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뉴이스트 W - 있다면
" 민현이 오늘부터 학교 간다는데? 같이 안 가? "
이제 막 학교에 가기 위해 신발을 신고 있는데 앞머리를 헤어롤로 돌돌 만 엄마가 눈을 크게 뜨며 물어왔다. 무슨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황민현과 나는 비록 같은 과는 아니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과는 달라도 주로 사용하는 건물은 비슷해서 그런지 군대를 가기 전에는 황민현과 교양 과목이 겹친 적도 있었다. 그 때 황민현이 아는 척을 하는 바람에 친하지도 않는 동기 여자애들이 황민현의 번호를 물어와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여하튼 황민현도 개강 날에 맞춰서 복학을 할 예정인가 보다. 나한테 학교 간다는 말은 안 했었는데… 괜스레 드는 서운함이 참 모순적이다. 황민현을 좋아하는 감정 따위를 갖지 않으려고 1년 9개월 동안 부단히 노력을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다 부질 없는 짓이었다.
" 학교 다녀올게. "
" 민현이랑 싸웠어? "
" 아니. "
짤막한 답을 한 후에야 도어록을 열고 집을 나섰다. 새 학기, 첫 수업이지만 학교를 3년 동안 다닌 지금은 설렘이라고는 하나도 들지 않았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주택 계단을 내려가는데 무언가 서늘한 느낌이 들어 슬며시 고개를 틀면, 순간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히죽 웃으며 황민현이 내 바로 뒤에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 우리 여주 많이 놀랬어? "
" ...이런 장난 좀 치지마. "
" 야아 여주야. 서운하게 말을 또 그렇게 하구 그래. "
황민현과 나란히 계단을 내려오면서 주택 입구를 빠져나왔다. 발을 맞춰 걸으면서도 황민현은 내가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마셨더니 기분이 좋아서 그랬어. 어? 여기 보세요~ 여주 여기 보세요~ 한참이나 온갖 아양을 떨어대면서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럴 때마다 입술 새로 웃음이 조금씩 새어 나오려 하는 걸 애써 참아야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황민현에게 들키고 말았다. 바람 새는 웃음이 흘림과 동시에 황민현이 내 어깨에 제 팔을 두르면서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 나 아니면 누가 이렇게 웃겨줘. 아니야? "
" ..나 완전히 안 웃었는데. "
" 또 튕긴다 또. 내가 여기서 고릴라 춤이라도 춰야 되겠어? 우리 사이 좋게 학교 가자 여주야. "
고릴라 춤이라는 말에 아랫입술을 꽉 물고 웃음을 참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거다. 내가 그때 한창 푹 빠져 있던 책을 황민현이 라면 받침대로 쓰는 바람에 빳빳했던 책의 앞 표지가 부득이하게 구겨졌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드러나는 표정은 그게 아니었던 게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황민현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별안간 고릴라 흉내를 내며 웃긴 춤을 췄다. 우끼끼- 우끼끼- 괴이한 소리와 내 웃음소리가 한 데 섞였고, 그 날 이후 황민현은 내 기분을 풀어줄 때마다 고릴라 춤을 추곤 했다.
" 야 여주야. "
잘만 길을 걷다가 대뜸 황민현이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틀어 대답 없이 얼굴을 응시하면,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씩 웃음을 짓는다. 그러더니 별 쇼를 하며 갖은 표정을 지어대었다.
" ...뭐해? "
" 나 복학생 티 나? "
" 응. "
" 티 난다고? 진짜? "
천하의 황민현도 복학생 타이틀이 내심 마음에 걸렸나 보다. 군대를 갓 제대한 복학생은 조심해라. 대학에서 장난처럼 도는 말이 어지간히 신경 쓰였던 모양인지 진지하게 답하는 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 아 다시 봐봐. 나 진짜 복학생 티 나? "
" 어차피 다들 알게 될 텐데 뭐. "
" 너는 가끔 말을 너무 정확하게 해서 미울 때가 있어. 그러면 내가 반박을 못하겠잖아 여주야. "
황민현의 풀이 죽은 목소리가 살짝 마음에 걸렸다. 사실은 복학생 티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본인도 상당히 알고 있는 잘생긴 외모는 군대를 다녀와서 더욱 빛을 발하였고 키도 어째 더 큰 것 같다. 아마 예상하건데 신입생 절반은 황민현의 등장으로 인해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이름을 알아내기 바쁠 거다. 그 생각을 하니 괜히 또 기분이 가라앉았다. 황민현이 여자친구를 사귈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 복학생 안 같아. "
" 어? 뭐라고 여주야? 나 못 들었어. 다시 말해 봐. "
실실 웃으며 눈웃음을 짓는 걸 보니 못 알아들은 눈치가 아니다. 황민현은 가끔씩 제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줄 때면 못 들은 척 다시 한 번 듣기를 원했다. 지금도 그렇다. 눈을 가늘게 뜨고는 능청스레 말을 뱉는 폼이 어서 말 해달라는 태도를 잔뜩 보였다.
" 복학생 안 같다구. "
" 아 또 우리 여주가 보는 눈이 있어. "
결국엔 내가 또 황민현에게 져주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살갑게 웃고 있는 황민현의 얼굴을 곁눈질 하다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쯤이면 내가 황민현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남사친과 황민현의 상관관계
나는 컴퓨터공학과 3학년, 황민현은 건축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단지 성적에 맞춰서 학과를 선택한 나와 달리 황민현은 어릴 적부터 아주 큰 포부가 있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조그마한 주택의 건물주인 아줌마를 위해서 남부럽지 않은 건물을 지어주는 것. 마치 우리 나라에 있는 63빌딩처럼 하늘을 향해 높게 뻗어 있는 건물을 짓는 게 꿈이자 목표라고 했다. 청산유수로 술술 말을 뱉어내는 어린 황민현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 어! 여주 오랜만이야. "
" 안녕하세요. "
서점에서 산 전공 책들을 사물함에 넣고 있는데 새삼 반가운 목소리로 누군가 내게 인사를 건네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에 맞받아치자 과대 오빠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 오늘 개총하는데, 단톡 봤지? 올 수 있어? "
곧바로 아니요. 답을 하고 싶었지만 눈을 반짝이면서 묻는 과대 오빠 때문에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웃었다.
" 아... 못 와? "
" 네. 죄송해요. "
" 아냐, 괜찮아. 그래도 혹시 마음 바뀌면 연고포차로 와. 알겠지? "
" 네. "
사람 좋게 웃으며 자리를 뜨는 과대 오빠의 뒷모습을 넋놓고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곤 책을 사물함에 차곡차곡 넣었다. 개강총회는 신입생 때 딱 한 번 가봤다. 그 뒤로는 한 번도 과생활에 참여한 기억이 없다. 친구를 많이 사귀었냐는 황민현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을 하긴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1학년 때도 황민현이 군대를 가기 전까지는 걸핏하면 황민현과 밥을 먹거나 수업이 끝나면 술집보다는 도서관을 자주 갔기 때문에 주위에 친구를 사귈 겨를이나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그에 비해 황민현의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따랐다. 태생이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여서 우리 엄마도 내 걱정을 나보다 더 많이 했는데 황민현과 알고 지낸 이후로 그나마 황민현이 날 챙겨 줘서 사람 구실은 하고 사는 것 같다면서 엄마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황민현의 칭찬을 했던 게 생각난다.
오랜만에 학식을 먹을까, 아니면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떼울까 고민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휴대폰 화면을 자꾸만 들여다 보았다. 혹여라도 황민현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는 연락이 올까봐서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휴대폰을 시도때도 없이 켰다 껐다만 반복했다. 결국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학교식당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짧은 진동이 바지 주머니 안에서 울렸다.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응시하면 내가 여태 기다린 연락이 아닌 광고 문자만이 떠있을 뿐이었다.
남사친과 황민현의 상관관계
어디서 또 우리 과가 개강총회를 한다는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어라 타자를 치려다가 손을 멈칫했다. 개총을 가는 건 싫지만 황민현과 새벽 공기를 함께 맞으며 집을 가는 건 좋았다. 아무리 그 애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 다짐을 한들 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톡, 톡. 알았어. 짤막한 대답 세 글자를 카톡 창에 띄워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민현의 답장이 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좋아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이미 내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드러났다. 황민현이 보낸 카톡을 혼자 곱씹다가 손에 묻은 물기를 닦고 화장실을 나왔다. 나보다 술도 못 마시는 주제에 당최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황민현한테 연락이 올 때까지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어야겠다. 혹시 모르니 편의점에서 술이라도 사야 하나. 아니다. 그렇게까지 체계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황민현은 내가 술집에서 나온 건지 도서관에서 나온 건지 구분하지 못할 게 뻔하다. 내가 아는 황민현은 적어도 그렇다.
남사친과 황민현의 상관관계
오후 11시가 넘어가도록 황민현에게는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술집을 나왔다고 문자를 보내볼까 하다가 그러다간 황민현이 우리 과 개총에 직접 갈 것만 같아서 그러지도 못했다. 전전긍긍하면서 문이 닫힌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휴대폰만 붙들고 있는데 제법 긴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내가 이토록 기다린 황민현의 이름 세 글자가 떴다. 전화가 끊길 세라 통화 버튼을 누르고 냅다 목소리를 냈다.
" 응. 끝났어? "
[ 아, 여보세요? 혹시 민현이 형 동생 맞으세요? ]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황민현의 것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남자의 목소리가 황민현의 동생이냐며 내게 물었다. 아. 남자가 왜 그러한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 이해가 갔다. 황민현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내 이름은 몇 년 전부터 줄곧 '내동생'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 저기요? 지금 민현이 형이 좀 취해서요. 저희가 집을 잘 몰라서…, ]
" 술집 이름 알려주세요. "
[ 아 네, 여기가 지금 대구포차요. ]
전화를 급히 끊고 가방을 고쳐 멨다. 대구포차, 대구포차. 학교를 3년이나 다녔으면서 생소한 술집 이름에 되뇌기를 반복했다. 이제 막 대학로에 들어서자 네온사인으로 반짝이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가 일러준 대구포차가 맞나 확인하고 술집 앞을 연신 기웃거렸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안으로 들어서려 할 때 즈음, 돌연 가까이서 낯익은 목소리와 내음이 났다.
" 민현이 형 괜찮아요? 그러니까 술도 못 마시는 형이... "
" 내 동생! 연락했어? 왜 안와 보고 싶은데. "
" 했어요 했어요. 형, 일단 편의점에서 메로나라도 사올까요? "
쩔쩔매면서 황민현을 부축하는 남자와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눈을 옅게 감은 황민현이 자동차 뒤에 서 있었다. 조심스레 남자와 황민현의 곁에 다가갔다. 소주 2잔이 주량이면서 얼마나 술을 마신 건지 황민현의 귀와 얼굴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남자가 날 빤히 보더니 황민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황민현의 휴대폰으로 추정되는 휴대폰의 화면을 응시한다.
" 안 닮은 것 같은데… "
" 저기요. "
" 아, 네? 혹시 민현이 형 동생..이세요? "
" 얘는 제가 데려갈게요. "
" 아 네, 네. 형, 형. 형 동생분 왔어요. "
남자의 어깨에 축 늘어져있던 황민현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왔다. 아, 저는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남자가 황민현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뜬 후에도 황민현은 남자에게 인사를 해주지도 않고 그저 내 앞에 가까이 와 우두커니 서서 날 내려다보았다. 그 애의 풀린 눈이 내 얼굴 곳곳을 살피더니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저보다 두 뼘은 작은 나와 시선을 맞추어온다.
" 어- 우리 여주다. "
그러더니 이내 살포시 제 품에 날 안았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 탓에 차마 밀어내지도 못하고 넋 빠진 듯 망연히 황민현의 품에 안겨버리고 말았다. 불규칙적으로 쉬어지는 숨이 끝내 멈추었다. 귓가에 닿는 숨결만이 규칙적인 소리를 내었다. 빨갛게 물든 얼굴을 들킬세라 그 애의 품 안에 더욱 파고 들었다. 일순 술 냄새와 함께 황민현의 내음이 코 끝을 잔잔하게 감싸안았다. 내가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괜스레 취기가 올랐다. 이유는 황민현 때문이었다.
도짜님들이 생각보다 너모 좋은 반응을 주셔서
싱나가지고 바로 다음편 갖고왔숩니다 하핫ㅋㅋㅋㅋㅋㅋㅋㅋ
민현이의 사정, 여주의 사정 모 그런 건 차차 나올거고요..
지금은 걍 둘의 관계에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숩니다..^^..
암호닉은 지금 바로 신청방 만들어 올리겠숩니다!
도짜님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하고요.. 추천수도 넘 감사하고요..♥
자꾸 저 붕붕카 태워주시지 마시고요..저 좋아서 우럭다고요..흑흑 ㅠㅠ
아 마자 빌어먹을 부기는 내일밤에 뚜둔☆ 봅시다
도짜님들 싸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