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갑니다"
재희는 책상위에 놓인 박스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무실은 고요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에서 떠나야 한다는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첫 출근을 했을때 마음속에는 반짝이는꿈이 가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꿈은 천천히 닳아 없어졌다.
매일 반복되는 회의, 상사의 까칠한 말투 그리고 자신을 점점 집어삼키는 무기력함. 퇴사를 결심한 그날,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하며 속삭였다.
“여기까지야”
박스를 든 채로 문을 나서자, 후배 하나가 쫓아왔다. "선배, 진짜 가시는거예요?"
재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후배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놀라움이 섞여있었다. 그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응, 이제 다른 길로 가야 할 것 같아"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언젠가 선배처럼 떠날수 있을까요?"
재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또한 한때 그렇게 물었었다. '내가 정말 여길 떠날 수 있을까?' 그러나 답은 오직 자신만이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박스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이직할 회사는 아직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불안보다 설렘이 더 컸다.
"이제 나 자신을 위한 일을 시작해 보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바깥 공기는 상쾌했고 거리는 여전히 북적였다. 재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퇴사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는 손에 든 박스를 힘껏 끌어안으며 자신에게 말했다.
"재희, 정말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