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예찬 w.셜록 " 찬열아, 나는 이제 사내에 눈이 먼 미치광이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되겠구나. " " 폐하, 아니옵니다. " 검은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해야 하느니라. 자비로운 선왕의 목소리가 귓가를 매섭게 내리쳤다. 종인이 참을 수 없음에 두 귀를 막았으나 이미 귀를 타고 들어온 말은 어지러운 머릿속을 잔뜩 훑고 급기야 공허한 마음속을 한참이나 헤집어놓고 나서야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노라, 애써 자신을 합리화했다. 이제 경수 너 없이는 무엇도 아닌 나를 위해서다. 그런 너를 잃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다. 너를 지키는 것이 곧 나를 지킴이니 나는 배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자신을 다독인 말들은 꽃조차 흔들지 못하는 미풍처럼 그 효력이 얼마가지 않았다. 공중에서 흩어진 단어들이 안쓰럽게 나풀거렸다. 종인이 쓰게 웃었다. 헌데, 그마저도 지키지 못 했으니 나는 폭군인게지. 여전히 누워있는 경수를 지키고 선 종인이 마른 세수를 했다. 잔뜩 튼 입술이 까끌거렸다. 이내 얼굴을 감싸 쥔 두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명 두 손은 말끔한데도 자꾸 핏빛 잔상이 아른거렸다. 자신이 이 두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 물론, 처음은 아니었다. 종인이 5년이 채 되지 않은 날들 중 하나를 회상했다. 그것이 상당히 꺼름직한 기억이라 종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칭송받는 선왕이었던 자신의 아비를 죽인, 황제 직속 군대를 이끌던 외삼촌. 멋 모르고 그 장면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역시 그의 손에 죽어나간 자신의 어미. 이 나라를 지배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던 자신을 찬열과 함께 인적없는 산으로 쫓아낸 것. 무보다는 문을 좋아했던 아비에게 건네받은 것이 칼을 잡는 자세에 대한 것이었다면, 찬열은 제게 칼을 놀리는 법을 일렀다. 물론 제가 주군을 지켜드릴테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할때는 무조건 배를 찌르시되 손목을 비트셔야합니다. 근육이 수축할 때 그대로 찔러 넣으신다면 칼을 다시는 못 빼낼지도 모르니까요. 제게 단호한 얼굴로 말하던 어린 날의 찬열이 눈앞에 선명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째 되던 해, 자신의 아비가 죽은 것과 같이 외삼촌에게 칼을 찔러넣었다. 그것이 처음이었고 또한 마지막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하는가. 주인없는 물음에 구름이 가려 하늘과 경계가 모호해진 달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 …나를, 원망하느냐? " 늘 찬열에게 묻고 싶었던 물음을 이제야 던졌다. 대답 없는 찬열을 보며 종인은 그것이 곧 긍정임을 알아차렸다. 준면의 목을 베기 직전, 그가 무슨 말을 했더라. 이미 해답을 알고 계신 폐하께서는 대체 무엇이 두려우신겁니까. 준면이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며 나지막히 던진 물음이었다. 종인은 그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나는 진정 해답을 얻었던가. 아니, 무엇보다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 실은 모두 알고 있는 주제에 떨리는 눈을 한채 강하게 부정했다. " 나는 이 나라의 황제다!!!! 두려운 것 따위 없단 말이다!!!!! " 종인이 악을 쓰듯 내지른 말에 준면이 올곧은 눈을 하고 종인을 바라보았다. 마치 옷이 벗겨진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서있는 것처럼, 마음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것 같은 기분에 종인이 칼을 들어 그의 목을 내리쳤다. 칼이 우는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갈랐다. 준면의 머리가 바닥위를 구르고. 그리고, 그리고…. 종인이 고개를 흔들어 기억을 떨쳤다. 눈 앞에 있는 경수를 바라보았다. 너도 내가 두려우냐, 경수야. 너로 인해 손에 기꺼이 피를 묻힌 내가 두려워? 나는, 너를 사랑하는 내가 점점 무서워지고 있다. 경수의 말간 얼굴을 보다 이내 자주빛 이불을 끌어올려 그의 머리 끝까지 덮어버렸다. 이리 해놓으니 마치 죽은 사람같았다. 너는 눈을 감았어도, 아름답고 고운 것들만 보거라. 중얼거리듯 이야기한 종인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몸을 돌려 찬열을 바라보았다. 길게 길러 왼쪽으로 넘긴 머리가 거슬렸다. 찬열이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음에 종인은 괜시리 웃음이 났다. 이미 알고있구나, 싶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종인이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댔다. " 괜찮다. 마음껏 원망하거라. 내 윤허하마. " 말을 끝마친 종인이 일어났다. 찬열은 배를 움켜잡은채 쓰러졌다. 준면의 피가 눌러붙은 칼에 또다시 핏물이 씌였다. 찬열이 기침을 할때마다 그의 입에서 묽은 핏덩이가 쏟아졌다. 그것은 종인의 금빛 비단을 섬뜩하게 적셨다. 종인이 찬열의 점차 탁해지는 한쪽 눈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손목을 비틀어 손쉽게 칼을 빼내었다. 칼을 뽑은 자리에서 쿨럭이며 피가 새어나왔다. 상당한 양의 피를 흘린 찬열의 몸이 결국 쓰러졌다. 둔탁한 소 리를 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몸은 다시 일어날 줄을 몰랐다. 종인이 자신의 손에 들린 칼을 방 한구석으로 집어던졌다. 자꾸 다리가 풀렸다. 종인이 일어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끝내는 주저앉기 일 쑤 였다. 결국에는 종인이 기어서 경수의 앞으로 다가갔다. 손이 덜덜거리며 떨렸다. 그제야 코끝을 찌르는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종인이 두려움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찬열을, 죽였다. 피가 덕지덕지 묻은 손으로 이불을 끌어내리고는 하얀 경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깨끗한 양볼에 새빨간 손자국이 났다. 종인이 아차, 싶어 정신없이 자신의 소매자락을 잡아당겨 경수의 얼굴을 닦았다. 고운 비단에 피가 스며들었다. 종인이 경수의 얼굴에 묻은 것을 닦아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맡는 피냄새가 영원히 자신을 쫓을 것만 같았다. 찌릿, 하는 아픔과 함께 입안에도 축축한 무언가가 가득 찼다. 입술이 터져 피가 찔끔거리며 새어나왔다. 그 맛이 너무나도 생경해서 종인이 기어코 울어버렸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르고 종인의 얼굴을 흥건히 적셨다. 턱턱 막히는 제 가슴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몸의 고통이 마음의 상처보다 못함에 종인은 서러워졌다. 종인이 더듬더듬 바닥을 짚으며 여전히 목이 잠긴 소리를 냈다. 수야, 경수야. 종인이 경수의 앞에 무릎을 꿇은채 앉았다.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경수에게 소리쳤다. " …나 김종인이, 이 나라의 황제로써 명한다! " 종인이 눈물을 닦을 생각은 않고 목소리를 더욱 크게 했다. 너는 여전히 꿈꾸고 있구나. 그래, 그 꿈 속의 어디를 노니더라도 내 목소리가 들리게 크게 소리쳐주마. 너는 깨어있을때에도 내 명을 거역하지 못했으니 누워서도 마찬가지겠지. 내 목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어야한다. 알겠느냐? 꾸역꾸역 솟구치는 설움을, 남사스러운 줄 모르고 터지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종인이 소리쳤다. 경수야, 이 나라의 황제로써 명하노니. " 나를!!!!! " " ……. " " 나를!! …사랑해라! "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종인이 오열했다. 제 몸에 있는 물이란 물은 다 빠져나오고 난 후에야 종인의 울음이 점차 작아졌다. 젖은 얼굴을 한 종인이 고개를 숙여 경수에게 짧게 입을 맞췄다. 일어나지 않는 제 연인을 보며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종인은 웃었다. 울음섞인 웃음이 제 귀에조차 버겁게 들렸다. 종인이 자리에서 비틀대며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으려는 것을 겨우 벽으로 지탱하고 섰다. 차갑게 식은 찬열의 몸뚱아리를, 종인이 넘어갔다. 원래의 빛이 그런 것 마냥 피가 굳어 갈색과 같은 칼을 종인이 힘겹게 주워들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 관없이 여전히 부들거리는 손으로 문을 열자 피를 온몸에 두른 자신을 놀라 쳐다보는 종대가 보였다. " 아무래도 새로운 호위무사가 필요하겠지 싶구나. " " 예. 알겠사옵니다, 폐하. " 종인이 방안을 빠져나왔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음에도 여전히 피비린내가 났다. 우스웠다. 문을 닫기 전, 문틈새 로 보이는 경수를 종인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가여운 나의 연인. 나는 영원히 잠든 너를 볼지언정 다른 이의 입맞춤으로 깨나는 너를 볼 자신이 없다. 너의 마음속에, 나 아닌 다른 사내가 있음을 알고 싶지 않다. 종인이 달을 힐끗 쳐다보았다. 저 달이 한껏 차올라 내가 너를 처음 본 그 날처럼 휘영청하게 떠오를때, 그 때 다시 너를 깨우러오마. 그러면. 잘자거라, 나의 경수야. 달빛보다 아름다운 너를, 내가 진정 연모하고 있느니라. 경수의 방문이 닫히고 종인은 자리를 나섰다. * * *역시 시대물은 아련한 맛이죠^0^!그나저나 경수는 메인이면서 말 한마디가 읍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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