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우리 집 왔었다며, 왜 왔어?”
몇분 뒤 우리 집을 찾아온 너는 웃는 낯이었다.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나를 보면서 말갛게 웃었다. 자꾸 나쁜 쪽으로 내 생각이 이어지고 있던 터라, 아까 했던 내 다짐을 완벽하게 실현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사과는 해야지, 라는 생각에 집 앞에 찾아온 황민현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해서. 내가 잘못한 거 같아서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찾아갔었어.”
“오 뭐야, 이영채 드디어 철들었어? 나 이미 다 풀렸지, 내가 예민했나봐.”
“그럼 다행이고. 그냥 내가 먼저 사과해야 될 것 같았어.”
자꾸만 고개가 수그러졌다. 그 여자애의 고백을 받아줬냐고 묻고 싶은 맘이 자꾸만 튀어나와서, 그 맘을 숨기고 싶은 나는 자꾸만 고개를 숙였다. 걔는 누구냐고, 그래서 고백은 받아줬냐고 묻고 싶었다. 이번에도 아니지 너는? 이라고 당당하게 물어야 할 나인데, 나는 더 이상 그러지 못했다. 받아줬어, 라는 대답이 돌아올까 봐 나는 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야, 많이 부끄럽냐? 왜 자꾸 고개를 숙이고 그래?”
너는 내 두 볼을 잡아 올렸다. 매일 마주치는 두 눈인데 왜 이렇게 어색한지.
“웅. 아니 사과하는 게 어렵네 생각보다? 하하.”
“그치? 어렵지? 야, 너는 나한테 잘하라니까, 내가 맨날 먼저 사과하잖아.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러게, 몰랐다 미안.”
“뭐가 그렇게 미안해 우리 이영채? 나는 기분 좋은데?”
황민현은 내 볼을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짜증을 낼 법도 했지만, 싫지 않았다.
전혀. 오히려 좋았다. 내 볼을 잡고 있는 황민현의 손이, 나랑 마주쳐 있는 황민현의 두 눈이, 기분 좋게 올라가 있는 황민현의 입꼬리가, 다 너무 좋았다.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라는 가정을 한 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나는 너무도 쉽게 내 맘을 검증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작은 행동 하나에도 설레는데 왜 나는 이때까지 몰랐을까.
잔잔한 파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를 휩쓸고도 남을 거대한 파도였다.
너는, 그리고 내 마음은.
제 집에 들어가기 전에 황민현은 비밀번호를 누르다가 말고 갑자기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혹시 자기를 보지 않았냐고, 엄마가 너 나 따라서 내려간 것 같았다고 얘기해줬는데, 밖에서 자신을 보지 못했냐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그냥 집에서 기다렸어. 덥고 너 누구 만나러 간지도 몰라서.”
“아,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잘자라.”
누구를 만났냐고 물어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나는 황민현이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남사친과 이상형의 경계_07
“이영채 그럼 나 오늘 너네 반 종례 안 기다리고 가도 되지?”
“아, 응. 아 그리고 그 빙수는...”
“네가 먼저 먹고 맛있으면 나 사주는 거다?”
“어?”
당연히 너랑 같이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 카페는 가지 않겠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어제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 예민했지, 뭐. 그래도 나 맛있는 건 사주는 거다?”
“그래, 알았어. 그럼 나 교실 들어간다.”
어정쩡하게 대답을 하고서는 복도에서 황민현과 헤어졌다.
오늘 아침의 황민현은 평상시와 너무도 똑같아서 괜스레 답답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너무 달라져 있어서 감당하기 벅찬데, 나를 대하는 너는 너무도 똑같아서.
7. 기억 속 모습이 왠지 보기 좋아 보였던 것 같아
"영채야!”
“어, 오빠. 저 약속 안 잊었구요, 질문할 것도 다 챙겨왔어요! 걱정 안 해도 돼요.”
“하핳. 그냥 보고 싶어서 온 건데?”
“아 오빠 장난치지 말고.. 저 진짜 당황한다니까요.”
“장난 아니얏. 진짠데에.. 이따 보자 그럼, 나 갈겡!”
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나고서는, 날 쑥스럽게 만들거나 자기가 쑥스러워 하고는 사라진다. 내가 물어보는 질문마다는 어떻게 그렇게 대답을 잘해주는지 완전 오빠 같다가도, 웃음이 터져서 특유의 소리로 하하핳거리면 아기 같다. 분명 내가 동생인데 김종현은 나보다 귀엽다니까.
고작 몇 마디를 나누었을 뿐인데 어제부터 싱숭생숭했던 기분이 잠잠해진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친해졌는지, 아마 다 종현 오빠가 나를 챙겨줘서이겠지만, 무튼 김종현이랑 학교 밖에서 만날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게 뭔가 신기했다.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 나도 신기했고.
나머지 수업들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러갔다. 정수정은 내 옆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졸았고, 나는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아니, 열심히 들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어젯밤에 황민현이 그래서 그 여자애의 고백을 받아주었는지, 안 받아주었는지가 궁금해서 온전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안 받아줬을거야, 안 받아주었을텐데, 황민현은 모르는 사람의 고백을 받아줄 애가 아닌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오빠, 많이 기다렸어요?”
늘 우리 반 뒷문에 기대 서있던 황민현 대신 오늘은 그 자리를 김종현이 채우고 있었다. 핸드폰에 눈을 두지 않고, 내가 나오는 모양에 눈을 고정한 채로, 그렇게 웃으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냐, 갠차나. 근데 너네 쌤 종례 진짜 늦게 끝내 주신다.”
“에이, 뭐야. 많이 기다렸네요?”
“응? 아닌데에? 얼른 가쟈아.”
김종현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내려올 기미가 안 보인 채로 내 손목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입꼬리도 올라갔고.
“너 거기 가봤어?”
“아니요, 근데 거기 빙수 완전 맛있대요. 친구가 그랬거든요.”
“마쟈, 나도 들었어. 그래서 너랑 같이 갈라고.”
저 그리고 단 거 좋아해요, 빙수도 좋고, 등의 대화를 나누면서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 진짜? 나도 단 거 좋아하는데, 이렇게 별거 아닌 대화를 즐겁게 이어가면서 걷고 있었다.
운동장을 지나쳐 교문으로 향하는데 반대쪽 스탠드에 황민현이 있었다. 뒷모습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매번 보던 뒤통수라서, 매번 나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어오던 그 어깨라서, 그냥 황민현이라서 알 수 있었다. 단정한 하복 셔츠에 주름이 많이 잡혀 있지 않은 것도 너였고, 더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는 짙은 갈색의 머리도 아무리 봐도 너였다.
분명히 맞는데, 네가 아니였음 했던 건 처음이었다.
그 옆에는 어젯밤 보았던 그 여자애가 있었기 때문에 네가 아니어야만 했다.
스탠드에 나란히 앉아서 황민현과 그 아이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황민현의 앞모습은 볼 수 없지만 여자애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부터 나를 불안하게 했던 그 예쁜 애는 녀석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그럴 리가 없는데 황민현이 다시 그 여자애랑 있을 리가 없는데, 있었다.
나란히, 스탠드에, 웃으며, 초콜릿을 사이에 두고.
“영채야?”
나도 모르는 새에 멈춰 서 있었나 보다. 좀 놀라서, 사실은 많이 놀라서. 그보다는 아프고 불안해서, 불안함이 확실시 된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멈춰 있었나 보다. 왜 쟤가 저기 있지.
“무슨 일 있서?”
어떻게 카페에 들어와서 빙수를 시켰는지, 그리고 카페로 걸어오면서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맞다, 저 질문할 거 가져왔는데. 그리고 빙수 제가 사려고 했는데 왜 오빠가 사줘요, 제가 오빠 귀찮게 하는 건데...”
“내가 오자고 했짜나. 그리고 내가 사주고 싶고, 가르쳐 주고 싶고 그냥 다 해주고 시퍼.”
뭐지, 에이 설마.
“영채야, 너 표정에 다 티 난다. 하핳.”
“네?”
“시험 끝나고 하려고 했는데, 지금 네가 알아챈 거 같아서. 그냥 해도 돼?”
“네? 아니 오빠 저는...”
“할래.”
별안간 늘 웃던 김종현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불안했다. 김종현이 나를 바라보는 눈에서 읽을 수 있는 이 감정이, 내가 생각하는 그 감정이 맞을까봐 불안해졌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일까 봐 불안해졌다. 황민현에게 보내고 있는 내 마음과 같을까봐 무서워졌다.
“영채야.”
내 이름을 부르고선 처음 내게 공을 찼던 그 날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보건실에서 씨익 올라가던 그 입꼬리랑 그 예쁜 입으로 웃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두 손을 꼭 맞잡고서는 떨리는 눈을 나한테 향한 채 그 날처럼, 아니 그 날보다 환하게 웃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진짜, 아니어야 하는데.
“좋아해. 너도 알아챈 거 같은데. 하핳. 쑥스럽다.”
“근데 좋다. 너한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고, 너도 좋고.”
늘 웃어주고, 웃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많은 말을 섞지 않아도 이내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알게 된 첫날부터 한순간도 불편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미안해하던 표정도, 처음으로 내게 건네던 비타오백도, 나를 쓰다듬던 손길도 다 좋았다. 그냥 나를 대하는 눈빛이, 나를 대하는 몸짓이, 너무도 내게 향해 있어서, 그리고 그걸 숨기려고 하지 않아서 좋았다. 함께 있기만 해도 기분 좋은 따뜻함이 나를 감싸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내 감정에 휩쓸리느라 제대로 집중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오빠는 늘 내게 이랬고, 내 안의 나는 아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사람인데, 김종현은 좋은 사람인데. 진짜 좋은 사람인데.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늘 곁에 두고 싶은 그런 사람인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느낌이 다르고, 내 마음이 달랐다.
좋은 사람이랑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게 아니니까.
작가의 말 |
움짤파티네요,, 애들이 넘 예뻐서,, 표정을 상상하시라고 한번 넣어봤어요,, 급하게 써오느라 분량이 좀 짧네요! 저번편도 초록글 올라갔었는데 너무 감사해요ㅠㅠㅠ 댓글 하나하나 너무너무 힘이 되고,, 요즘 현생이 너무 바빠서 업뎃이 느리지만 그래도 계속 글은 써올거에요!! 늘 감사합니다..ㅜㅜ하트하트 |
암호닉은 사랑입니다 |
오레오 뿜뿜이 짱요 돼지바 센터 황제펭귄 시릿 포카리 다녜리 아몬드 마이쮸 0713 뿍뿍 1004 0215 과자 해솔 뉴동인생배팅 묵 멍귤 샤랑 1026 쀼쀼링 괴물 윙팤카 ☆박탱글☆ 아가베시럽 종현쩨알져아 슬 황소곱창 대니캉 어피치 쩨아리 윙지훈 어어 융융 쟈몽 우즈 암호닉 신청해주신 여러분 확인해주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