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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이스트/프로듀스101/김종현] 최면술사 (上) | 인스티즈 

 


 

 

최면술사 (上) 

"눈 감고, 셋만 세면 다 잊어버리는 거야." 

w. 랑두 


 


 


 

지독한 관심이었다. 생판 남의 이야기일 뿐인데 왜들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새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나는 거의 모든 학생이 알고 있는 유명인사가 됐다. 이동수업을 받기 위해 교과서를 가지고 복도로 나가면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그 시선이 너무 견디기 싫어서 아프다는 핑계로 이동수업을 빼먹고 교실에 엎드려 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쟤 걔잖아, 중학교 때 존나 놀다가 작년에 사람 하나 죽이고 강전 온 애.' 

'아, 그게 저 애였어?' 

'미친년. 난 쟤가 저렇게 사지 멀쩡하게 걸어다니는 것만 봐도 무서워.' 


 

어쩌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푹 떨구었다. 결국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반박해봤자 내 양심에만 해가 될 거라는 걸 알아서. 벌 받아 마땅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건 뭐 적응되지도 않잖아. 하루가 멀다하고 울면서도, 나에 대해 떠들어대는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반박으로 매일 이를 악물고 학교에 나갔다. 그리고 그날은, 매일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도 유난히 지독한 날이었다. 


 

*
 


 

"씨발년아 입 안 열어?  그 새끼 어딨냐고. 사람도 죽인 년이 의리 있는 척은 혼자 다 하고 있어, 재수없게." 

"…." 

"그냥 냅둬. 걔 대신 얘한테 시키면 되지, 뭐하러 귀찮게." 

"와, 너네 우정 눈물 난다 진짜. 굳이 셔틀을 자처하네 이 년이?" 

"…?" 

"담배 사 와. 민증 내놓으라면 쌔벼오던가 알바생도 죽이고 가지고 나오던가." 


 

결국에는 한다는 소리가 이거다. 저 애들은 어차피 교복 입고 당당히 들어가도 담배가 뚫리는 가게 몇 군데를 알고 있을 테고, 이딴 짓을 시키는 건 그저 허세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차마 대꾸하지 못했고, 그럴 처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녀석들에게 응해 주기도 싫어서 나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눈에만 힘을 줘 노려보는 편을 택했다. 기어코 짝 소리와 함께 뺨을 한 대 세게 얻어맞았고, 고개가 팍 돌아가는 순간, 수위아저씨가 등장한 덕분에 겨우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부어오른 뺨이 욱신거렸다. 집에 소독약은 있으려나. 집까지는 삼십 분쯤을 더 걸어야 했지만 오늘따라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렸다. 결국 중간 지점쯤 와서는 벤치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막상 그렇게 앉고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무리 참아봤자 주체할 수 없겠다 싶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더니 교복치마가 조금씩 젖어 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눈물은 진작에 멈췄는데 고개를 들지 않고 있다가 깜빡 잠들었던 것도 같다. 아까까지만 해도 날이 밝았었는데 어느새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살며시 눈을 떴다가 내 앞에 있는 인영에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했다. 벤치 바로 앞에 누군가 양팔로 무릎을 감싸안은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누구세요?" 

"아프겠다. 맞은 거야?" 

"네?"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동안 멍해졌다. 벤치에서 울다가, 잠깐 졸다 일어났더니 낯선 남자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건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오늘의 일과를 아침부터 되짚고 있는데 그가 끙차, 소리를 내며 일어나더니 입고 있던 후드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뭘 찾는 건가 했더니 이윽고 연고와 반창고를 꺼내든다. 


 

"자주 발라야겠다. 금방 안 낫겠는데." 

"저기요. 저희 집에도 연고 있는," 

"시간 날 때 돌려주러 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한 그가 살짝 웃었다. 뭐라 반박할 새도 없이 몸을 휙 돌려 멀어져간다. 좋은 의도였던 건 알겠지만 나는 이런 식의 관심에 익숙하지 않다. 어떤 반응을 해줘야 될지도 모르겠고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감이 안 잡힌다. 무엇보다, 돌려주라더니 연락처도 직장이나 학교도 안 가르쳐 주면 어쩌자는 건데. 결국 그냥 주겠다는 거 아닌가.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교복 치마 주머니 깊숙한 곳에 연고를 찔러 넣었다.
 


 

* 


 

그의 명함은 필통 속에서 발견되었다. 솔직히 처음에 필통을 열고 좀 놀랐다. 생전 처음 보는 반듯한 종이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고, 앞면에는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이, 뒷면에는 깔끔한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 명함을 어제 그 사람의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도 이 손글씨 때문이었다. 근데 왜 이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필통 속에 들어 있냐고. 아니, 내가 잠깐 조는 사이에 필통에 넣어놓고 갔을지도 모르지.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 단정지은 순간 그 사람은 벤치에서 조는 모르는 여고생의 가방을 뒤져서 필통 속에다 명함을 넣어놓은 천하의 쓰레기가 됐다. 


 

김종현. 생김새와 어울리는 이름이다. 뒷면에  쓰인 손글씨 역시 그의 단정한 외모와 잘 어울렸다. 다 나으면 이 주소로 연고 돌려주러 와. 바쁘면 안 와도 상관없고.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짧은 듯하면서도 다정한 말투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경계심이 허물어지는 거지. 신종 유괴 수법일지도 모르잖아.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도 무의식 중에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연고를 만지작거렸다. 


 

"아!" 

"00야. 어제 시발, 타이밍 죽여줬지? 그치?" 

"" 

"살인자는 좀더 벌 받아도 되는데. 인정하냐?" 


 

어제의 양아치 녀석들이 다시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교실 의자에 못 박힌 듯 꼼짝 않고 앉아 있었는데도 굳이 교실까지 찾아와서 저런다. 반 아이들은 그저 수군거림의 대상일 뿐이었던 내가 어느새 괴롭힘의 대상이 된 걸 눈치채고는 저들끼리 속닥거렸다. 관심병자 새끼가 굳이 윗층 교실까지 올라와서 저 지랄을 떨어 줘야만 속이 시원하냐. 마음 같아서는 온갖 비속어를 다 섞어 가며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학교생활만 더 힘들어질 게 뻔했다. 


 

"대답 안 해?!" 


 

쾅 소리와 함께 녀석이 내 책상을 발로 찼다. 발길질 한 번에 책상은 모래성이라도 되는 듯 힘없이 넘어졌고, 그 위에 있던 물병이며 문제집, 필통 등이 쏟아지며 내는 요란한 소리에 그나마 잠들어 있던 아이들도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시선을 고정시켰다. 항상 느껴왔지만 관심 받는 거 진짜 좆같아. 입술을 꽉 깨물며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클 법한 녀석을 똑바로 올려다봤다. 


 

"뭘 노려봐. 눈 깔아 썅년아." 

"" 

"귀 없냐? 눈 깔라고!" 


 

짝, 또다시 선명한 소리와 함께 뺨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직 어제 맞은 상처도 아물지 못했는데 같은 곳을 맞으니 찢어질 듯 아렸다. 지독한 새끼. 내가 이렇게 대놓고 괴롭힘당하는 걸 처음 본 아이들은 대부분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작년에 올해의 모범학생 상을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수상했던 소문난 우등생인 반장까지도 녀석을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긴 말렸다가 자기까지 휘말리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닐 테니 이해한다. 걔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이 순간 뺨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너무 심한 건 사실이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선생님 좀 불러 줬으면 좋겠는데. 


 

"이 년이 끝까지 대답 안 해. 야, 옥상으로 따라와." 


 

녀석이 그렇게 말하고는, 교실 문을 발로 쾅 차더니 요란하게 퇴장했다. 따라갈 생각은 쌀 한 톨만큼도 없었고, 그렇다고 반 애들이 다 보는 교실에서 녀석의 말을 당당하게 거역했다간 뒷일을 감당 못 할 걸 알기에 나는 차라리 가방을 들고 그대로 학교를 나가버리는 편을 택했다. 옥상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지. 니들이 나를 죽여팰 준비를 하고 있든 아니든 오늘은 내 그림자도 못 찾을 거다, 시발. 물론 그건 내 나름의 자기합리화였다. 무서워서 도망치는 거라는 말은 끝끝내 하지 못했다.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왜 벌써 왔느냐고 물어올 게 뻔했기에 나는 그냥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애초에 거짓말을 하면 다 티가 나서 엄마에게는 뭘 숨길 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 게 명함이었다. 아까 필통에서 발견하고는 주머니에 넣어뒀었지, 아마. 여러모로 수상한 사람이긴 했지만 차라리 잘못 걸려들어서 죽임을 당하는 게 이 좆같은 생활을 계속 이어가는 것보다 낫겠지 싶었다. 결심을 굳혔다. 명함에 적힌 주소는 마침 그 근방이었고, 나는 명함 귀퉁이에 그려진 간단한 약도를 보며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 


 

"실례합니다…." 


 

서커스장 같기도 하고, 타로카페 같기도 하고. 빌딩이라던가, 아무리 초라해도 아파트 상가쯤은 될 줄 알았는데, 찾아간 곳은 빼곡한 빌딩숲도 아니고 아파트 단지도 아닌, 그냥 길 한복판이었다. 허한 도로 끝에 떡하니 자리한, 빨간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천막. 어찌 보면 크리스마스 날 나눠주는 지팡이 모양 사탕을 연상시키도 하는 색이었다. 아무리 '최면술사'라고 해도 정말 여기란 말야?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확인했지만 약도에 표시된 곳은 틀림없이 이곳이었다. 


 

천막을 살짝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드리워진 천막을 삭 가르기만 하면 내부가 훤히 드러나는 개방적인 공간이다. 주황빛이 도는 조명 아래 미세한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게 눈에 보였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먼지들은 공기 중에 이리저리 휩쓸렸다. 밖에서 보기에는 조그마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내부가 엄청나게 넓다. 처음 보는 무늬가 새겨진 독특한 가구들이 즐비했다. 바닥에는 먼 옛날 아라비아 왕실에서 썼을 법한, 한마디로 알라딘의 마법의 양탄자 같은 카펫이 깔려 있다. 천막 주제에 구석에는 작은 문도 있었다. 물론 그 문 역시 평범한 문과는 달리 안에 뭔가 엄청난 것을 보관하고 있을 법한 아우라를 풍겼다. 


 


 

"안녕." 

"-!!" 


 


 

독특한 내부에 정신이 팔려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분명 아까는 아무도 없었는데, 언제 온 건지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비명이라도 지를 뻔했네. 잔뜩 흔들리는 눈동자로 두어 걸음 물러나는 날 보며 김종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편한 옷을 입고 있던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검은 와이셔츠에 검은 슬랙스 차림이었다. 이런 직업에도 유니폼 같은 게 있는 건가. 


 

"놀래킬 의도는 아니었는데, 미안." 

"어, 어디서 나온 거예요?!" 

"응? 아, 저기서." 


 

그가 가리킨 건 아까 봤던 독특한 무늬가 새겨진 문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뭔가 신비한 광경이 펼쳐질것 같았는데 기껏해야 사무실 정도였나 보다. 꽤 낡은 문 같아 보였는데 열 때 끼익 소리 하나 안 나는 걸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멀쩡한가보다. 하긴 문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가구들이 새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골동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거쳐간 듯한 가구들이었다. 


 

"근데 너, 내가 다 나으면 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

"하물며 더 심해졌네. 또 맞았어?" 


 

부어오른 뺨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의 시선을 나도 모르게 피해 고개를 떨궜다. 깜빡하고 있었네. 지금 내 꼴이 누가 보기에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을 텐데. 볼이 더 따끔거리는 것 같다. 더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한 손을 들어 볼을 감싸자 김종현이 내 손을 잡아 내렸다. 


 

"자꾸 만지면 세균 들어가." 

"명함 어떻게 준 거예요?" 

"뭐?" 

"필통에 들어 있었잖아요. 필통은 가방 속에 있었고. 변태예요? 고등학생 가방 뒤져서 뭘 어쩌려고?" 


 

화가 난 건 아닌데 언성이 높아졌다. 정말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어떻게든 내 얼굴에서 화제를 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조금 신경질적인 내 목소리에 김종현은 당황한 듯 잠시 눈동자를 데굴 굴리다가 잡고 있던 손을 그대로 당겼다. 어어, 하는 당황한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푹신한 소파에 거의 다이빙하듯이 앉게 됐고, 그를 쳐다보는 내 눈에는 어이없음과 황당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 치료부터 하자." 

"네?" 

"잠시만 앉아 있어. 소독할 거 가져올게." 


 

반박할 새도 없이 문을 열고 쏙 들어가 버린다. 허, 참, 진짜 기가 찬다. 헛웃음을 내뱉으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더럽게 편하긴 하네. 푹신하고 따뜻한 소파에 이렇게 파묻혀 있자니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잠이 몰려온다. 눈을 잠시 감았다가 반짝 떴다. 근데, 원래 이 자리에 이런 소파가 있었던가? 분명 아까 천막 내부를 둘러보고 가구 하나하나에 감탄했었는데, 이런 무늬의 소파는 처음 본다. 조금 전에 본 걸 기억 못할 리도 없고. 


 

"그거 편하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슬쩍 옮겼다. 손에 작은 구급상자를 든 김종현이 문에 기대 웃고 있었다. 다시금 나른해져서 약간 풀린 눈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는, 오늘 처음 오는 곳인데도 뭐가 이렇게 편안하냐. 학교생활은 어떠냐고 묻는 엄마한테 억지웃음을 지으며 갖은 뻥을 쳐야 하는 집보다 나은 것 같다. 또 김종현도, 사람을 나른하게 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다정하면서도 따뜻한, 겨우 두 번째 만남인데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좀 따가울지도 몰라." 


 

어느새 소파 곁으로 다가온 그가 핀셋으로 집은 소독솜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뺨에 가져다 댔다. 순간 왼쪽 볼이 엄청나게 따끔해져서 소파가 편하고 뭐고 작은 외마디 비명을 내뱉었다. 갑작스레 고통을 느껴서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가에 살짝 물기가 어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쓰레기통에 솜을 던져 넣은 그가 다음으로 연고를 꺼내들었다. 


 

"아, 맞다. 이거 돌려줄게요." 

"됐어, 너 써." 

"똑같은 거 우리 집에도 있어요." 

"근데 이건 내가 준 거잖아." 


 

치마 주머니를 뒤져 어제 받았던 연고를 건넸더니 톤 변화 하나 없이 평소와 똑같은 말투로 저런다. 마치 '배고프다, 치킨 먹고 싶어' 등의 말을 내뱉는 것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시선을 피하는 건 또 내 몫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맞고 다니는 거야, 대체? 길 가다 깡패라도 만났어?" 

"아뇨." 

"것도 똑같은 곳을 두 번씩이나. 누군진 몰라도 양심 없는 놈이네 이거." 

"담배 셔틀 시키는 거 무시했다가 얻어맞았어요. 뭐 양아치들 하는 짓들이 다 그렇죠" 


 

내가 이런 얘기를 왜 하는 거지. 심지어 이렇게 흘러가는 듯 가벼운 말투로. 쉽게 얘기할 일은 절대 아닌데도 나는 말을 한동안 못 하고 살았던 사람처럼 모든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아, 학교에서 살인자 취급을 받는다는 말만은 빼고. 그 얘기를 했다간 김종현마저도 질린 눈으로 날 내쫓을 것 같았다. 


 

"대충 치료 다 했어, 일어나도 돼. 그래도 부은 건 어느 정도 가라앉았네." 

"감사합니다." 

"너, 내일 괜찮은 거야? 옥상으로 올라오랬는데 그냥 나왔다며." 

"안 괜찮을 걸요. 죽던가, 죽어라 맞던가 둘 중에 하나겠죠." 

"네 멘탈은?" 


 

맞는 것만 걱정하는 거 아냐. 네 정신은 멀쩡해? 옆에 있는 소파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있던 그가 물었다. 앉아 있느라 구겨진 옷매무새를 정돈하다가 뜬금없는 말에 쳐다보자, 끝까지 대답을 기다리는 듯 내 눈을 마주한다.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손끝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결국 고개를 젓는다. 내 정신이 멀쩡하냐고? 묻는 거 자체가 이상할 정도로 전혀 안 멀쩡하다. 살인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소위 말해 노는 애들한테 뺨이나 얻어맞는 입장에서 정신상태가 말끔할 리가 없었다. 


 


 

[뉴이스트/프로듀스101/김종현] 최면술사 (上) | 인스티즈 

 


 

"…." 


 

김종현이 날 빤히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읽기 힘든 오묘한 표정었다. 그저 같이 마주보기만 하다가 결국 내가 먼저 시선을 피하고, 가볼게요, 라며 천막을 걷으려는 순간, 그가 조용하게 다가와 내 손목을 잡아챘다. 억센 힘은 아니었다. 살짝 잡아끌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영문도 몰랐던 나는 그저 김종현이 이끄는 대로 천막 가운데로 따라갈 뿐이었다. 아까 그 소파에 다시 털썩 앉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종현을 올려다봤다. 뭐 어쩌자는 거야, 이게. 


 


 

"뭘 어떻게 해 줄까." 

"알아듣게 말 좀 해주면 안 돼요?" 

"가고 싶은 데라던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기분 풀릴 만한 거 아무거나  말해봐." 

"뜬금없이 뭔 소리예요, 그게." 


 


 

뭐야. 그딴 걸 말해 봤자 지금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놀리는 건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김종현이 내 어깨를 살며시 잡는다. 아무거나 말해봐. 미국이나 유럽도 괜찮아. 여기까지 듣자 정말 놀리려고 작정한 건가 싶기도 했지만 대체 의도가 뭔지 슬며시 궁금해졌다. 그래, 이런 장난에 좀 놀아난다고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음,놀이동산 가기?"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요. 되묻기도 전에 그가 내 눈앞에 손가락 두 개를 맞부딪쳐 선명하게 딱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눈앞으로 뭐가 지나가자, 물론 김종현이 내 눈을 찌를 일은 없겠지만,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 


 


 

[뉴이스트/프로듀스101/김종현] 최면술사 (上) | 인스티즈


 


 


 

"잠깐만요, 이게 무슨," 

"괜찮아?"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놀라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온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 그대로 놀이동산이었다. 환상적인 풍경이다. 국내에선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어쩌면 외국으로 나가도 못 볼지도 모르는. 놀이기구 모양의 오르골이 작동하는 듯, 놀이동산 전체에 잔잔한 오르골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놀이동산에는 오묘하게 핑크빛이 감돌았다. 그러니까 단순히 놀이기구라던지 팻말 등이 분홍색이어서가 아닌, 공기 자체의 분홍빛. 머릿속으로는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냐고, 분명히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바빴다. 


 

 

[뉴이스트/프로듀스101/김종현] 최면술사 (上) | 인스티즈 


 

"괜찮을지 모르겠네. 놀이공원 하면 이런 이미지가 떠올라서." 


 

김종현이 멋쩍게 웃었다. 온통 밝은 파스텔톤으로 둘러싸여 있는 놀이동산에서 김종현의 옷은 유일하게 어두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치도록 잘 어울렸다. 꼭 화보라도 찍기 위해 옷에 맞는 배경을 찾아본 것처럼.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이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가본 모든 장소 중에 가장 훌륭하다. 온통 예쁜 이곳에서 딱 하나의 문제는, 그 잠깐 사이에 내가 대체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 것이냐는 의문점 뿐이었다. 


 

"놀다 갈래?" 

"뭘 어떻게 한 건지 설명부터 해봐요." 

"최면이야." 

"뭐라구요?" 

"명함 봐서 내 직업 알잖아. 최면술사." 


 

그래, 알고 있지. 그렇다고 손가락 한번 튕기는 걸로 최면에 걸려? 최면은 작정하고 누워서 레드썬, 이 추를 따라 눈동자를 움직여 보세요, 당신은 이제 꿈 속으로 빠져듭니다…, 뭐 이런 거 아니었냐고. 더군다나 그의 입에서 '최면'이라는 소리가 너무 간단명료하게 나와 버려서, 나는 반쯤 영혼 빠진 눈으로 오르골 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회전목마와 대관람차와 롤러코스터를 쳐다봐야 했다. 


 

"돌아갈까?" 


 

김종현은 다소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렇게 물었고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풍경이 너무 생생해서 이게 정말 최면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여기서 손짓 한 번으로 아까의 천막 속으로 다시 돌어가 버린다면, 내가 정말 최면술에 걸려든 거다 이거지…. 


 

그의 손바닥이 내 눈을 덮었다. 곧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결에 어렴풋이 가자,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 


 


 

"금방 일어났네." 

"…머리 아파요." 

"마시고 잠 깨." 


 

나는 천막의 소파 위에서 편안하게 눈을 떴고, 그때 김종현은 옆의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서 아이스티를 젓고 있었다. 얼음 때문에 유리잔 겉면에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그가 찬 거 마시고 잠 좀 깨라며 잔을 건넸다.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든 걸 보면 과연 찬물의 효과가 굉장하긴 했나 보다. 무엇보다 대체 어떻게 만든 건지 복숭아 아이스티가 웬만한 카페에서 만든 것들보다 훨씬 맛있었다. 


 

"00야." 

"네?" 

"기억 안 나지?" 


 

그 말에 나는 퍼뜩 내가 방금 왜 잠에 들었었는지를 깨달았다. 최면술. 분명히 그가 나한테 최면을 걸었고, 조금 전에 최면에서 깼다는 것 정도는 기억나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 순전히 최면 속에서 있었던 일뿐이었다. 마치 자다가 눈을 떴을 때, 분명 꿈을 꾸긴 꿨는데 무슨 꿈이었는지는 전혀 생각 안 나는 그런 거 말이다.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나를 보며 김종현은 약간 쓸쓸하게 웃었다. 


 

"집에 가자. 벌써 많이 어두워졌어." 

"저기, 갑자기 나한테 이런 건 왜 걸었던 거예요?" 

"네가 현실에서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 

"그 속에서라도 힐링하라고." 


 

근데 왜 나한테만? 현생 때문에 힘든 사람들은 나 말고도 많잖아.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던 그는 최면술이 아니라 독심술이라도 하는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너는, 도움이 절실해 보이거든." 

"" 

"아니야?" 


 

나는 가방을 고쳐 멨다.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겨우 입술을 움직여 모기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일 또 와도 돼요? 용케도 그 작은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는 대답 대신 특유의 미소로 환하게 웃었다. 천막 바깥까지 날 배웅해준 그가 손을 흔들었다. 불빛 하나 없이 컴컴하기만 해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던 도로에 하나둘씩 밝은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밝아진 길을 이 분 정도 걸어가다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김종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랑두입니다! 글잡은 처음이라 어설프네요 껄껄8ㅅ8 

최면술사는 상중하 총 세 편으로 구성되구요! 중편에는 여주 과거 이야기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편으로 다시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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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78.226
우ㅏ작가님 대박적 진짜ㅠㅠㅠㅠbgm도 진짜 잘 어울려욥ㅠ♡ㅠ
7년 전
랑두
헉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7년 전
독자1
와 이건 대작이네요...감탄하고 갑니다!!!혹시 암호닉 받으시나요???
7년 전
랑두
네네 그럼요! 재밌게 봐주셔서 고마워요ㅠㅠ❤
7년 전
독자2
그럼 [무기력]으로 신청하고 가겠습니다 총총!!!!!앜 너무 좋아여!!!!
7년 전
독자3
와 진짜 대박적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 마음속에 대작으로 남겨둘만한 가치있는 글인거같아요ㅠㅠ 암호닉 신청해도될까요!?
7년 전
랑두
악 그럼요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4
꺄 그럼 [여름]으로 신청하겠습니다!!ㅠㅠㅠ 넘 좋아요ㅠㅠㅠ 글써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7년 전
독자5
추천보고 보러왔는데ㅜ이야 최고ㅠㅠㅠㅠㅠㅠㅠ대박이네요
7년 전
랑두
?!?!? 추천이요...?(동공지진) 영광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ㅜㅠㅠ❤
7년 전
독자6
헉 대작의 냄새가 나요 ,, 신알신 해두고 갑니다 !!! 앞으로도 재미있는글 많이 올려주세요 !
7년 전
랑두
읽어주셔서 감사해요ㅠㅠ❤
7년 전
독자7
헐 안녕하세요 작가님 ㅠㅠㅠ 브금이이랑 종현이 대사 때문에 현실 눈물날 뻔했어요,.. 막 마음 상처 받은 게 다 힐링되는 느낌이고.,. 진짜 종현이 말하는 거 왜 이렇게 힐링돼죠 ㅠㅠ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쉼터같은 느낌 ㅠㅠㅠㅠ 아 현실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 숨을 쉬게 해조 ㅠㅅㅠ 흑흑 저도 [돼지바] 로 암호닉 신청하고 갈게요! 꿈 속에서 어떤 일이 있었길래 조녀니가 쓸쓸하게 웃었을까요...? 조녀니 시점도 보고싶어요 ㅠㅠ 여주 앞에는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ㅠㅠㅠㅠ악 작가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작길만 걸으세요 대박길만 걸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 좋은 밤 마무리하시고 종현이 꿈 꾸세용╰(*´︶`*)╯♡
7년 전
랑두
헐 긴 댓글...ㅠㅠㅠ! 렬루 감동이예요 흑흑 부족한 글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7년 전
독자8
ㅠㅠㅠㅠ추천받아서ㅠㅠㅠㅠ왔는데ㅠㅠㅠ헐ㅠㅠ
7년 전
랑두
제 글을 추천해주시는 분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흑흑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7년 전
독자9
헐...대박....종현이랑 찰떡이에요...저까지 힐링받고 갑니다ㅜㅜ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7년 전
랑두
헉ㅠㅠㅠㅠ 저야말로 힐링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ㅜㅠ:)
7년 전
독자10
와 진짜 작가님 사랑해요 아니 종현이랑 너무 잘어울려요 ㅠㅠㅠㅠㅠㅠ흑흑 ㅠㅠㅠㅠㅠ다음편두 기다릴게요!!!!!!!!!! 여주가 너무 안쓰러워요ㅠㅠ
7년 전
랑두
감사해요ㅠㅠㅠ 빠른 시일 내로 중편으로 올게요!♡
7년 전
독자11
와대박이에여ㅠㅠㅠㅠㅠㅠㅠㅠ어쩜이렇게쩨아리랑어어ㅜㄹㄹ뉴ㅠㅠㅠ
7년 전
독자12
어떡해ㅜㅜㅜ넘 재미따ㅜㅜ이런 몽환적인 분위기 아주 좋습니다ㅜㅜㅜ부기 직업 최면술사인것도 발리고요... 다정 스윗 다해버리네ㅜㅠ 핑크빛으로 물든 놀이공원도 맘에 들었어요 진짜 몽환갑❤ 옛날에 교과서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꿈을 찍는 사진관 느낌 나구 넘 조아요 계속 빠져들어서 읽었어요 흘 대박 ㅜㅠ 암호닉 [피자길] 신청할게용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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