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 가시나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한동안 정적만이 가득하던 동방엔 곧, 당황함으로 가득한 성우의 사례들린 기침소리가 가득 채워졌다. ...뭐? 되묻는 성우의 말에 울상을 지은 다니엘이 어쩔 줄 몰라 뒷머리만 매만졌다. ...어떡해요 형?
"뭘 어쩌긴 어째 임마. 당장 가서 ㄱ,"
"내는 걔를 단 한 번도 여자로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
성우는 이제 곧 울망거릴 것 같은 다니엘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말을 잃었다. 10년을 넘게 묵혀뒀던 폭죽이 드디어 빛을 발할 시간이였다. 하지만 정작 다니엘에겐 그 폭죽에 불을 붙 힐 이유 조차 없어 보였다.
"......"
"......"
몇일째 무섭게 세상을 적시는 날씨를 말 없이 창문으로 바라보던 다니엘의 뒷통수를 바라보며 성우는 시선을 떨궜다.
끝난 줄 만 알았던 여정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그 작은 몸이 버틸 수 있을까.
떠오르는 여주의 모습에 성우는 눈썹께를 꾹꾹 눌렀다.
"...형, 피하면 좀 나아질까요."
쿵쿵 뛰는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문대며 다니엘이 울상을 지었다. 낯선 감정이였다. 10년이란 시간 속에서 느꼈던 감정만이 정답이였다. 지금의 감정은 일시적이라. 오답이라. 의건은 그렇게 결정 내렸다.
"...니 알아서 해."
끝으로 동방엔 정적이 가라앉았다.
PING PONG!
PING PONG!
F
"......"
홀더를 내려 날짜를 확인했다. 11일. 절로 나오는 한숨을 막지 않은 체 미간을 긁적였다. 5일째였다. 그 얼굴 코빼기 하나 보지 못한게.
'김여주 바보'
...비가 와서 그런가. 오늘따라 팔이 더 아픈 기분이였다. 팔이 아픈건지, 몸이 아픈건지. 마음이 아픈건지. 짐작이 가질 않았지만 그 이유 하나만은 알 것 같았다.
[강다]
6통째. 나는 또 다시 귀에서 울려대는 연결음에 눈을 감았다. 5번째다. 너 없이 홀로 병원을 찾은 횟수가. 간호사 언니가 그러더라. 매일 같이 오던 남자친구는 어디 갔냐고. '남자친구' 라는 낯간지러운 호칭을 이상하게 부정하기가 싫더라.
"...너 혹시 알고 피하냐."
건너편에선 답이 없었다.
연결음은 끊임이 없었다.
울렸다 꺼지는 휴대폰에 다니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밥은 먹었을까. 병원을 갔을까. 시험은 잘 봤을까. 묻고 싶은게 끊임 없었다. 전면이 유리로 덮어진 연습실 내부를 괜히 훑어보던 다니엘이 곧이어 다시 울리는 휴대폰에 한숨을 쉬며 그 고물단지를 집어 들었다.
[이수인]
"......"
예상밖의 전개였다.
몇 년 만에 닿은 간절한 전화라는걸 알리듯 진동은 끊임이 없었다.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던 다니엘은 그제서야 목을 가다듬은 뒤 통화버튼을 눌렀다.
"......"
- ......
"......"
- 오랜만이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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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일
야자를 마치는 종이 울려 옆에서 엎드려 잠을 자고 있던 녀석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야 가자.
"뭐? 여소?"
"어. 내 친구 중에 너 마음에 든다고 하는 애 있어서."
칠칠맞게 떡꼬치 소스를 입가에 덕지덕지 묻히고 먹는 그 얼굴에 미간을 찌푸린 다니엘이 들고 있던 휴지로 손을 올려 투박하게 문질렀다. 야, 야. 내 예민한 피부에!
"됐다."
"아 왜, 야 이쁘게 생겼어."
"니보다?"
"시발 당연하지."
그래? 왠지 솔깃해 하는 얼굴을 한대 때리고 싶었지만, 사비 1000원을 투자해 내 손에 떡꼬치를 쥐어주신 인물이니 여주는 자비롭게 참아보자 하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발을 맞춰 걸었다.
"그래도 싫다."
"아 왜."
"내 만약 잘 되서 만난다 카면?"
"......"
"니는."
"어?"
"니는 누랑 놀려고."
...뭐, 혼자 놀면 되지. 태연하게 계속 떡을 오물거리는 그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던 다니엘은 "...퍽이나." 웃음과 함께 그 작은 머리를 헝클였다.
"암튼 내는 말했다. 안 받는다고."
안 받는다고 켓잖아.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괜히 그의 허리 언저리를 찌르던 여주는 기분 풀으라는 듯 알짱거리며 그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어? 기분 풀어라 어?
"...안녕."
용기 내어 들려오는 수줍은 목소리에 예의상 웃음을 지었다. ...어, 안녕.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만큼 어려웠다. 가시나 뭐가 이쁘다고 저게. 한 눈에 봐도 예쁜 얼굴임에도 다니엘은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그 옆에서 속 좋게 웃고 있는 여주의 얼굴만 바라 볼 뿐이였다.
"오늘 집 같이 못 간다고. 수인이랑 가기로 했다 마."
뭐야 싫다더니. 벌써 거기까지 갔냐? 쪼그만게 저를 콕콕 찌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길래 다니엘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신 여주의 머리를 콕콕 찔렀다. 까불어.
"내 간다."
"어, 가라."
"......"
"......"
"...김여주."
보품이 큰 점퍼에 파묻힌 체 저를 돌아보는 그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쉰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전화해."
"어?"
"도착하면 바로 전화하라고."
걱정하지 말라는듯 웃으며 손짓까지 하는 여주가 뭐가 그리 못 믿어운지 다니엘은 입술까지 깨물다 결국 뒤를 돌았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화사하게 웃어오는 수인의 모습에 억지로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솔직히 제 옆에 있는 수인에겐 미안한 사실이지만 김여주 이 녀석 때문에 오기로 그 아이를 만나고 있는 중이였다. 그렇게 싫다 싫다 했는데도 결국 니가 소개시켜준 아이 때문에 너는 나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근데 오히려 조바심이 나고 불안함에 감싸 도는 건 나였다. 적게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가다가, 옆에서 크게 휘청이는 몸을 본능적으로 감싸 안았다. ...아. 그리고 후회했다. 수줍게 물든 두 볼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다 트인 입술을 자꾸만 자신을 깨무는 주인 때문에 피를 볼 참이였다.
"...고마워."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난 그 순간에도 너를 생각 하고 있었다. 지금 쯤 너도 어디선가 이렇게 크게 넘어 질 뻔하지 않았을까. 잡아 줄 사람은 있었을까. 잡아 준 사람이 혹시 남자일까.
"니엘아."
"...어?"
"이거 올해 첫 눈이야."
너무 뭐 어쩌라는 식으로 쳐다봤나, 뭔가를 기대하던 그 눈은 이내 민망한듯 바닥으로 시선이 옮겼졌다.
"...좋네."
병신새끼. 대놓고 오해하세요. 하는 큰 떡밥을 가득 담은차마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에 역시나 덥석 문 이수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참 아까부터 이상한게, 분명 지금은 머리가 복잡 해야하는 상황인데, 고백 할 타이밍을 엿 보고 있는 그 눈을 바라보면서도 병신같은 내 머리는 너를 생각했다.
첫 눈.
김여주를 만난 이후 단 한번도 녀석과 맞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18살. 10년 만에 녀석이 없는 겨울의 시작이였다.
"......"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찝찝하고, 더러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리고 나를 따라 결심한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
"...어?"
"내 쪼매 급한일이 있던걸 깜빡했다 마."
"뭐?"
"...내 진짜 미안타. 내일 보자 수인아. 내일은 진짜 마, 데려다 줄게. 내 간다 미안타 진짜로."
무슨 말인지, 횡설수설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발걸음에 결국 나는 옅은 눈을 맞은 체 서 있는 그 몸을 두고 빙판길 임을 잠시 잊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참나 가시나가 뭐라고.
얼마나 달렸을까, 본능적으로 내 발은 학교 근처 버스 정류장을 향해 움직였고 거짓말같이 너는 촉촉하게 젖은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앉아 있는 폼이 뭔가 이상했다.
"...아씨."
성큼성큼 다가가 제 옆에서 다 지켜 보는줄도 모르고 내놓은, 다 까진 체 퉁퉁 부은 발을 잡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교복 바지가 젖어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상관 없었다.
"...야, 너 뭐야. 수인이는?"
"잘 갈 수 있다메."
"...아니 잘 가고 있었지, 있었는데 앞에서 자전거가 오는 바람에."
"됐다, 시끄럽다."
이유 없이 화가 났다. 내가 웃고 떠드는 시간에 혼자 씩씩하게 갈 수 있다던 그 조그만한 몸이 다쳤다. 내가 다른 사람이랑 웃고 떠들때. 그것도 다른 사람이랑.
"...아! 미친놈아 아파."
"엎혀."
망설임 없이 엎혀오는 몸에 의자를 짚고 일어났다. 대롱 대롱 걸려오는 퉁퉁 부은 발이 자꾸만 시야에 보여 입술을 깨물었다. 것도 모르는 녀석은 귓가에 바람이나 불며 장난이나 쳤다. 하지마라.
"해지매래."
"하지 말라고."
"알았어 임마."
"......"
"야 너는 이런 상쾌한 윗공기를 혼자 마신단 말이야? 치사하게?"
"...뭐라카노 또."
웃겨서 웃음이 다 나왔다. 윗공기라니.
"그럼 아랫공기는 어떻나."
"오염구역."
말 끝으로 소리내어 웃으니 뭐가 웃기냐며 따라 웃어온다. 아 진짜 가시나 웃겨 죽겠네, 내 눈물 좀 닦아도. 얼굴을 더듬거리며 끝내 손 끝에 작은 눈물을 훔친 손이 다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녤아.
"와."
"올해 첫 눈이야."
"그렇네."
"난 언제 쯤 너 말고 다른 남자랑 맞아 볼까."
순간 우뚝 선 내 발걸음에 녀석은 태연하게 농담. 하고 어깨를 주물러 왔다. 가시나 내는 지랑 맞을라고 내 좋다던 여자도 바람 맞히고 왔구만. 차마 뱉을 수 없는 말을 맘 속으로 중얼거렸다.
"좋네."
"......"
순간 이수인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그 생각은 거기서 접었다. 녀석과 나는 세상에 제일 가는 친구였기 때문이였다. 이수인이랑은 바라보는 시선부터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네, 좋네."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리는 우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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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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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이네
"......"
그런 평화를 다시 한 번 깨부시는 순간이였다.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는 내 반응에도 건너편에선 태연하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너 많이 놀랐구나.
"...어, 오랜만이네."
내가 번호를 언제 저장했었더라. 그런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하며 답했다. 정적이 오고가는 전화 통화에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상대방을 끊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왠지 쉽게 끊을 수 없는 분위기에 말려 들어가 쩔쩔매고 있었다.
- 만날 수 있을까?
"...어?"
- 할 얘기가 좀 많거든, 전화로는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난감했다. 머리를 부여잡은체 "...어." 하는 소리나 내며 시간을 끌고 있었을까, 이윽고 내 입에선 바보같은 소리가 나왔다. ...그래.
[너 나 안볼꺼야? 무슨일 있냐고]
하루종일 신경 쓴 탓에 머리가 다 아파왔다. 수업내용도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학점은 망했다 생각하며 녀석을 찾으러 동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까, 그런 내 두 눈에 들어 온 사람은. ...어쩐지 좀 낯익고, 반갑지 않은 얼굴이, 녀석과 함께 서 있었다.
"......"
"......"
강다니엘은 이수인과 마주한 체 웃고 있었다. 손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약정도 한참 남은 휴대폰을 놓칠 뻔 했다. 5일동안의 숨바꼭질도 모잘라, 이젠 뒷통수까지 후려쳐가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얼굴과 웃고 있는 너를 보니 허탈감이 몰려왔다.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 일,
내 마음이 땅 속 깊숙히 쳐박히는
좆 같은 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