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정국에 뷔 예보
학교 안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전교 꼴등 자리를 번번히 지키고 있던 정국이, 단번에 2등까지 치고 올라간 것이 그 이유였다. 정국의 성격이 겁이 나 누구 하나 먼저 나서 어찌 된 일이냐고 물을 수도, 문제 유출을 당한 건지 물을 수도, 그렇다고 컨닝 한 게 아니냐며 따지고 들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뒤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박하고 일어서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한순간에 성적이며 등수가 훅 떨어진 제 자제들과 달리 밑바닥에서 기던 놈이 치고 올라오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논란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정국 또한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만, 안 쓸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수능을 앞둔 일이라 더 예민하게 굴 수 밖에 없었다. 정국이 지나갈 때마다 수근거리는 목소리들은 옆에 있는 이들까지 화가 나게 할 정도였다. 정국의 오른쪽에 자리한 태형이 깊은 한숨을 툭 내뱉었다.
" 너 왜 가만히 듣고만 있어? "
" 뭘. "
" 뭐긴. 알면서 묻지 마. 짜증나게 지나가는 년들마다 저 지랄이잖아. 안 거슬려? 시발, 존나 거슬리는데, 난. "
" 뭐 어쩔 건데. 지나가는 새끼들 하나씩 붙잡고 아니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돼? 한다고 한들, 믿기는 한다냐? "
"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썅! 내가 답답하다고, 내가. "
" 네 일 아니면 신경 꺼. "
존나 정 없는 새끼. 태형이 툭 쏘아보곤 정국의 종아리를 퍽 걷어차며 부리나케 도망갔다. 인상을 찌푸린 정국이 태형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사실 정국의 말에 틀린 건 없었다. 해명을 하더라도 믿을 이 하나 없는 일에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그 일들을 해명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저가 부정 행위를 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정국은 저를 보며 수근거리는 일들을 무시한 채 반으로 향했다. 책상에 엎드려 잘도 자고 있는 탄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참 세상 편하게 자네. 누가 들쳐업고 가도 모르겠다.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던 탄소가 정국의 손길에 웅얼거리며 정국이 앉은 자리쪽으로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하얗고, 붉은 입술이 예쁘게 대조됐다. 정국은 넋이 나간 듯 바라봤다. 예쁘네, 오늘도. 역시나. 더럽던 기분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국은 성적이 나온지 정확히 나흘이 지난 후에야 교무실에 불려갔다. 자리에 앉아있던 담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정국을 반겼다. 그 앞에 정자세로 선 정국이 아무런 표정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안 봐도 뻔한 질문에, 뻔한 이야기겠지. 교무실 안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정국을 향해있었다. 언뜻 시선을 돌린 곳에는 지민도 정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또한,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시선이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안절부절 얼버무리고 있는 담임을 내려다보았다. 아마 지금쯤 벌써 2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것 같았다.
" 그, 러니까 정국아. 선생님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줘……. "
" ……. "
" 정국이 네가 1학년 때든, 2학년 때든 줄곧 성적이 음, 참 안 좋았는데 말이야. 어…. 이번에 너무 확 올라간 성적이 조금 수상, 이 아니라 조금 미심쩍? 다고 해야 할까. 으응. "
" 그래서요. 컨닝? 뭐, 그런 거 했냐고 묻고 싶은 건가. "
" ……어?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구. "
" 그게 아님 뭔데요. "
" ……. "
" 생각하고 있는 게 뭐든 전 안 했어요. "
" 그, 그렇다고 하기엔 정국이 너도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소지가 없지 않아 있으니까…. "
" 제가 뭐라 말하든 믿지 않을 거면서 왜 물으시는지. "
담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정국은 화를 참으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라고 인증할 무언가가 없었다. 아니, 분명 있으나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하지 않은 일에 해명하는 것도 싫었다. 이런 후폭풍이 있을 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반박을 할 만한 답은 아직 찾지 못 했다. 아직도 교무실 안 모두의 시선이 저를 향해 있는 게 짜증났다. 정국이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시발, 좆같은 세상. 정국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말은, 속으로 삼켜냈다. 더이상 해명할 이유도, 하고 싶지도 않았던 정국이 발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 다들 꼴이 되게 우스우시네요, 선생님들. "
지민이었다. 내뱉은 말과, 그 목소리 주인을 확인한 몇몇 선생들의 인상이 조금은 찌푸려지는 것 같았다. 신뢰를 많이 받았던 지민이 예민한 그들의 신경을 건들인 한마디였다만, 딱히 그에 맞받아칠 마땅한 말이 없었다. 지민의 앞에 서있던 선생이 놀래 지민의 올려다보았다. 제 성적표를 만지작거리던 지민이 저를 바라보고 있는 정국과 눈을 마주쳤다.
"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쩔쩔 맬 거면서 부르긴 왜 부르셨어요. 다들 안 쪽팔리세요? 나 같음 쪽팔릴 것 같은데. "
" ……. "
" 전정국이 컨닝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그렇다고 했다는 증거도 없을 뿐더러. 쟤네 반에서 저만한 성적 나올 만한 애도 없는 것 같은데. 제 말 틀렸어요? "
" ……. "
" 더군다나, 시험 유출이면 곤란해지는 건 전정국이 아니라 선생님들 아닌가. "
" ……. "
" 정 의심쩍으며 쟤 중학교 때 기록부들이라도 찾아보시던가요. 괜히 학교 분위기만 우중충해지잖아요. 선생님들 사고 대처 능력이 너무 별로여서. "
여전히 정국의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거기까지 말을 마친 지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교무실 안에 자리한 선생들은 하나같이 벙 쪄 있었다. 지민이 내뱉은 말들에 틀린 말도 없었으며, 처음 보는 지민의 모습에 놀랐을 것이다. 정국은 미간을 찌푸리며 지민이 나간 문만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도와준 건가. 왜지. 동정심? 그런 거 가질 사이였나. 가만히 있었더라면 정국은 아마, 억울하게라도 변을 당할 사단이었다. 학교 물을 버린다며 쫓아낼 수만 있다면 그러기 위해 그를 벼루고 있던 이들이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정국은 어지러운 머릿속에 또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 * *
찌푸둥한 몸을 기지개하며 일어난 탄소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서 볼을 긁적이다 제 옆자리에 앉은 정국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책에 두고 있던 시선을 들어 탄소를 바라본 정국도 그를 따라 웃어보였다. 그리곤 손을 뻗어 눈에 낀 눈꼽을 떼주었다. 그에 제 눈가를 부비던 탄소가 휴대폰을 꺼내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정정 급식을 먹은 후로 줄곧 잤다. 그럴 때마다 공부를 하다가도 심심하다며 툭툭 꺠우곤 했는데, 저를 깨우지 않았다. 벌써 학교를 마칠 시간도 코 앞이었는데, 아무래도 정국은 하루 종일 그럴 겨를이 없었나 보다. 머리를 긁적이던 탄소가 정국을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무슨 일 있었어? "
" 아니. "
" 있는 것 같은데. "
" 없어. "
" 그럼 나 왜 안 깨워? "
" 너 자는 게 한두 번이냐? 곧 수능이잖아. 공부하느라. "
흠, 연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던 탄소는 이내 그 눈초리를 걷곤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교무실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알면 노발대발, 저가 더 화가 나 날뛸 게 분명한 성격이었기에 정국은 입을 다물었다.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는데,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길 바랐다.
학교를 마친 후, 당연스럽게 정국은 탄소를 데려다주었다. 태형의 집에서 잘 예정이었던 터라, 정 반대로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 하겠지만, 혼자 보내는 것보단 몇걸음 더 하며 데려다주는 것이 훨 속이 편했다. 손을 잡고 걷는 그 거리또한 싫진 않았음에. 쫑알쫑알 뭐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손을 꼭 맞잡은 채 혼자 신이 나 얘기하는 탄소를 바라보며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는 게 정국의 일이었다. 어느새 집 앞에 다다르면 손을 휙휙 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탄소의 뒷모습을 보는 게 정국의 마지막 일과였다. 오늘도 다름없이 손을 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정국의 앞으로 와 까치발을 들어 입을 맞추곤 떨어져 정국을 볼을 꼬집었다.
" 내일은 우울하지 말기. "
" ……. "
" 안 캐물을게. 오늘은 기꺼이 입 다물고 간다. 대신 내일 또 오늘처럼 굴면 죽는다. "
볼을 꼬집던 손을 놓곤 다시 쪼르르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때까지도 정국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쟤는 어쩜. 저도 모르게 터진 웃음에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사랑하지 않고는 못 베길 만큼, 예뻤고, 사랑스러웠다. 이미 진즉에 알고 있었음에도 정국을 배려해 입을 다물었던 거였다. 어쩐지 오는 길 내내 평소보다 더 많은 얘기를 하려고 애썼던 모습이 떠올랐다. 버스에 올라탄 정국이 슬핏 웃음을 지었다. 언제 보냈다고 또 보고 싶은 건지. 그냥, 오늘도 하루 종일 같이 있을 걸. 정국은 창가에 머리를 기대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 존나 푼수같네, 나. "
아무렴 좋았다. 김탄소였으니까. 30분은 가까이 달려 버스에서 내려 태형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도중, 꽤나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박지민? 저 놈이 이 동네에 살았던가. 그냥 무시하고 지나려다 아까 전 교무실 일이 떠올라 발걸음을 우뚝 멈추곤 다시 뒤를 돌았다. 멀어져가는 지민의 뒷모습이 축 쳐진 것이, 꼭, 언젠간 본 것 같은 풍경이었다. 꽤나 익숙했던 그 풍경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긴 정국이 지민의 앞에 섰다.
" ……. "
" ……어. "
지민의 얼굴을 본 정국은 바보같이 입을 떡 벌리곤 어, 라는 말 밖엔 뱉을 수 없었다. 물기가 서린 눈가와 부어오른 왼쪽 뺨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동질감, 익숙함, 따위가 느껴졌다. 가슴께가 시큰거리는 게 저도 모르게 저를 올려다보는 지민의 시선을 피했다. 그에 지민은 허탈한 듯한 웃음을 내지으며 정국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주먹을 꼭 쥔 정국이 지나쳐가는 지민의 팔목을 잡았다. 그냥, 혼자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 왜. 아까 그 일 때문에 설마 고맙다는 말 하려고? 그딴 거 할려면 필요 없으니까 좀 놓지. "
" ……. "
" 그게 아님 내가 불쌍한가? 그런 거라면 시발, 더 기분 잡치니까 놓으라고, 좀. "
지민은 이런 저의 모습을 보인 게 비참했다. 부어오른 뺨이 아픈 것보다 그냥 뭣 같은 제 인생이 서러웠다. 제 나름의 노력을 했고, 그 결과는 좋았다. 그런데 뭘 얼마나 더 충족을 시켜줘야 미움 받지 않을까. 지민이 양아치 같은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도, 양아치 같은 놈과 성적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들 자신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뭘 더 어떻게…. 그냥 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닐까 싶었다. 고개를 푹 숙인 지민이 제 부어오른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급히 닦아냈다. 정국에게 잡힌 팔목을 빼낼 생각조차 못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국은 그제야, 그 모습이 과거의 저와 같다는 걸 알았다.
" 병신 같은 새끼. "
" ……. "
"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리 이 악물고 버텨봐도 안 한것 만도 못한 대우 받는 거, 그게 누구 잘못이라 생각하냐, 넌. 남 탓하고 있겠지. 너를 사랑해주지 않는. "
" ……. "
" 다 돌이켜보면 네 잘못이야. 사랑 받고 싶어 안달난, 그래서 사랑 받고 싶어 행동하는, 네 잘못이라고. "
나름의 위로였다. 친구로서. 동질감을 느끼는 이로서. 남 탓을 하며 지내온 시간은 고톹스러웠다. 사랑 받고 싶었던 이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정국은 남이 아닌, 저를 탓하기 시작했다.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한 거야.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사랑하는 이를, 사랑을 받고자 했던 이를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지민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국을 바라보았다. 벌개진 눈가가 안쓰러웠다.
" 사랑 받고 싶은 게 내 잘못이야? "
" ……. "
" 미움 받기 싫은 게 내 잘못이야? "
" ……. "
" 내 탓을 하면, 내가 사랑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미움 받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안 했는데. "
" ……. "
" 네가 뭔데 날더러 내 잘못이라고 말 해. "
정국은 지민의 팔목을 잡고 있던 손에 스르르 힘이 풀렸다. 그러게. 사랑 받고 싶은 게, 미움 받기 싫은 게, 정말 우리의 잘못인 걸까. 정국은 멍하니 지민을 바라보았다.
그저, 평범한 아이들처럼,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십대의 작은 아이들일 뿐이었다.
* * *
이야! 사실 정국이랑 지민이를 싸움 붙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화로 지민이와 정국이가 닮았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도대체 뭔 얘기를 다룬 건지 모르겠고 점점 산으로 가는 거고 곧 완결이고 ^ㅁ^ 그래도! 완결을 낸다는 거에 큰 의미를 두고 싶어요ㅎ
왜냐면... 저의.... 첫 글이니까.... 언젠간 볼때마다 치욕스러워 삭제!!!! 이게 머야!!!!!!!!!!!!!! 해버릴 수도 이꼬.. (쥐구멍 찾는다)ㅜㅛㅠ
그리고! 졸업하시는 13살, 16살, 19살... 축하드려요.... 이제 나도.....곧........... 꽃다발 던질 테니까 다들 받으세요! (꽃)(♡)(던짐)
그리고 진짜 봄날이랑 낫투데이 미친 게 분명해요. 봄날 듣다가 울컥하면 낫투데이 나와서 내 심장 후드려치고.. 이 상큼한 녀석들...
열스밍! 불스밍! 뮵스밍!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