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결혼
w. F코드
[연인의 결혼上]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난 잠에서 깼다는 거다. 딱히,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연한 건가? 3년을 기다린 옛 애인대신 날아온 편지 한 통. 그것은 아침을 맞은 나를 침대에서 일으키지 못할 만큼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다. 기다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잠깐의 권태기가 지나면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마주보며 웃을 수 있을 거라고 내 멋대로 내 세상에서 우리에 사이를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건 내 세상에서였다. 나의 세상에서 그는 아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세상에서 나는 그저 지나간 옛 애인 그리고 돌아 온 친구였다.
무심히 돌린 시선 사이로 어제 저녁 받아든 편지가 들어왔다. 하얀 겉표지에 예쁘게 붙어 있는 분홍리본 누가 봐도 딱, 청첩장이구나. 할 만한 디자인이었다. 웃음이 났다. 즐거워서가 아닌 허탈한 마음에 웃음이었다. 그는 나를 뭐라 생각 한 걸까? 정말, 나에게 아무런 감정이 남지 않은 걸까? 그래도, 그래도 한 때 뜨겁게 사랑했던 사이인데. 처음 청첩장을 받았을 땐 화가 나 찢어 버릴까 했지만 나는 그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 했다. 3년 만에 받은 그의 첫 안부라서 남의 입을 통해서 들은 게 아닌 그가 직접 나에게 건넨 첫 인사여서 나는 차마 찢을 수가 없었다. 날 사랑한다며 막무가내로 입을 맞춰오던 그 날부터 나를 차갑게 돌아선 그 순간까지 남우현은 나에게 잔인했고 그것은 그가 떠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남우현.“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선 내 입에서 흘러나온 그의 이름만이 약하게 울렸다. 나는 지금 뭘 해야 하는 걸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웃으며 지나간 옛 연인 우현을 잊고 친구로서 그를 축하해야 하는지, 아직 잊지 못한 우현의 옛 연인 입장에 서서 그를 증오해야 하며 슬퍼해야 하는 건지. 나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
“지각 할 뻔 했어.”
“안 했잖아.”
“아프냐?”
“아니.”
“그래. 수고해라.”
어깨를 두드리며 자신의 부서로 돌아가는 명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내 어깨를 두드린 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 나는 저 멀리 사라지는 명수에게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우현을 처음 만난 날 우현을 향해 자존심 빼면 시체라고 나를 소개 하던 명수에게 나는 처음으로 무너진 모습을 보였었다. 남우현과 싸우던 그 날, 나를 차갑게 돌아서는 남우현의 뒷모습 뒤로 걸려오던 명수의 전화를 붙들고 엉엉 울었었다. 나는 남우현으로 인해 시체가 되었었다. 항상.
“김대리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그러게. 김대리 아침부터 안색이 좀 안 좋던데 혹시, 어디 아파?”
나를 향한 부담스러운 시선들에 입에 들어있던 숟가락을 어색하게 빼내었다. 끝에서 닿아오는 명수의 걱정 어린 눈빛에 나를 보는 수많은 눈들에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 대답했다. 대수롭지 않은 내 대답에 금세 화재가 바뀌었지만 나를 향해있는 명수의 시선은 내가 밥공기 안에 들어있던 밥을 목구멍으로 다 밀어 넣을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식당을 빠져나가던 무리 사이로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나타난 손 하나가 나를 잡아끌었다.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가.”
“나 괜찮아.”
“알아. 그래도 집에 가.”
“명수야.....”
“남우현 결혼 축하파티에 가서 니가 뭘 할 건데?!”
“.........”
“축하한다고 박수라도 칠거야? 아님, 멱살이라도 잡을 거야?”
“..........”
“너 아니라도 그 자식 축하 해 줄 사람 많아.”
“알아.”
“알면 가지 말고 그냥 집으로......”
“드디어 찾았잖아.”
“뭐?”
“3년 만에 남우현을 떳떳하게 만날 수 있는 핑계, 그거 찾았는데 내가 어떻게 이 기회를 놓쳐.”
“...........”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결혼 할 걸 그랬다. 그럼, 그 핑계로 좀 더 우현이를 빨리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리석은 내 말 다음으로 명수의 쓴 소리가 날아오길 기다렸지만 명수는 이런 나에게 쓴 소리 대신 넓은 가슴을 빌려주었다. 나를 품안에 안은 명수가 나보다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해, 미안하다. 성규야. 나를 향해 미안하다 읊조리는 명수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내 머리를 쓰다듬는 명수의 손길을 따라 나도 명수의 넓은 등판을 두드려 주는 거였다. 명수는 항상 자신만 아니었으면 우현과 내가 만날 일도, 내가 이렇게까지 될 일도 없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명수의 착각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 착각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왠지 명수가 그 날 우현이에게 나를, 나에게 우현이를 소개 해 주지 않았어도 우리는 언젠가 어디선가는 만나서 사랑했을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장소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결혼 파티라는 거창한 단어와는 다르게 우리가 대학시절 자주 가던 주점이 파티의 장소였다. 그러고 보니 우현과의 첫 키스도 이쯤에서였던 거 같은데.
“안 들어오고 뭐해?”
“갈게.”
“지금이라도 돌아가려면 돌아가.”
“........여기 감자튀김 맛있는데 우리 그거 시켜달라고 할까?”
문 앞을 막고 선 명수를 지나친 나는 주점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한숨을 쉬며 문을 닫는 명수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정말 장난처럼 나는 우현과 눈이 마주쳤다. 피하지도 못한 채 한참을 마주한 우현의 시선은 내 앞을 막아서는 명수에 의해 잠시, 끊겨버렸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3년 만에 보는 우현은 그 전보다 훨씬 남자의 냄새가 났고 또, 어른이 분위기가 배어있었다. 다행이었다. 그 동안 우현의 사진을 찾아서 보지 않았던 게 너무나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만약, 내가 우현의 사진을 미리 봤더라면 지금 나와 마주한 우현의 모습을 미리 알았더라면.....3년 만에 우현에게 설레는 내 가슴에 대한 핑계를 찾을 수 있었다. 3년 만에 봤기에, 예전보다 더 멋져진 모습이었기에 잠시, 설렜던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잘 지냈어?”
“그럼, 너도 잘 지냈지? 하긴, 잘 지냈으니까 결혼도 하는 거겠지......다행이다.”
“.......넌”
“응?”
“넌 요새 만나는 남......사람 없어?”
“응.”
“왜?”
“좀 바빴어. 취직한 회사에 적응 하는 것도 그렇고 또,”
널 기다리고 있었거든. 마지막 말 대신 나는 누가 마셨는지 모를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를 들이키는 날 보는 우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애써 내 옆에 앉은 명수에게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밀며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어느새 내 손에 들렸던 맥주잔이 가벼워지더니 남아있던 맥주 모두 방금 내가 목구멍 안으로 들이켜 버렸다. 고작 맥주 오백으로 취할 일은 없겠지만 서도 알콜이 좀 들어가서 그런가 내 앞에서 동기 놈들과 웃으며 떠드는 우현의 모습을 보자 속이 불편했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배가 아파왔다. 분했다. 더 멋있어진 우현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옆에 놔야 한다는 게 분하면서 억울했다.
“그러고 보니까 성규랑 우현이 오랜만에 만나는 거 아니냐?”
“둘이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붙어 다녔는데 설마, 오랜만이겠냐?”
“아니야. 예전에 우현이 휴학했을 때 성규 저 놈이 나한테 우현이 바뀐 번호 아냐고 물어봤었어. 그때 분위기로 봐서는 둘이 싸운 거 같았는데 설마 니들 아직도 화해 안 한건 아니지?”
“미친놈. 얘들이 애냐?”
동기 놈들의 투닥 거리는 소리에 옆에 있는 명수의 잔을 손에 쥐고 그 안에 있던 맥주를 들이켰다. 쾅, 아직 맥주가 가득 들어 무거운 잔을 조금 세게 내려놔서 인지 맥주잔 밑과 맞닿은 탁자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렸지만 그 보다 시끄러운 주점 안의 분위기에 딱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김성규 그만 마셔.”
내 손에 들린 자신의 잔을 뺏어 드는 김명수와
“..........”
아무 말 없이 한 손에는 잔을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우현. 오기가 생겨서 일까? 나는 나를 보고 있는 우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우현은 그런 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와 마주한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손에 든 맥주를 홀짝이던 우현이 다 먹었는지 잔을 탁자에 내려놨다. 뒤로 젖혀져 있던 우현의 몸이 서서히 내 쪽으로 기울어지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남우현은 곧, 나에게 말을 걸 거라는 걸.
- 지이잉
남우현의 전화였다. 받지 않을 생각인 건지 탁자에서 울리는 전화기 대신 줄곧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 시선에 나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찌릿한 느낌에 탁자 아래로 숨긴 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곧 남우현은 나를 부를 것이다. 특유의 다정한 음색으로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를 것이다. 성규야라고 부를 것.......
“전화 온다. 지현? 지현이면 너랑 결혼 할 그 여자 아니야?”
“.........여보세요? 어, 지현아 나 지금........”
틀렸다. 남우현 너는 지금 너의 여자친구 너와 결혼 할 그녀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됐었다. 그녀의 전화인 줄 알면서 무시 했던 걸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남우현은 내가 아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성규야 가 아닌 지현아 라며 그 다정한 음색으로 내가 아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말해주는 걸까? 나와 남우현은 이제 끝이라고 그녀가 확인시켜 주는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내가 그녀를 모르듯 그녀 또한 나를 모를 테니 이건, 그녀가 나에게 확인을 시켜주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굴까? 하늘일까? 이제 새로운 여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남우현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남우현 일까?
“화장실 가게?”
“...........”
“김성규. 너 어디가? 야! 성규야!!”
시끄러운 주점을 빠져나오자 이미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간에 길목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고요한 길목 끝에서 다정한 우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거 같았다. 저 멀리 있는 골목에 소리가 어떻게 들리냐고 따져 묻는다면 난 해 줄 대답이 없었지만, 들렸다. 확실히 저 곳에서 우현의 목소리가 나에게는 들렸다.
“응, 걱정 하지마. 아니야, 오지마 이미 애들 다 취해.....”
“..........”
“......어?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지현아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
“담배, 줄까?”
아직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통화를 자신의 손으로 빨간 버튼을 눌러 종료시킨 우현이 주머니 속으로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대신, 안에 들어있던 하얀 담배 각을 꺼내들었다. 담배 각을 열어 몇 개 남지 않은 담배 한 개피를 내 쪽으로 내미는 우현의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자 우현이 나에게 내민 담배를 자신의 입에 물었다. 불을 찾는 건지 주머니를 뒤적이는 우현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우현에게 걸어갔지만 어느새 내 몸은 주인인 나의 뜻과는 다르게 빠르게 달려가더니 그대로 우현을 품에 안아버렸다.
“.........”
“.........”
독방에서 어떤 분이 소재를 주셔가지고 쓸까말까 고민을 하다가
잠이 안 와서 좀 끄적여봤어요...
중, 하에서 끝날지 아님, 바로 다음 편을 하로 연재하며 하에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길지 않은 글이니까 많이많이 읽어주세요.
웨딩드레스 |
포스트잇, 메인규, 자몽, 푸파, 내사랑 울보 동우, 뀨규, 독자2, 인빅, 고추장, 거울, 하푸, 터진귤, 지지, 수타, 소라빵, 찹쌀떡, 앨리지, 쏘쏘, 개굴, 오일, 갑, 만두, 코코팜, 블베에이드, 흥, 구름의별, 나봤규, 테라규, 콩, 퐁퐁, 시계, 매실액기스, 규때, 민트초코, 피아플로, 순수, 빙구레, 베게, 하니, 감성, 뀨뀨, 갤노트2, 풍선, 요노르, 뚜근뚜근, 여리, 돼지코, 숫자공일일, 프라푸치노, 미옹, 규요미, 종이, 백큥이, 모닝콜, 베이비핑크, 리칸, 나토, 생크림, 유정란, 후양, 엘라, 노랑규, 여우비, 빙빙, 세츠, 헿헿, 캡틴규, 의식의흐름, 케헹, 오랑, 안녕하수꽈, 망태, 달달, 완두콩, 피앙, 옵티머스, 호현, 롱롱, 발꼬랑, 니트, 수달, 레오, 새침, 익명인, 쿠크다스, 호호, 발가락, 눈아프다, 후시딘, 온규, 로즈, 휴지, 카페모카, 슈크림, 환상그대, 인연, 솜사탕, 달링, 승유, 수박, 복숭아, 베베규, 베라, 너부리, 집착, 콤퍼스, 예보, 후드티, 마리오, 리모콘, 마카롱, 하루, 조무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