건지 멀쑥한 차림으로 나를 쳐다보던 백현이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 나 너랑 할말없어. ”
“ 이야기 좀 해. 잠깐이면 돼. ”
“ 백현아, 우리는…. ”
“ 알아. 이미 끝난 사인거. ”
“ … …. ”
“ 그냥 얘기 좀 하자. 다른거 안 바래. ”
결국은 백현을 데리고 우리집까지 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집안을 둘러보던 백현이 익숙한 쇼파를 보고 멈칫했다. 이거…. 백현과 함께 살았던 집에 있던 쇼파가 내 몸
에 익숙해져서 다른 쇼파를 사용해보려해도 불편해서 사용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마 그 집에 있는 쇼파를 가져오지는 못해도 똑같은 디자인의 쇼파를 샀었다. 나를 쳐
다보는 백현을 슬쩍 보다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커피 두잔을 타서 신기한듯 쇼파에 멀거니 앉아있는 백현에게 한잔을 건넸다. 앞에 놓인 탁자위에 커피를 올려놓고 백현
이 앉은 쇼파 대각선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았다.
“ 언제 귀국했어? ”
“ 오늘 7시 쯤에. ”
“ …그래. ”
“ 잘 지내는 것 같더라. 박찬열하고는 아직 연락해? ”
“ …응. ”
오랜만에 만난 백현은 뭔가 조금 더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말투도 그렇고, 말하는 방법도 그렇고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게 눈에 띄었다. 조금 뜨거운 커피잔을 만지작거
리던 백현이 멍하니 바닥만 보고 있는 나를 쳐다봤다. … …. 백현은 내 시선을 맞추려 했지만 나는 백현의 시선을 똑바로 맞출 수가 없었다. 똑딱거리는 시계초침소리만
들리는 공간에서 그 누구도 쉬이 입을 떼지를 못 했다.
“ …늦었는데 집에 가봐야하지 않아? ”
“ 괜찮아, 어차피 집에 가도 혼잔데 뭐. ”
“ … …. ”
“ 집 이쁘게 잘 꾸몄다. ”
“ … …. ”
“ 결혼했을때 하고싶다고 했던거 못하게했는데 여기에 다 해놨네. ”
“ … …. ”
“ 진작 이렇게 꾸밀걸. 이쁘네. ”
“ 백현아. ”
“ … …. ”
“ 할 이야기가 뭐야? ”
자꾸만 말을 돌리려는듯 하는 백현에게 묻자 뜸들이는 듯 마른세수를 한 번 하던 백현이 나를 쳐다봤다. 미안해. 무겁게 입을 떼는 백현을 쳐다봤다. 매번 찬열에게만 들
었었던 그 말이, 그토록 듣고싶었던 백현에게서 듣자 뭔가 혼란스러웠다. 내가 미안해, 내 생각만 해서. 지난날을 후회하는 듯 고개를 떨구던 백현은 그 말을 끝으로 더이
상의 말은 없었다.
“ …백현아. ”
“ 정말 미안해…, 네가 없는걸 겪고 난뒤에 알았어. ”
“ … …. ”
“ 네 소중함을. ”
“ … …. ”
“ 매일 나한테 맞춰주고, 성내는거 다 받아준게 너였는데. ”
“ … …. ”
“ 그저 나한테 사랑받고 싶어하던 작은 소녀일뿐이였는데. ”
“ … …. ”
“ 내가 정말 미안해, 그런 너를 몰라줘서. ”
백현의 목소리가 점점 젖어들어가는게 느껴졌다. 근데 백현아, 우리는 이제 더이상 돌아갈수가 없어. 나는 지금 이 현실에 너무 익숙해져서 다시 돌아가는게 끔찍하게도
싫어. 어깨가 떨리는 백현에게 손을 뻗었지만 다시 그 손을 거두었다. 나처럼 시간이 지난다면 모든게 다 익숙해질거야. 그럴거야, 너는 꼭 그럴거야 백현아. 흐느끼는 듯
슬프게도 우는 백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 …미안해. ”
내가 해줄수 있는말이 이거밖에 없어서 미안해. 슬퍼하는 너를 예전처럼 안아줄 수가 없어서 미안해. 사랑하는 너를 보내주고도 아파해서 미안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서 미안해. …모든게 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