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오직 당신만의.
W. JPD
01
"이제 수능 일주일 남았네, 우린 정시로 살아남는 거 알지? 다들 열심히 하고 있으리라 믿고, 이상."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고, 뭐를 열심히 하라는 건지, 어떻게 살아남으라는 건지. 뭐 하나 이해되는 게 없는 교실이었다. 아이들은 수능 한 달 전부터 죽어나갔다.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먹어도 소화를 못 시켜 게워내기 일쑤였다. 보이지 않는 압박이 끊임없이 우리를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압박은 가장 가까이에서 오고 있었다.
"여태까지 잘해왔잖아, 우리 딸."
"아빠는 너를 믿는다, 잘할 수 있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나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한 말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난 그 말들이 너무 괴로웠다. 지난 몇 년간, 난 이 집의 자랑이자 미래였고, 암묵적으로 앞으로도 그래야 했다. 사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가 집안의 자랑이었다.
"... 저기, 학생."
공부를 제외하곤 특별한 게 하나도 없던 나였다. 그저 평범하게, 아니 조금은 독하게 공부만 했던 학생이었다. 다른 건 관심이 없었다, 사실은 관심을 주지 않으려 죽도록 노력했다. 그 어떤 것도 내 뇌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오로지 공부, 그것만이 꽤나 단단하게 잠긴 문을 열 수 있도록, 세뇌에 세뇌를 더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그랬던 나인데, 깜깜한 하굣길에 한 남자를 만났다. 처음엔 납치를 당하는 건가 싶었다.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 남자가 조금은 힘을 준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더 무서웠다. 마스크 때문에 눈을 제외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어서 더 그랬다. 몽타주를 어떻게 그릴지 생각했다.
"누구세요, 이거 놓으세요."
꽤나 침착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때 당시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남자가 손을 놓았다, 하라는 대로 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그 남자를 올려다보니 나와 몇 초 눈을 마주하다 이내 마스크를 벗었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내가 아는 얼굴인 것 같았다. 정확하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분명했다.
"안 놀라는 거 보니까 잘 모르나 보네, 꽤 유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아니어도 여러 사람이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 연예인? 이 밤중에 돌아다니는 게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연예인이 아니라 범죄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연쇄살인범 같은. 어쨌든 나는 그 순간 그렇게 한가하게 서 있을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을 내린 후에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민윤기라고 검색해보고, 내가 하는 일이 뭔지 알게 되면 여기로 연락해. 연락은 선택 아니고 필수, 의무야."
내 손에 작은 종이, 노란 포스트잇을 올려주곤 친절히 손가락들을 말아주기까지 하는 행동에 눈만 뚫어져라 쳐다보자 자신이 할 일은 끝난 건지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마스크를 쓰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손을 펴보니, 종이에는 핸드폰 번호가 날려 쓴 글씨체로 적혀있었다. 급했구나, 그 남자.
-
집에 도착해 씻고 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침대가 아닌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폈다. 펜을 들곤 스탠드를 켜는데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그 남자가 준 포스트잇이었다. 옆에 놓여있던 스마트폰을 들어 검색창을 켰다. 민윤기, 아마 맞을 것이다.
"... 아, 방탄..."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다 싶었다, 그건 내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유명한 가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리 공부 이외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해도 유명한 그룹들 이름까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충 어느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그룹인지 알았다. 그런데 이런 남자가 나한테 왜, 사칭인 건가, 아 얼굴이 똑같네.
"연락, 진짜 해도 되나."
고민을 조금 했었던 것 같다. 굳이 내가 왜, 이런 생각도 있었고 공부에 방해되면 어떡하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 게 더 방해였기 때문에 그냥 문자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검색해봤다는 한마디를 문자로 보내고 공부를 시작하려는데 알림음이 들렸다. 답장 되게 빠르네.
"... 전화를, 지금 이 야밤에..."
전화 괜찮냐는 답장에 망설이고 있자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멋대로 구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급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네, 여보세요."
"내가 지금 좀 급해서 실례 좀 할게, 밤에 미안해."
"아니에요, 그냥 빨리 말씀하세요."
"뮤즈, 들어봤어?"
"네, 영감 주는 사람, 그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오글거려서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
"네가 그것 좀 해줬으면 좋겠어, 널 보면 뭔가가 계속 떠올라."
그게 그 남자와 나의 시작이었다. 물론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 죄송하지만 그 말은, 저를 예전부터 봐왔다는 말로 들리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