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릴적부터 함께 한 친구가 있듯이 내게도 그러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이름은 황민현 나이는 23살 오늘 막 군대를 제대했다.
우리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된 인연으로 지금까지 인생의 달리기를 함께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황민현과 이렇게 오랫동안 인연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엄마와 황민현의 엄마가 영혼의 짝꿍처럼 잘 통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매번 황민현의 엄마에게 고모의 욕을 했고 황민현의 엄마는 지난달 월세를 아직도 내지 않은 고시생 오빠의 걱정을 밥 먹듯 했다. 아무튼.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황민현의 제대 날에도 나는 자칭 황민현의 엄마를 자청하는 우리 엄마와 황민현의 엄마의 등쌀에 밀려서 논산훈련소의 앞까지 오게 되었다.
" 어머니이!!! "
아주 눈물 겨운 상봉이 따로 없다. 빡빡 밀어서 잡초처럼 짧았던 머리통은 어디가고 말년 군생활 짬밥을 좀 먹었는지 황민현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바가지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제 엄마와 와락 포옹을 하며 눈물을 머금더니 멀뚱히 서 있는 날 발견하곤 비죽 웃으며 내 앞으로 한걸음 다가와 선다.
" 여주야 어떻게 면회를 한 번도 안 올 수가 있어. 전화는 왜 또 안 받, "
" 전역 축하. "
" 아 진짜.... 야 내가 군대에서 얼마나 네 걱정을 했는데. "
" ...울어? "
훌쩍이며 코를 먹는 버릇 또한 어디 안 갔다. 어릴 때나 어른이 됐을 때나 황민현은 변한 거 하나 없이 눈물을 훔칠 때 꼭 코를 먹었다. 어린아이처럼 모자를 손에 쥐고 엉엉 우는 황민현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바라만 보고 있는데 돌연 저쪽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엄마와 아줌마가 화들짝 놀라며 우리 쪽으로 총총 걸어왔다.
" 에구머니나! 내새끼 여주 오랜만에 봐서 우는겨? 엉? "
" 그러게 여주야, 민현이 면회 한 번 가라니까. "
화살은 또다시 내게 돌아왔다. 우는 황민현을 토닥여주면서 아줌마와 엄마는 날 나무랐고 나는 벙찐 표정으로 황민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훔쳐내는 황민현의 두 손 사이로, 정확히 입술 사이로 새는 웃음을 보고야 말았다. 저거 또 시작이다. 황민현 도른자새끼.
남사친과 황민현의 상관관계
" 아, 이 냄새. 내가 얼마나 그리웠는데- "
" 너 아까 연기 잘하더라. "
" 이참에 나 배우할까? "
" ...배우는 아무나 하나. "
옥상 문 옆에 걸려있는 전신 거울로 얼굴 곳곳을 살피더니 황민현은 무언갈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와 엄마가 황민현 전역 기념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오랜만에 아지트에 와서 자유를 만끽했다. 황민현은 한참을 거울 앞을 서성이더니 이내 평상 위에 앉아 있는 내 옆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 야 여주야. "
" 왜. "
" 너 학교에서 친구들 많이 사겼어? "
" 응. "
" 와 서운하다. 친구는 나밖에 없다고 잉잉 울었으면서. "
황민현이 우는 시늉을 하면서 목소리를 냈다.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또 그때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황민현과 다른 반이 되고 난 후 방에 박혀서 엉엉 울던 걸 엄마가 보더니 아줌마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말을 한 게 벌써 14년 전의 일이었다. 1년에 한두 번씩 황민현은 꼭 그때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받아쳐 줄 대답조차 생각나지 않아서 말없이 황민현을 따라 하늘을 응시했다.
" 너 근데 진짜 너무 한 거 알지. 면회도 안 오고 전화도 할 때마다 안 받고. 기지배. 내가 말은 안 했지만 조금 서운했어. "
이번에도 황민현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그득 담겨 있었다. 입술만 달싹이면서 점점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만 우러러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 헐. 우리 여주 지금 내 말 무시하네. 와, 서운하다 서운해. 서운하, "
" 얘들아!!! 밥 먹으러 내려 와!!! "
" 밥이 도왔다. 야 밥 먹으러 가자. "
읏차- 소리를 내면서 황민현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멍하니 평상 위에 앉아 있는 날 뒤돌아 보더니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한다. 주섬주섬 걸음을 옮기면 그제야 황민현이 씩 웃으면서 옥상 문을 열어준다.
"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어? 멍 때리는 거 자주 하면 얼굴 커진다니까. "
세세한 내 버릇마저 황민현은 용케도 알아챘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건 아직까지도 모르는 눈치다. 아까 미처 말하지 못한 건. 내가 1년 9개월이란 시간 동안 황민현의 면회를 가지 않은 데에는 단지 그 이유 때문이었다.
15년지기 친구 황민현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사친과 황민현의 상관관계
내가 황민현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날은 아마 고등학교 졸업식 날일 거다. 그날 엄마는 가게일 때문에 바빠서 졸업식에 오지 못했고 멀리 사는 이모가 졸업식에 오겠다는 걸 황민현의 엄마가 말렸다. 아줌마는 자기가 엄마 대신 졸업식에 오겠다며 전 날부터 내 기분을 붕붕 띄워주었다. 원체도 활발한 성격이 못 됐기 때문에 졸업식 날 뒤풀이를 할 친구들도 마땅치 않았다. 그저 한두 명과 인사를 끝내고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호탕한 웃음소리를 우렁차게 냈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사르르 눈이 접히도록 웃으며 황민현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 졸업 축하해 우리 여주? '
' ...느끼해. '
' 좋다구? '
' 아줌마는 어딨고 네가 왔어? '
' 얘 말 돌리는 것 봐. 좋으면 좋다고 하면 되지. 그게 어려워? '
급한 일이 생긴 아줌마 대신 황민현이 내 졸업식을 왔고, 아마 나는 그 때 많은 아이들의 시선을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처음 받았을거다. 능청스레 말을 뱉어내는 황민현을 따라 학교 근처에 있는 중국집을 갔던 기억이 난다. 아줌마 짜장면 하나는 완두콩 빼주세요! 내가 완두콩을 싫어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황민현은 목청 좋게 소리를 내며 주문을 했다. 황민현과 단둘이 밥을 먹은 건 분명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때 느낀 내 감정들이 낯설고 어려웠다. 활짝 웃는 그 애의 얼굴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오랫동안 부정하고 있던 감정을 비로소 인정한 기분이랄까.
" 내가 군대 있을 때 이 집 짜장면이 그렇게 그리웠어 여주야. "
" 많이 먹어. "
" 많이 먹고 있어. 야 근데..너 완두콩 먹네?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며 온 곳은 그 때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중국집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짜장면 위에 올려져 있는 완두콩 4개를 바라보았다. 황민현은 그런 내 행동을 넌지시 보더니 입안 가득 면을 오물거리면서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 아 또. 우리 여주 내가 완두콩 빼달라고 말 안 해줘서 그냥 먹는 것 좀 봐. "
" .... "
"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너 나 없는 동안 짜장면 한 번도 안 먹었지. "
완두콩 4개를 젓가락으로 제 그릇에 옮겨 담는 황민현의 행동을 응시하면서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웃기게도 황민현의 말처럼 지난 1년 9개월 동안 짜장면을 먹은 기억이 없다. 나조차도 어이가 없어서 홀로 웃음을 흘리는데 황민현이 아예 내 것의 그릇을 가져가서 면을 비벼주었다. 그리고는 자, 먹어 여주야.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로 그릇을 다시 내 앞에 갖다 주었다.
" 또. 또 멍 때리지 김여주. "
" ...아니거든. "
" 뭘 또 아니래 맞는데. 하여튼 우리 여주 멍 때리기 대회 나가면 크러쉬를 제치고 1위 할 거야. 암, 그렇고말고. "
내가 멍을 때리기 시작한 것도 어찌 보면 다 황민현 때문인데 언제쯤 그 사실을 알런지 모르겠다. 내가 입 밖으로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꺼내기 전까지는 절대 알리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황민현이 내 마음을 평생 몰라줬으면 했다. 지금처럼 굴절 없는 우리의 관계가 흐트러질까 두려웠다. 황민현은 날 챙겨주고, 나는 그런 황민현의 챙김을 받는. 게다가 오랫동안 황민현을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완전히 돌아서는 그 애의 모습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이 황민현과는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친구라는 명분 하에 그 애의 옆에 오랫동안 있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다.
" 우리 여주 많이 먹엉? "
" ...돼지 같아. "
" 야 나처럼 근육 빵빵한 돼지 봤어? "
느닷없이 팔을 번쩍 내밀고 근육을 보여주려 하기에 고개를 황급히 숙였다. 호탕하게 웃는 황민현의 웃음소리가 머리맡으로 들려왔다. 쟤는 내가 져주는 걸 모르나 보다. 황민현의 웃는 모습이 좋아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뿐인데 본인만 그걸 모른다. 말없이 짜장면만 삼켜내는 내가 어지간히 안쓰러웠나. 황민현의 젓가락이 내 짜장면 그릇 위에 올려졌다. 샛노란 단무지도 함께였다.
" 그러다 체 해 여주야. 단무지 내가 하나 아껴논 거 너 준다. "
" 고오맙다. "
" 기지배 좋으면서 또 튕겨. "
대답없이 황민현이 준 단무지를 와그작 씹었다. 윙윙-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가 배경음이 되어 깔렸다. 항상 나보다 음식을 빨리 먹는 황민현은 지금도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슬며시 고개를 드니 황민현이 웃으며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 날, 내가 황민현에 대한 마음을 깨달은 그 날처럼 말이다.
본격 짝사랑물+캠퍼스물 스타뚜.....☆
사실 스윗 민현이와 댕댕이+능글 민현을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했읍니다..하핫
스윗 미년이는 빌어먹을 부기에도 나타나니까요..^^..(자기합리화중
무튼ㅋㅋㅋㅋㅋ도짜님들 갑작스레 울린 신알신이 새로운 글이라서 많이 당황하셨쬬..?
이 글도 많이 사랑해주십쇼..!
앞으로 소처럼 글 써야게써요ㅋㅋㅋㅋㅋㅋㅠㅠ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흑흑
반응 없을까봐...지금 무척 떨리고..막.. 후..후후..
얼른 부기글 쓰러가야지..도짜님들 조만간 또 만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