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달랑달랑 검은 봉지를 쥐고 흔들던 지호가 제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비둘기만 가득했던 공원이 사람들로 가득했었다. 그것도 남자들로. 지호가 꿀꺽 침을 삼키고 살금살금 백스텝을 밟았다. 지호는 자기도 남자인 주제에 남자를 혐오하였다. 전 여자친구가 지호가 친구(박경.오이)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것을 보고 게이같다는 이유로 차버린 후, 그 충격으로 지호는 남자와 몸이 닿는 것을, 한 공간에 단 둘이 혹은 남자들 끼리 있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씨바, 이게 무슨 게이같은 상황이야. 백스텝을 밟던 지호가 제자리에 멈춰서곤 작은 두 눈을 부릅 떠선 공원을 휙, 휙 둘러보기 시작했다.
“ 이게, 대체 …뭐야. ”
안타깝게도 지호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까지 남자로 꽉, 꽉 차있었다. 지호는 빨간 츄리닝 바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라면을 사고 남은 돈을 꺼냈다. 천…십원! 씨발! 천 십원 이라 하면 택시는 물론, 버스도 타지 못 할 돈이였기에 지호는 좌절했다. 지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 모인 남자들은 게이가 아니다, 이 게이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이 사람들은 산악 동호회다, 나에게 관심따위 없다. 제자리에 멈춰 후, 하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던 지호의 앞에 분홍색 쫄쫄이 상, 하의를 입은 얄상한 남자가 엉덩이를 흔들며 지나갔다. 맞다, 게이. 게이들이다!! 게이가 나타났다! 여의도 공원에, 씹게이들이 나타났다!
“ 제 1회 솔로게이대첩! 제가 호루라기를 불면 시작합니다. ”
방금 전 지호의 앞을 지나간 분홍색 소시지 같은 옷을 남자가 큰 목소리로 외치자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물론 하얗게 질린 지호만 빼고. 피해야한다, 도망가야한다. 지호가 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그나마 남자가 적게 있는 곳을 찾기 위함이였다. 삐익! 하고 호루라기 소리가 어떤 소리보다 크게 들려왔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마자 지호가 미친듯이 한 곳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남자들이 지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지호는 으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남자들의 손을 쳐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달리면 차도가 나온다. 여의도 공원을 벗어난다! 게이월드를 벗어난…….
“ ……. ”
“ …아, 괜찮아요? ”
“ ……. ”
“ 세게 찧은 것 같은데, 괜찮아요? 어디 봐요. 빨갛네. ”
씨발. 남자가 들고있던 나무 상자와 부딪힌 지호가 공원 바닥에 누워 질끈 눈을 감았다. 아아…, 난 끝이야. 난 게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 지호의 귓전에 자신의 머리칼을 넘기며 이마를 살펴보는 남자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마에 닿는 손길이 생각 외로 기분 나쁘지 않아서 지호는 더 기분 나빠졌다. 차갑지도, 따듯하지도 않은 미지근한 손이 몇 번이고 지호의 머리칼을 쓸어넘겨 발갛게 물 든 이마를 만지는데도 지호는 가만히 누워있을 뿐이였다.
“ 창피해서 못 일어나는 거 라면 걱정마요. 우리 둘 밖에 없어요. ”
그게 더 위험하잖아요, 게이새끼야! 라고 소리치는 대신 지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깜깜했던 시야가 점점 밝아지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모습도 보였다. 아. 의외로 잘생긴 남자의 모습에 깜짝 놀라 지호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런 지호의 행동에 남자가 놀란 눈으로 지호와의 거리를 더 좁혀 지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마에 닿아오는 손길이 부담스러웠지만 지호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잘생긴 사람들은 여자친구가 있거나, 다 게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구나. 지호가 계집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내려 남자를 쳐다봤다. 지호를 향해있던 남자의 시선과 지호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 정말, 괜찮아? ”
“ …아, 예. ”
“ 아무 말도 안 하길래 놀랐네. 혹시나 머리가 다친건가 하고. ”
“ …아, 예. ”
“ 자, 네 거 맞지? ”
“ …아. ”
남자의 큰 손에 쥐어져 자신에게 건내지는 라면이 든 검정 봉지가 지호는 왠지 부끄러워졌다. 남자가 씨익 웃으며 잡고 일어나라는 듯 제 손을 지호에게 건냈다. 아…. 지호가 가만히 남자의 손을 바라봤다.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지호를 바라보자 그제서야 지호가 남자의 손을 살짝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서있는 지호를 보며 웃던 남자가 허공에서 자신의 몸을 툭, 툭 털어내는 제스쳐를 취했다. 멍하니 남자의 그런 행동을 바라보고 있던 지호가 그제서야 아! 하며 흙밭에서 넘어져 더러워진 자신의 츄리닝을 털었다. 무릎을 툭, 툭 털던 지호가 자신의 엉덩이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에 깜짝 놀라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 ……아, 미안. 여기도 먼지가 있길래. ”
진짜 미안하다는 듯 두 손을 어깨높이까지 들곤 자신을 향해 사과하는 남자를 본 지호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여기에 있는 걸 보면 또…. 혼자 무언갈 곰곰히 생각하던 지호가 자신과 비슷한 키의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 있잖아요, 혹시 그 쪽 게이예요? ”
“ …갑자기 웬…. ”
“ 저기. 완전 게이 소굴이잖아요. ”
“ 너, 완전 실례인데. ”
“ 아니면 다행이고. 그 쪽도 초면에 반말 하는 거 완전 실롄데. ”
자신의 물음에 인상을 구기며 대답한 남자가 지호의 말에 작게 웃어보였다. 그리곤 남자가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자신의 키와 비슷한 지호를 보며 물었다.
“ 너 나보다 어릴 것 같은데. 몇 살인데? ”
“ 스물 둘. ”
“ 나 스물 여섯이야. ”
“ …아. ”
지호가 고개를 숙이며 제 손을 꼼지락 거렸다. 그렇게 나이가 많을 줄을 몰랐는데. 그런 지호를 보며 웃던 남자가 제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지호에게 건냈다. 지호가 남자가 건낸 휴대폰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남자가 답답하다는 듯 네 번호 하고 짜증섞인 말을 내뱉었다. 지호가 허둥대며 휴대폰을 건내받곤 꾹, 꾹 제 휴대폰 번호를 입력했다. 그런데, 남자가 이렇게 남자한테 번호따는 게… 일반적인 일인가? 지호가 군 말없이 휴대폰 번호를 찍으면서 생각했지만 어쨌든 남자는 게이가 아니므로 좋은 마음으로 휴대폰을 다시 남자에게 돌려주었다. 남자가 휴대폰을 건내받고 몇 번 화면을 터치하더니 다시 제 주머니 속으로 휴대폰을 쏙 넣었다.
“ 언제 밥 한 번 사줄게. 너 이마 아직도 빨갛다. ”
남자의 말에 지호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아무 거리낌 없이 허허 바보같이 웃어보였다. 사실 남자가 게이대첩을 주최한 사람이란 건 꿈에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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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내려 했는데 뒤에 게이 지훈이랑 호모포비아 지호 얘기 보고싶어서..T.T
맨날 보기만 하다가 첨 써보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