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 왔다. 가을이 성큼 다가와 어느새 늦여름의 녹음이 푸르던 색을 벗어냈다.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지금 시점에서 입학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 다시금 머릿속에 새겨졌다. 2학년이 되면 온갖 공연을 다녀야 하니 1학년 때 많이 놀아두라고 3월 초, 3학년 선배에게 들은 기억이 난다. 실제로 이번 주말부터 2학년 선배들의 공연이 시작돼서 나를 비롯한 1학년들은 휴게실 안에 쌓아 둔 무대 설치 장비들을 정리하는데 바빴다. 오늘도 어김없이 김재환과 강의가 끝나고 휴게실에 와서 마이크를 두드렸다. 아- 아-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도 나지 않는 마이크에 대고 김재환은 목소리를 냈다. 한참을 그러다가 축 늘어져 있는 날 지그시 바라보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 아 그 표정 뭔데 또. "
" 아니~ 그냥. 종현이 형이랑 그래서 언제 사귀나 싶어서. "
" ....민현이 오빠가 또 물어보래? "
" 야 누가 들으면 민현이 형이 내 아바타인 줄 알겠다. "
입을 삐죽거리면서 하도 억울한 얼굴로 말하길래 더이상의 쏘아댐은 멈추었다. 그저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 카톡에 들어갔다. 동시에 김재환의 시선이 끈덕지게 따라 붙었다.
" 종현이 형이랑 그, 카톡도 하고 그러지? "
" 알면서 뭘 물어. "
" 그래서 너는 형 어떤데? 응? "
카톡에 들어가니 미처 읽지 못한 김종현의 카톡이 상단에 떴다. 여주 너두 이번 주말에 혹시 와...? ㅎㅎ 생각해보니 김종현은 1학기에 있던 축제 때도 무대에 서지 않았다. 보통 2학년 선배들을 주축으로 무대를 여러 개 꾸미곤 하는데 김종현은 악기 연주를 하거나 노래하는 선배들 뒤에서 코러스를 했다. 그 때 처음 김종현을 보고 김재환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의아한 마음에 내던진 질문에 김재환은 복학한 형일걸? 간단명료한 답을 내놓았다. 그 땐 몰랐지. 내가 이 오빠랑 이렇게 연락을 할 줄이야.
" 아 어떠냐고~ "
" 야. 배 안 고파? "
" 왜. 나 뭐 사주게? "
" 미쳤냐. 다니엘은 어디래? "
" 몰라. 니엘이 요즘 알바 하잖아. "
아하. 짤막한 호응을 한 뒤 몸을 일으켰다. 김재환은 끝까지 내게 김종현이 어떠한 지에 대해서 물어왔지만 나는 명확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귀여운 건 맞는데, 자꾸 생각나는 것도 맞는데. 이게 단순한 감정인지 아니면 나도 그 오빠를 좋아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다. 다만 현재로서는 김종현과 함께 있으면 괜히 몽글몽글한 기분이 드는 거? 그건 확신할 수 있다.
톡, 톡. 휴대폰 자판을 느릿하게 눌렀다. 김종현이 보낸 카톡에 답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번 주말 공연에도 김종현은 악기 연주를 할까? 생각해보니 그 오빠가 노래를 부르는 걸 본 적이 없다. 같은 학년이 아니여서 수업 때는 당연히 보지 못했고. 문득 궁금했다. 노래를 부를 때 어떠한 목소리를 낼까. 김종현의 목소리는 무슨 감정을 담고 있을까.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 응?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종현아. "
" 안니야 미녀나. "
" 그러니까, 종현이 네가 노래를 한다고? "
믿기지 않는다는 듯 민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릴 때부터 민현이 본 종현은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남들 앞에서 나서는 일은 드물었다. 민현이 제대를 하기 전 학교 축제 때도 종현은 2학년 동기들의 뒤에서 코러스를 하거나 악기 연주를 도와주었다고 했다. 종현의 성격을 잘 알기에 민현은 이번에도 역시 종현이 코러스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민현의 잘못된 일반화였다.
" 여주가 보러 온대써. 이번 주에.. "
사랑의 힘이 이리도 대단한 거였나. 민현은 살포시 고개를 숙이며 수줍은 미소를 띠는 종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여주가 그렇게 좋을까. 생전 먹지도 않던 토마토를 먹질 않나, 이번에는 아예 사람들의 앞에서 공연까지 준비하는 걸 보면 아마 민현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것 같다. 여주를 향한 종현의 마음이 말이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 와 밖에 기다리는 사람들 짱 많아. "
" 진짜? 우리도 내년엔 공연 하겠지? "
" 우린 내년에 군대에 있겠지 니엘아. "
무대 아래 설치한 천막 안으로 김재환이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는 나와 강다니엘 사이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면서 팩트 폭력을 날렸다. 김재환의 팩트 폭력에 강다니엘은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했다. 제가 뱉고도 미안했던 모양인지 김재환은 강다니엘의 눈치를 살살 봐가며 장난기 어린 농담을 던졌다. 우리 동반 입대나 할까? 웃음 빼면 시체인 강다니엘이 입을 일자로 다문 채 고개를 잘게 흔들었다. 김재환은 한순간 거절을 당했다.
" 김여주 뭐 해? "
강다니엘이 반응을 안 해 줄 준 몰랐는지 김재환의 시선이 내게로 돌려졌다. 천막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기들을 훑다가 손가락을 매만졌다. 김재환의 물음에 대답 없이 밖에서 틀어 놓은 음악 소리를 들었다. 연습 할 때 많이 들었던 곡이다. 이소라의 바람의 분다.
" 아 맞아. 종현이 형도 공연 선다는데 들었어? "
" 작게 말 해 멍충아. "
어젯밤 김종현과 카톡을 하면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나도 내일 공연해! ㅎㅎ 그 짤막한 카톡을 본 후로 이상하게도 잠이 오질 않았다. 몽롱한 상태로 공연장까지 와서 무대 설치를 하고 공연 리허설을 하는 선배들을 힐끔일 뿐이었다. 김재환은 눈을 세모꼴로 뜨면서 내 팔꿈치를 툭툭 쳤다.
" 신경 쓰여? 자꾸 막 이름 들으면 부끄럽고 그래? "
" 둘이 무슨 이야기 해? "
내내 잠자코 있던 강다니엘이 호기심 그득한 눈으로 김재환과 날 번갈아 보았다. 하여튼 김재환 주둥이 눈치 없는 건 알아줘야 한다. 강다니엘이 조심스레 내 얼굴을 힐끗였다. 그래, 뭐... 권현빈도 아는 마당에 강다니엘이 몰라야 한다는 법은 없지. 목을 두어 번 가다듬었다. 큼, 큼. 김재환이 오오- 입술을 동그랗게 말며 소리 없는 감탄을 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 순간이었다.
" 그 오빠 진짜 대박이다. 랩하면서 노래하는데 미쳤어. "
" 근데 나만 그 오빠 처음 봐? 이름 뭐라구 한 것 같은데... "
" 김.. 뭐였지? "
여자 동기 두 명이 천막 안으로 들어오면서 꺄르르 담소를 나누었다. 종현. 김종현이라고 한 것 같아. 맞지, 맞지? 이어지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동기들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토끼눈을 하고선 동기들이 날 응시했다.
" 여주야... 왜? "
" 혹시 밖에 리허설 해? "
" 응? 아, 응. 근데 지금은 끝났어. 김종현이라고 14 선배 있는데 진짜 잘 해. "
아아. 절로 탄식이 내뱉어졌다. 기필코 김종현의 리허설은 꼭 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어색하게 웃으면서 동기들이 저 멀리 자리를 잡고 앉을 때도 나는 자리에 선 채 머리만 쥐어 뜯었다. 김재환은 입을 가리고 눈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강다니엘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있는 힘껏 크게 떴다. 멍청이처럼 서 있는 날 물끄러미 올려다 보면서 강다니엘이 화사하게 웃었다.
" 나 진짜 알겠다! "
방실방실 웃는 강다니엘을 내려다보면서 자리에 다시 앉으려는데 일순간 덧붙여지는 강다니엘의 말을 듣자마자 숙였던 몸을 곧추세웠다.
" 공연 서고 싶었구나..! "
김재환은 끅끅거리며 웃기 바빴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을 빠져 나왔다. 강다니엘과 김재환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지만 꿋꿋이 못 들은척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근처 편의점에라도 갈 생각이었다. 아직 공연이 시작 하려면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공연장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텅 비어 있는 공연장이 20분 뒤에는 채워져 있을 상상을 하니 뭔가 짜릿하기도 하고. 나도 내년에는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싶고.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건 김종현의 리허설을 듣지 못한 거였다. 갑자기 미치는 생각에 표정을 잔뜩 구긴 채로 걷는데 순간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 진동이 일정한 간격으로 길게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건 저장 되어 있지 않는 번호였다.
" 여보세요? "
[ 야 사실이야?! 오늘 노래해!? 아니 왜 나한테 말 안 해줬어! ]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북적북적한 소리가 고스란히 내게 전달됐다. 잘못 걸었나? 귀에서 휴대폰을 떼고 화면을 한 번 보았다. 다시 봐도 낯선 번호였다.
" 저기 전화 잘 못, "
[ 나 공연 안 선다고 말도 안 해주냐! 서운하다 서운해! 어떻게 공연 날까지.... 안니.. 성우야... 일당은 진정하구.. ]
잘 못 걸었다며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아주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에 휴대폰을 귀에 바짝 갖다 댔다. 왜 이렇게 목소리가 익숙하나 했더니 목소리의 근원지는 옹성우 오빠였다. 뒤따라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김종현의 것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온 신경을 귀에 쏟았다.
[ 게다가! 나한테 노래 하는 거 보여 준 적도! 없으면서! ...성우야 미아내..아니 나능... 됐어, 됐어. 민현이한테 다 들었어 종현아. 야! 내가 진짜로 삐친 줄 알았어? 으이구 귀여운 놈. ....머야 나 지짜 놀랐쟈나...! 여주가 그렇게도 좋디? 응? 우리 종현이 노래도 부를 만큼 그렇게 좋아? ]
느닷없이 내 이름이 언급 됐다. 하마터면 휴대폰을 아래로 떨굴 뻔 했다. 그나저나 옹성우 오빠 성량 어마어마하다. 목소리가 휴대폰을 뚫고 나올것만 같다.
[ 죽어도 먹기 싫다는 토마토도 먹더니 우리 종현이 아주 다 컸네 다 컸어. ...성우야아..쉬잇..쉿..! 어차피 우리 밖에 없는데 뭐 어때. 아, 민현이 어디 갔어? ]
불현듯 식당에서 김종현이 토마토를 우물거리던 모습이 생각났다. 아직도 전화가 끊겨 있지 않는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들어서는 안 될 것을 엿듣게 된 것 같다. 졸지에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토마토를 죽어도 먹기 싫어했다고? 그래서 그 때 잠시 주춤했던건가. 아. 나는 그것도 모르고 토마토를 먹으라며 직접 얹어주기까지 했다. 그 오빠 성격상 당연히 거절을 하기는 힘들었을 테다.
" 어- 여주 여기서 뭐 해? "
가만히 서서 죄 없는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깨무는데 마이크 두 개를 든 민현 오빠가 반가운 얼굴로 아는 체를 했다. 어느새 내 앞으로 가까이 온 민현 오빠가 입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날 바라보았다.
" 오빠. "
" 응? "
" 그...종..현이 오빠 있잖아요. "
" 응. 종현이 왜? "
" 혹시 토마토 안 좋아해요? "
민현 오빠가 잠시 옅은 웃음을 짓는다. 그러다가 이내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눈이 휘어지도록 웃으며 넌지시 날 본다.
" 제가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닌데.. 어쩌다 알게 돼서요. 혹시 토마토 안 좋아해요? "
" 아니, 안 좋아하는 거 아냐. "
" 네? "
" 종현이 토마토 좋아해. "
그럼 방금 전 내가 들은 건 뭐지? 되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민현 오빠의 얼굴이 꽤 강단 있어 보였다. 궁금증 풀렸어? 옅게 웃으면서 묻길래 자동적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여전히 웃음을 머금으면서 민현 오빠가 먼저 자리를 떴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토마토와 김종현의 상관관계를 생각했다. 토마토. 김종현. 김종현. 토마토.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민현은 마이크 두 개를 들곤 대기실에 들어섰다. 대기실 구석에서 성우와 종현이 퍽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제 곧 공연이 시작 될 텐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대기실 안을 찬찬히 살피면서 민현이 입을 열었다.
" 무슨 일이야? "
" 야...민현아 이거 봐봐. "
성우가 내민 건 다름 아닌 종현의 휴대폰이었다. 종현은 고개를 스르륵 숙이면서 한숨만 폭폭 내쉬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여주와 통화한 기록이 떠 있었다. 1분 23초의 통화 기록을 들여다보면서 민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게 왜? 종현이 여주랑 통화 했어? "
" 의도치 않은 통화였지. 야 민현아 어떡하냐? 난 그것도 모르고 종현이한테 여주가 그렇게 좋냐고 그랬는데. "
" 무슨 말이야? "
횡설수설하는 성우의 말에 민현은 잠시 미간을 좁혔다. 순간, 아래로 향해 있던 종현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종현의 눈망울에 그렁그렁 방울이 촉촉하게 맺혀 있다. 민현은 다소 당황했지만 침착한 얼굴로 종현의 어깨를 부드럽게 그러쥐었다.
" 종현아 천천히 말해 봐. 응? "
" 안니..내가아.. 여주랑 카톡항 거 보다가...모르구..지짜 모르구...프사 눌렁는데..저나가 걸려써... "
" 갑자기 내가 대기실 들어와서 종현이는 그것도 모르고 나랑 이야기 한 거고. 와, 이제 어떡하지? "
" 성우야 잠깐만. 일단 종현아, 물 마셔. 울지 말구. "
민현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밀어 넣어야 했다. 그제야 조금 전의 상황도 이해가 됐다. 여주가 뜬금없이 종현이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었던 이유가 종현과 성우의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었구나. 종현은 물을 홀짝이면서 눈을 요리조리 굴렸다. 성우는 마치 제 탓이라는 듯 손으로 머리를 잔뜩 헤집어 놓았다.
" 이짜나 미녀나....여주가..알게되면....어떠케..? "
" 뭐를. 종현이 네가 여주 좋아하는 거? "
" 야 민현아 조용히 말 해. 조용히! "
성우가 호들갑을 떨어대며 민현의 어깨를 쳤다. 민현은 고개를 숙이고 낮은 웃음을 두 사람 몰래 흘렸다. 아. 이거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민현은 곤혹스러웠지만 꿋꿋이 표정 관리를 했다. 종현의 어깨를 두 어번 두드리면서 용기를 심어주었다.
" 알면 어때 종현아. 그리고 아직 여주는 몰라. "
" ....지짜? "
" 응. 방금 우연히 여주 만났는데 전혀 모르던 눈치였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
" 야 진짜? 와 나 진짜 간 쫄렸는데. 와 다행이다. "
가끔은 친구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했다. 인생을 얼마 살진 않았지만 민현이 느낀 바론 그랬다.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두 남자를 보면서 민현은 혀로 입술을 훑었다. 민현의 마음도 알지 못하는 종현과 성우는 그제야 헤실헤실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짝- 한다.
" 아 황민현!!! 아 김종현!!! 오늘 무대 아 날려버려!!!! "
" ..그게 뭐야 성우야. "
" 잘 하라고 내가 기주는 거야. 야 종현아 알지? 여주 내려다보면서 알지? "
어느덧 성우는 민현보다 더욱 뜨거운 관심으로 종현의 연애사를 도왔다. 종현은 수줍게 웃으면서 고개를 살랑였다. 민현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성우가 두 사람의 가운데에 쏙 낀 채 어깨동무를 나란히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공연 신청하는건데. 성우는 못내 아쉬웠지만 그저 웃었다. 야, 이제 나가자. 성우의 말에 시계를 보면 어느덧 공연 시간에 임박하고 있었다. 부디 종현과 민현이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기를 성우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원했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는 민망한데 우리 학교 실음과는 우리 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손 꼽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매년 정기 공연이 시작 되면 상당히 많은 인파들이 공연장을 찾아오곤 했다. 나도 물론 그 중 한 명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공연장에 와서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마냥 꿈의 학교였는데 이제는 내가 공연장 아래 천막에서 미래를 꿈 꾸는 중이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쏟아지는 조명 아래 노래를 부르는 선배들을 뚫어져라 올려다보았다. 이제 곧 김종현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김재환이 갖다 준 큐시트는 하도 봐서 닳은지 오래였다.
" 누굴 그렇게 기다리시나. "
" 아 놀래라. "
" 왜 놀라시나. "
" 말투 뭔데. 징그럽게 진짜. "
" 혹시 들키셨나. "
" 혹시 맞고 싶으시나.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다. 광대를 씰룩이면서 말을 잇는 김재환에게 그대로 맞받아쳐주었다. 김재환은 잠시 당황한 듯 입을 벙긋거리다가 곧 목덜미를 긁적였다. 음악 소리가 잔잔히 흐르는 무대 위를 바라보면서 내게 귓속말을 해온다.
" 니엘이도 알게 됐어. "
" 뭐? 야 네가 말했냐? "
" 그럴리가. 누구겠어 권으로 시작하고 빈으로 끝나는- "
" 권현빈도 왔어 오늘? "
" 민현이 형 무대 보러. 방금 왔어. "
아 진짜. 김재환보다 조심해야 할 대상이 권현빈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어쩐지 요즘 조용하다 싶었다. 천막 안에 권현빈이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틀고 천막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네방네 아주 소문 다 나게 생겼다. 권현빈 이걸 진짜.
" 야!! 민현이 형이랑 종현이 형 무대야! "
등 뒤로 들려오는 김재환의 외침에 재빨리 걸음을 돌렸다. 무대 아래로 쪼르르 달려가 김재환의 옆에 자리를 잡고 섰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무대 중앙으로 민현 오빠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마른침이 절로 삼켜졌다. 곧바로 김종현도 무대 중앙에 마이크를 들고 섰다. 무대 조명이 세서 김종현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김재환과 나란히 서서 박수를 쳤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어느덧 잦아들었다.
" 안녕하세요. 우리대학교 실용음악과 14학번 황민현입니다. "
민현 오빠가 인사를 하자마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권현빈이 ♥사랑해요 황민현♥ 플랜카드를 들고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아 저 주둥이 어떻게 좀 하는 건데. 권현빈과 순간 눈이 마주쳤다. 움찔거리면서 권현빈은 플랜카드로 제 얼굴을 가렸다. 그래도 양심은 있나 보다. 다시 무대 위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숨을 느릿하게 내쉬었다.
그러니까, 김종현은. 그러니까...., 그러니까...,
" 안녕하세요. 우리대학교 실용음악학과 14학번 김종현입니다. "
학교에서, 아니 여태껏 내가 보지 못한 얼굴과 표정으로 무대 위에서 관객석을 내려다보았다. 인사를 마치고 각자 자리를 찾아 가는 와중에도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무대 위의 김종현만 눈에 담을 뿐이었다.
도짜님들 Q. 아니 왜 자꾸 새벽에 와?
나 A. 면목 없읍니다 죄송합니다 흑흑
이번에 분량 조절 실..패.... 뭔가 어정쩡하게 끊긴 기분이고요..
여주가 종현이한테 폴링럽하는 순간이 오긴 와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장면 넣었읍니다 종현 흑화 제가 매니 사랑하고든요...
하핫 아침에 글 밀어버리면 어떡하지.. 농담이고요ㅎㅁㅎ
다음편은 진짜 빨리 올게요 왜냐면 원래 오늘 내용이 다음편 내용이라..^^...
지금 너무 피곤해서..움짤 보완은 내일 아침에 하도록 하겠읍니다 흑흑
도짜님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잘자십숑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