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이리도 고민이 되었던 적은 학교를 입학한 이래로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유리창 너머 강의실 안을 수십 번 건너보다가 괜히 손가락으로 입술을 잡아당겼다. 긴장할 때 나오는 일종의 버릇 같은 거였다. 대충 강의실 안을 둘러보니 아직 김종현은 오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을까. 평소처럼 대하면 되는데 그게 뭐 어렵다고…. 강의실 문에서 멀찍이 선 채 짧은 고민을 하다가 이내 강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출 뻔 했다. 분명 밖에서 강의실 안을 보았을 땐 김종현의 머리카락 한가닥 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강의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문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김종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김종현의 옆에 가서 앉으려고 하는데, 어느새 날 발견한 김종현이 눈을 끔벅끔벅거리면서 배시시 웃음을 짓는다.
" 와써? "
" 네. "
자리에 앉자 김종현의 목소리가 다정하게 딸려왔다. 평소 같으면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대화를 이어가거나 할텐데 어젯밤 내내 김종현의 생각을 한 탓에 고개가 쉽사리 틀어지지 않았다. 김종현을 좋아한다고 깨달은 후로 당연하게 행동했던 모든 것들이 사고회로가 멈춘 듯 어렵게만 느껴졌다.
" 어,..여주야아. 내가 과제 보완해서 제출하께. "
" 네. "
" 하핫.. "
미쳤다 진짜. 누가 봐도 티가 팍팍 나는 행동이었다. 김종현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저 앞만 응시한 채 대답은 죄다 네, 네를 읊조렸다. 무슨 기계도 아니고 나조차도 내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다. 맨 처음 같은 조가 되었을 때 내 인사를 무참히 넘겼던 김종현의 행동들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때의 김종현도 지금의 나처럼 이런 마음이었을까.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는 교수님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죄 없는 손가락만 톡톡 건드렸다. 김종현은 내게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마치 한 달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우리 둘 사이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오늘 밤 김재환한테 술이나 마시자고 해야겠다. 김재환에게라도 털어놔야 뭐라도 진행이 되든 할 것 같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연애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지금의 내가 나도 낯설었다.
" 여주야아.. 펜 주까? "
" ..... "
" 피료..업써...? "
" 아. 괜찮아요. "
" ....그러쿠나... "
결국 끝까지 김종현 쪽으로 고개를 틀지도 않고 꿋꿋이 허리를 폈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 교수님이 나눠준 종이에 필기조차 하지 못했다. 급히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 고개를 푹 숙이고 빠릿하게 손만 움직였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의 나는 존나게 최악이다. 아마 김재환이 보면 깔깔거리며 놀려댈 게 뻔하다.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종이에 아무 말이나 무작정 적어댔다. 사각사각. 그 와중에 옆에서 들려오는 김종현의 볼펜 소리가 썩 듣기 좋다. 마치 김종현처럼 편안해지는 소리였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 그러니까 종현아, 지금 네 말은 여주가 너를 싫어하는 것 같다구? "
" ..응. "
민현은 한 달 전 재환의 물음이 떠올랐다. 어쩜 그 때의 질문과 다를 바 없이 웃음을 짓게 할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종현은 여주에게 고백을 할 생각에 한껏 들뜬 얼굴로 민현에게 쫑알쫑알 말을 해댔었다. 미녀나 나 지짜 해? 여러 번 질문을 내던지고 교양 수업을 갔지만 수업이 끝나고 자취방으로 돌아 온 종현의 얼굴에는 민현의 예상과 달리 먹구름이 그득했다. 풀이 죽은 목소리로 민현에게 수업 시간 때 있었던 일을 말하는데 순간 민현은 저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웃음을 삼켜냈다. 종현의 말을 들을수록 민현은 점점 확신이 섰다. 여주 역시 종현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는 확신. 종현의 말에 의해 그려지는 오늘 여주의 모습은 흡사 종현이 처음 여주와 면대면으로 마주했을 때와 비슷했다.
" 여주가아.... 내가 말걸었능데.. 계속 대답두 안해주구.. 내 눈도 피해써... "
" 종현아. "
" ...응 미녀나. "
" 맨 처음에 여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때 어땠어? "
" 응...? "
" 여주 눈 제대로 쳐다볼 수 있었어 종현아? "
느닷없는 민현의 물음에 종현의 두 눈이 민현을 향했다. 엷은 미소를 짓는 민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처음 여주와 같은 조가 되었을 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종현의 얼굴에는 연분홍빛이 슬그머니 내비쳤다. 민현은 연분홍빛을 띠며 고개를 살짝 숙인 종현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보면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 여주도 지금 그런 거야 종현아. "
" ..... "
" 여주는 종현이 너 안 싫어해. "
" ....지짜? "
별안간 종현의 소같은 눈망울이 커지면서 또렷이 민현을 응시했다. 민현 역시 종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눈을 크게 떴다.
" 응 진짜 종현아. "
확신이 가득 차 있는 대답을 들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나보다. 종현은 윗니로 입술을 꾹 물며 방긋방긋 새어 나오는 웃음을 그대로 터트렸다. 입꼬리를 조금씩 끌어올리며 수줍은 미소를 베실베실 지어 보인다.
" ..하핫. "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아 보이는 종현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하핫. 민현은 그저 웃는 종현의 얼굴을 보며 따라 웃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김재환과 자주 가던 술집이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김재환과 내가 첫 손님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맥주 두 병과 소주 두 병을 각각 시키고 안주는 내가 좋아하는 홍합탕과 김재환이 좋아하는 계란말이로 시켰다. 주문이 모두 끝나고 술들이 먼저 테이블 위로 차려졌고 김재환은 술을 따는 내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술잔에 술을 따르려는 내 손을 제지하고 김재환이 입꼬리를 씰룩이면서 술잔을 가져갔다. 나란히 술잔 두 개를 제 앞에 놓더니 한다는 말은.
" 종현이 형이 오늘 민현이 형한테 그랬대. 여주가 나 싫어하는거가타.... "
" ... 너 지금 그 오빠 따라한거? "
" 똑같지 않아? "
" 죽을래? "
" 아 아무튼.. 종현이 형이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데. 솔직히 너도- "
" 이모 물 좀 갖다주세요!!! "
내가 먼저 김종현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김재환이 먼저 선수를 친 나머지 그만 오바 액션을 해버렸다. 손을 번쩍 들고 이모에게 물을 갖다 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참담했다.
" 물은 셀프여!!!! "
" 넵. 죄송합니다... "
민망한 건 둘째 치고 언제쯤이면 자연스럽게 김종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김재환은 숨이 넘어갈 듯이 끅끅거리며 웃다가 휴대폰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다소 수상쩍은 행동에 눈을 가늘게 뜨곤 김재환을 흘겼다.
" 너 뭐하냐 지금. "
" 아 뭐가 또오. 너 기분 꿀꿀하대서 술친구 해주는 거지. "
" 나 소맥 타주라. "
" 예예. 내가 또 누구한테 소맥 황금비율을 배웠지. "
김재환이 술잔에 맥주를 따르자 곧바로 기포가 퐁퐁 올라왔다. 며칠 전부터 김재환은 집요하게 김종현을 어떻게 생각하냐며 물어왔지만 나는 묵살을 할 뿐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나 깨달았을 때나 변함이 없었다. 머리로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게 참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오늘만큼은 술기운을 빌려서 김재환에게 귀띔이라도 얹어 줄 생각이었다.
" 야 나 진짜 술기운으로 말하는 거 아니고. "
" 너 아직 술 안마셨는데? "
" 시비 거냐 김재환. "
" 아니다 김여주. "
아직은 뭔가 무리인 것 같기도 하고. 소맥을 타는 김재환을 멀뚱히 보다가 앞에 놓인 소주 병을 따서 소주 잔에 쪼르르 따랐다. 소주 한 잔을 안주 없이 마신 건 오랜만이라 그런지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꽤 썼다. 인상을 찌푸리며 소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데 김재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소맥을 탄 맥주 잔을 들었다.
" 야 자작하면 2년 동안 솔로. 몰라? "
"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걸 따졌다고. "
" 부정 타. 이거 마셔 얼른. "
김재환이 건넨 맥주 잔을 받아들고 홀짝였다. 넌지시 본 김재환의 얼굴에는 알듯 모를 듯 오묘한 미소가 샜다. 뭐야. 왜 또 저렇게 봐.
" 너도 소맥 타줘? "
" 할 말 있는 눈치던데. 내가 잘 못 알아챈 걸까? "
" ..몰라. 술이나 마셔. "
남아 있는 술을 모조리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술을 삼키고 고개를 들면 김재환은 김이 빠진 얼굴로 날 마주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말하고 싶은데 아직 술기운이 오르지 않아서 말을 하기가 좀 그랬다. 부끄럽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김재환의 앞에 놓인 빈 술잔에 맥주와 소주를 7:3 비율로 맞춰 따랐다. 김재환은 말없이 내 행동을 지켜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 너는 애가 정말... "
" 뭐. 이거나 마셔. "
" 아니야 그래. 마셔 친구야. "
김재환은 체념한 얼굴로 내가 건넨 술잔을 받아 들었다. 짠. 허공에 흩날리는 청아한 소리를 넘겨 들으면서 술을 들이켰다. 김재환은 원샷을 하고 제 입술 주변을 손으로 닦았다. 캬하- 소리까지 내가면서 술잔을 다시 내게 건넨다.
" 오늘 먹고 죽자. 병신병신~ "
" 욕하지 마 멍충아. "
" 너한테 한 거 아닌데? "
" 야. "
" 아, 알겠어. 타주세요 누님. "
" 윽... "
누님이래 미친 거 아니야? 온갖 소름 돋는 표정을 하고 김재환의 술잔을 받았다. 이렇게 된 이상 술이 취해서 술기운이 오를 때까지 김재환과 술을 마시는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지금 말하기에는 정신이 너무 말짱해서 무리였다. 꼬로록 꼬로록 잔에 술이 가득 차는 걸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종현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갑작스레 든 생각 때문에 술잔이 아닌 테이블에 술을 따라 버리고 말았다. 김재환은 눈을 번뜩이면서 벌써 취했냐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나는 가뿐히 김재환의 말을 무시하고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아. 김종현의 잔상이 떠나지 않는다. 김재환이 흉내 낸 김종현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 어. 재환이한테 문자 왔어. "
" 뭐래? 지금 들어가면 되냐? "
" 성우야 침착해. 우리 말고 종현이만 들어가는 거야. "
민현의 단호한 어조에 성우가 그만 울상을 지었다. 성우는 입을 삐죽이면서 종현의 어깨를 살포시 쳤다. 야 종현아. 준비 다 됐어? 성우의 물음에 종현은 쭈그리고 앉은 채 고개만 푹 숙이며 무어라 중얼거리기 바빴다. 세 남정네가 술집 앞 간판 뒤에 숨어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거리를 지나갔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아랑곳 않았다. 민현은 잔뜩 긴장한 종현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을 뱉었다.
" 재환이 나오면 10초만 세고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알았지, 종현아. "
" ....응. "
" 종현이 긴장했어? "
" 안니. 갠차나. "
숙이고 있던 고개가 번뜩 들렸다. 종현은 비장한 얼굴로 자그마한 두 주먹을 불끈 쥐곤 성우와 민현의 얼굴을 번갈아 마주했다. 성우는 다리가 저린듯 으으.. 앓는 소리를 내면서 무릎을 피려 했지만 민현에 의해서 제지를 당하고 말았다.
" 야 민현아. 상식적으로 나처럼 이렇게 키 큰 사람이 30분 넘게 쭈그리고 있으면 무릎에 안 좋아. "
" 성우야 키 몇이지? "
" .....조용히 하라는 소리지? 알겠어 민현아. "
성우는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곤 다시 무릎을 굽혀 몸을 간판 뒤로 숨겼다. 종현은 성우와 민현의 대화를 유심히 듣다가 웃음을 베시시 흘렸다. 성우는 178이구 민현이는 180이구 나는..나는...하핫.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종현은 웃는 얼굴을 거두고 다시 진지한 표정을 얼굴에 가득 드러냈다.
" 재환이 곧 나온대. "
휴대폰에 시선을 두면서 민현이 낮게 읊조렸다. 종현은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전방 200m 여주가 술집 안에 있다. 바짝 긴장한 탓에 손끝이 저려온 나머지 종현은 손가락을 쪼물딱거리면서 민현의 말에 귀 기울였다. 성우는 호들갑을 떨면서 민현과 종현의 두 어깨를 반복적으로 건드렸다. 야 왜 내가 다 떨리냐? 성우의 물음에 그 누구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지만 세 사람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종현은 오른손을 제 심장 부근에 얹으면서 호흡을 여러 번 내쉬었다. 민현은 아랫입술을 혀로 훑었다. 결전의 밤. 그날이 드디어 다가온 것이다. 성우는 눈을 감고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종현이랑 여주랑 연애하게 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제 명에 살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믿지도 않는 신들에게 빌었다. 아주 눈물겨운 우정이 따로 없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술 집 안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귓가를 자극하는 음악소리와 무리 지어 깔깔거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 데 섞였다. 분위기에 휩쓸린 재환과 여주는 본인들의 한계 주량을 뛰어넘은지 이미 오래였다. 특히 재환은 평소 술에 취했을 때보다 더욱 큰 몸짓을 구사했다. 그도 그럴 게 여주가 끊임없이 재환에게 술을 따라주었기 때문이었다. 재환은 여주가 주는 족족 술잔을 받아 마셨고 그 결과 몸을 우스꽝스럽게 흔들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 손에는 휴대폰을 꼭 쥔 채였다. 여주는 저를 내려다보는 재환을 바라보았다. 재환의 손이 여주의 어깨에 거침없이 닿았다. 그순간 재환은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면서 떵떵거렸다.
" 내가 메로나 사온다! 기다려! "
" 아 미친노마 어딜가! "
여주가 옷자락을 붙잡기도전에 재환은 술집을 빠져나갔다. 시야에서 사라진 재환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갈망하던 여주가 순간 테이블에 고개를 박았다. 방금전의 상황이 또렷하게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술기운이 여주와 재환을 뒤덮었을 때였다. 여주는 제 앞에 놓인 술잔을 들고 머리 위로 탈탈 털면서 우렁차게 말했다. 야 나 김조년 그 오빠 좋아해. 좋아한다고!!!!!!!! 시끄러운 EDM음악 소리와 함께 여주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아아악. 여주는 지난 날을 회상하며 괴로운 듯 앓는 소리를 내질렀다. 김재환이 다 알아버렸어. 알아버렸다고. 홍조를 두 볼에 가득 띤 여주가 끙끙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여주의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 저기요. "
그러더니 여주를 부른다. 여주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고 눈을 위로 치켜 떴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야실야실 웃으며 여주를 내려다보았다.
" 혼자 왔어요? "
" 아 뭐래. 재화니랑 왔는데. "
여주의 대답을 들으면서 남자는 비실댔다. 그리고는 원래대로라면 재환의 자리인 여주의 앞에 앉으면서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주의 시선을 맞받아치며 웃는다.
" 여기 앉아도 되죠? "
" 안대여. "
남자가 실실 웃으며 묻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와 익숙한 내음이 여주의 곁에서 났다. 목소리와 내음의 주인은 다름 아닌 종현이었다. 심기가 불편한지 종현의 표정이 잔뜩 굳어진 채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갑작스러운 종현의 등장에 떨떠름한 얼굴로 종현과 여주를 번갈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여주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려 제 옆에 우뚝 선 종현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어.... 제 눈을 비비다가 여주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아 뭐야...나 왜 헛것 보여.. "
종현은 지속해서 눈을 비비는 여주를 제 뒤로 숨기면서 남자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남자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종현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종현이 먼저 선수를 쳤다.
" 가세요. "
남자를 향해 무덤덤히 내뱉는 종현의 목소리가 낮았다. 남자는 종현의 표정이 무서워서, 아니 그것보다 아까부터 자꾸만 저를 째려보는 가게 밖의 남자 세 명 때문에 못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꾸준히 따라 붙는 종현의 시선 때문에 결국 남자는 뒷목을 긁으면서 제 친구들의 무리로 돌아갔다. 남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나서야 종현은 흐허... 숨을 내쉬고 뒤를 돌아 여주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여주와 시선을 맞추면서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거렸다.
" 와.... 나 지짜 좋아하나봐.. 와... 이제 헛것이 다 보여. 미쳤어. "
" 여주야아. "
" 미친. 심지어 말도 해. 환청도 들려 어떠케. "
" 여주야아. 환청 안니야. "
그순간 여주가 종현의 얼굴에 제 손을 덥석 갖다 대었다. 동시에 종현의 얼굴이 급속도로 빨간 빛을 띠었다. 술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한 남자가 여주의 앞에 앉아 있어서 제 걱정을 한 종현의 속마음도 모른 채 여주는 횡설수설을 하면서 혼자 옹얼거렸다. 뭐야 진짜 김종현이네... 진짜네 헐 진짜야. 재환과 다를 바 없이 술에 취한 여주의 모습을 보게 된 종현은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전히 시선은 여주의 얼굴을 물끄러미 향한 채 느지막이 물었다.
" 재화니랑 술 많이 마셔써? "
" 뭐야... 오빠 지금 내 걱정해요? "
" 그거능...당여나자나.. "
" 왜요? "
돌연 여주가 풀린 눈으로 지그시 종현을 응시했다. 그에 종현은 숨이 헙- 막혔지만 민현과 함께한 다짐이 생각나서 눈을 크게 뜨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왜 걱정을 하냐구여. "
" 이짜나... 여주야. "
" 안 들려..... "
" 이짜!나..여주야아..! "
" 아 들려요. 진짜 잘 들, "
" 좋아... 좋아해. "
비트가 빠른 음악이 어느새 느릿한 템포로 바뀌었다. 여주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저와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종현의 얼굴을 이곳저곳 살폈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여워서 여주는 씩 웃으며 고개를 비스듬히 하곤 종현을 보았다. 술기운 때문이 아니었다. 여주는 입가에 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그대로 한 채 말을 이었다.
" 안 들려... 오빠 뭐라구여? "
그 와중에 장난을 치는 여주때문에 잠시 주춤했던 종현의 얼굴에 다시 빨간 빛이 돌았다. 새빨간 토마토가 된 채 종현은 우물쭈물하며 여주를 보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어 여주와 시선을 마주했다. 마주한 종현의 얼굴이 퍽 진지했다. 여주를 담은 종현의 눈은 그 어느때보다 맑고 담담했다.
" 좋아해. "
" ..... "
" 많이. 많이 좋아해. "
오직 여주를 위한 종현의 수줍은 고백이 드디어 닿았다. 술집을 가득 메운 음악 소리,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소리, 부딪히는 술잔 소리가 전부 미세해졌다. 적어도 종현에게는 그랬다. 모든 게 새하얗게 변하고 오로지 여주만 종현의 눈에 가득 들어찼다. 여주는 빙그르르 웃으며 눈을 말똥거리면서 저를 바라보는 종현의 얼굴을 그저 바라보았다. 볼록하게 솟은 광대를 씰룩이면서 여주가 입을 벌렸다.
" 나도요. "
" .... "
" 오빠 좋아해요. "
아아. 감격의 눈물이 그만 종현의 눈망울을 타고 내려오려 했지만, 일순 꼿꼿이 의자에 앉아 있던 여주의 몸이 테이블 위로 철푸덕 엎어졌다. 종현은 놀란 눈을 하고선 자리에서 재빠르게 일어나 여주의 어깨를 조심스레 붙잡으며 외쳤다. 여주야아.. 여주야아...! 그순간 밖에서 종현과 여주를 지켜만 보고 있던 민현과 성우, 재환이 차례대로 안으로 들어와 여주의 주위를 둘러쌌다. 술이 깬 건지 거의 다 먹어가는 메로나를 우물거리면서 재환만이 평온한 표정으로 박수를 짝짝 쳤다.
" 와 겁나게 오래 걸렸다. 무튼 종현이 형 축하해요. 그리구 형들 김여주 술 마시면 원래 이래요. 몇 분뒤에 정상인으로 돌아오니까 조금만 기달,... "
재환이 채 말을 잇기도 전에 민현을 선두로 종현과 성우가 여주를 데리고 술 집을 나갔다. 아무래도 키가 제일 큰 민현이 여주를 업고 종현은 그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여주의 등에 제 옷을 덮어 주었다. 재환은 마지막 한 입 남은 메로나를 입안에 넣으면서 멍한 얼굴로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덩그러니 남겨진 재환의 곁으로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턱- 하고 재환의 어깨를 붙잡은 손이 우악스럽다. 재환은 천천히 고개를 틀어 손의 주인을 응시했다.
" 계산은 해야지 학생? "
이모님의 말에 재환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계산대로 가는 이모님의 뒤를 따랐다. 메로나 막대기를 손에 쥔 채 꿍얼대면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을 꺼내 카드를 주섬주섬 내밀었다.
" 와.. 김여주의 빅픽쳐였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은 걍 제 사심이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환이 넘 귀엽고..무튼 드디어 종현이가 고백을 했숩니다 흑흑
쓰면서돜ㅋㅋㅋㅋㅋ우리 종현이 장하다...! 이런 느낌이여써요
뭔가 키운 느낌... 고작 글쓰는 주제에...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짜님들 여기까지 같이 달려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숩니다!^^
앞으로는 달달다랄랄ㄷ라달달한 이야기는 물론
가끔은 엇......박..자 타는 이야기들도 함께 합시다!
싫다고 해도 제가 매달릴래요.. 도짜님들 사랑하고요...ㅠㅠ
암호닉에 관해서 궁금한 게 많으실 것 같아서요
암호닉 신청..원하시는 도짜님들 많으신가요?
아직은 계획이 없지만 완결 직전에 또 한 번 신청 받도록 하겠숩니다
제가 뭐라고...우리 도짜님들이 슬퍼하는 거 저도 싫고요..흑흑
무튼.. 도짜님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즐저 보내십쇼!
아 마자 댓글ㅋㅋㅋㅋㅋㅋㅋ저 댓글 다 읽는데 도짜님들 간혹가다가 귀여움이 과할 때가 이써요 ㅡㅅㅡ 조심 좀 해주셨으면 좋겠숩니다 제가 넘 힘들다고요(농담 이고요 언제든 환영입니다 감사합니다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