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녀석을 보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겨울 보충 수업이 끝나고 더 이상 학교에 갈 일도 없게 되었다.
내 기분은 점점 더 이상한 것에 휩싸여가는 것 같다.
엄마는 친구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고는
녀석과 더 이상 가까히 하지 않는 나를 보시며 안심하시는 듯 하다.
하지만 난 전혀 안심되지 않는다.
"얼른 가. 늦어."
"...다녀오겠습니다."
".....너 혹시..."
"...?"
나를 붙잡으시는 말이 무언갈 망설이고 있다.
사실 딱히 무엇을 망설이고 계신 건지, 지금은 큰 흥미가 없지만서도
말 끝이 흐려지고 난 뒤의 여운이 나를 기다리게 만들고 있다.
"..아니다. 학교 가."
"......"
난 말없이 고갤 돌린다.
뒤에서 엄마가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실지 대충 눈에 보이지만
목이 경직되어 있는 듯, 좀처럼 부드럽게 돌아가질 않는다.
겨울 방학식 때보다 더 차가운 공기가 내 얼굴을 스친다.
어느 새 손끝이 차가워졌다.
하늘에 대고 입김을 부니 하얀 것이 피어오른다.
"보충 안 나온 놈들 일단 남고,
요 며칠만 지나면 봄 방학이다.
누구한텐 즐거운 기간이고,
누구에겐 고3을 맞이하느라 긴장되는 기간이겠지."
"......"
내가 이제 고3이란다.
사실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지만서도 막상 고3이 된다고 하니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덮여져 버린다.
"......"
선생님 말씀을 경청하는 중인지,
녀석의 등은 꼿꼿히 펴져서 자신의 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순간 나를 뒤돌아보며 그 재수없는 웃음을 날리던 녀석이 아른인다.
난 고갤 살짝 젓는다.
내가 미쳤나보다.
그리고 우린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퍽 사이좋게 지내보이던 우리가 말도 한 번 섞지 않은 채로 있으니
오지랖이 넓은 친구들은 내게 와서 추긍하기도 했다.
싸운 거냐는 물음에, 녀석에게 물어보라고 했더니
녀석도 내게 물어보라고 했다한다.
일을 이렇게 벌여놓고 수습은 내게 맡기는 걸까.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걸까.
........
아니다.
내가 녀석의 관심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괜한 오버하지 말자.
"부반장."
"......"
"부반장."
"....아."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는지 몰랐다.
부반장이 불릴 일은 거의 없으니까.
"이거 반장한테 전해줘야 하는데 이미 가고 없네.
네가 대신 전해줘라."
"에..??"
"빨리."
"아, 저......!"
선생님은 내게 종이 쪼가리를 건네주시고는 바쁘신지 자리를 뜨셨다.
일단은 받기는 했는데 다시 돌려드릴까 싶다,
그치만 왜 못 전해주겠느냐고 여쭤보실까봐 입술을 앙 다문다.
오랜만에 가는 그 길은 어쩐지 두렵다기 보다는...
"누구세요."
"...전할 거... 있어서."
"......"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은 건가.
으리으리한 녀석의 아파트는 입주자 외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서,
투명한 유리문 앞에 붙어있는 호출키로 초인종을 눌러야한다.
녀석과 들어올 적에는 이렇게 벽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일부러 무시하는 걸까.
잠시 멍하게 서있다 결국 초인종을 두 번 누르지 못하고 돌아선다.
몸을 돌려서 두어발자국이나 갔을까.
뒤에서 조금은 가쁜 호흡으로 묻는다.
"왜."
"......"
"......"
"...아, 이거.
담임 선생님이 주라고 하셔서."
"......"
"......"
"앞으로 찾아오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