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싸움을 뒤로 한 채 짐짝처럼 끌려나간 당신은 곧 그의 방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의 탐미주의적 기호가 확연히 티나는 방, 그 중에서도 한가운데에 위치한 화려한 호랑이 가죽 위에 당신을 앉힌 명수는 뿌듯하게 웃으며 침대에 누워 당신을 바라봅니다. 얼결에 가죽 위에 앉은 당신은 긴장한 채 두 다리를 구부려 웅크려 앉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명수는 당신을 빤히 바라봅니다. '사람'을 본다기보단 '사물'을 보는 듯한 시선, 기분 나쁠 정도로 새카맣고 깊은 눈동자. 관찰당하는 시선이 기분 나빠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동시에 명수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당신은 서둘러 방 밖으로 뛰어나가 버립니다.
명수의 방을 빠져나온 당신은 문까지 쾅 닫아버리고 나서야 움츠렸던 몸을 슬쩍 풉니다. 잔뜩 경계했던 것이 무색하게 다행히 쫓아오지는 않네요. 당신은 한숨 돌리며 걸음을 늦춥니다. 생각을 멈췄던 머리가 이제서야 조금씩 돌아가는 듯 합니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요? 당신과 이들은 왜 잡혀온 걸까요? 당신은 가닥이 잡힐락 말락한 생각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립니다. 허나 복도 양옆으로 보이는 방의 내부 모습들은 괴상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음식이 차고 넘치는데도 입에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넣는 동우, 다수의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성열의 방, 분노에 찬 호원 때문에 누더기가 된 방, 높은 곳에 올라앉아 당신을 거만하게 바라보는 성종, 그리고 만사 다 귀찮은 듯 늘어져 있는 우현까지.
시간이 꽤 지났건만, 아직도 시끄러운 당신의 방을 지나친 당신은 발길을 돌려 우현의 방에 들어갑니다. 우현은 당신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바닥에 누워 나른하게 뒹굴거립니다. 차라리 잘된 일이네요. 우현 대신 그의 침대에 대(大)자로 드러누워버린 당신은 다음 날 아침까지 푹 자다 일어납니다.
오랜만에 가뭄에 내린 단비 같은 숙면을 취하고 나니 정신이 훨씬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몸도 한결 가벼워진 듯 하고요. 당신은 두툼한 흰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습니다. 혹시나 해서 방 안을 둘러보자 우현은 이미 나간 건지 흔적조차 없습니다. 그가 어찌나 뒹굴거렸는지 한 부분만 푹 파인 양탄자만이 우현이 있었다는 걸 증명해줍니다. 당신은 침대에서 내려와 발길 닿는 대로 쭈욱 나가봅니다. 예상대로 문 앞에 다들 옹기종기 모여있네요. 답을 입력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밤 동안 뒤척이다 답을 떠올린 당신은 모인 이들을 뚫고 나가 정답을 입력합니다. 삐-. 당신이 생각한 것이 맞았는지 문이 활짝 열립니다. 모두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 다들 문 너머로 고개를 빼고 내부를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모두 실망한 듯 고개를 원위치 시킵니다. 모두 한 마음인 듯, 가기 싫은 표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떠있습니다. 이 곳에 비하면 문 너머는 허름하고, 볼품 없거든요.
특히 명수와 동우는 벌작하듯 이 곳에 남겠다고 항의합니다. 이 보석들, 이 음식들을 전부 두고 갈 수는 없다면서요. 무리가 와해될 위기에 처하자 당신은 제일 가까이에 있는 명수를 잡고 늘어집니다. 같이 가자고요. 당신의 설득에 명수는 불퉁한 얼굴로 한참 고민합니다. 그러다, 가져갈 수 있는 보석을 최대한 챙기는 것으로 일단은 만족해보겠다고 합의를 봅니다.
하지만 동우는 이성을 잃은 것처럼 격렬하게 항의하더니 어느새 칼을 꺼내들고 모두를 위협합니다. 당신이 나서서 설득해보려 하지만 결국 물러나고 맙니다. 동우의 정신을 놓은 듯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주춤거리며 물러납니다. 동우는 한 마리 굶주린 맹수처럼, 원초적 본능에 취한 야수처럼 으르렁거립니다. 그러더니 달려드려는 건지 동우가 몸을 숙인 순간, 명수는 당신을 업어든 채 문 안으로 뛰어듭니다.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양 모두들 당신과 명수의 뒤를 따라 뛰어들고, 동우를 향해 함께 고함치던 호원을 마지막으로 다 들어오자 커다란 문은 빠르게 닫혀버렸습니다.
그렇게 동우는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단 한 명이 빠진 것이지만, 무리가 와해되었다는 아쉬움과 불안함에 가슴 한 켠이 콕콕 찔리는 듯 합니다. 하지만, 애써 괜찮을 거라 스스로 다독입니다. 동우는 정답을 알고 있으니 언제든 이 쪽으로 넘어올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당신이 할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뿐입니다. 당신을 선두로 모두 다음으로 가는 문으로 다가가 침착하게 수수께끼를 살핍니다.
'첫번째는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이것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언젠가는 누군가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올 테지만 곧 꺼지고 말 것이며,
두 번째는 사람에 따라 두 세개씩 가지고 있기도 한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이것은?'
이번에는 답이 두 개인가 봅니다. 정답 수에 난도까지 확 올라간 수수께끼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당신은 아래에 작게 적힌 글씨를 봅니다. 이 곳 안에 힌트가 숨겨져 있다네요. 한참 고민하던 이들은 나눠져 힌트를 찾기로 하고 뿔뿔히 흩어집니다. 당신도 습관처럼 손목을 만지며 길고 긴 복도를 헤맵니다. 투박한 복도는 마치 장례식장처럼 어딘지 음습하고 음울합니다.
한참 어두운 복도를 헤매던 당신은 이내 번호가 붙은 방 앞에 멈춰섭니다. 문을 열어보니 꽤나 깔끔한 방들입니다. 이전 방처럼 쉴 수 있는 침대도 있고, 다른 곳들과 달리 안에서 잠글 수 있는 걸쇠도 달려있습니다. 숙소로 쓰기 좋은 방들이네요. 곧바로 당신은 단서를 찾는 둥 마는 둥 거드름을 피우며 당신 주변을 거니는 성종에게 말을 전합니다. 성종은 가만하게 웃더니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러 사라집니다. 금세 성종의 말을 듣고 모인 이들은 복도를 중심으로 다시 수색에 나섭니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힌트를 밤이 늦도록 찾지 못한 일행과 당신. 다들 지쳤는지 오늘은 그만 눈을 붙이기로 합니다. 모두에게 인사를 건넨 당신은 문을 닫자마자 꼭꼭 잠궈버립니다. 어제와 같은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 당신은 이내 눈을 감습니다. 철그럭, 느리게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와 당신의 이름을 유혹하듯 부르고 가는 목소리들은 일절 무시한 채로요.
다음 날 새벽, 성열의 재촉 때문에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습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복도 한가운데에는 빳빳한 종이가 한 곳에 모여있습니다. 어느새 가운데 선 성열은 힌트를 보고 있다가 당신에게 다가와, 깜짝 놀랄 만한 말을 전해줍니다. 간밤에 조건이 바뀌었다나요. 두 개의 문제 중 하나만 답을 해도 된답니다. 종이에 적힌 것들은 답에 대한 힌트이고요.
하지만, 막상 종이를 모아보니 그저 자음과 모음의 모임 같습니다.
'ㅏ, ㅅ, ㅣ. ㅁ, ㅕ, ㅈ, ㄱ, ㅚ, ㅇ'
알 수 없는 글자의 집합에 당신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이것을 배열해야 하는 걸까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곧 글자 주변에 앉아 각자 고심합니다. 단서 종이를 이리저리 짜맞추며, 성종과 함께 답에 부합하는 단어를 떠올리려 애쓰던 당신.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난 성열이 당신에게 정답은 두 글자 단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당신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재배열해보죠.
"생……."
설마. 글자를 성종과 함께 여러 방면으로 배열하던 당신은 어렴풋한 단어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내, 어쩐지 싸늘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성열을 바라봅니다. 답이 두 글자인 것은 어찌 알았냐고 그에게 묻자, 성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께를 으쓱합니다. 나가서 입력해봤다네요, 떠오르는 단어들을. 그것도 수십 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런 짓을 저지른 건지. 혼자만 평온한 성열의 말에 모두가 기겁하는 가운데, 오직 우현만이 성열과 함께 히죽거립니다. 별 일 안 생길 거 같으니 겁 먹지 말라면서요. 성열 역시 오답 처리만 될 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고 거드름을 피웁니다.
그 때, 중앙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정답을 입력한 사람은 없으니 앞으로 가는 문이 열린 건 아닐 겁니다. 사람도 전부 다 여기 모여있으니 중앙에서 소리를 낼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 소리를 낸 걸까요? 당신은 남아있겠다는 명수와 늘어져 있는 우현을 제외한 나머지와 함께 다같이 중앙으로 나가봅니다. 다들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표정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이윽고 중앙에 다다르자, 소리의 원인이 눈 앞에 서있습니다.
반쯤 실성한 듯한 동우, 그리고 활짝 열린 이전의 문.
그의 등 뒤로 보이는 예전의 화려했던 방은 지금 당신이 머무르고 있는 방보다 더 황폐해져 있습니다. 이전 방의 중앙 한구석에 모아뒀던 음식도 잔해물만 남아있을 뿐 이미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일행과 마주친 동우의 손에 들린 흉기가 매섭게 떨립니다. 그나마 당신이 부르자 움찔하였지만, 그마저도 당신을 향해 입맛을 다실 뿐입니다.
"자기야."
동우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당신을 부릅니다. 메마르고, 잔뜩 쉰 목소리. 무언가를 갈망하는 욕망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 당신은 동우가 느릿느릿 다가오자 주춤 물러섭니다. 그런 당신을 본 동우는 마냥 히죽 웃습니다. 도망가지 마, 자기야. 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주변을 휘저어 보지만 아무도 잡히지 않습니다. 다들 도망이라도 간 걸까요. 당신이 당혹감에 입술을 짓씹는 순간, 별안간 동우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괴성을 지르며 달려나옵니다.
작가의 말 :) |
안녕하세요, 달꽃입니다 :) 벌써 인페르노가 끝을 앞두고 있어요! 본래 단편으로 기획한 지라 길이이 많이... 안습... ㅠ.^
심지어 기말이 코 앞이라 분량을 더 늘릴 수도 없고 다른 글을 쭉쭉 쓸 수도 없고 (시들시들
하여튼 느리고 천천히라도 꾸준히 달려볼 생각입니다! 연중은... 다메...☆ 종강... 하야꾸...★
앗 그리고 암호닉은 계속 추가 중입니다! 메르헨 시리즈가 끝나고 메일링 할 때 텍파들 중에 무언가 더 끼워넣어드릴 생각이랍니다 :) 특전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일단은 그러려고요...☆
혹시 암호닉에 내 닉이 빠졌다 싶으면 가차 없이 말씀해주세요! 따수운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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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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