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시선_2014년 8월 4일
"어 재환아, 바빠?"
"지금 막 개인무대 연습 끝났어. 그런데.. 너 목소리가 좀 안좋다? 어디 아파?"
"요 며칠 컨디션이 좀 안좋았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나 괜찮으니깐 신경쓰지 말구 너 건강 관리나 잘하세요. 허리 아픈건 좀 괜찮아졌어? 약은 잘 챙겨먹고 있는거지?"
"엄마가 따로없네. 나야말로 괜찮은데, 진짜 걱정안해도 되는거야? 이따 밤에라도 들릴까?"
"야 너 올 생각도 하지마라. 피곤한데 어딜 와. 연습 끝나자마자 숙소가서 씻고 자. 알았지?"
"넌 나 안보고 싶어? 난 며칠 너 못봤다고 상사병 걸릴 것 같은데.."
"오구 그랬어, 우리 재환이? 나도 너 못봐서 심적으로 크게 무리가 오다못해 이렇게 몸살까지 걸렸잖아.. 너 그 팬미팅만 끝나면 시간 쪼개서라도 나 만나줘야 된다? 약속해!"
"오케이오케이,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거 다 생각해둬. 싹 다 하자!"
"좋아~ 아.. 그 때까지 언제 기다리지..."
"오늘이 4일이니까.. 팬미팅까지 26일 남았네. 한 달 동안 우리 윤아 또 아프면 어떡하냐.."
"난 너 보고 싶으면 언제든 영상 찾아보고 사진 보면 되지만, 넌 그러지도 못하잖아.. 혹시 내가 너~무 보고 싶거든 바로 얘기해! 늦게라도 찾아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첫 팬미팅인데 준비 잘해야지. 연애한다고 소홀히 하면 그거 금방 티나잖아."
"아 진짜, 너가 엔 형보다 잔소리 더 심하다니깐. 엄청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내 무대보고 반할 준비나 해. 나 지금도 너 엄~청 보고싶다."
"나도 보고싶다.. 점심은 먹었어?"
"아니 아직. 라비랑 밥먹으러 가기로 해서 이제 곧 나가야 돼."
"아 그렇구나. 알았어. 많이 먹구, 끊어~"
"이따 문자할게~"
아이돌과 연애하는 건 모든 소녀들의 로망만큼 달콤하진 않다. 모두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와의 핑크빛 로맨스를 꿈꾸곤 하겠지. 그런데 현실은 핑크빛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물론 우리 둘 사이의 사랑만큼은 핑크빛임이 분명하지만, 그 사이에 버티고 있는 현실이라는 밀어낼 수 없는 벽이 그 핑크빛을 다 흐린다.
길가다 흔히 볼 수 있는 손을 꼭 붙잡고 웃으며 걸어가는 연인들, 놀이동산에서 솜사탕을 들고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얼굴로 둘 만의 시간을 즐기는 연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너무 부러워서.
연예인, 그것도 아이돌과 연애를 하는 나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연애를 하면서도 연애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더 씁쓸한 건, 내 감정과 생각들을 재환이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 또 그거에 대해 항상 미안해 한다는 점이다.
재환이는 언제나 내가 우선이었다. 유명해졌다고 나의 이해를 당연시 여기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연예계 활동에 대해 나의 양해를 구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신경쓰지 말고 너의 일을 우선으로 하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해도 고집을 부리며 여전히 똑같은 재환이다.
사실 아이돌과 일반인의 연애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힘든 일이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도 몇 번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항상 그만하자고 말을 하는 쪽은 나였다. 내가 힘든 것 보다는, 재환이를 위해서, 재환이의 빅스로서의 앞날을 위해서 몇 번이고 고민한 끝에 이야길 꺼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에게 찾아와 잘 울지도 않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외롭지 않게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재환이였다.
그런 재환이를 보면서 우리의 힘든 연애에 속도 많이 상하고 가끔은 재환이가 일반인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나도 참 염치없는 년이지.. 그래서 한 번씩 우리 사이가 흔들리고 나면 내가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뭐, 재환이도 마찬가지고.
남들은 마음만 있으면 일주일에 세네 번은 데이트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2주에 한 번정도 만나면 감사해야 한다. 사실 그것도 힘들어서 우리의 데이트는 거의 전화로 한다. 멤버들한테 연애 사실을 숨겨온 재환이는 아마 이 조차도 되게 힘들겠지.
게다가 요즘은 빅스가 별하나 콘서트를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어 더 정신이 없는 것 같다. 물론 활동기보다는 여유로운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날 시간은 없다. 재환이도 못만나고 있지, 이래저래 힘든 일은 많지, 내 몸이 스트레스를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해 결국은 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엊그제부터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더니만, 결국 열이 39도까지 올라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끙끙 앓고만 있다. 재환이가 걱정할까봐 전화할 때는 최대한 발랄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는데, 눈치 못챘겠지?
아파도 남자친구한테 투정부리는 것도 한 번 못해보는 내가 조금은 안쓰러워졌다. 기분전환도 할 겸 바람도 좀 쐬고 싶지만, 지금 내 몸 상태로는 꼼짝도 못 할 걸 알기에 옆에 있던 감기약을 입에 털어 넣고 다시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잠을 청한다.
*
내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운 것이 느껴져서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다. 10시간이나 잤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열이 나서 몸이 오들오들 떨려온다. 혼자 있을 때 아프면 서럽다던데, 이게 그런 느낌이구나.
열이나서 추운 것도 모자라 온 몸이 아프고 조금도 움직일 힘이 없다. 약 말고는 먹은 것도 없는데 속도 울렁거린다. 처음엔 좀 참아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무서워진다.
딱히 연락할만한 친구도 없고, 부모님도 시골에 사셔서 연락할만한 사람이 없는데, 어떡하지.. 핸드폰의 연락처를 넘겨보다 손이 한 곳에서 멈춰섰다.
〈재화니>
12시가 다 된 시간에 전화를 하는 게 맞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12시면 연습이 끝난다는 말이 떠올라 전화버튼을 눌렀다.
"오.. 나 연습 딱 끝난 거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
"…재환아….."
재환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서러운 마음에 울음이 터져버렸다.
"울어? 무슨 일이야?"
"..."
"서윤아, 왜 그래, 말 좀 해봐."
"재환아.. 나 너무 아파. 온 몸이 뜨겁고 막 욱신욱신 쑤셔."
"조금만 기다려. 찬 수건 좀 이마에 올려놓고 있어."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린 재환이다. 온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또 괜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자책을 했다. 바로 숙소에 가서 쉬어도 피곤할텐데, 나 때문에 쉬지도 못 하게 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속상해졌다. 그냥 조용히 택시타고 응급실에나 갈 걸..
그렇게 전화하고 1시간이 지났는데도 재환이가 오지 않는다. 차로 20분이면 올 거리이고, 늦은 시간이라 막히지도 않을텐데.. 불안한 마음에 핸드폰를 들어 재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순간 전화를 잘못 건 줄 알았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재환이가 아니었고 주위는 어딘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시끌벅적했다.
"이거 이재환씨 핸드폰 아닌가요?"
"아, 혹시 이재환씨 보호자분 되시나요? 지금 이재환씨가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으셔서 지금 여기 아산병원 응급실에 계십니다. 곧 수술 들어가셔야 되니까 얼른 병원으로 와주세요."
수화기 너머의 여자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손이 덜덜 떨렸다. 놀랄 새도 없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라 황급히 젤리피쉬로 전화를 걸었다. 그 와중에 재환이에게 내가 직접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여보세요?"
"지금 이재환씨가 교통사고로 다쳐서 서울아산병원으로 실려 갔고 수술을 해야된다니 빨리,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가주세요. 빨리요 시간 없어요!!"
전해야 될 말만 하고 얼른 끊었다. 머릿 속이 복잡하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 내렸다. 어느새 내가 아픈 건 다 잊어버리고 온통 재환이 걱정이 나른 지배했다. 대체 어쩌다가 교통사고가 났는지, 얼마나 다친건지 두려웠다. 나 때문에 재환이가 다쳐서 혹시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이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들면서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병원에 가봐야 겠다는 생각에 지갑을 챙겨 아픈 것도 잊어 버리고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