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아해의 시간
W.전라도사투리
배를 띄워 다가오면 알겠지 내가 섬이 아닌 빙산인걸
-에픽하이 '춥다'中
12.
뒤돌아 생각해보면 내가 항상 불행햇던 것은 아니였다. 나름 가족끼리의 여행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지 사진속의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 성종이만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모르겠다. 그 때 당시. 진실을 알기 전 나는. 왜 웃고 있지 않았었는지. 모든 사진 속에 나는 미간을 잔뜩 구긴채 힘껏 카메라 렌즈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인지. 모든것이 다 생각나지만 그 이유만이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하기도 하지만.
김성규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어릴적 앨범을 보고 있었다. 김성규의 머리는 나의 어깨에 안착해 있었고 나는 그를 배려해 몸을 조금 낮춰 그가 편하게 기댈 수 있게 해 주었다. 아까의 입맞춤 후 이루어낸 성가였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 아니 어쩌면 나의 진심. 그 진심이 김성규에게 전해진 것인지.
"어릴적에 성종이랑 이렇게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오지 않을 부모님을 기다렸어."
"..."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아침에 와주시는 가정부 아주머니의 손길에 깨고 그랬거든."
"..."
"...이 집. 나에게는 편안한 보금자리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움으로 가득한 집이야."
김성규는 아무런 말 없이 손을 허리에 둘러 조금 더 나에게 기대었다. 서로의 체온으로 아무런 온기 없는 이 집을 가득히 채워주고 있었다. 바보처럼 울던 날. 미련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던 날. 무서움에 떨었던 날. 혼자라고만 생각해 더이상 앞으로 나가기 꺼려했던 날.
"근데. 네가 있으니까 하나도 안 외로워."
이제는 영원히 없었으면 했다.
*
"...가자. 데려다 줄게. 지금 출발해야 안 늦어."
"...넌?"
"너 데려다 주고 다시 와야지."
"..."
"...가자."
"...안 가."
"..."
"나 안 갈거야."
분명 자신의 동생들이 걱정되서라도 가야할 김성규였다. 하지만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것인지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앉아 있었다. 김성규가 안 간다는 것은 나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였지만 지금까지 김성규의 말을 생각해본다면 집에 그를 안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어린 그의 동생들이 집에서 김성규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동생들은."
"어머니 계셔."
그의 말에 그냥 그의 말에 져주는 척 시늉을 하고는 그의 옆에 앉았다. 나로서 손해는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가 옆에 있음으로 인해서 안정감을 되찾는 기분이니까 말이다.
"...내가 지금 가면 너 또 혼자 아파할 거 같아."
"내가 왜 아파할 거 같은데?"
"몰라. 그냥 그래. 넌. 바로 옆에 있는데도 언젠가 그냥 사라질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여."
그건 내가 김성규에게 하고싶은 말이였다.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지만 언젠가 내 곁에서 사라질 것만 같은 그런 존재였으니까. 마치 허공에 뿌려지다 곧 사라지는 연기처럼 말이다.
"심장은 칼로 난도질 당한게 훤히 다 보이는데 겉으로는 멀쩡한 척 하는 거 다 보였거든."
"...무슨 소리야?"
"내가 너에게 했던 말."
"..."
"그 뜻이였어."
또 다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아파보였던가. 김성규의 말에 그저 작은 웃음을 내뱉었다.
"고마워."
"..."
"네가 내 아픔을 봐줘서. 나 지금 숨쉬는 것 같거든."
어느새인가 깊게 스며들어왔다. 그것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김성규가 나에게 스며들어오는 게 맞다는 듯 당연한 일이라는 듯 그렇게 스며들어왔다.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인듯 김성규는 나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였고 당연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김성규가 살며시 유한웃음을 지어보인다. 그의 웃음에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감싸 천천히 입을 맞대었다. 스르륵 감기는 그의 눈이 예쁘다. 살며시 입을 맞춘 후 그를 내려보니 김성규는 피하지 않았고 나의 눈동자와 자신의 눈동자를 맞춰주었다.
"갖고싶어."
"..."
"김성규. 너를 갖고싶어."
"..."
"허락해줄래?"
그의 귓가에 속삭이니 김성규는 간지러운 것인지 어깨를 살짝 들썩였고 천천히 나의 목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나의 귓가에 자신의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김성규의 나른하면서도 듣기좋은 목소리가 귓가를 자극하고 흘러들어왔다.
"...나도 남우현을 갖고싶어."
살며시 그에게 웃어주고는 자연스럽게 김성규를 안아들었다. 김성규는 나를 조금 더 힘주어 안았고 가슴에 기대었다. 천천히 걸음을 이층으로 옮겨 오랫동안 빈 공간이였던 나의 방으로 향하여 침대에 천천히 그를 눕혀주었다. 그를 눕히자 오랫동안 비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먼지가 작게 일렁거렸다.
"안 무섭겠어?"
"너야말로."
"나는 하나도 안 무서워."
"나도. 널 믿으니까 하나도 안 무서워."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그의 입술을 느꼈다. 조금 거칠지만 달콤한 것을 먹는 기분. 서로의 숨결이 닿았고. 그 숨결이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우리가 닿았다.
*
색색 숨을 뱉으며 잠들어있는 김성규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의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니 부드러운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평소 머릿결이 좋아보였는데.
"정말좋네."
사르륵 손에서 빠져나가는 그의 머릿결이 너무나 좋았다. 한참을 그의 자는 모습만을 바라보다가 드르륵 거리는 핸드폰 울림소리에 손을 뻗어 더듬거리는 손길로 핸드폰을 집었다. 그러고는 곧 자연스럽게 인상이찌푸려지고 말았다. 수신의 주인공은 이성종이였다. 그가 나에게 전화할 이유따위는 없었다.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그냥 예의적인 차원에서였으며 번호를 알고난 후에도 공식적인 연락은 한 번도 안했던 상태였다. 내가 먼저 이성종에게 연락할 일도 그가 내게 연락할 일도 말이다. 망설여졌다. 받을까, 말까. 구부린 손가락은 그저 핸드폰 화면 위에서 정지되어 있었다.
"받아."
"...안 잤어?"
"방금 깬거야. 망설이지말고 받아봐."
대화내용을 전환해보려 했지만 김성규는 넘어오지 않았고 나는 그의 말에 더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자 세차게 울리던 핸드폰은 어느새인가 뚝 끊켜버렸다. 그런 핸드폰을 멍하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핸드폰에 김성규는 어서 받아보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받아. 계속 전화하는 거 보니까 급한거 같은데. 너 이거 안받으면 후회할거 같아."
이번에는 망설임에 구부러진 손가락을 움직여 통화바를 밀어내었다. 망설임 끝에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 되니 상대편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단지 조금 시끄러운 소음만이 들릴 뿐이였다. 잘못전화 한건가 싶어 통화를 끊으려고하니 숨을 헉헉되는 여자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음성에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김성규는 갑자기 몸을 떨어오는 나를 불안하게 바라봤다. 천천히 그의 시선에 맞추니 덜컥 밀려오는 무서움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성종이... 손목 그었데..."
*
사고가 멈추었다. 그런 나를 돌아오게 한 것은 김성규였다. 내 책임인 것만 같았다. 그를 외면한 나의 책임. 그가 아버지처럼 떠나버릴까봐 무서웠다. 미세하지만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파했었다. 그 또한 나처럼. 지독한 외로움에 묻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외면하려고 했었다. 아니, 그를 외면했다. 나의 아픔만 커다랗게 자리잡은 줄 알았다. 나의 아픔 때문에 남의 아픔따위는 보지 않으려고 했었다. 이기적인 인간. 살인마.
"아무일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말자."
그 순간은 김성규의 목소리 조차도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무서워. 걔가 너무 미운데..."
"..."
"걔가 너무 싫어... 나는..."
"...바보가 어디서 거짓말이야."
"..."
"동생 좋아하잖아. 너."
"..."
"인정하기 싫어도 넌 네동생 안 밉잖아. 그건 너도 알고있으면서 왜그래. 부정하면 너만 힘들어."
미움, 원망, 증오, 용서. 그랬었다. 이성종이 밉지 않았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시 그를 만났을 때 반가움이 앞서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고 자연히 그에게 쌀쌀맞게 대하고는 했었다. 내가 내 자신을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왜 몰랐을 까?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성종은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 있었던 상태였고 수술실 앞을 여자와 남자가 지키고 서 있었다. 여자는 붉어진 눈시울로 나를 쏘아봤고 남자는 내가 보기에도 안타까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 다른 성격들이었고 서로가 너무나 대조되고 있었다.
"...쓸모없는 새끼..."
여자가 나를 올려다 보며 내뱉은 말이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수도 없이 들어온 말이였으니까. 어느새 아픔에 무감각해지고 있었고 어느새 누군가 주는 상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냥 고개를 돌려 수술실 문으로 시선을 두었다. 어서 빨리 녀석이 나와 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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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전개ㅋㅋㅋ 나란 여자 훗... 근데 조금 난감한게요....... 이게 지금 84키바...ㅋㅋ 제 생각에는 이 막장 스토리는 아마도 다음 화? 가 마지막일 듯 싶네욬ㅋㅋ 15화가 마지막인줄 알았거늘... 너무 급전개 했쮸...♥ 여튼 13화나 14화가 마지막일 것 같아요ㅠㅠ 아... 그래도 아시 완결내고 나면 뿌듯^&^ 아 그리고 텍파공지는 마지막 화와 함께 돌아올게요! 지금까지 댓글 달아주신 분들은 개인적으로 번외편 보내드려야니까... 지금 정리를 해야겠네염! 그럼 여러분 다음화에서!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