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주 바보
"......"
제 글씨체가 마구 낙서 되어 있는 내 깁스를 말 없이 만지작 거리는, 요 강다니엘은 2주쨰 저기압이였다. 그러더니 도려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이더니 뒷목을 만지작거리는 것이였다. 꼭 제가 잘못한 사람처럼.
"......"
"......"
무슨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은데,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건, 나도 2주째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 있어? 이상하게 한마디가 어려웠다.
PING PONG!
PING PONG!
F
...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어요. 학생식당으로 내려와 배식을 받은지 20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 젓가락으로 콩나물 반찬만 뒤적거리는 다니엘의 행동을 말 없이 바라보던 성우가 탁을 괸 체 물었다. 김여주랑 싸웠냐.
"...무슨."
젓가락질이 멈춘 걸로 봐선 김여주 관련이라는건 확실했다. 다시 느릿하게 움직이는 젓가락을 보다가 성우는 돌연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 작은 머리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야, 왜그러는건데.
"...몰라요."
"......"
"내도 그걸 알고 싶은데, 그냥 속상해요."
"......"
"그게 끝이에요."
더 물어도 대답 할게 없다는 듯이 굴었다. 어차피 묻지도 않을꺼지만. 밥을 먹는 제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지나치는 동기들의 행동에 쓴 미소로 답하는 그 얼굴을 성우는 한참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식판을 들고 일어선 다니엘이 성우에게 미안한 듯 말했다. 형, 저 먼저 갈게요.
"......"
서둘러 멀어져 가는 다니엘의 뒷모습에 성우는 힐끗, 좌측 벽 쪽에 붙어있는 시계를 바라보곤 작게 실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김여주의 강의가 끝나는 시간이였다.
"온나."
입술을 한껏 깨물은 다니엘이 여주의 팔에 걸쳐진 책과 자료들을 몽땅 가져가 버렸다. 어, 야 무거워. 바보같은 소리만 내던 여주가 이내 정신을 차린듯 팔을 뻗으며 말하자 되려 그 손을 꽉 잡고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밥 안 묵었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듣기 싫다는 태도였다.
학생식당까지 이끌려 온 여주가 자리를 잡고 식탁에 책을 내려놓는 다니엘을 뒤로 한체,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려 낑낑 거리고 있었을까, "봐라." 언제 다가왔는지 다니엘의 손엔 방금 뽑은 따끈한 식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 가서 앉아 있어라. "......" 묵묵히 제 식판을 들고 오는 그 몸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근데 왜 하나야, 너는? 여주의 손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낚아 챈 다니엘이 돈까스를 썰으며 말했다. 아까 묵었다. "...야 나 점심 안 먹었어도 됐었는데." "......" 왠지 모를 죄책감 섞인 여주의 말에 갑자기 칼질을 멈춘 다니엘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여주를 바라보았다. ...니는 그런 말 좀 하지 마라. "...어?" "와 사람 간 떨어지는 말을 하는데." "......" "평생 깁스한체로 살고 싶나, 와 밥을 안 먹긴 안묵는데. 어여 나아야지." "......" "가시나 빈혈약은." "......" "또 떨어졌겠지. 안 봐도 훤하다 마." ...시밸 이럴려고 뱉은 말은 아니였는데, 어쩌다보니 잔소리로 이어지는 다니엘의 말에 끙끙 거리던 여주가 듣기 싫다는듯 그 손에서 포크를 뺏어 아직도 나불거리는 입에 돈까스를 쑤셔 넣었다. 짜증스레 돈까스를 씹으며 칼질하는 몸에 여주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요즘 따라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달고 사는 듯한 다니엘의 모습이 여주는 걱정 되었다. "아- 해라." 근데 이건 또 무슨 난관인가. 야 나 왼팔 있는데. 혹시 안보이나 싶어 눈 앞에서 빤짝빤짝. 흔들자 됐다며 내 팔을 치운다. 아- 하라고. "아니 무슨 내가 팔ㅇ," "......" ...개새끼 큰 것도 줬네. 입안 가득 채운 음식을 씹은 여주가 또 다른 돈까스를 포크로 찌르는 다니엘을 노려 보았을까, 대상의 주인공은 정작 딴청을 피우며 눈길을 피했다. "아-" 군말 없이 입을 벌렸다. 또 피하면 이번엔 진짜 한소리 할 것 같아서. 꼼지락 거리는 여주의 팔을 바라보던 다니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요즘 강다니엘은 뭐라고 해야하나. 툭 하고 건드리면 펑 하고 터질 것 같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낯선 모습인건 확실했다. 포크로 돈까스를 괜히 툭툭 괴롭히는 행위에 여주가 팔을 들어 그 앞에서 휘저었다. 야, 나 괜찮아. 괜찮다는 말이 무색하게 강의건 계속해서 내가 밥을 먹을때마다, 뭘 할때마다 졸졸졸 따라왔다. 야 너 안바쁘냐? 짜증스레 물은 말에도 내 안 바쁘다. 무겁게 말하길래 포기했다. 들리는 말로는 연습도 짼다던데. 괜히 복잡해지는 기분에 머리를 헝클였다. "와 예쁘게 말은 머리를 헝클여." 조심조심, 다치기라도 할까 손끝으로 머리를 만지작 거리던 다니엘을 말 없이 올려다보았을까,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녀석은 느릿하게 내 눈을 맞춰왔다. "......" "......" 여전히 그때처럼 녀석을 마주하면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기분이였지만, 그 이유를 찾고 싶진 않았다. 묘하게 흐르는 기류를 느꼈지만, 그 이유 또한 찾고 싶지 않았다. 너를 잃을 것 같았다. 결국 학교 내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내가 어장관리를 한다더니, 강다니엘이 이상한 꼬투리가 잡혔다더니 한순간에 난 녀석과 같은 과인 여자애들에게 질투의 대상이자, 꼬리가 아홉개이다 못해 구백개 정도 되는 여우가 되었다. 짐승이라니. 부들거리며 수저를 부여잡자 성우 오빠가 참으라며 팔을 약하게 건드렸다. 야 수저 휘어. "근데 다니엘은." "수업 있길래 빨리 튀어 나왔지. 안그래도 지금 밥 먹을 시간 아닌데 그새끼 때문에 지금 먹는거임." 고생하다는듯 성우 오빠가 혀를 찼다. 이거봐, 왼손으로 얼마나 잘먹게요. 오늘따라 속이 확 풀리는 콩나물 국에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며 밥까지 싹싹 말아 먹었다. 11시 30분. 녀석의 수업이 끝나려면 한참이나 남은 여유로운 시간이였다. "...근데 오빠." "왜." "녤이 요즘에 이상하지 않아요?" "너 때문인거 아니야?" 뭐래 이 화상은. 갑자기 나에게 꽂히는 화살에 미간을 찌푸리자 "아님 말고." 하며 다시 식판에 고개를 묻는 얼굴이였다. "왜. 걔가 그래요?" "아니?" "나 뭐 잘 못한거 있고 그렇데요?" 몰라 나도. 어깨를 들썩인 성우가 냅킨으로 입술을 더듬 거렸다. ...근데 짐작 가는게 있긴 있지. 여주의 복잡한 표정에 성우는 애써 말을 삼키며 작게 웃었다. 넌 평생 모를꺼다. "......" 12시 10분. 나올때가 됐는데. 오늘따라 느리게 가는 시침에 무료함이 몰려와 괜히 입술을 괴롭히며 장난을 부렸다. "......" 굳게 닫힌 문을 말 없이 바라만 보다가 다시 봐봤자 뭐 달라질 거 하나 없을 쇼핑백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온갖 뼈가 썩을 것 같은 달달함이 첨가 된 식품들이였지만, 우울해 보이는 녀석을 그냥 두고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아 근데 얘는 왜 안나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질 듯 밀려 나왔다. 갑작스러운 인파에 놀라 쭈삣대며 한 쪽에 서서 녀석의 모습을 찾고 있었을까 그런 내 앞에 선 발자국은 너가 아닌 권지현이 서 있었다. "안녕." "......"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내가 니엘이랑 좀 친하거든."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 했다. 아 그러세요. 비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다니엘의 동기 모습에 새삼 1학년 때의 우리 모습이 생각났다. 12월 겨울. 대학교를 입학하기 전, 녀석의 아파트 입구에서 다니엘한테 대학 가면 아는 척 하지 말자 그랬다. "왜?" 올망거리며 작게 물어오는 눈에 마음이 약해질 뻔 했지만 나는 편안한 대학생활을 원했다. 고딩때처럼 녀석의 시다바리(ex. 선물 배달원, 러브레터 배달원. 걍 거의 택배기사.)를 도맡고 싶진 않았다. 뭐 결국 지금보면 다 소용없던 당부였지만, 녀석은 적어도 현대무용과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하진 않았다. 성우 오빠도 처음엔 우리가 아는 사이인 줄 몰랐을 정도였다. 아무튼, 나는 권지현의 말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녀석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지 머리까지 쓸어 넘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번에 같이 밥 먹는 것부터 거슬렸는데. "너 이 손은 왜 들고 다녀?" 기분 나쁘게 툭툭 쳐오는 손길에 팔을 피했다. 헛웃음 치는 얼굴이 예쁘긴 했지만, 어째 얼굴을 담지는 못 할 그릇의 성격이였다. 무례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바라봤다. "니가 그렇게 막 건드려도 되는 사람이 아니거든." "......" "어장치는 건지 뭐하는건지는 모르겠는데." "니 지금 어따 손을 대나." 가슴께를 콕콕 찔러오는 손길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갑자기 내 시야 전체를 덮어버리는 넓은 등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니 미쳤나." "마." "......" "니 단디 전해라." "......" "얘가 적어도 니들보단 깊은 사이라고." "......" "학과에 얘 관련한 말, 저 말고 딴소리 나오면 그땐 니 진짜." 아슬아슬했다. 자제하라는 의미로 녀석의 등판을 괜히 툭 치자, 한참동안 머뭇거리던 몸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됐다 가봐라. 다니엘은 항상 여주 앞에선 졌다. 눈시울이 붉어진 체 자리를 뜨는 그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뒤를 돌았다. 저를 올려다 보는 눈동자에 다니엘은 괜히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밥은." 뻘하게 터지는 다니엘의 말에 여주는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먹었어, 성우 오빠랑. 어째 미간이 작게 찌푸려지는 것 같기도 하고. 손에 들린 쇼핑백을 건넸다. 무겁게 뭘 이런걸 들고 오노. 화들짝 놀라며 받는 그 얼굴이 방금 전 차가웠던 사람이 맞나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뭐꼬." "먹고 살찌라고." "......" "...아 기분 좀 풀으라고. ㅇ," 순간이였다. 힘 없이 풀려난 쇼핑백이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 "......" 꽉 안아오는 몸에서 쿵쿵. 일정하게 울리는 박자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했다. "...야." "......" "너 왜그ㄹ," "...아프지 마 제발." 나 때문인 것 같잖아. 옆에 있어도 병신 머저리 같이 챙기지도 못했던게 나 때문인 것 같잖아. 여주는 말 없이 훌쩍이는 다니엘의 뒷머리를 천천히 쓸었다. "......" 녀석을 마주하면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기분의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묘하게 흐르는 기류를 느끼는 그 이유 또한 찾고 싶어졌다. 친구인 너를 잃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pisode
동방으로 들어오는 다니엘의 손에 낯익은 쇼핑백이 걸려있자 성우는 괜히 모르는척 물었다. 뭐냐? "...형." "...뭐야 왜 분위기 잡아." 자세히 보니 눈가가 조금 젖어있는 다니엘의 모습에 성우는 기가막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저새끼 울었어? "내 기분이 와 안좋았는지 알 것 같아요." "왜." "싫어요." 주어 없이 던져진 말에 하마터면 성우의 유리같은 쿠크가 깨질 뻔했다. ...다니엘, 내가 싫어? "...얘가 아픈게 죽어도 싫어요." 또 다시 울먹이는 모습에 성우는 근처에 있던 휴지를 던지며 진저리쳤다. 야, 야 알겠으니까 울지마. "......" "...근데 형." "왜 또." "내 그 가시나 좋아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