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만약 너와 사귀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지금까지의 우리 관계를 미루어보았을 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절대 일어날리 만무한 그런 일이지만 이따금씩 떠오르던 상상을 애써 지워내지는 않던 적이.
그리고 지금에서야 그 상상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를 찾는다면, 뒤늦게서야 품고 있는 이 말도 안되는 감정이 바로 그 원인일 것이리라.
전교회장 정세운 w.리틀걸
Episode 1. 좋은 친구
내가 경험해 온 정세운은 남들보다 조금 특별했다. 쌍커풀 없이 축 쳐진, 순해 빠진 눈이라던가. 또 그와 닮은 조금은 늘어지는 발음이라던가. 할 말을 찾지 못할 때면 멋쩍은 듯 지어보이던 그 웃음이라던가. 한 눈에 봐도 " 착하다 " 라는 것을 온 몸으로 뿜어내는 그 모습과 달리 분명하고 또 강단 있는 성격은, 어쩌면 내가 널 좋아하게 된 수많은 요소들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 여주야. "
그리고 이렇게,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또한.
" 어.. 안 바쁘면 오늘 나 좀 도와줄래? "
...
정세운은 우리 학교 전교 회장이었다.
1학년 말쯤이었던가. 부산에서 우리 학교로 전학 오게 된 녀석은 전학 첫 날부터 전교생들의 큰 관심을 받았더랬다. 수도권, 그것도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우리 학교는 이전부터 주변에 위치한 이름이 같은 중학교 학생들이 큰 변동 없이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그런 학교였다. 아는 친구들이 대부분인 건 물론이거니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선배들까지 낯선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운 정도의. 그런 학교에 괜한 티비 속 망상에서나 존재하던 >경상도 남자〈 의 전학이라니. 솔직히 고작 그걸로 관심을 받기는 어려운 정도였지만 정세운의 전학 소식과 동시에 그 전학생이 꽃미남이라는 어디서 시작됐는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미담(?)이 퍼지면서 전교생들의 관심도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어이없게도 전학 온 당일 서툰 서울말씨로 "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올라온 정 세운입니다.." 어눌하게 말하던, 의아해하는 주변 반응들 속에 조용히 주변을 살피다 " 어 ... 좋네요. " 하고 엉뚱한 말을 던지던, 상상 속 인물과는 전혀 다른 녀석의 모습에 난 남들 모르게 웃음을 터뜨려야 했지만.
아무튼, 얌전한 줄만 알았던 정세운이 전교회장이 될 줄은. 솔직히 꿈에도 몰랐다. 보기와 달리 제 속에 그런 야망을 품고 있던 녀석은 현재 축제 준비로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습이다. 축제 포스터를 손에 쥔 채 " 아아.. 어떡하지. "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가 또 " 여주야, 이래 하는 게 낫나- 네가 보기는 어떤데. " 하며 맹한 표정으로 결국 내게 도움을 요청해버리는. 어떤 일이든 척척 해내던 세운이었지만, 회장이 된 후 처음으로 맡은 축제 업무는 여간 녀석의 골머리를 썩히는 게 아닌듯 보였다. 여튼 정신이 없긴 없는 모양이다. 평소 쓰던 어색한 서울말투는 어디가고 저도 모르게 사투리가 섞여 나온 걸 보면.
" 근데, 원래 회장이 이런 축제 포스터 하나까지 다 신경 써? "
" .. 어? "
"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
" 내가 보기엔 니가 쓸데없이 하는 일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싶어서. "
" 아 그런가─.. 일이 많기는 하지.. "
" 너 잠은 자긴 잤어? 요새 눈 더 쳐져보이는 건 아냐∼ "
" .. 어, 진짜? ..안되는데. "
정세운이 내민 축제 홍보 포스터 시안들을 살피며 문득 든 생각에 툭 던진 말이었는데(솔직히 아무리 전교회장이라지만 거절을 못하는 성격 탓인지 녀석에게 주어지는 업무는 온갖 자질구레한 일부터 신경써야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역시나, 정작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오히려 뒤에 이어진 눈이 더 쳐져보인다는 말에 새삼 충격이라도 받은 듯 맹한 얼굴로 제 눈가를 매만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그게 거짓말은 아닌게, 요즘 들어 부쩍 피곤한 모습들을 비추던 터라 안그래도 쳐져있는 눈이 더 쳐지게 보이곤 했다.
" 왜 웃어∼ 그렇게 쳐져 보이나.. "
" 뭐 이미 쳐진 거 좀 더 쳐져보인다고 큰 차이는 없어! "
" .... "
키득거리며 이어진 내 말에 어지간히 제 얼굴이 신경 쓰였는지 조용히 일어나 거울 앞에 서는 세운일 보며 웃음을 삼켰다. " 신경 쓰이게.. " 하며 눈가를 매만지는 모습이 재밌다. 근데 사실인 걸. 지금도 그렇게 눈이 쳐졌잖아.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려내자 정세운은 그런 날 보고 " 아, 웃지마아. " 하며 말을 늘였다. 이젠 그런 모습이 또 귀여워 보여 더 놀리고 싶은 걸 보면 정말 나 중증이구나 싶다. (한숨)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절레 한 번 젓고는 다시 자리에 앉은 세운이와 축제 포스터와 관련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그렇다고 또 내가 디자인 쪽에 눈이 밝은 건 아니라 내 말이 정세운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해주는 내 조언에 세운인 새삼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가며 말을 경청했다.
" 아... 끝났다. "
" (짝짝) 수고했다!!! "
" 고마워 여주야 진짜, 덕분에 수월하게 끝냈어. "
"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
" 아냐. 혼자 정했으면 고생했을 건데.. "
" 뭐 그렇게 고마우면, "
" .. ? "
" 나중에 밥 쏘던지! "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며 " 정세운이∼ 쏜다! 콜? " 양손으로 빵야 하는 손모양까지 만들어보이자 쳐진 눈을 크게 떠보이며 놀란 눈을 하던 녀석은 이내 못말린다는 듯 " 콜. " 하고 웃음을 띄웠다. 아싸! 정세운 만세! 공짜밥을, 그것도 정세운에게 얻어먹게 되다니. 차오르는 기쁨에 나도 모르게 " 예!! " 소리치며 두 주먹을 쥔 채 팔을 들어올려 좋아라 하는 모션을 취하자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세운인 " 이번 주 주말에 연락할게. 대신, 너 먹고싶은 거 생각해와. " 라고 말했다.
" 진짜? "
" 응. 진짜- "
" 헐, 나 비싼 거 얻어 먹는다 그럼? "
" (끄덕) 얼마든지. "
뭐야.. 설레게..
평소같았으면 비싼 거는 곤란하다며 진지한 얼굴로 이런저런 안되는 이유들을 늘어놨을 것이 분명한데( 그럼 또 당황한 나는 장난이라고 손사레쳤을 것이다. 이어진 대답은 " 나도 농담인데.. " 였을테지만.. ) 어쩐지 예상치 못한 답변에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솔직히 말하면 단 둘이 주말에 학교가 아닌 밖에서 따로 만나 저녁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매우 설레는 일이었다. 차마 그런 감정을 내색할 수 없을 뿐이지.. 저건 분명 그런 내 마음을 약간의 눈치조차 채지 못했을 거니까. 그렇지않고서야 매번 저렇게 다정하게 대해줄 수 없지..
" 집에 가자. 데려다줄게. "
아.. 정말 내가 어쩌다 이 만인에게 다정한 정세운을 좋아하게 되서.. 안봐도 마음 고생할 앞날이 훤하다. (울컥).. 넌 언제쯤 눈치 챌까. 이제 난 너와 좋은 친구로만 지낼 수 없다는 걸. 그걸 알아채는 날엔 분명 곤란한 얼굴로 내가 상처라도 받을까 저가 더 안절부절 미안해 하겠지. 어으, 진짜 안봐도 뻔하다. 뻔해. 하여간 지나치게 착해 빠진 정세운.. 근데 난 그건 싫은데.. 그러니까 아마 조금만 더 네 옆에 친구로 남아 있어야겠지.
" 엉- 가방 싸고 나올테니까 1분만 기다려! "
" 천천히 해. 기다릴테니까. "
" ...응! "
딱 지금처럼만.
**
에필로그 (ver. 세운) |
* 그는 소심했다 *
kakao talk [ 재환아 ] [ 왜 ] [ 내 눈이 그렇게 쳐졌어? ] [ ? 갑자기 뭔 ] [ 아니야.. ]
[ 그럼 쳐졌지 안쳐졌냐 ] 탁 -
액정 화면에 표시 된 재환에게서 온 메세지를 확인한 세운이 작게 한숨 쉬며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려놨다. 그리곤 후회했다. 괜히 김재환에게 물었다고. 아니, 그래. 쳐진 건 쳐진 건데.. 요즘 더 쳐져 보일 건 또 뭐냐는 거지. 몇 시간 전 여주가 제게 툭 던진 말을 떠올리며 가만히 거울 앞을 서성이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확인한 세운은 눈을 조금 크게 떠보였다. 이러면 좀 안 그런가. 물론 변화는 없었다. 삐죽, 제 눈꼬리를 손으로 한 번 올려본 세운은 제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자고 일어나면 좀 낫겠지.
( 안타깝게도 그 생각마저도 세운에게 변화를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다음 날, 재환의 놀림만을 선사했을 뿐.. 그리고 그는 다짐했다. 다시는 재환에게 이런 일로 연락하지 않으리라.. )
- feat. 똑땽한 세운이
|
**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왠지 작가의 말 이라고 해두니 부끄럽네요 .. 전교회장 정세운을 연재하게 된 작가 리틀걸입니다! 처음 인사드리네요(ㅎㅎ)! ( 참고로 작가 이름은 원래 다른 걸로 하려했으나 이미 사용 중이라 급하게 지어봤어요.. )
빙의글 연재가 처음은 아니지만, 프로듀스 연습생을 주인공으로 연재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하.. 실은 이 글은 전교회장을 설정으로 했던 세운이 영업글을 보고 시작하게 된 글이에요. 그 글과는 분위기나 내용이 다르게 진행되지만 소재 및 설정을 거기서 따왔다고 보시면 될 거 같네요 ( 아마 제 글이 더 재미가 없을 거에요.. )
이미 말을 많이 한 거 같지만 주저리 너무 긴 말을 늘어놓지는 않을게요(..)
연재 주기 는 아마 1~2주 정도 될 거 같습니다.
워낙 장편 연재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 스토리 흐름이 지루해지거나 쳐질 수 있으니 그럴 땐 제게 분위기 업을 요청해주세요 흑..
슬럼프가 올 때는 단편 연재를 좋아해서 중간중간 단편 이 연재될 수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멤버 및 소재 요청 도 받습니다. 물론 제가 성격 파악이 된 연생들 위주로 진행될 터이니 원하는 연습생이 아니어도 이해부탁드려요 ( 요청은 댓글로! 언제든지! 편하게! 해주세요!)
* 암호닉 신청 은 한동안 계속 받습니다 * 신청 시 댓글에 [] 〈- 괄호로 표시만 해주시면 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그럼 모두 안녕히주무세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