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이야기) 여주 입덧때문에 밥먹는다고 백현도 안먹다가 여주가 도시락싸들고 갔는데 백현이 안 먹는다고 다시 가져가래서 빡쳐서 싸움
그렇게 내가 병원에서 백현이와 헤어진 이후로 백현이는 3일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 심지어 나는 투오프를 받아서 이틀 째 출근을 하지 않았고, 오늘 데이 출근을 하러 집을 나섰어. 이틀 동안 먹은 건 한끼 수준도 안될 양이었고 입덧은 계속 심해져서 원래 있던 위염까지 더 심해져버렸어.
몸에 힘이 있을리 만무했고 살은 더 빠졌는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대충 패딩을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고 집을 나섰어.
"으..."
춥다. 백현이를 못 본 3일 동안 날이 급속도로 추워졌나봐. 바람도 강하게 불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 백현이 외투를 하나 챙겼어. 그 때 얇게 입고 나갔었던 것 같은데...
ㅡ
병원에 출근해서 백현이 옷을 내 사물함에 쑤셔 넣었어. 언제 집에갈지 몰라도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질거니까...밖에 추우니까 외투 입고가라고, 내 사물함에 있으니까 퇴근할 때 말하라고 문자를 보내놓을까하다 그만뒀어. 아무래도 이번 다툼은 예전처럼 가벼운 문제가 아닌 것 같았으니까.
"김쌤~ 오랜만!"
반갑게 인사해주는 팀장선생님이랑 기분좋게 아침인사를 나누고, 부리나케 주사실로 들어가서 오늘 처방된 약을 뽑았어. 오랜만에 일하려니 더 찌뿌둥하고, 알코올냄새도 더 역했어.
"아니, 처방이..."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일하려니 짜증이 나는데 거기에 처방이 또 갸우뚱한 게 있는거야. 주사를 뽑다말고 컴퓨터 앞에 앉아 환자조회를 해보니 아니나다를까 백현이 환자야. 이 병동에 있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백현이 담당이니 어떻게보면 당연한 일이지.
아, 씨... 어색한데.
앞머리를 마구 헤집으며 전화기를 들었어. 백현이 콜번호를 누르고 한참 신호음이 울렸어. 정말 길게 울리고 나서야,
"GS 인턴 김종인 받았습니다."
"어?"
"말씀하세요."
백현이한테 콜 넣었는데 왜 종인이가 받지? 전화기의 화면을 확인해도 백현이 콜 번호가 맞아. 단순하게 제 생일로 번호를 설정해놓았던 변백현이었으니까.
"변백현쌤 콜 놓고 갔어요?"
"어, 아. 선생님."
종인이가 그제야 내 목소리를 눈치챈건지 딱딱한 목소리를 조금 풀었어.
"선배님 지금 오피들어가셔서...뭐 때문에 그러세요?"
"아, 오더미스때문에..."
"오더미스요? 잠시만요, 제가 올라갈게요."
그렇게 전화기를 내려놓고 난 고개를 갸우뚱했어. 수술, 수술...오늘 아침에 우리병동 수술 없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종인이가 스테이션 안으로 들어왔고 오더미스는 종인이 손에서 깔끔하게 수정됐어. 평소 처방에 실수를 잘 하지않는 변백현인데, 그것도 의문스러웠지.
"이틀동안 병동 많이 바빴어?"
"병동요? 네, 조금..."
"오피환자 별로 없었던데...이알이 터졌나?"
"아, 그...교수님이 논문..."
그랬구나. 백현이 담당교수님이 새 논문 시작하셨나.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한 뒤 종인이를 보냈지.
"앗, 회진."
바로 뒤돌아선 종인이는 회진준비를 해야되는지 종종걸음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나타난...
"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들."
어?
"며칠 째 한산해요, 병동이. 항상 요즘만 같으면 얼마나 좋아요?"
수술 들어갔다고 했는데? 백현이가 수술을 들어갔는데 백현이 교수님이 지금 회진을 돌러 오셨다는 건 백현이가 수술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야.
거기다 병동이 한산하다니. 한산한 병동에서 새벽 일곱시부터 수술을 한다고?
"저, 선생님...혹시 변백현쌤 보셨어요?"
결국 내가 옆자리 선생님한테 조심스레 백현이의 행적을 물었어.
"어, 아...변쌤? 못봤어요? 난 아까 아침에 봤는데, 드레싱 가는 거..."
"아침에 드레싱 갔다구요?"
아침 수술 들어갔다고 그랬었는데.
"어, 저기. 저기 오네."
더 물어보려는 내 말을 끊고 선생님은 엘레베이터 앞을 손가락으로 가르키셨고 거기엔 엉망진창인 백현이가 서있었어. 말 그대로 정말 엉망진창...
"죄송합니다, 교수님."
백현이는 급하게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병동 쪽으로 뛰었고 안경을 안 챙겨온 건지 주머니를 뒤적이다 짜증난다는 듯 머리를 헝클었어.
"어, 왔어? 인턴선생은 어디갔나?"
"교수님! 저, 여기...죄송합니다."
"얼른와요."
총체적 난국이야. 엉망인 백현이에 정신없는 종인이까지.
"저, 선배님 괜찮..."
"비에스티 시트 어디있어? 없던데."
"어, 저한테 있어요."
여전히 정신없는 종인이와 온 세상 피곤이란 피곤은 다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 백현이었어. 백현이는 글씨가 잘 안보이는지 종인이가 건넨 종이를 인상을 잔뜩 구겨가며 쳐다봤어.
"추가하라고 했잖아, 비에스티. 히스토리에서 당뇨 나왔다고..."
결국 제가 원하는 결과를 못 찾은 건지 백현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어.
종인이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고 백현이는 눈을 마구잡이로 문지르며 스테이션으로 걸어왔어.
"8호실에 허명희님 비에스티,"
하필이면 내가 8호실 담당이었고...
"아..."
백현이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마주한 뒤 멍하게 나를 바라봤어.
"...죄송해요, 추가할게요. 비에스티."
이내 고개를 돌려 제 할말만 한 뒤 도망치듯 내 앞에서 사라져버렸어. 몇번 체크할 건지도 오더를 주고 가야지 그냥 비에스티 추가요-던지고 가면 어쩌자는 건지.
"선생님, 변백현 선..."
뒤늦게야 백현이를 불렀지만 이미 교수님을 따라 저만치 뛰어가있었고 내 목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어.
그 이후로도 백현이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회진을 끝내고 교수님이랑 종인이는 스테이션 앞으로 지나가는데 백현이는 그 때도 보이질 않았어. 뒤로 돌아간 건지 뭔지...
그렇게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어. 백현이가 새로 추가한 비에스티도 올렸고, 투약도 별 탈 없이 끝내고.
"아, 김쌤. 과일 샐러드 좋아해요?"
일을 대강 끝내고 차팅을 한다고 앉아서 컴퓨터를 두드리는데, 옆에 있던 선생님이 물어왔어.
"과일샐러드요?"
"아까 환자분이 주고 가셨는데, 오늘 점심 돈까스 나온다고 다들 안 먹는다네. 나 혼자 먹긴 싫어서요."
"그래요? 저랑 먹어요, 쌤."
오예-하고 귀엽게 손바닥을 치는 나보다 2년이나 더 연차가 높은 선생님이었어. 입덧때문에 돈까스는 커녕 밥도 입에 못대고 있는데 과일은 조금 들어가는 편이라 잘 됐다 싶었지.
빨리하고 샐러드먹어요-. 옆에서 내 일까지 거들어주며 재촉아닌 재촉을 하는 쌤 덕에 전속력으로 차팅을 마쳤어. 그리고 간호사실에 쏙 들어가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와...무슨 샐러드를 이렇게 많이 줬대요?"
"맛있겠지! 빨리 꺼내와요."
"샐러드만 먹어도 배부르겠어요."
헤헤. 오늘 출근하고 처음 웃는 것 같았어. 그렇게 샐러드를 책상 위에 풀고 포크를 딱 들고 방울토마토를 집었는데, 밖에서 웬 큰소리가 들려와.
"아니 어디 타과 레지를 발로 까?! 넌 거기서 맞고 있어? 뒤로 빠지기라도 하지, 그걸 왜 맞고 있어. 이 자식아!"
이건 우리 병동 교수님 목소린데. 그 목소리에 서둘러 간호사실 문을 열고 나갔더니 잔뜩 성이 난 교수님이 보였어. 그리고 그 앞에는,
"어머, 변쌤 얼굴이..."
눈썹 위가 퉁퉁 부어있는 백현이도 눈에 들어왔어.
"아까 오에스 (정형외과) 수술 어시 들어가신다더니 또 지랄했나보다. 그 교수 완전 유명하잖아. 싸이코라고..."
안 그래도 못 먹고 일해서 헬쓱해진 얼굴에 벌겋게 생채기가 올라와있으니 눈을 꼭 감고싶은 심정이었어.
"내가 해결 볼 테니까, 들어가서 드레싱 받고있어."
"저, 교수님. 저 괜찮습..."
"내가 안 괜찮아. 또 맞은 데 없어?"
"예, 없습니다."
"인턴 어디갔어?"
인턴 어디갔냐는 물음에 종인이가 복도 코너에서 기다렸다는 듯 쏙 튀어나왔어. 숨어서 듣고있었나봐.
"교수님, 저 여기있습니다."
"얘 또 맞은 데 없어?"
"뺀치 던지신 다음에 팔꿈치로 선배님 눈 저기, 진짜 세게 치셨고요, 걸리적거린다고 발로 정강이 차고 어깨도 엄청 세게 밀치고 가셨어요. 아, 그리고 손가락으로 어깨도 밀었어요."
이 때다 싶어 일름보처럼 말을 줄줄 내뱉는 종인이는 제가 더 억울해보였어. 백현이가 그만 말하라는 듯 눈치를 줬지만 종인이는 그 눈빛을 아예 무시해버리고 급기야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어. 아니, 네가 왜...
"...또? 그 자식이 뭐라고 말했는지 토시하나 틀리지말고 다 얘기해."
"아, 김종인."
백현이가 그만두라는 듯 종인이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종인이는 퍽 억울했던 듯 내가 본 모습 중 가장 빠르게 말을 내뱉었어.
"GS 레지 똑부러진다고 소문났다길래 한 번 봤는데 별 거 없다고, 일년차도 너보단 잘하겠다고. 너네 교수가 그 모양이니 밑에도 이 모양이라고. 나가고 옆에 인턴 오라고...와서 어시 하라고..."
"인턴? OS (정형외과) 인턴? 그 새끼 빡대가리던데 걔를 어시를 시킨다고?"
"아니요, 저요..."
"...너?"
교수님이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정으로 머리를 짚었어.
"...그래, 너는 잘 했고?"
교수님의 질문에 종인이는 멋쩍게 웃기만했어.
"저 나가고 5초만에 쫓겨나던데요."
백현이가 웃기다는 듯 피식 입꼬리를 올렸어.
"캘리달랬는데 시져 넘겼대요."
하아...옆에서 듣고있던 차지쌤이 한숨을 푹 내쉬셨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이 자식아, 캘리랑 시져는 내 딸도 구별하겠다, 자식아."
교수님도 답답하다는 듯 종인이 어깨를 퍽퍽 치셨고 종인이는 슬쩍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어.
"근데 선배님한테는 박교수님이 말 제대로 안 해놓고 못알아듣는다고 차고 그랬어요, 교수니임..."
가서 똑같이 패주세요, 라고 말하는 듯한 종인이의 눈빛에 교수님은 씩씩거리며 팔을 걷어붙이셨어.
"내가 이 자식을 그냥...아, 김쌤 지금 있네요. 백현이 드레싱 좀 부탁해요."
아, 저희 지금 냉전 중인데요...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처치실로 들어갔어. 나를 따라 처치실로 들어와서 문을 닫은 백현이는 그제야 입을 열었어.
"드레싱 안 해도 돼. 교수님 가시면 나갈게."
"다리 차였다며. 앉아봐."
"괜찮다니까, 가서 일 봐. 내가 할게."
"너 나 피해?"
분주하게 드레싱세트를 챙기던 손을 멈추고 백현이를 똑바로 쳐다봤어. 아까부터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한테 이야기해야되는 것도 그냥 제가 가서 다 해버리고. 차트도 내가 없는 사이 책상에 몰래 두고 사라져버리고. 심지어 나한테 전할 말도 포스트잇에 써서 모니터에 붙이고 가 버리고...
내 물음에 대답없는 백현이 덕에 나는 다시 세트를 챙겨서 백현이 앞에 쭈그려 앉았어. 쭈그려앉으니 아랫배가 뭉근하게 당겨왔어. 베드에 걸터앉은 백현이 바지를 걷어올렸더니 피딱지가 엉겨붙은 정강이가 눈에 들어왔어. 오에스 교수님 성깔 한 번...
베타딘 묻힌 솜으로 몇 번 닦아내고 거즈를 넓게 펴서 상처를 덮고 반창고로 꼼꼼하게 붙였어. 평소같으면 따갑다고 살살하라고 난리를 쳤을 변백현인데, 오늘은 심하게 조용해서 더 어색함이 몰려왔지.
"저, 집에 언제와?"
"...모르겠어. 요즘 바빠서."
"많이 바빠?"
내 물음에 응, 하고 고개를 두어번 끄덕인 백현이는 먼저 가볼게.라는 말을 남기고 처치실을 그대로 나가버렸어.
나 오늘 검진날인데.
ㅡ
퇴근시간에 맞추어 검진시간을 잡아놓은 덕에 퇴근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외래층으로 내려갔어. 백현이는 정말 바쁜 건지 병동에도 잘 보이지 않았고, 진료도 같이 볼 기대조차 하지 않았어. 사실 다른 산모들처럼 혼자 진료보러가는 거에 서운해하거나 그런 타입도 아니었으니까 별 생각없이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산부인과쪽으로 걸어가는데,
"어..."
"왔어? 네시 맞지?"
진료실 앞 대기의자에 기대 앉아있는 백현이가 보였어. 예상치 못한 상황에 걸음을 살짝 멈췄다가 다시 천천히 걸었어. 바쁘다면서...
"바쁘다면서, 괜찮아?"
"여기 올 시간은 있어. 퇴근했어?"
"응? 응."
평소랑 비슷한 대화였지만 무언의 어색함이 흐르고 있었고 백현이는 입고있던 가운을 벗어서 손에 말아쥐었어. 저렇게 잡으면 구겨진다고 평소같으면 잔소리를 했을텐데 오늘은 보고도 못 본척. 입을 다물었어.
어색함에 발로 콕콕 땅바닥만 찌르고 있는데 반갑게도 외래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고 백현이와 같이 진료실로 들어갔지.
"산모니임-."
진료실로 들어오는 날 보며 저번에 내게 수첩을 건네준 간호사가 반가운 목소리로 날 불렀어. 여전히 산뜻한 모습이네, 하고 생각했어.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변백현 선생님아니에요?"
진료실 안의 산부인과 교수님은 나보다도 백현이에게 먼저 아는 척을 했고 백현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어.
"몸은 좀 괜찮구요? 오늘 못 올 줄 알았는데 용케 왔네요."
교수님의 말에 내가 고개를 돌려 백현이를 쳐다봤어. 이게 무슨 소리야, 영문을 모르는 건 백현이도 마찬가지였어.
"네?"
"어제 새벽에 산과 환자 들어와서 이알(응급실) 내려갔다가 봤어요, 17번 베드. 아니에요?"
"아...네, 괜찮습니다."
응급실에, 백현이에...정리하느라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었어. 그러니까 저 교수님 말은 어제 새벽 17번 베드에 몸이 안 좋던 백현이를 보았다는 거 아니야. 새벽에 응급실을 실려간 건지, 어쩌다 그런 건지. 묻고싶은 게 태산인데 그럴 수 없어서 주먹만 꼬옥 말아쥐었어.
"몸 생각하면서 일 해요. 레지던트만 하고 끝낼 거 아니니까. 그럼 아내 분 초음파 먼저 볼까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초음파 침대에 누워 천장만 쳐다봤어. 저번 진료 때는 백현이랑 눈마주치고 쑥쓰러워서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진료는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어.
차가워요-, 하는 따뜻한 교수님의 말을 시작으로 천장에 달린 모니터에 초음파 영상이 떴어.
"아기 보여요? 우리 GS 레지던트 실력 좀 볼까요?"
교수님 말에 백현이가 의자를 당겨서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어.
"잘 모르는데...여기가 머리, 여기는 심장..."
"어, 심장을 어떻게 알지? 산과 케이스 받아본 적 있어요?"
"아닙니다, 책에서 살짝 봤어요."
"책이면 학부 때? 그 때 본 책을 아직도 기억해요?"
"아니요, 최근에 봤습니다. 일주일 전 쯤..."
백현이의 말에 교수님이 허허 웃으셨어.
"의사들 특징인가봐요, 아내 임신하면 산과책 들여다보고 공부하는 거. 내가 못미더워서 그런가? 진료 더 잘 봐야겠는데요."
"아이, 아닙니다. 그냥 궁금한 게 많아서 찾아봤어요."
"그래요? 그러면 8주차 아기 크기도 알겠네요."
"네..."
백현이 목소리가 급격하게 작아지면서 입을 굳게 다물었어. 그 표정을 보고 나는 이미 알았지, 아기 크기가 많이 작구나.
"많이 작아요, 좀 큰 아기들은 4주차 때 딱 이만해요. 산모 입덧 시작했죠?"
"네, 많이 힘들어합니다."
"억지로 먹이지 말고요, 먹고 싶은 게 갑자기 생길거예요. 그러면 그걸 많이 먹으면 돼요. 뭐든 먹어야되니까, 알지요?"
네, 백현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어.
"공부했다니 알고 있겠지만, 지금 이 때가 위험이 제일 커요. 아기 작으면 더더욱. 유산기 심해지면 입원치료해야 될 수도 있으니까 항상 조심하구요."
백현이는 주먹을 꼭 말아쥐고 있었어. 나도 눈을 꼭 감았지. 밖에 나가면 또 한바탕 털리겠구나...
그렇게 진료를 끝내고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온 순간부터 백현이는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
"얘기 좀 하자, 백현아."
네가 왜 어제 새벽에 응급실에 있었는지, 왜 삼일 동안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됐는지, 나도 궁금한 게 많았으니까. 먼저 성큼성큼 걸어 비상계단으로 향했고 백현이는 조용히 내 뒤를 따라왔어.
"아까 그 말 뭐야? 응급실은 뭐고 네가 거기 왜 있었어?"
"먹자, 응? 먹고 싶은 거 없어? 좀 먹자, 제발..."
"아팠어? 그래서 삼일동안 집에 못 왔어?"
내 말에 백현인 입을 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어.
"말 안 할거야?"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꾹꾹 참으며 다시 물었어.
"그냥, 몸이 좀 안 좋았어."
"조금 안 좋은데 응급실까지 내려가?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데?"
"두통...조금 심해서."
"왜 나만 몰라? 병동 사람들 다 아는데 왜 나만 몰라야 해? 나 너랑 결혼한 거 아니야?"
"...진짜야."
"나 또 다른 사람 통해서 네 얘기 들어야 하니?"
몰아치듯 다그치는 내 말에 백현이는 벽에 몸을 기댄 채로 눈을 질끈 감았어.
"그게 아니라..."
질끈 감은 눈이 이상했어. 눈두덩이가 파르르 떨리는 게 어딘가...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니, 내 말에 고개까지 저으며 하는 모습은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았어.
"왜, 어디가 어떤데? 응? 백현아, 괜찮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현이는 주르륵 쓰러지듯 주저 앉으며 배를 움켜쥐었어.
"나, 당직실에...약, 약 좀..."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말하는 백현이 탓에 내 머리는 아주 새하얘졌어. 응급실에서 매일같이 했었던 환자사정은 기억도 나질 않고 내 앞에 주저앉아있는 변백현에 손만 파르르 떨며 백현이 주머니에서 수신기를 꺼냈어.
"종인, 종인아..."
백현이, 백현이가...하는 말에 종인이는 앞뒤 사정 묻지도 않고 바로 내가 설명한 계단으로 찾아왔어. 이럴 것을 예상했는지 바로 백현이를 들쳐업고 뛰어나가는 종인이를 따라 나도 응급실로 뛰었어. 나도 모르게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소매로 벅벅 닦으며 응급실에 도착하니 익숙하게 백현이를 받아드는 모습이 보였어. 어제도 이랬었구나, 그런거구나...
"왜 그래? 응? 종인아.. 백현이 왜 그래?"
"아... 위경련이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어제도 그랬어? 그래서 응급실 왔던 거야?"
"네, 어제는 위경련때문에...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오늘 아침에 백현이 수술갔다고 나한테 거짓말 한 거구나.
"내 이럴 줄 알았어. 약 다 맞고 가라니까 아침에 혼자 바늘 뽑고 도망가더니. 변백현 선생-, 정신 차려봐요."
진절머리난다는 얼굴로 달려온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는 백현이 어깨를 톡톡 두드렸어. 백현이는 왼 팔을 쭈욱 뻗으며 인상을 더 구겼어.
"빨리 약이나 꽂아달라고? 또 절반 맞고 도망가려구요?"
"아으, 진짜..."
"똑바로 몸 펴고 누워요. 변백현 선생 불쌍한 위장 소리 좀 들어봅시다."
빨리 빨리 해 주지, 백현이랑 동기사이인지 장난기 섞인 말투가 영 맘에 안 들었어. 다행히 백현이 왼 편에서는 간호사가 혈관을 찾아서 바늘을 찔러넣고 있었고 레지던트는 청진기로 몇 번 소리를 듣더니 귀에서 청진기를 쏙 뺐어.
"보호자, 인턴쌤이에요?"
"아, 아니요. 여기.. 아내 분이요."
"아, 결혼식 때 뵀었는데. 아이구. 울지 마시구요. 백현이 안 죽어요."
"갑자기, 왜...원래 위경련 한 번도 난 적 없었거든요..."
"삼일 동안 음식을 안 먹었던데요? 뭐, 내시경 해봐야 알겠지만. 어제 약 처방하면서 꼭 밥 먹고 먹으라고 했는데 말을 들었겠어요, 얘가."
"아..."
"그거 지인-짜 독한 약인데. 알 만큼 아는 애라 믿고 보냈더니."
당직실에서 가져다달라고 했던 약이 그 약인가, 마음이 무거워졌어. 백현이가 밥을 안 먹은 데에는 내가 한 몫 했으니까.
"어제 새벽에도 포도당이랑 달아놨는데 두시간도 안 맞고 도망갔더라고요. 잠도 삼일동안 못 잔 것 같길래 재워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백현이는 처방된 약이 들어갔는지 한결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어.
"이따 내시경 찍어보고, 상태 본 뒤에 입원 결정해야될 것 같아요. 위경련 습관적으로 나면 궤양되거든요."
"시켜주세요, 입원."
좀 가둬버리게.
ㅡ
여러분 ~~~ 쏴리요~~~~~ㅎㅎ.....
두달만인가요? 전 글이 두달 전이라고 뜨네요..^^ 면목도 없고 할 말도 없어요..죄송해요(ㅠㅠ)
오랜만에 오는 만큼 더 재밌게 가져와야되는데 저도 너무 현실세계에 치이다보니 손이 굳었나봐용.. 뭔가 지루하고 읽기싫구..그래요ㅠㅠ
올릴까말까 하다가 언제오냐고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냥 올려봅니당'ㅅ' 80편이라니 곧 100편 찍겠어요 물론 그 100편까지 가는데 제 연재텀으로는 한 20년 걸릴 것 같구요~ 저 수간호사 되겠네요 100편 즈음이면 .
무튼 여러분 항상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ㅠㅠ) 이런 노잼글 읽어주셔서 또 감사해요 다들 시험기간이신가요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