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3부
10.
“왜.”
“어?”
“왜 자꾸 쳐다보냐고. 그만 봐라, 닳는다.”
공강 시간, 끝내지 못한 과제를 부여잡고 열심히 써내려가는 오세훈의 옆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서 쳐다본 건 아니다. 그렇다고 녀석이 잘생겨서 쳐다본 건 더더욱 아니고. 그냥, 난 과제도 다 하고 할 일이 없어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녀석이 눈에 들어온 거라고 하면 모를까, 일부러 쳐다보고 있었던 거 절대 아니라고. 절대로.
“신기하게 생겼길래 구경 좀 했지.”
“뭐라고?”
“못생겨서 쳐다본 거라고.”
내 말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으며 못들은 척 과제에 집중을 한다. 시비를 걸어볼까 했지만, 어차피 또 무시당할 걸 알았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 오세훈이 안 놀아주니까 심심하다. 애꿎은 의자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가 책상 위에 엎드렸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가. 시계를 보니 아직 30분이나 더 남았다. 하긴, 수업이면 뭐해. 수업 시간이라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수업이든 공강이든 다 심심하고 무료하고 재미가 없다. 이게 다 김종인이 옆에 없어서 그런 걸까. 내 예쁜 종인이는 어디서 뭐 하고 있을까. 아, 주말동안 계속 붙어 있어서 되게 좋았는데. 흐흐. 생각만 해도 좋다. 가만히 책상에 엎드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냈는지, 오세훈이 시비를 건다. 놀아달라고 장난칠 때는 못들은 척 무시하더니 이런 건 안 넘어가지.
“좋댄다.”
“아, 왜 시비야.”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내꺼 좀 대신 써 주던가.”
“내가 왜?”
“너 지금 할 일 없어서 그렇게 빈둥거리는 거 아냐. 나랑 좀 놀아주세요. 하고 앉아서는.”
“방해 되냐? 방해 되는 거 아니면 그냥 넌 과제나 하고 계셔. 난 이 여유를 즐길 테니.”
“그럴 시간에 필기나 베껴. 시험기간에 빌려달라고 지랄하지 말고.”
듣자하니, 그 말이 또 맞는 것 같은 거다. 시험을 치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 데, 그러려면 오세훈의 필기가 필요하다. 좀 있음 시험기간이다. 시험기간에 필기 빌려달라고 하면 민폐일뿐더러 오세훈이 빌려주지도 않는다. 고로, 지금 나는 한가하고. 오세훈은 과제를 하고 있으니 녀석의 필기를 내가 베끼면 되겠구나! 아이, 똑똑한 자식. 녀석의 필기를 베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녀석이 앉아있는 곳으로 걸어가, 근처에 있던 책을 꺼내어 다시 돌아와 앉았다. 그러고는 내 가방에 잠들어 있는 책을 꺼내어 펼쳤다. 와, 같은 책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뭔 놈의 필기가 이렇게 많아...토 나오겠네, 진짜.”
“수업도 안 들어온 주제에 말이 많다…. 잔말 말고 그냥 베껴.”
“세후낭 내가 완전 사랑하는 거 알징?”
“그런 토 나오는 애교 따위 저리 치워라. 난 도덕후 아니거든?”
누군 하고 싶어서 한 줄 아나. 살짝 기분이 나쁠 뻔 했지만, 말은 밉게 해도 알게 모르게 나를 챙겨주는 녀석이란 걸 안다. 그래서 그냥 한번 씩 웃고 말았다. 그랬더니 녀석이 또 그런다. 웃기는. 저거 저거, 거 되게 툴툴 거리네. 아씨. 필기나 베껴야지. 근데, 뭐가 이렇게 많아…. 울고 싶다. 흑흑.
一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에효….”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박찬열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병원이었다. 귀찮아하는 오세훈을 데리고 찬열이가 일러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인 것은, 침대에 누워있는 변백현과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박찬열이었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병원으로 오라는 말에 오긴 왔는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어이가 없어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서 있으니, 찬열이가 손을 이끌어 의자에 앉힌다.
“뭔데?”
“보다시피.”
영문을 모르겠어서 박찬열을 잡고 물었더니, 녀석이 고개를 침대 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그곳에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잠들어있는 변백현이 있을 뿐.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누가 나한테 설명 좀 해주실 분? 상황을 이해해보고자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그래봤자, 생각나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 여자 친구랑 헤어졌냐?”
정말 모르겠어서 인상을 쓰고 앉아있는데,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오세훈이 찬열의 팔을 툭 치며 묻는다. 그랬더니 박찬열이 고개를 끄덕끄덕. 그 잠깐의 고갯짓이 끝나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오세훈은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았다.
“이 새끼를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난, 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경수 넌 앉아, 세훈이 넌 어딜 가려고 그러냐.”
“야! 이 새끼 미친 거 아니야? 하다하다 이젠 병원까지 실려 오냐? 이런 미친 새끼….”
“…진정해.”
“우리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자세히 말해봐, 얘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지. 말 해보라니까?”
“아, 알았어.”
흥분해서 날뛰는 오세훈과 나를 진정시키려 애쓰는 박찬열이 짠해서라도 입을 닫았다. 씩씩거리며 누워있는 변백현과 난감해하는 찬열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녀석에게서 나올 말을 기다리며 목소리에 집중을 했다.
“…헤어진 것 때문은 아니고.”
“그럼 뭔데?”
“…….”
“…….”
“…맹장.”
뭐라고?
“변백현이 배 아프다고 찡찡거려서 술 때문인 줄 알았는데 며칠을 그러는 거야. 그래서 데리고 병원 왔더니 당장 수술을 해야 된대. 그래서 수술 한 거지, 뭐. 끝이야.”
아씨, 난 또. 술 먹고 죽겠다고 도로에 뛰어들기라도 한 줄 알았네…. 찬열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 마음 한 구석으로 변백현이 조금 찡해졌다. 그래, 백현이도 사람인데 정상적으로 아플 수도 있어. 평소에 얼마나 난리를 쳐놨으면, 녀석이 맹장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 뿐만 아니라 오세훈도. 안도감이 들어서 작게 한숨을 내쉬며 옆에 멀뚱히 서 있던 오세훈을 쳐다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랬더니, 나보다 더 흥분을 해서 날뛰던 세훈은 입을 꾹 닫고 누워있는 변백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튼, 사람 놀라게 하는 덴 뭐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아직 마취가 덜 풀려서 저러고 있는 거니까.”
“걱정은 무슨. 맹장이 뭐 별거라고 내가 쟤 걱정을 왜 해?!”
“민망하니까 괜히 그러기는….”
“꺼져.”
“어디가는데?”
“알아서 뭐하게.”
“어디 가냐고!”
“아, 화장실!”
찬열이 토닥여주자, 오세훈이 민망한 듯 자리를 뜨려고 재빨리 문 뒤로 사라진다. 그걸 지켜보며 그냥 웃었다. 아무튼, 변백현 복도 많아. 여자복은 없는 것 같지만….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니까.
“그나저나, 여기 언제까지 있어야 된대?”
“일주일 정도는 있어야 된다더라.”
“집엔 연락 드렸고?”
“지가 수술하기 전에 전화 하더라.”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리저리 고갤 돌려 김종인을 찾았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종인이가 없다.
“뭐 찾는데?”
그런 나를 멀뚱히 바라보던 찬열이가 묻는다.
“종인이는?”
“아…, 김종인 지금 바빠서 못 온대.”
“…바쁘다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수업 시간 전까지 드문드문 이어지던 연락도 안한지 오래였다. 이제 수업시간이라고 나중에 마치고 연락한다던 문자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없었다. 연락에 연연하지는 않아서 내가 먼저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수업 마치고는 찬열이 연락을 받고 급하게 병원으로 온 터라 정신이 없어서 깜빡 잊고 있었다.
길게 홀드버튼을 꾹 눌렀다. 액정에 뜬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변백현 수술했다고 말 했어?”
“응.”
“그래도 못 온대?”
“못 온다고는 안했고, 나중에 온다고….”
찬열이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습관처럼 녀석의 번호를 꾹꾹 눌러 화면을 채운 그 번호를 몇 번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너한텐 연락 없었어?”
“…어?”
“넌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말에 나쁜 상상을 하게 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一
김종인의 옆모습을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끓여준 라면을 다 먹고 식탁을 치울 때에도, 설거지를 할 때에도,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는 지금까지도.
“…왜?”
의식하지 못 할 거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인건가. 그래, 그렇지. 바로 코앞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모르는 게 바보인거지. 그런 거겠지?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던 김종인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묻는다. 그 대답에 무슨 말을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분명 내가 먼저 훔쳐본 게 맞는데, 막상 왜 그러냐고 물으니 대답할 말이 없다. 음…. 딱히 이유가 있어서 쳐다본 것도 아니었다. 대놓고 보자니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뭐…. 그래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애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 번 웃어보였다.
“왜 웃어.”
머리를 짧게 잘라서 그런가, 리모컨을 놓고 내 얼굴을 잡아오는 종인이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왜일까. 왜. 단 한 번도 네가 낯설게 느껴진 적은 없었는데.
“…못생겨서.”
“응?”
“머리 자르니까 못생겼다.”
내 말에 종인이가 피식 웃는다. 뭐, 피식? 비웃은거야, 지금? 그 웃음소리가 왠지 모르게 맘에 들지 않아서 주먹으로 그 애의 배를 툭 쳤다. 그랬더니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낸다. 그게 뭐가 아프다고. 어디서 엄살이야.
“너 못생겼으니까, 나 그냥 집에 가야겠다.”
“어딜 가.”
“집에 갈 거야.”
“너, 뭐 맘에 안 드는 거 있지?”
“그런 거 없거든?”
“근데 왜 갑자기 집에 간다고 그래...”
정말 갈 생각으로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더니 김종인이 놀라는 기색을 비추더니, 곧 내 팔을 잡아 다시 앉힌다.
“진짜 가?”
그러면서 종인이가 묻는데,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그냥 입술만 꾹 닫고 그 애를 쳐다보았다. 글쎄, 왜 일까.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다. 나도 참 웃긴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구나. 사춘기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종인이가 대답 없는 나를 바라보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내 손을 잡아온다. 가지 말라고, 못 가게 막으려고 이런다. 그 애에게 잡힌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투정부리지 말고 앉으세요.”
“…….”
“아무래도, 너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같은데?”
“…….”
“앉아서 말 하면 안 돼?”
한참을 묵묵부답으로 그러고 있었더니, 종인이가 자꾸 잡은 손을 끌어당겨 나를 앉히려고 애를 쓴다. 조금 더 버틸까 하다가 그냥 버틸 힘도 없어서 그 애가 이끄는 대로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지금 무언가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 무언가가 대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심사가 뒤틀린 게 분명한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으니 김종인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겠고. 답답하다, 답답해.
“…그런 거 없어.”
정말로 이유를 모르는 걸까. 아니면 묻기가 무서워서 그런 걸까….
백현이의 병실을 나서면서부터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범위까지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정신 빼놓고 걷지 말라던 오세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오던 길. 문득 걸려온 너의 전화에 모든 것을 잊고서 나는 또 너의 집으로 오고 말았다. 웃으며 문을 열어주고 밥은 먹었냐며 나를 걱정하던 그 목소리와, 안 먹었다는 말에 라면을 끓이러 부엌으로 향하던 그 뒷모습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거짓이 아니잖아.
“..무슨 생각해?”
“응?”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묻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 애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
“나한테 불만 있지, 너?”
“…….”
“솔직히 말해봐. 응?”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백현이 병원 안 가서 그래?”
“…….”
“좀 있다 갈 거야.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화난 거면 풀어.. 응?”
“…종인아.”
“…….”
“바빴어?”
내 머리위에 올려 진 그 애의 손을 잡아 내리며 물었다.
“수업은 몇 시에 끝났는데?”
“…….”
“이 시간에 어떻게 집에 있어, 너 원래 월요일 여섯시까지 수업이잖아….”
“…….”
“이제 겨우 여섯시야. 알아?”
“경수야 그건….”
“도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백현이 병원도 못 왔어?”
“…….”
“너 뭐 하고 있었는데.”
담아두려 했는데, 이렇게 계속 담아두다간 언젠가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커져서 그 애와 나 사이를 망가뜨리는 원인이 될까봐. 더 이상 억누르지도 못하고 결국 꺼내보이고야 말았다. 나도 모르게 숨 쉬는 것도 잊고 쏟아내었는지 숨이 찬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 애를 바라보았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숨기는 거 하나 없이 당당하게 다 이유를 말 할 줄 알았던 김종인이 말이 없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
내가 어려운 대답 들으려고 한 거 아니잖아. 물어보면 안 될걸 물은 것도 아니잖아. 변명이라도 해봐.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라고.
“종인아.”
이름을 불러도, 여전히 대답 없는 그 애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린다.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
투표하고 왔습니다!!!!!!!^0^
투표 안하신 분들 계시면 투표하고 오thㅔ요!!!!
좀 늦었죠~? 앞으로는 자주 올게요ㅜ^ㅜ!
이제 3부도 끝이 보이네요.
헣....
쎄굿빠.....
그나저나 경수야...
투..투표...했니???ㅠㅠㅠㅠㅠㅠㅠㅠ
다치면 안돼 넌 내가 사랑하니꽈...
에효..
이래저래, 참 복잡하네요.
언제나 감사한거 아시죠?
비문이나 오타 발견하시면 비댓으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ㅆㅏ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