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습격 by설탕이흥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다름 아닌 전정국 너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각자의 눈에 서로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바빴다.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을, 나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는 코를, 내 이름을 불러주던 예쁜 입술을... 이 모든 걸 내 눈에 담아내고 싶었다. 일 분이라도 아니 단 일 초라도 너를 오롯히 내 마음에 너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서로를 바라보다 정적을 깬 건 역시 전정국 이었다.
"김여주,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아무런 잘못이 없는 너는 나에게 사과를 한다. 여기서 사과할 사람은 네가 아닌 무작정 너를 버리고 도망친 내가 사과를 해야 맞는 건데... 너는 뭐가 미안해서 나에게 사과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내가 잘못했는데..."
"아니, 5년 전에도 5년이 흐른 지금에도 정작 너 힘들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 혼자 아프고 힘들게 해서 그걸 늦게 알아줘서 미안해."
결국 바보같이 착한 전정국은 5년 전 일도 지금도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은 채 나에게 사과를 한다. 네가 그렇게 사과하면 내가 더 이상 도망칠 수가 없잖아. 자꾸 그렇게 미안해 하면 내가 도망칠 길이 네 미안함에 막혀버려 나는 너에게 돌아가야 하잖아. 네가 아픈 게 싫어서 도망을 택한 건데 원점으로 돌아와 버리면... 이 모든 일이 괜찮아 질까?
정국아, 나 아주 조금만 진짜 조금만 욕심 부려도 될까? 나 이제는 너랑 다시 얘기하고 웃고 울고 싶어. 내 모든 감정들을 너와 공유하고 싶어. 내가 네 손 잡으면 너는, 나는, 우리는 같이 행복해질수 있을까?
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을 먹었고 나는 그동안 나를 휘감고 있던 5년 전 일부터 지금까지 있던 모든 일들을 말했다. 말하는 도중에 틈틈히 전정국 얼굴을 봤는데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는...!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어? 아니면 내가 싫었어? 적어도 그런 일 있었으면 나한테 말이라도 해줬어야지"
"... 미안해, 너 못 미더웠던 것도 아니고 네가 싫은 건 더 더욱 아니야. 아무 잘못 없는 너를 미워하는 내 모습이 못나보여서 그게 싫었던 거야."
우물쭈물 거리며 얘기를 하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를 꽉 안아준다. 정말 빈틈없이 안아준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를 느낄 정도로 너는 나를 빈틈없이 안아주며 나의 등을 토닥여준다. 그게 왜 이리 좋은 건지. 이 상황에서도 주책없는 나는 너의 토닥임이 좋아서 웃고 말았다.
"뭘 잘했다고 웃어. 근데 또 웃으니깐 예쁘네. 됐어, 지난 일 우리 들추지 말자. 너 힘들잖아 더 얘기하지말자. 우리 앞으로 좋은 것만 보고 듣고 그러면서 지내자. 지금처럼 예쁘게 서로 보면서 웃자."
네가 나에게 건넨 말들이 너무 따뜻해서... 가슴 시리도록 따뜻해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너를 더 꼭 끌어 안은 채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조용하던 교실이 나와 전정국이 들어오는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건 잘 알지도 못했던 애들이 나의 편이라도 되는 마냥 이다슬을 깍아 내리기 시작했다. 지갑사건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부터 나는 네가 그런 애가 아니라는 걸 믿었다 라는 것까지 나를 잘 아는 사람처럼... 한순간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이 아이들이 너무 무서웠다. 언제 내가 이 아이들의 타겟이 되어 깍아 내려질지 모르니깐. 나는 입을 다문 채 자리에 앉아 민윤기에게 귓속말을 했다.
"뭐야, 왜 이래? 우리 반 애들 무서워."
"아까 그 일때문에 이다슬 교무실에서 학생부로 간 것 때문이겠지, 뭐."
"헐, 왜 학생부까지 가? 나도 반성문 쓰나? 아이씨, 그건 싫은데"
"멍청아, 너는 피해자 걔는 가해자"
"어? 아니, 왜? 설마 나 계단에서 구른 것 때문에?"
"응, 나 동영상 찍었거든. 거긴 씨씨티비도 없고 무슨 일 생길지 몰라서. 담임이 너 깨면 학생부로 오라고 했어."
"아, 고마워. 나 간다. 누나가 이다슬 쓸어버리고 온다."
"나도 갈 건데? 증인이랑 증거자료 내려고"
"아... 그래 가자."
"근데 전정국은 나 싫어하냐?"
"아니, 아무런 감정 없을 걸? 왜?"
"아까부터 나 계속 쳐다보길래. 눈빛으로 살인한다는 말이 확 와닿는 순간이었다."
아까까진 기분 좋았는데 왜저러지? 좀 있다가 갔다 와서 물어봐야겠다. 민윤기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건지 교실 밖을 나오면서 학생부로 들어가기 전까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했다. 얘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나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질문을 하는데 도와줬으니깐 다 대답해줬다.
"야, 동영상 보면 이다슬이 너 진짜 밀친 것 같던데 진짜야?"
"아니, 나 혼자 쇼 한 거야. 너한테 했던 수법 나한테 쓰려고 하길래. 발전 좀 하라는 의미에서 내가 먼저 선수 쳤어"
"와, 너도 보통 또라이는 아니다."
"그거 칭찬이지? 고맙다."
"학주한테 뭐라고 할 건데?"
"글쎄? 최고의 또라이가 뭔지 보여주려고"
민윤기는 못말린다듯이 나를 쳐다봤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여유롭게 웃어보이며 학생부실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울먹이며 한껏 억울해 보이는 표정을 지은 이다슬과 꽤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학주가 보였다. 이 모든 상황이 재미있었다. 다슬아,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나는 내가 지는 게임 안 한다고 했잖아. 그거 오늘 똑똑히 보여주려고. 너처럼 발전 없고 멍청한 여우는 나같은 또라이한테 걸리기 쉽거든. 네가 이제 전정국 못 건들게 내가 너 여기서 쓸어 버릴 거니깐 너무 안심하지는 말고 오늘 여기서 다 끝내려고. 학주 어깨 너머로 나를 째려보는 이다슬을 보며 싱긋 웃어주며 입으로 넌 끝났어 라고 말하니 잔뜩 흥분한 이다슬을 나에게 달려들었다. 참 멍청하다 이럴수록 너한테 더 불리해진다라는 걸 너는 왜 모를까. 놀란 듯 나를 쳐다보는 민윤기에게 괜찮단듯이 웃어보이며 너는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 했다. 민윤기, 네가 겪어던 개같은 상황 내가 이다슬한테 똑같이 갚아줄게.
"다, 다슬아... 왜 그래? 내가 미안해. 응? 이러지마"
"뭘 이러지마, 너 진짜 똑바로 말해. 내가 밀친 게 아니라 너 혼자 쇼한거라고 똑바로 말하라고 미친년아"
"으응, 알겠어. 선생님... 저 혼자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다슬이는 아무 잘못 없어요..."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아니야, 여주야?"
"네... 진짜 아니에요."
"그럼, 학교폭력이라고 할 수가 없어. 다슬이 잘못은 없게 되는 거고. 여주야,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다슬이가 너 밀친 거 아니야?"
"제가 봤는데요, 이다슬이 김여주 밀치는 거 제가 다 봤는데"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옆에서 웃고 있던 민윤기가 한 발 빠르게 입을 열어 대답한다. 역시 민윤기 눈치 하나는 참 빨라서 마음에 든다. 이 타이밍에 너의 증언의 동영상이 나타나줘야 이다슬 엿맥이는 게 더 재밌어지잖아. 동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선생님은 한참을 고민하시는 듯 하시더니 입을 떼시면서 학교 폭력으로 넘겨야 한다고 하셨다. 이다슬을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울며 불며 소리쳤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나와 민윤기는 먼저 학생부실을 나왔다.
"민윤기, 타이밍 굿 멋있었다."
"알아, 인마. 고맙다"
"알아, 인마."
나와 민윤기는 실없이 웃다가 이미 수업이 다 끝나 조용해진 교실로 걸어 들어가 가방을 챙겼다.
"야, 김여주 고맙다. 그리고 잘해봐라"
"어? 뭐를? 야! 그냥 가는 게 어딨냐!"
자기 혼자 피식 웃더니 가버린 민윤기를 멍하니 보다가 내 어깨를 감싸는 전정국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전정국을 올려다 봤다.
"뭐야, 안 갔네. 착하다. 우리 정국이"
"김여주"
"왜"
"여주야"
"응, 왜"
"여주야"
"응"
"우리 사귀자"
"응... 응? 뭐라고 했어?"
"우리 남사친, 여사친 이런 거 말고 남자친구, 여자친구 하자고. 나는 너랑 손 잡고 같이 걷고 싶고 안고 싶고 그렇게 내 감정들을 숨김없이 너에게 들어내고 싶어"
나만 너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나 혼자만 너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서로가 좋아하는 마음이 같아서 너무 다행이다. 멀어질까 들킬까 봐 늘 조마조마 가슴 졸이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다. 이제 너에 대한 나의 진심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정국아"
"응, 왜 여주야"
"좋아해"
"..."
"아주 많이"
네 여러분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이 글을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싶어 찾아 오게 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님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이 글은 1월 안으로 꼭 마무리 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