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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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결혼下]
우현이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우현이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거처럼 아무 말도 안 하고, 못 들은 거처럼 우리 둘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남은 밥을 비우고 식당을 나왔다. 데려다 준다는 우현이의 말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마음 한켠에서 오늘의 만남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 입을 붙잡았고 그 사이 우현이가 이미 나를 자신의 차로 밀어 넣었다.
오가는 말은 없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라디오 노랫소리에 맞춰 흥얼거리는 우현이의 노랫소리가 자동차의 적막감을 조금 더는 그냥 그 정도였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손쉽게 도착한 우리 집을 우현이는 한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결국, 우현이의 멍한 모습에 내가 먼저 안전벨트를 풀었고 그제야 그 소리에 우현이가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갈게. 태워다 줘서 고마워.”
“........지겨웠어.”
손잡이를 잡은 순간 들려오는 우현이의 음성이 너무나 낮게 깔려 있어서 무서웠다. 서두 없이 지겨웠다 내뱉었지만 그 말이 한 시간 전 식당에서 던진 내 어리석은 질문에 대답이라는 걸 알아서 나는 무서웠다. 내리려고 비틀었던 몸을 제자리로 돌렸다. 우현이를 바라보기엔 용기가 없어서 앞 유리로 비치는 아파트의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중에 알았어. 지겨운 게 아니라 익숙했다는 걸.”
“..........”
“뒤늦게 깨달고 나서 후회했어. 그 날 너를 그렇게 떠나 버린 걸.”
“늦게라도 알았으면서 왜.......기다렸는데.”
“그래서 안 갔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우현이의 모습이 느껴져 나도 고개를 돌렸다. 내가 우현이를 보고 우현이가 나를 보고 있었지만 이상했다. 마치, 우현이의 시선이 내 안에 있는 예전의 나를 찾는 거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마저 익숙해 질까봐.”
“.........”
“내가 다시 돌아갔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자리 그대로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너를 보면 또 다시 익숙해 진 내가 널 혼자 두고 도망가는 게 익숙해 질까봐. 두려웠어.”
우현이의 말에 나는 멍청하게 또 다시 눈물을 떨어트렸다.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뻗은 우현이의 손은 내 볼을 어루만지며 내 볼 위로 길게 떨어진 눈물을 닦아 주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 볼을 어루만지는 우현이의 손길에 나는 우현이를 향해있던 고개를, 시선을 돌려버렸다.
“나는?”
“...........”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너를, 연락도 안 되는 너를 집에서 기다리는 나는 안 두려웠을 거 같아?”
“...........”
“너 집에서 그렇게 나간 뒤로 나 한숨도 못자고 핸드폰만 바라봤어. 혹시나, 너한테 전화 왔는데 못 받을까봐 한숨도 못 잤다고!!”
“..........”
“명수한테 너 휴학했다는 말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 줄 알아? ‘아, 살아있구나. 우현이 죽지 않았구나. 다행이다’ 병신같이 나는!”
“..........”
눈물이 흐르는 눈가를 벅벅 비비며 자동차 문을 열고 나오자 성규야. 하며 우현이 나를 불렀다. 우현의 부름에 자동차 문을 닫지 않고 뒤를 돈 채 가만히 서 있다 우현이 그런 내 뒤로 아주 작게 속삭였다. ‘미안해.’ 그 소리를 끝으로 나는 자동차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왔다. 우리 집, 나와 우현이가 살던 그 집으로 들어 온 나는 더 이상 우현이가 살지 않는 집을 보며 우리 집이 아닌 내 집이 되어 버린 집 안을 둘러보며 울었다. 우현이가 나를 떠난 그 날, 내 등 뒤로 미안해. 라고 속삭이던 그 때가 떠올라버려서 나는 그 날로 돌아 간 거처럼 엉엉 울었다.
***
“김성규 너 진짜......하아-”
“.........”
언제 온 건지 내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인상을 찌푸리는 명수의 모습에 바보같이 웃자 명수가 그런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시간이라 텅 빈 사무실에서 명수가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다니, 나도 어지간히 쓸 데 없는 거에 집중을 잘 한다는 생각과 함께 컴퓨터 모니터에 띄어진 인터넷 창을 바라봤다. ‘축가로 좋은 노래’ 가 쭉 띄어진 검색창에 모니터를 끄고 고개를 돌리자 명수도 나처럼 모니터를 바라봤던 건지 모니터에서 내 쪽으로 시선이 돌려졌다.
“다 보라색인 거 보니 일일이 다 클릭해 봤냐?”
“벌써 밥 다 먹었어?”
“너야 말로 밥도 안 먹고 뭐하는 짓인데?”
“지금 먹으려고 했어.”
“너 내 결혼식 때 이정도로 안 하면 진짜 그땐 너 절교야. 알았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못 믿겠다는 듯 나를 노려보던 명수가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사무실을 나섰고 나도 그런 명수를 따라 나섰다. 직원 식당은 이미 음식이 동났을 테니 밖에서 먹자는 명수의 말에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명수가 그런 나를 이끌고 자주 찾던 정식 집을 들어왔다.
“순두부찌개 두 개 주세요.”
“나 순두부찌개 먹는 다고 안 했는데?”
“상사가 시켜주는 음식에 토 달지 않고 먹는 것도 사회생활이다. 김대리.”
“진짜 서러워서 빨리 승진을 하던가......”
“어머, 명수씨 아니세요?”
반갑게 명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명수를 향해 반갑게 걸어온 여자가 명수랑 친한지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고 명수도 그런 여자의 모습에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태까지 명수가 만나온 여자들로 봐서는 명수의 취향은 아닌 거 같은데, 명수가 좋아하는 긴 머리에 웨이브 진 머리가 아닌 단발머리, 거기에 청순하기 보다는 귀여운 얼굴은 여태까지 명수가 만나온 여자들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내 정신 좀 봐. 일행 분이 계셨는데 실례......어? 이분”
“아- 바쁘실 텐데 이만.......”
“성규씨 맞죠?”
“네?”
“김성규씨 맞죠? 반가워요.”
반갑다며 나에게 손을 뻗는 여자의 모습에 나는 얼떨결에 여자의 손을 잡았다. 악수를 하면서도 여자는 나를 훑어보며 이렇게 만나서 반갑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도저히 생각해도 오늘 처음 만난 거 같은 여자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 명수를 바라봤다. 누군지 설명을 해 달라는 내 시선에 명수가 우물쭈물 하자 앞에 선 여자가 자신의 두 손뼉을 짝 치면서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스스로의 머리를 스스로 내려치는 여자의 모습은 이상할 법도 했지만 귀여운 외모 덕분인지 귀엽게 보였다.
“제 소개부터 드렸어야 되는데 너무 반가운 마음에.....죄송해요.”
“아니에요.”
“저, 우현씨랑 결혼하는 한지현이라고 합니다.”
“..........”
“식 전에 만나 뵙고 싶었는데 정말, 이렇게 만나 뵙다니 정말 반가워요.”
나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짓는 여자에게 나는 그 흔한 가식적인 미소조차 보여 줄 수 없었다. 분명, 내 표정이 잔뜩 구겨졌을 텐데도 불구하고 여자는 나를 향해 짓는 미소를 단 한 번도 지우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우현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도 다른 사람의 시선 보다 지금의 제 감정에 솔직한 모습까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솔직히 우현씨가 하도 안 된다고 해서 반쯤 포기 상태였는데. 저 성규씨가 축가 해 준다고 했다는 말 듣고 길 한복판에서 소리 지른 거 아세요? 그 정도로 저 진짜 좋았어요. 너무 감사드려요.”
“아니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뭐......”
결혼 하면 꼭 집들이에 오라는 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예쁜 웃음을 짓더니 내 뒤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래 기다렸어? 여자에게 다정하게 묻는 남자의 뒷모습에 나는 그만 손에 들고 있는 숟가락을 떨어트렸고 그런 나의 행동은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남자의 시선을 굳이 내게 집중 시키는 꼴이 되어버렸다.
“우현씨 나 성규씨랑 인사했다. 우리 꽤 친해졌어.”
“..........”
“..........”
그죠? 라며 나를 향해 귀엽게 묻는 여자의 모습에 나는 땅에 떨어진 숟가락을 줍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문하신 거 나왔습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 위로 보글보글 끓는 순두부찌개가 명수 앞으로 하나, 내 앞으로 하나 씩 놓아지는 모습을 나는 멍청하게 바라봤다.
“맛있겠다. 우리도 순두부찌개 먹을까?”
“지현아 우리 그냥......”
“나 가봐야겠다.”
“뭐?”
“미안, 명수야. 아까 우리 팀장님이 점심시간 끝나기 전까지 부탁한 자료 있는데 깜빡했네. 우현이 왔으니까 둘이 아니, 세 분이서 드세요.”
“야 김성규 너......”
“그럼 결혼식 때 뵐게요. 결혼식 때 보자.”
혼자 남은 명수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내가 식당을 빠져 나올 때까지 따라오던 우현이의 시선에 벌렁이던 심장은 회사에 도착해서 까지 진정 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점심시간에 돌아온 팀원은 당연히 없었고 사무실은 아까처럼 텅 비어있었다. 차라리 텅 비어버린 사무실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자리에 앉은 몸을 책상위로 눕혔다.
“하아-”
***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한 순간은 언제나 너무 빨리 온다. 오지 않았으면 했던 우현의 결혼식은 오늘이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제발, 제발 딱 하루만 시간이 멈췄으면 했지만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기에 시간 또한 멈추지 않았다.
“오늘 좋은 말씀을 해 주신 이중엽주례님께 감사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
.
.
.
“그럼, 이어서 두 분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가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신부 측의 축가가 있겠습니다.”
긴 주례로 인해 잔뜩 쳐져있던 분위기는 신부 친구들의 등장만으로 식장 안의 사람들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우현의 그녀는 우현이를 향해 입을 가린 채 예쁘게 웃었고 우현이는 그런 그녀의 눈을 맞추며 웃어주었다. 친구들의 축가가 시작되고 그와 함께 귀여운 댄스가 시작 되자 간간히 얼굴이 익숙한 놈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에 맞춰 춤을 췄고 우현이는 그런 남자들에게 제발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 모양인지 우현이의 입에 걸린 미소는 떠나지 않았다.
혼자다. 혼자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도 즐거운 웃음소리도 들렸지만 혼자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낯선 곳에 떨어져 버린, 그런 기분. 목이 막혀온다. 가슴도 답답해지고 머리도 아파왔다. 하나, 둘 늘어가는 박수소리가 귓가를 매섭게 때리는 거 같다. 시끄러운 소리에 꼭 감고 있던 눈은 뚝 끊긴 노래와 잘 살라는 여자들의 음성에 천천히 뜨여졌다.
“이어서 신랑 측의 축가가 있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눈을 뜬 내 앞에는 우현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자연스럽게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가 나에게 내미는 마이크를 옮겨 잡은 나는 나를 보고 있는 우현이를, 그리고 그녀를 한 번씩 번갈아 보고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내가 눈을 감은 게 타이밍이었을까? 반주가 흘렀고 길지 않은 반주에 맞춰 나는 마이크를 입 앞에 가져다 대었다.
한 소절 한 소절 부를 때 마다 가슴의 압박이 심해졌다. 내가 과거의 우현이를 향해 불러주었던 노래, 내 마음을 담았던 노래를 그녀가 원했다. 우현이 아닌 우현의 옆에 선 그녀가 원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이 노래였다. 그럼, 나는 누구를 위해 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걸까? 예전처럼 우현이를 위해? 아님, 이 노래를 원한 그녀를 위해?
다 틀렸다. 난 지금 우현이도 우현이의 옆에 선 그녀도 아닌 나를 위해 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불러주었다. 과거의 나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면 왠지 지금의 나도 아프지 않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나는 나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길지 않은 노래가 끝나고 나는 감고 있는 눈을 살며시 떴고 제일 먼저 들어 온 모습은 울고 있는 그녀였다. 뭐가 그렇게 슬픈 건지 그녀는 울고 있었다. 아마, 슬퍼서가 아닌 기쁨의 눈물이었겠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우현이를 바라봤다. 울고 있는 그녀가 아닌 나를 보고 있는 우현이에게 나는 조금 늦었지만 웃으면서 얘기했다.
‘행복해야 돼.’
박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식장을 빠져나왔다. 중간에 나를 보고 따라 나오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는 명수에게 괜찮다고 안심까지 시키며 식장을 나왔다. 식이 시작 되어서 인지 빠져나온 식장 밖은 아까와 다르게 너무나 조용했다. 또각또각 내가 신은 구두 밑창이 대리석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에 맞춰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떨어트렸다. 쉬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누워 자고 싶었다. 오늘의 일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그렇게 마음 편하게 자고 싶어서 나는 마침 도착해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올라타려했지만 내 몸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멈춰 버렸다.
“잠깐만, 잠깐만 성규야.”
“........”
아직 끝나지 않은 식장에서 빠져나와 나를 잡은 건 놀랍게도 우현이었다. 아까와 다르게 잔뜩 흐트러진 턱시도와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남우현이었다.
“성규야 난......”
“남우현!!”
“야 임마, 너 지금 식도 안 끝난 놈이 여기서 뭐하는 거야 빨리 안 가?”
“잠깐 이것 좀 놔봐!! 할 말이 있다고!”
“이 새끼 이거 돌았나 진짜. 야 김성규 얘 왜 이래?”
“성규야 잠깐만, 할 말이........”
식장을 뛰쳐나온 우현을 잡으러 온 친구들 중에는 대학 동기 놈들도 몇몇 있었고 그들은 나를 따라 온 우현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나에게 우현의 행동에 대한 답을 요구 하고 있었다. 자신이 끌고 가려는 친구들의 손을 뿌리치고 내 이름을 부르는 우현이의 모습이, 그런 우현이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무서워서 나는 도망치듯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우현은 나를 불렀지만 나는 그런 우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핸드폰도 꺼버린 채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꿈에서 우현이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우현이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거 같다. 꿈속에 나는 그저 내가 아닌 우현이가 우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봤었다. 꿈에서 깨어난 건 밝았던 하늘에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였다. 희미하게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깨버린 나는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뚝 끊긴 초인종 소리에 방문 앞에서 잠시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던 난 익숙하게 눌러지는 도어락에 멍하니 현관을 쳐다봤고 곧, 비밀번호를 맞췄다는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
“김대리님 이것 좀 봐주시겠어요?”
“왜요? 뭐가 이상해요?”
“여기 이 부분이 좀 이상한 거 같아서요. 지난 분기를 보면 매출이.....”
“김대리! 팀장님이 찾아.”
“네!. 미희씨 미안해요. 내가 확인 해 볼 테니까 서류는 그냥 거기 위에 놔줘요.”
“감사합니다.”
지옥 같던 근무시간이 끝나자 사무실 사람들은 뭐가 바쁜지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는 사람들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 의자에 몸을 기대자 이대로 잠에 빠져버릴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서둘러 의자에서 일어나 두꺼운 코트를 입었다. 한 순간에 찾아온 겨울이 싫어 몸을 떨며 목도리를 매자 사무실 유리 밖으로 반짝이는 트리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이브였구나.”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아직 퇴근 안 했어?”
“불쌍한 친구 놈이 오늘이 이브인지도 모를 거 같아서, 착한 내가 놀아줘야지 어쩌겠어?”
“얼마 전에 차인 놈한테 그런 말 듣는 건 좀 그렇다.”
“김성규. 너 내가 그 얘기 꺼내지 말랬지? 그리고 몇 번을 말해! 내가 차인 게 아니라 찬 거라니까 천하의 김명수가 여자한테 차이는 거 봤냐? 너 봤어?”
“응. 아주 많이 봤지. 대학 때 너 좋다고 쫓아다니던 혜주였나? 걔한테도 차이고 그 다음으로 사귄 선배, 그 선배 이름이 뭐였더라? 첼로 전공이었는데 이름이 김 보.......”
“야!.......알면 튕기지 말고 술이나 한잔 하자.”
“미안, 나도 오늘은 약속 있어서.”
“약속? 니가 오늘 같은 날 약속이 있다고?”
이런 날에 내가 약속이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지 길길이 뛰는 명수의 모습을 보자 어쩐지 기쁘지 많은 않은 거 같았다. 이런 날 혼자 있어야하는 친구가 불쌍하지도 않냐며 사실, 여자친구한테 차인 게 맞다며 이런 날 친구를 위로해 줘야 되지 않겠냐는 명수의 자폭에도 나는 그저 서류를 가방에 넣으며 미안하다며 웃어보였다.
“혹시, 연락 왔어?”
“.........”
“너 오늘 남우현이랑 만나기로......”
“가족 모임이 있어.”
“아, 그래.”
자신이 실수 했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굳게 다문 명수의 모습이 귀여워 웃는 얼굴로 명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며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빨리 잡힌 택시에 올라타 목적지를 말한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택시 아저씨가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온통 반짝이는 거리와 너무나도 어울리는 캐럴이 흘러나왔다. 신호에 걸린 건지 잠시 택시가 멈추자 빠르게 지나갔던 사람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웃는 사람들과 추운 날씨에 꼭 끌어안고 있는 연인들까지 모두 함께하는 사람들은 달랐지만 그들의 얼굴은 똑같았다. 행복함,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는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런 그들의 행복이 전해진 걸까? 그들을 보고 있는 내 얼굴엔 나도 모르는 새에 미소가 번졌다. 어쩐지 혼자 웃고 있는 꼴이 우스워서 자세를 고쳐 잡자 그들에게서 멀어진 내 시선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네킹에게로 고정되어버렸다.
“잘 있지?.....”
신호에서 풀린 자동차가 다시 움직이자 내 눈앞에 있던 하얀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이 점점 멀어졌다. 문득, 우현이의 결혼식이 있던 그 날이 떠올랐다. 하늘에 밤이 내려앉은 시점에서 나를 찾아 온 명수. 그리고 그런 명수의 입에서 들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 그 모든 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남우현.....여기 없어?’
‘무슨 소리야.’
‘사라졌어.’
‘..........’
‘남우현, 결혼식장으로 안 돌아왔어.’
‘.........’
‘너 따라 간다고 뛰어가더니 사라졌어. 혹시, 너한테 연락 없었어?’
“손님! 손님!”
“어-?”
“다 왔습니다.”
“아- 죄송해요. 얼마죠?”
“......젊은 사람이 생각이 많아도 못 씁니다. 자, 여기 잔돈.”
“죄송합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저, 손님?”
“네?”
“산타는 어린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는 게 아니래요.”
“네?”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출발해 버린 택시를 멍청하게 바라보던 난 갑자기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에 서둘러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산타의 선물이라니. 어릴 적에도 믿지 않았던 산타의 존재를 아까 택시기사의 말을 듣고 잠시 정말 있을까? 했던 내 모습이 웃겨서 웃으며 현관문을 연 순간,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존재 자체를 거짓이라며 비웃었던 나에게 정말 산타가 선물을 주고 간 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멍청하게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내가 겨우 정신을 차린 건 내가 열어놓은 현관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추운지 잔뜩 몸을 웅크리는 모습을 봤을 때였다. 서둘러 현관문을 닫은 나는 내 집이면서도 신발을 벗는 거조차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이불하나 없이 거실 바닥에 가만히 머리를 대고 자고 있는 우현이의 모습을 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멍청하게 얼마나 서 있었을까? 갑작스레 들려오는 기계음에 놀라 어깨를 흠칫 떨자 CD가 돌아가고 있었던 건지 CD플레이어가 한번 열리더니 다시 자동으로 들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래 되어서 인지 한참을 돌아가던 CD플레이어에서는 조금 늦게 노래가 흘러나왔고 나는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노래 소리에 나는 잠이 들어있는 우현이를 지나쳐 CD플레이어 앞에 섰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던 노랫소리가 멈추고 CD플레이어가 열리며 cd가 나왔다. 파란색의 CD 위에는 ‘성시경 – 두 사람’ 이라 쓰여 있었고 그 밑으로는 내가 적어 놓은 글씨가 지워지고 새로운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 글씨를 보던 나는 내 어깨를 감싸 안은 손에 그만 울어버렸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우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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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연이의 결혼이 끝이 났습니다.
중간에 잠깐 쉬는 타임으로 썼던 글인데 그러기에는 너무 쉽게 다뤄서는 안 되는 이야기 같아서
쓰는 내내 그 어느 때 보다 집중하면서 썼습니다.
끝을 어떻게 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것은 사실이 아닌 픽션이기에 다르게 끝을 냈습니다.
텍파나 번외는 조금 생각 해 보고 결정할게요.
갑을로 다시 만나요.
소재 준 뚜기 사랑해요ㅎㅅㅎ
성시경 - 두 사람 |
포스트잇, 메인규, 자몽, 푸파, 내사랑 울보 동우, 뀨규, 독자2, 인빅, 고추장, 거울, 하푸, 터진귤, 지지, 수타, 소라빵, 찹쌀떡, 앨리지, 쏘쏘, 개굴, 오일, 갑, 만두, 코코팜, 블베에이드, 흥, 구름의별, 나봤규, 테라규, 콩, 퐁퐁, 시계, 매실액기스, 규때, 민트초코, 피아플로, 순수, 빙구레, 베게, 하니, 감성, 뀨뀨, 갤노트2, 풍선, 요노르, 뚜근뚜근, 여리, 돼지코, 숫자공일일, 프라푸치노, 미옹, 규요미, 종이, 백큥이, 모닝콜, 베이비핑크, 리칸, 나토, 생크림, 유정란, 후양, 엘라, 노랑규, 여우비, 빙빙, 세츠, 헿헿, 캡틴규, 의식의흐름, 케헹, 오랑, 안녕하수꽈, 망태, 달달, 완두콩, 피앙, 옵티머스, 호현, 롱롱, 발꼬랑, 니트, 수달, 레오, 새침, 익명인, 쿠크다스, 호호, 발가락, 눈아프다, 후시딘, 온규, 로즈, 휴지, 카페모카, 슈크림, 환상그대, 인연, 솜사탕, 달링, 승유, 수박, 복숭아, 베베규, 베라, 너부리, 집착, 콤퍼스, 예보, 후드티, 마리오, 리모콘, 마카롱, 하루, 조무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