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 어디가."
"...아, 그냥 요 앞에. 갔다올께 먼저 자, 우현아."
요즘들어김성규가 늦은 밤에 외출이 잦아졌다. 거의 매일, 나에게 불명확한 목적지만을 알려준 채로.
연애만 어엿 4년째. 김성규는 더이상 예전에 남우현만을 바라보던 그런 김성규는 아니였다.
만나는 사람은 여자일까, 남자일까?
형은 원래 여자를 좋아했으니까 여자를 만나려나? 아니면 남자....
더이상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나간지 얼마되지 않았으니까 별로 멀리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마치자마자 모자와 목도리만 챙겨 황급히 집을 나서 저 멀리 빠른 걸음으로 걷고있는 김성규를 뒤쫓았다.
무서웠다.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이 내 눈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두렵고 무서웠다.
김성규가 간 곳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람이 잘 다니지않는 외진 공원이였다.
그리고 지금 내 앞의 김성규는 요 근래 보기 힘들었던 밝은 표정으로 어떤 남자의 품에 달려가 안겼고, 그 모습을 나는 바보같이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할 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저기, 혹시김성규씨 애인이세요?"
김성규와 그 남자의 행동만을 멍하니 눈으로 쫓고있던 혼란 속에 빠진 나를 툭툭 치며 부르는건 나보다 키가 작은, 남자였다.
"...김성규, 아세요?"
"별로 알기싫었는데, 알게되버렸네요. 뒷조사를 하려던건 아니였는데..그쪽이 남우현씨, 맞죠?"
김성규의 이름도 안다. 그리고 내 이름도 알고있고. 나와 김성규의 사이도 알고있다.
이 남자가 우리를 뒷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뭐,죄송해요.그 쪽 애인이 제 애인이랑 바람이 났거든요."
이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가.
나 오늘 밥 먹었어, 라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애인이 바람이 났다고 말을 한다는건.
이 남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있는 것인가.
"너무 놀라실 것 없어요. 미친건 우리가 아니라 쟤네니까."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질질 짠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 남자는 미치도록 담담하고, 현실적이였다.
"그래서 전..우리 미친 두준이 정신차리라고 일을 벌일꺼거든요. 그 쪽이랑 같이."
"....무슨.."
정신이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김성규를 쫓고 있던 내 시야는 이 남자를 통해 막혀버렸다.
그리고 남자가 뱉은 말을 통해 나는 다시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바람에는 맞바람이라고...나랑 맞바람, 어때요?"
"....."
"우현씨만 그렇게 당하고있는거, 억울하지않아요? 난 엄청 억울한데."
"...그게 무슨,"
"혹시 모르죠. 갑자기 김성규씨가 정신 차려서 우현씨한테 돌아올지, 아니면 나랑 눈이 맞아버릴지. 어떡할래요?"
남자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김성규의 모습에, 무언가에 홀린듯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내 모습에 뒤를 돌아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다시 나를 올려보았다.
"제 이름을 말씀 안해드렸네요. 제 이름은..양요섭이에요."
"...남우현입니다."
양요섭이라는 남자는 활짝 웃으며 내 손을 두 손으로덥썩 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우현씨."
"...."
"아- 우현씨 잘생겨서 바람필 맛 나겠네."
같은 시각, 같은 장소.
이 곳에는, 어쩌면 미쳐버린두 남자, 아니 네남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 아니 양요섭은 내 손을 놓지 않고 서슴없이 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홀드를 풀었다.
그리고 배경화면엔, 나와 성규의 사진이 있었다.
"흥, 여우같이 생겨가지고..예쁘긴 하네요. 내가 더 예쁘지만."
한 손으로 번호를 눌러 저장시키고 다시 핸드폰을 내 주머니에 넣어놓고선 다시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모르겠다, 아직은. 내가 지금 무슨 선택을 했는지.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예상은 할 수 없겠지만.
절대로,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뿐이었다.
"보니까 내가 한살 형이였던 것 같은데..어차피 자주 만날꺼. 말 놔도 되지?"
"......아,"
"자, 오늘은 손 잡는 것 까지만. 언제 이 짓이 끝날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성규처럼, 웃음이 많은 사람이다.
닮은건 아니다 그렇지만, 성규와 많이 닮아있는 사람인 것 같다.
양요섭은 까치발을 들고 내 머리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부탁해, 우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