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sens - 비행 inst
X 같은 선배와의 전쟁
by. 탄덕
08
집에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밤을 꼴딱 샜다. 어두워진 밤하늘과 어우러진 담배 연기가 잔상처럼 마주본 벽을 따라 넝쿨처럼 감겨 올랐다. 나를 제외한 모든 부분들이 하나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답지 않게 낮게 목소리를 깔며 속마음을 말하던 전정국도, 남학생 얘기가 나오자 부산하게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추던 그녀도, 담배를 피며 의아한 질문을 내던지던 로이라는 사람도, 그리고 찾을 수 없는 퍼즐 한 조각처럼 자신을 뒤로 숨기던 호석 선배까지. 내가 대체 무얼 잃어버린건데, 알려줘야 할 거 아냐. 왜 다들 내 앞에서 감추기에만 급급한 건지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으로 가득 채워진 독백과 함께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어둑한 밤하늘에 홀로 떠 았는 달만이 비춰지던 블라인드 사이로 아침이 되었다는 걸 알리듯이 햇살이 간간히 들어왔다. 하필 넌 왜 눈부신 건데, 찬란하도록 밝은 햇살이 거슬렸던 난 블라인드를 거칠게 내렸다. 다시 어두워진 방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정처없이 갈 길을 잃어버려 바다 한 가운데에 버려진 고래같기도 했다. 만약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정호석이라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감았던 눈이 느리게 떠지더니 벽을 눈에 담았다. 오지마, 그린 색으로 덮여진 벽이 나에게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들을 흩어지게 내던졌다. 그래서 난 벽에게 물었다, 이게 그렇게 내가 찾아야만 했던 기억이냐고. 그러자 벽은 나에게 아무 말 없이 다른 조각을 내주었다. 울음이 터져버려 두 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길거리를 미친듯이 질주하던 내가 신호등조차 볼 정신도 없이 도로를 건너 경적 소리와 눈부신 불빛을 마주했고 암흑은 눈치도 없이 그런 나를 집어삼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굳게 감겨있던 눈이 의지와 상관없이 액정을 바라봤다. 잠이 든 줄은 몰랐었는데 명백한 착각이었나보다. 벨소리가 요란스럽게 연속으로 울리는 걸 보니 이 덕분에 꿈에서 깬 것 같아 고맙기는 하지만 심히 거슬릴 정도로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어, 전정국. 나 자다가 일어났어.
- 너 오늘 동창회인데 안 올거지? 가지 말자. 물어보니까 애들도 우리끼리나 만나자고 하고.
- 왜?
- 그냥 만나고 싶은 애들도 없고 귀찮잖아.
- 정국아, 나한테 숨기는 거 없냐.
그가 주저리 장황하게 내뱉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침묵을 유지하던 목소리가 떨려오는 숨소리를 조용히 삼키며 대꾸했다. 아니- 없어, 그 날의 호석 선배처럼 똑같이 정국이도 그렇게 말했다. 나에게 들켜버린 줄도 모른 채 모든 사실을 애써 감추려는 그의 노력에 헛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래? 그럼 가자, 동창회. 그러자 정국이 하여간 못 말린다며 짧은 한숨을 내뱉었고 난 1시간 늦게 가야한다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의 한숨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지만 부리나케 옷을 벗어 갈아입고는 현관문을 세게 열어젖히고서 학교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솔직히 프로젝트따위는 전혀 중하지 않았다. 오직 정호석,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과거의 나와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인지, 그렇다면 그가 과거의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던 사람이었는지. 생각이 끝을 다다르자 이와 동시에 노트북을 두들기던 태형 선배와 윤기 선배가 나를 반겼다.
" 왔냐, 요새 우리 후배 얼굴이 반쪽이네. 잠 못 자는 거 아니냐."
프린터된 종이와 노트북을 번갈아 들여다보는 그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네- 선배, 잠을 못 들어요. 누가 계속 밤마다 절 찾아오거든요. 그러자 태형 선배가 아무렇지 않은 듯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표정을 관리했다. 민윤기,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 뭐야, 맨날 악몽 꿔서 그런 거네. 이 선배님한테 말을 하지 그러면 없애줬을텐데."
"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에요, 혼내달라고. 저 좀 그만 괴롭히라고 전해주세요."
나답지 않게 위태로움이 가득한 음성이 우리를 감싸던 공간에 머물렀고 우리 주변에 시끄럽게 퍼져가던 사람들의 얘기 거리와 노래가 웅웅거리며 점차 음소거되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던 둘을 태연하게 올려다보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 두 분 다 호석 선배 친구시라면서요, 아주 오래된. 어쩌다가 알게 됐어요."
" .................."
" 혹시 우리 만난 적이 있나 해서요. 호석 선배는 없다고 하던데."
" .....우리도 없어, 단 한 번도 없었어."
윤기 선배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완고한 표정까지도 닮은 모습에 살짝 고개를 내젓고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위 아래로 흔들었다. 왜 이런 걸 갑자기 물어보는데, 그리고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태형 선배가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그냥요, 알고 싶어서요. 완벽히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 ' 왠지 꿈 속의 남학생이 호석 선배 같아서 그가 아니었으면 해서요 ' 목구멍까지 올라오려는 이어지려는 긴 문장을 힘겹게 꾹 꾹 눌러참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고 언제나 그렇듯 크로스 백을 어깨에 걸친 그가 내 반대편 자리에 가방을 내려뒀다.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을 심드렁하게 받아들이고는 뭐 마실거냐며 물어오는 그에 아무거나 괜찮다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선배가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갔고 난 그를 따라갔다. 계단을 내려가자 주문을 시킬건지 메뉴판에 고정된 시선이 보였고 난 그런 모습들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그리고 점원을 부르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페 라떼 2잔 주세요. 그러자 점원이 상냥하게 휘핑크림 올려드릴지 그에게 되물었다. 아- 다른 한 개는 듬뿍 올려서 주세요, 얘가 크림을 좋아해서. 자연히 그가 지갑을 찾기 위해 바지를 뒤적이다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점원에게 남기며 계단 앞으로 바삐 걸어왔다. 그 앞에서 나를 마주친 그가 적잖이 놀란 듯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서 고맙다며 내가 건넨 지갑을 떨떠름하게 받아들였다. 의자에 앉아 커피를 들고 올라오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 관심 없는 척 프린터로 시선을 옮겼다. 어떠한 문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통제하던 의구심이 나를 이기고 말았다.
" 선배, 제 껀 휘핑크림이 유독 많네요. 크림 좋아한다고 말씀드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내 말과 동시에 일제히 부산하게 움직이던 손길들이 허공을 헤매었고 정작 질문지를 받은 호석 선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머리를 위로 쓸어올렸다.
" 그랬나, 여기 직원들이 서비스가 좋나보네."
" 선배가 말씀하셨잖아요. 휘핑 크림 많이 올려달라고."
"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아서 배려해준 건데 싫다면 내가 먹고."
여전히 태연스럽지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어딘가 위험하게 가라앉은 음성에 묵묵히 대변했다.
" 선배에게서 다른 누군가가 보여요. 근데 도저히 모르겠어요."
" 기억하려 하지 마, 기억이 지워진다는 건 잊고 싶은 환영 속의 인물일테니까."
" 그래서 힘들어, 선배때문에."
나를 잘 알고 있는 당신이니까, 끝까지 뱉지 못한 문장들을 뒤로 한 채 점차 지쳐가는 나를 조심히 보고 있던 그가 간간히 떨려오는 손을 티나지 않게 밑으로 내렸다. 서로간의 대화가 마침표를 찍었고 카페를 지휘하던 클래식만이 우리를 두둔할 때쯤 뾰족한 구두 소리가 또각거리며 계단을 오르더니 그 옆에 우리가 있던 자리로 성큼 걸어와 선배의 앞에 섰다. 누군가 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일어나지 않는 그를 대신해 옆에 있던 태형 선배와 윤기 선배가 일어나 여자에게 인사를 깍듯이 드렸다. 이런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차게 식어가는 그를 보다 앉아있던 몸을 살짝 숙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숙이던 고개를 조금씩 올리는데 누군가의 등이 살풋 보이더니 이내 시야를 전부 가로막았다. 연한 분홍색 남방인 걸로 보아 호석 선배임을 뜻하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려져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만큼은 정확하게 들려왔다.
" 왜 전화를 안 받니? 아버지께서도 연락 하셨다고 하시던데."
" 분명히 사소한 문제로 전화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요."
" 뒤에 그 계집은 뭐야."
" 알 필요 없어요, 당신같은 사람은. "
" 알아야지. 내가 너의 엄마인데."
" 엄마? 제발 우리 엄마인 것처럼 얘기하지 마, 역겨우니까."
" 안타깝지만 우린 가족이잖아. 예전부터 그렇게 못돼처먹었더니 누구한테 배운거니."
" 예전부터 항상 상스러운 말투로 날 대하더니 몸을 함부로 쓰는 것 또한 들키셨네."
착- 고개가 돌아갔다. 그에게서 자조적인 비웃음이 나왔다. 착- 그러자 숙여져있던 고개가 한껏 더 내려갔다. 그에게 어디서 건방지게 웃고 지랄이란다. 그럼 이 상황에 쳐울까요? 그의 높아진 언성이 다시 냉랭해졌고 꾸준히 태연함을 지켜오던 그의 목소리와 몸이 살풋 떨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의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는 흔적이 여간 생소했다. 그가 많이 불러본 듯한 단어인 것 같지는 않아 신경이 곤두세워지며 서서히 쓰이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상황에 일제히 카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꽃히기 시작했고 뒤에 있던 난 그의 옷자락을 넌지시 끌어당기며 그를 제지했다. 그럼에도 그는 내 손을 밀쳐내기 일쑤였고 난 굴하지 않고 다시 그의 손목을 잡으려다 이런 나를 제지하던 큰 손에 붙잡혔다. 잡혀진 그의 손이 티나지 않지만 강하게 떨려왔다.
" 뭐에요? 저녁 식사하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테고."
" 한국에 동생이 왔어. 그 정도면 뭉쳐야 할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
그러자 동생이라는 여자의 말에 심하게 요동치며 떨려오는 그의 손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위태로운 경계선이 평행을 유지하지 못한 채 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의연하게 그가 남아있던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되물었다.
" 누가? 감히 그 자식이 여기가 어디라고 와. 당신이 그러라고 했어요? 와도 괜찮다고."
" 그러니까 이번 주에 본가로 오라는 말 전해주려 왔어. 너희 아버진 꼭 너까지 부르시잖니."
여자가 가려는 듯 테이블에 올려놓은 클러치를 팔에 끼워넣었고 그 모습을 뒤에서 훔쳐보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누구니, 호석아. 옛날의 그 계집애랑 꼭 닮은 게 귀엽네. 여자가 나에게 반가웠다며 손을 흔들고서 뒤를 돌았다. 반짝거리는 치마와 옷으로 치장을 한 여자를 멍한 눈길로 쳐다보는데 선배가 발길을 옮기던 여자의 손목을 거칠게 돌려세웠다. 차키는 들고 가셔야죠, 아주머니. 그리고 당장 내 눈 앞에서 그 새끼 얼굴 안 치우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 각오해요. 그가 짧게 으르렁거렸고 여자는 이에 유연한 미소로 받아들이고서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윤기 선배가 어수선스러운 분위기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를 했고 다음에 하자며 서둘러 테이블을 치웠다. 카페를 나오고도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줄은 이미 까먹은 채 벙찐 낯빛으로 길을 유유히 걸어갔다. 각자 다른 이유로 동상이몽의 시간을 우연찮게 가지게 되었다. 그는 여자에게 두 대나 연속으로 맞은 이유로,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던 목격자로. 잡고 있던 손 안으로 땀이 차는 걸 느끼고 나서야 몸을 살짝 떨며 그의 손을 놓고서 놀라 커진 눈동자로 위를 올려다봤다. 마주선 그의 얼굴에 손톱에 긁혀 생채기가 나 있는 뺨이 따가워보였다. 아프겠네, 나도 모르게 한 손을 들어올려 상처를 매만졌다.
" 아까 뒤로 왜 숨겼어요? 뭐가 그렇게 비밀이 많을까, 선배는."
" 너한테 보여주기에도 한심한 여자라서. 그런 여자 밑에 사는 내가 싫을 정도로."
" 큰일났다, 나 선배 좋아하나 봐."
그러자 올곧게 나를 바라보던 선배가 조심히 내 손을 잡아내렸다. 좋아하면 안 돼, 너는 그러지마. 안타까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댔다. 왜 그러면 안 되냐는 흔한 이유조차 물어보지 않고 당연한 듯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이상하리만큼 우린 단조로웠다. 지나쳐가는 사람들 사이로 우리 둘의 모습이 보인다면 어느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른다, 마치 어질러진 수면 위로 파동이 일었지만 괜찮은 척 연기나 하는 영락없는 철부지 소녀와 소년과도 다름없을 테니까.
아이들이 모인 동창회에서도 여전히 그와 잡고 있었던 손을 만지작거렸다. 동창회를 간다는 내 말에 데려다준다는 그를 밀어내고 발길을 이 곳으로 옮겼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면서 데려다 주고 손 잡고, 뭐가 이렇게 복잡한 건지. 아직도 크로스백을 어깨에 올려매는 그의 뒷모습이 생생하게 잔상처럼 남았다. 기억하려 하지마, 지우고 싶은 기억은 잃어버리는 게 맞는 거야. 정말 그의 말대로 나쁜 기억이라 머릿속에서 자연히 지워버린지도 모르겠다. 테이블 위에 있던 소주잔을 들어 한 입에 털어넣었다. 솔직히 찾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련함은 끝내 그것을 놓치 못했다. 선배도 알았겠지, 내가 조금씩 눈치채고 있다는 걸. 혼란스러워지는 마음에 괜히 앞에 있는 술잔만 빙빙 돌렸다. 지쳐있던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계속 곁눈질로 눈치만 보던 정국이 귀에 대고 말을 걸어왔다. 괜찮냐는 그에게 묵묵히 고개만 끄덕거리며 시끄럽게 술집을 휘어잡는 노래 소리와 반갑다며 떠들어대는 동창들을 보며 습관처럼 턱을 손에 괴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옳거니하며 친하지 않던 오지랖이 멀리 있던 나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이름조차 가물한 여자애로 인해 굳어있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여자애가 던진 질문 거리가 맘에 들지 않아서였지만.
" 야, 이제 괜찮은거야? 사고나서도 3개월 동안 누워있었다며."
" 그 때가 언젠데. 무슨 고2때 얘기를."
" 난 3학년때 네가 자주 야자도 빠지고 그러길래. 또 아픈 줄 알았지."
아팠으면 했던거겠지, 네가 1등이 되었어야 하니까. 같은 반이 된 후 지난 2년 동안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시샘하던 여자애를 어이없게 보고는 채워진 술잔을 다시 비워냈다.
" 안 아파, 보다시피 존나 멀쩡해. 괜찮으니까 신경 꺼줘도 되는데."
" 너는 무슨 말을 섭섭하게. 아- 근데 혹시 너 그 남자랑 지금도 잘 지내? "
별 쓸데없는 소리만 해대던 그 여자애의 마지막 말에 소주를 들어 잔에 붓던 손길이 멈추질 못하고 잔에 흘러넘쳤다. 정신을 놓쳐버린 나의 손에서 소주를 뺏어든 정국이 대신 그 애에게 대꾸했다.
" 누구, 넌 지금도 남자밖에 모르냐. 공부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가만 보면 남자 겁나 밝혀. 재미없으니까 다른 얘기로 넘어가."
" 전정국 넌 빠지지. 그래서 연락하냐고. 만약 헤어졌으면 나 좀 그 사람하고 연락시켜주면 안될까."
누구 말이야, 어떻게 생겼는데. 아늑해져가는 정신을 힘겹게 붙잡고서 계속 질문을 해오는 아이에게 응했다. 크로스백 맨 사람, 그러자 단번에 그 아이가 말했다. 잡고 있던 술잔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더 말해봐, 어떻게 생겼는지.
" 단정하고 잘 생겼는데 맨날 똑같은 시간에 와서 네 뒤에 따라가길래 이상해서 내가 유심히 봤거든. 근데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잘 모르겠더라. 금연하는지 항상 우리 들어가는 아파트 담벼락에 기대서는 담배갑만 만지작거리다 네가 집에 들어가는 거 보고 가더라고."
" 먼저 갈게, 정국아. "
술까지 마셔놓고 어디 가냐는 정국이를 뒤로 한 채 의자에 걸쳐있는 가디건을 대충 걸쳐입고는 술집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언제 뒤따라나온건지 정국이 내 팔을 거칠게 잡아세웠다. 감당할 자신 있냐,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냐고. 그의 높아진 언성에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정국이 심란하다는 듯 머리를 헤집고서 멀리 있던 택시를 잡았다. 내 집 주소를 아저씨께 대신 전해주고 차 문을 닫으며 그는 완고하게 말했다. 난 네가 더 이상 다치는 게 싫어, 그러니까 오늘은 제발 집에 가. 지우고 싶은 기억은 잃어버리는 게 맞는 거야. 택시를 타고도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 선배의 위태롭던 음성이 이명처럼 번갈아 들려왔다. 실타래처럼 얽혀져가만 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시트에 뒤통수를 기댔다.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저씨의 다 왔다는 간결한 말소리가 들려왔고 거스름돈을 챙긴 난 택시에서 내려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동창회에서 만난 여자애가 말했던 그 담벼락을 향해 느릿하게 오르막을 올랐다. 가까워질수록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서 한 쪽 어깨에 가방을 매고 있는 인영이 보여져 고개를 슬쩍 앞으로 내밀고는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을 그새 느낀건지 옆으로 나를 향한 시선을 마주했다. 그에 난 조심스럽게 뱉어지던 숨덩어리를 죽였고 그가 모자를 벗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발길은 끝이라는 한계를 알지 못했고 결국 그의 앞에 서게 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요? 불안한 듯 겁이 난 목소리가 조용한 아파트 골목에 울려퍼졌다. 그러자 어둠에 익숙해진 그림자가 나에게 다가와 가로등에 비춰졌고 말 없이 두 개의 단조로운 시선들이 오고갔다. 그가 한 손에 잡고 있던 담배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나의 이런 눈길을 끊어내려는지 부리나케 주머니로 넣던 그의 목울대가 울렁였고 듣고 있던 이어폰을 귀에서 빼냈다.
" 언제요, 내가 당신에게 거짓말했던 그 날이 언제인데요."
" 그 날 길에선 제 이름이 불려진 적이 없었는데 로이씨는 들었다면서요."
" 당신 이름을 안다는 게 이상하게 들려질까봐요. 날 오해할까봐."
" 로이씨였어요? 몇 년 전에 뒤에서 날 따라오던 사람이."
검은 눈동자가 여전히 단조로움을 선택했고 가로등에 비친 그의 입에선 아무런 말이 내뱉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정정했다.
"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나요, 로이씨."
" 만났어요, 우리. 당신이 잃어버린 그 시절에."
처음으로 이 질문에 다른 답변이 나왔고 마치 어두운 밤 바다에 혼자 떠 있는 부표와도 같은 목소리가 연속으로 골목을 울렸다. 그럼 전부 다 거짓이었던 건가, 어둠이 드리워진 골목의 가로등만이 진실의 갈피조차 잡지 못해 벼랑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우리 둘을 밝혔다.
♥ 저의 원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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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수정했어여! 그리고 여러분!!!!!!!!! 저 진짜 행복해서 정말 지구를 다 부셔버릴 수도 있을만큼 너무 너무 행복해서 폭풍 눈물 흘렸수굽니다ㅠㅠㅠㅠㅠ
초록글이라니ㅠㅠㅠㅠㅠ 제 인생에 초록글이라니ㅠㅠㅠㅠㅠ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ㅠ 이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ㅠㅠㅠㅠㅠ
한창 미숙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천 번을 말해도 모자랄 정도로 저의 탄님들과 독자분들께 더욱 발전하는 글 보여드리도록 언제나 보다 더 노력하는 제가 될게요ㅠㅠㅠㅠ 항상 저와 함께 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구 제가 많이 사랑해요♥
정말 고마워요! 늦은 밤인데 다들 좋은 꿈 꾸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