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오직 당신만의.
W. JPD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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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수능은 끝났지만 그래도 졸업 전까진 학교를 나가야 했기 때문에. 뭐, 어차피 계속 놀겠지만 그래도 수업일수라나...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낼 게 뻔해서 추천받은 노래를 다 들을 생각으로 이어폰을 챙겨 등교했다. 교실에 들어가니 평소 그 무겁던 분위기도 어느새 사라지고 공기마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결과가 어떻든 아이들은 자유를 느꼈다. 해방감, 그건 아마 12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우리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았다.
"야야, 뭐 볼까? 드라마, 영화?"
"뮤비 보자, 컴백했다니까!"
그동안 눌러왔던 모든 욕구를 풀어버리겠다는 듯 시끄러운 아이들을 뒤로하고 이어폰을 연결했다, 앨범의 첫 번째 곡부터 쭉 들어보기로 결정을 내리곤 노래를 재생했다. 제목이 화양연화였는데 랩만 나오는 노래였다, 여러 명이 아닌 한 사람만 부르는 것 같길래 작곡가와 작사가를 확인했는데.
"SUGA... 슈가?"
그 남자였다. 래퍼, 게다가 작사에 작곡까지. 이래서 뮤즈 해달라고 했었던 거였네, 난 왜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 뮤즈가 필요했나 궁금했는데. 듣다 보니 느낀 거지만 되게 거친 느낌이 많다, 마치 세상 안 좋은 일은 다 겪어본 사람처럼. 거친데 안쓰럽고, 뭔가 가사만 보면 학생 하나가 내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안아달라는 것처럼.
그런데 그 아이는 스스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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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에 대해 비판하는 노래들도, 추억하는 노래들도, 위로하고 격려하는 노래들도 있었다. 하지만 제일 많았던 건 뭔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이었다. 계속 너라고 지칭하길래 헤어진 여자를 그리워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비유해서라도 표현하고 싶은 그리운 것, 그게 뭔지 궁금했지만 고민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리운 것을 달랐고, 돌아가고 싶은 시점도 달랐기에.
"벌써 가?"
"응, 우리 점심도 안 먹고 간다고 아까 조례 때 들었잖아! 이제 계속 이럴 거라던데."
"아, 진짜 이럴 거면 학교 왜 나오냐고... 왜 부르는데..."
"그것도 아까 설명했는데..."
"아, 됐고. 일찍 끝났는데 놀러 가자!"
"오늘은 같이 놀 거지?"
"아... 미안, 나 오늘 약속."
"약속?"
"가족들이랑."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조심히 가."
고개를 끄덕이곤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왔다. 학교도 일찍 끝나서 시간도 많은데 지하철 타지 말고 걸어갈까... 걸어가면 한 30분 정도 걸리겠지, 운동한다 생각하고 걸어가야겠다. 걷다 보면 추운 것도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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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찍 끝나려나.'
'끝나면 연락해, 뭐 하는지 궁금해.'
아이들 틈에 섞여 걷기 시작하는데 때마침 그 남자에게 문자가 와서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생각 없이 눌러놓고 놀란 건 나였지만 끊기에는 이미 통화가 시작된 뒤여서 늦었다. 결국은 그냥 가만히 상대방이 말하길 기다리는 게 다였다.
"진짜 일찍 끝났나 보네, 이렇게 바로 연락이 올 줄은 몰랐는데."
"앞으로 계속 이럴 거래요, 수능 끝나서 그런가."
"노래는 들어봤고?"
"네, 다는 아니지만."
"어때?"
"가사가 예뻐요."
느낀 걸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 너무 많은 게 보이고, 너무 많은 게 느껴졌는데 그걸 입으로 설명할 자신도, 마음도 없었다. 그 노래들이 누군가에게 정말 큰 의미이고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나는 그 누군가의 앞에서 내 감정들을 표현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 노래에 상처가 담기고, 고민이 담겼다면, 그랬다면 나는 정말 말할 수가 없다. 내 한마디에 몇 번을 무너져내릴 그 누군가를 알 것 같아서 말이다.
"그게 다야?"
"그냥 전체적으로 다 좋아요, 노래도 가사도. 아, 랩도."
"좀 사심 담아서 물어봐도 되나."
"안 된다고 해도 물을 거잖아요."
"그렇지."
"물어보세요."
"나는 어땠어."
그러게요, 그쪽은 어땠지. 특히나 잘 들리던 목소리, 나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잘 들리던 목소리가 있었다. 나중에 깨달았던 건, 그 목소리가 그 남자였다는 것. 그 목소리는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강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듯했다. 가사나 억양, 그런 것들이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앞뒤 안 가리고 다 때려 부술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자신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갈망, 그런 것들이 느껴질 뿐이었다. 단지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툰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멋있었다, 그 남자는.
"멋있었어요."
"..."
"이건 정말 진심으로요."
"그럼 여태까지는 진심 아니었고?"
"아뇨, 그건 아닌데. 그냥, 멋있다는 말을 꼭 해줘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잠시 이어지는 침묵, 나는 계속 걷고 있었고 그 남자는 계속 말을 하지 않았다. 통화는 끊기지 않은 채로 그저 그렇게 서로의 틈을 채워갔던 것 같다. 유독 하늘이 맑았고, 구름이 아기자기하게 떠다녔다. 해는 눈이 따가워서 쳐다보지도 못했고, 아스팔트 도로 위는 아직 한가했다. 어느새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고 나는 나의 길로 향했다. 큰 건물들 사이를 지날 때,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여전히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 유독 잘 들리던 그 목소리였다.
"나도 진심이야."
암호닉
땅위 / 윤기윤기 / 굥기 / 봄 / 굥기윤기 / 왼쪽 /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