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 리더 최승철 X 연예부 기자 너봉〃
까칠하게 물어오는 승철이에게 대답해야 될 터인데 굳게 닫힌 제 입은 열 줄을 몰랐다. 지훈은 그저 묵묵하게 나와 승철을 주시할 뿐이었다.
"아…음…, 저기 그러니까 그게……"
"왜 말을 못 해요? 사람 답답하게 만드는 재주가 아주 바람직하네요."
"…"
"한 번만 더 걸리면, 그때는 가만히 못 있어요."
따끔한 경고의 몇 마디를 들은 후에야 승철과 지훈은 제 자취를 감췄다. 승철과 지훈이 사라지자 그제야 변명거리가 생각났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찍힌 것만 같아 많이 섭섭했지만, 연예인의 발자취를 좇는 기자의 신분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자신을 기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생팬으로 오해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뿐이었다.
"아… 이번 현장 미션 개 망했네."
02 눈물의 소고기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요? 보통 현장 나가면 7일 동안은 회사 안 나오는 게 정상인데."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 거예요? 설마 들킨 건 아니죠? 들키면 플레디스 소속 연예인들 기사 내기 힘들어지는데."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보다 작은 목소리로 들킨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팀장님께 잔소리를 계속 들은 것 같았다.
현장 미션을 기다리던 과거의 자신이 미워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팀장님의 화가 조금은 누그러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승철과 지훈에게 기자라는 신분이 발각되고 사진 또한 찍지 못했다면 이 회사에 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이 회사에서 잘릴 경우 한 푼도 없는 알거지 신세를 모면할 수 없었다. 월급을 생각하니 자신의 발각이 큰 실수였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여주 씨, 아까 찍어 온 사진 보정해올 수 있어요?"
"바로 하겠습니다."
당분간은 팀장님의 안 좋은 시선을 받게 될 것 같아 눈치 있게 행동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사진 속 햇살은 조명처럼 승철과 지훈을 밝혀주면 좋았을 테지만 역광 때문에 보정이 힘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팬심 덕분에 열정은 더해져 갔다.
팀장님의 눈치를 보는 것은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어느새 저의 실수가 잊힐 때쯤 여전히 뉴스에 실을 다른 연예인의 사진을 보정하게 되었다. 제 보정 능력이 괜찮은지 그 이후로부터 오타 수정과 더불어 보정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오늘따라 왜인지 보정한 사진이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작업을 하다가 하나둘 퇴근하는 상사들의 모습을 보고 그제야 회사 밖을 나섰다.
부족한 보정 실력을 수습해보고자 보정을 더 하기로 마음을 먹어 회사 근처에 위치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답답한 회사보다는 여기서 보정하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편했다. 어느새 밀려있던 작업을 다 끝내니 기분이 좋아졌다.
남아있는 라떼를 마시면서 노트북으로 트위터를 들어가 여유를 부리던 찰나에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니 승철, 원우, 민규, 한솔이가 자리를 잡고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승철이가 말한 말이 생각나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자 한솔이가 그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어? 저 사람 아니에요?"
"누구?"
한솔이가 저를 가리키며 수군거리자 네 명의 시선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승철이가 다시 한번 제게 다가오는 덕분에 겁에 질려 얼굴을 최대한 숨기고 제 목소리보다 더 하이톤으로 목소리를 변조하며 저번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기를 소망했다.
"누, 누구세요?"
"또 쫓아온 거예요? 지겹다, 진짜."
"아.... 오해에요."
"그리고, 그렇게 목소리 톤 올리고 얼굴 가리면, 제가 몰라볼 것 같나요?'
"...아니요.."
"난 또 그런 병신으로 착각하는 줄 알고. 그때 사과도 못 받은 게 좀 억울한데 어떡하지?"
"죄송합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어요."
"말로는 누구나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죠. 뭐, 밥이라도 살래요? 저희 밥 안 먹었는데."
"사, 사드릴게요."
승철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사드리겠다고 본능적으로 말을 해버렸다. 모아둔 돈이 거의 없는 그저 한낱 사회초년생이었지만, 겁에 질린 탓에 제 입은 얇은 지갑과 대립하게 되었다.
네 명이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뱉은 말은 곧 자신을 불안에 떨게 하였고 이들이 저렴한 음식을 선택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었다.
"우와, 진짜 사주는 거예요? 대박! 완전 멋있어요. 저는 고기 먹고 싶은데, 소고기!"
"오늘 고기 먹을 수 있는 거예요?"
한솔이와 민규가 소고기! 소고기! 하며 연신 외치는 상황에서 원우는 조용히 그 둘을 저지했다. 누가 보아도 제가 약자인 상황이었다. 드디어 오늘이 알거지가 되는 날임을 확신했다. 오늘따라 집이 유난히도 보고 싶어졌다.
"알겠어요… 고기, 맛있겠네요, 뭐.."
"헐, 진짜죠? 무르기 없기예요!"
카페에서 네 명이 음료를 다 비워낼 동안 제 자리는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노트북을 매고 있어 불편했지만, 회사에 두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고통의 연속이었다. 카페에서 일어나 민규가 좋아하는 고깃집을 향했다.
일 적으로 보자면 민규의 좋아하는 음식점을 알게 되어 기뻐야 되었지만 제 지갑 사정으로 보자면 참으로 눈물이 핑 도는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일단 가볍게 꽃등심 5인분 주세요."
가볍게 꽃등심 5인분이라는 말은 저에게는 하나도 가볍지가 않았다. 분위기 좋게 인테리어가 된 고급스러워 보이는 고깃집은 딱 보아도 가격이 많이 나갈 것 같았다. 주문한 고기가 나오자 원우가 집게를 들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네 명이 함께 고기를 하나둘 무섭게 흡입하는 모습이 흐뭇하긴 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두려웠다.
"너무 우울해 하지 마시고, 일단 좀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원우는 걱정만 하고 고기를 한 점도 먹지 못하는 저가 안타까웠는지 고기를 구워 제 앞접시에 놓아주었다. 돈 걱정을 하니 눈물겨웠지만, 밥은 먹고 힘내야겠다는 생각에 눈치를 보면서 맛있게 고기를 같이 비워내었다.
어느새 주문했던 소고기 5인분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집에 갈 수 있겠구나 싶어 자리를 뜨려는 순간 승철이 그런 저를 붙잡고 다시 앉혔다.
"다 드셨으니 이제 계산 해야죠, 계산."
"무슨 소리야, 5인분으로 어떻게 배를 채워. 더 주문해야지"
"네...?"
"여기 안심 3인분 추가해주세요."
확실히 5인분 치고는 매우 적은 양이 오긴 했었지만 5인분을 다 먹으면 집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악마처럼 느껴지는 최승철 옆에 있는 제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추가된 고기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눈물 나는 가격의 고기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승철을 제외한 세 명의 힙합 팀과 몇 마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제 앞에 앉은 원우가 자신의 핸드폰을 제게 건넸다.
"너무 죄송해서 보답해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당연히, 당연히 되죠!"
괜스레 눈치가 보여 승철이를 슬쩍 쳐다보자 뭘 봐,하며 사납게 말을 뱉어냈다. 그럼 그렇지.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었다. 식사가 다 끝나고 승철을 제외한 세 명은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승철은 왜인지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저를 주시하더니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저번 일 때문에 단단히 찍힌 기분이라 서글펐다.
계산대 앞으로 가기 전까지는 솔직히 네 명 중 한명이 지불해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런 희망은 샅샅이 흩어지고 흔적도 남지 않았다. 제 월급과 맞먹는 금액을 듣고 떨리는 손을 직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일시불 말고... 12개월 할부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손님, 손에 힘 빼주실래요...?"
본능적으로 손에 힘을 준 덕분에 직원을 당황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마치 인생의 전부를 건네주듯이 소중하게 건넸다. 뒤를 돌아보니 원우와 민규와 한솔이가 해맑게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고 승철이 제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체념한 상태라서 승철이 옆에 있어도 겁이 나지 않았다. 승철은 피식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넸다.
"등신, 내라고 하니까 진짜 내네요."
"죄송하니까 사드려야죠..."
"그러게 사생 짓 하는 거 들키래요? 그것도 티 나게 옆에는 존나, 커다란 카메라 가방 메고서 있으면 누가 몰라요? 머리는 그냥 장식인가 보네요"
"..."
생각해보니 그랬다. 커다란 카메라 가방 덕분에 시선이 몰린 게 큰 미스였던 것이다.
그제야 다른 선배들이 화질이 안 좋더라도 왜 소형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닥만을 주시하자 승철이 다시 웃으며 제 핸드폰을 가져갔다.
비밀번호가 잠겨있음에도 최승철은 0526을 눌러 잠금을 해제했다. 비밀번호를 자연스럽게 푸는 승철의 모습에 수치심이 조금 느껴졌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작은 화면을 집중하여 누르더니 승철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 후 승철이 다시 제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파악이 안 되어 승철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등신처럼 쓴 돈 갚겠다고. 전원우가 연락하면 그거 무시해 내가 다 갚을 테니까요."
정신없이 돌아간 하루 덕분에 왜 악마 같던 승철이 다시 천사로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다음 화 예고 |
승철과 투닥투닥 거리는 사이 제가 오기 전 주문했던 음식들이 테이블을 메꿨다. 고르곤졸라 피자와 알리오 올리오는 군침을 돌게 했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쏘는 승철이 분명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가볍게 전하고 포크로 알리오 올리오를 먹는 것에 열중했다. "여기 내가 옛날에 종종 왔던 곳이야." "아, 전 여친이랑요?" 이런 곳에 남자들끼리 오는 것이 그다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 또한 여심을 자극하게 만드는 선율이었다. 여자친구랑 이곳에 온 게 맞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다시 포크를 들었다. 다음 화부터 5P 하겠습ㄴ미다 ㅠㅠ 죄송해요.... 글구 묘사보다 대화를 좀 더 많이 넣는 거로 수정했는데 좀 더 읽기 수월하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