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다가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도, 나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여전히, 전보다 더, 네 곁을 맴돌기만 했다.
한번은 네가 복도에서 학생증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다. 계단을 내려오던 나는 네 학생증을 재빨리 주워주려고 걸음을 재촉했지만, 황민현이라는 그 애가 훨씬 더 빨랐다. 항상 그랬다. 네가 무언가를 놓치면 그 아이가 너를 챙겼다. 아무리 내가 거리를 좁히고 좁혀 봐도, 늘 그 사이에는 황민현이 존재했다.
남사친과 이상형의 경계_08_02
그렇게 속앓이를 하고 있는 나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3학년 특성 상 진도를 마친 수업은 자습을 하기 마련이다. 자습, 자습, 수업, 그리고 또 자습. 고3의 하루 일과는 대부분 이러했다. 자습에 지쳐버린 우리에게, 담임 선생님이셨던 영어쌤은 자신의 시간에는 원하는 것을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당연히 체육을 택했다. 아무리 더워도 앉아있는 것보다는 뛰어노는 게 더 좋을 시기였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스탠드에 앉아 축구화 끈을 묶고 있었다. 정수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빨리 와, 아님 우리 운동장 뛰어야 돼. 수정이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에, 그 대상이 제발 너이기를, 아니 너여야만 한다고 빌었다.
“알겠어, 나 신발 다 갈아 신었어. 같이 가! 정수정 같이 가자고!”
너였다. 정말 우연히 너였다. 이번에는 정말 내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우연히도 너였다. 내가 만들어 낸 마주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마주침이었다.
우연을 인연으로, 바꿔야겠다.
체육 시간이 끝나기 5분 전에 나는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에서 포카리스웨트 두 병을 사서는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너의 반은 수업이 다 끝난 듯했다. 직접 전해주면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봐 신발을 갈아 신는 수정이에게 다가갔다.
“수정아 너네 반도 체육이더라.”
“어, 오빠 안녕하세요! 오 설마 이거 나 주는 거~?”
“아, 응응. 너 줄라구.”
“에? 진짜요? 뭐에요 갑자기. 나한테 뭐 잘못 했어요?”
“야아,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사주는 거야. 그리고 이거는, 음.. 왜 있짜나 너가 쩌번에 나한테 얘기해줬던 친구한테 전해줘! 알겠찌? 하핳.”
“얘기했던 친구요..? 누구지?”
수정아 너 눈치 없게 왜 그래..
“아니... 그 왜... 잇짜나 나랑 비슷하다던... 걔도 더울 거 아니야.. 그냥 같이 마시라고 사왔어... 너 친구쟈나, 그리고 너가 나한테 늘 잘해주기도 하고..”
“아, 이영채? 오빠 근데요, 저 좋아하는 건 아니죠? 갑자기 진짜 왜 이래..”
“야! 아니야!”
“허 참나.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럼 잘 마실게요.”
“이영채! 포카리 마시자!”
이거 뭐야, 라고 말하며 너는 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엽다, 토끼 같아 영채야.
“아 학생회 오빠가 사줬어. 너랑 같이 마시래.”
아오 정수정. 평소에는 눈치가 그렇게 빠르더니 오늘은 왜 저러냐 진짜.
그래도 괜찮다. 내가 주는 음료수를 네가 마시고 있으니까.
다음 주에는 한 걸음 더,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세 걸음 더, 그리고 다섯 걸음. 이렇게 걷다 보면 너와 나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8. 시선 하나, 시선 둘
“영채야 괜찮아?”
아이들이 우루루 너에게 달려갔다. 방금 내가 뭘 한 거지. 분명 나는 평소처럼 공을 찼는데, 그게 너네 반이 피구를 하던 곳으로 날았고, 그 공에 누군가 맞았는데.. 그게 아무래도 너였나 보다. 아 젠장. 나를 좋게 보아도 모자랄 판에 공으로 너를 맞춰버렸다. 얼마나 아플까, 내가 미쳤나, 하며 급하게 너에게 뛰어갔다.
“정말 죄송해요. 공이 그 쪽으로 갈 줄 몰랐어요, 정말로요. 괜찮아요?”
반 아이들 사이를 뚫고 너를 봐야만 했다. 이마가 빨개서 부어오를 것 같았고, 놀라 넘어져서 손과 팔꿈치가 까진 것 같았다. 너는 나처럼 괜찮다고 했고, 그렇게 보건실로 향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네가 하나도 괜찮지 않아보여서 나도 보건실로 향했고.
보건실로 가는 길에 나는 수도 없이 스스로를 응원했다.
종현아 잘할 수 있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예상치 못한 안 좋은 상황이지만 이 기회를 이용하자.
전화위복, 전화위복. 할 수 있어.
보건실에는 외근 중이신 건지 선생님이 안 계셨고, 나는 자처해서 너를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아, 제가 엄살이 좀 있어... 흐어, 아파아... 아 제가 엄살이 좀 심해서요, 별로 안 아파요. 진짜로.”
아픈데도 안 아프다고 말하는 네가 귀여웠다. 너무 귀여워서 귀엽다고 말했더니, 너는 또 그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더 귀여워.
처음으로 나만 알고 있던 너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네가 당황하지 않게.
이름을 부르면 나를 바라봐주는 눈이 좋아서 자꾸만 네 이름을 불렀고, 나도 모르게 너의 손에 비타오백을 쥐어줬고, 음 그리고는 사실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티는 안 냈지만 너무 긴장해서, 버릇처럼 웃으면서 그렇게 너와 처음으로 대화했다.
그 날을 기점으로 우리는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실은 내가 너만 보면 달려가서 먼저 인사를 했다.
영채야 안녕! 너도 나를 기억하라고, 나를 바라봐달라고 자꾸만 네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냥 부르고 싶은 예쁜 이름이라서.
노력을 하면 다 해낼 수 있다고 믿던 나였다. 너와의 관계도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카톡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용건 없이도 일상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고, 너는 곧잘 내게 모르는 걸 물어왔다.
그리고 역시나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깊어갔다. 내가 생각했던 너보다, 내가 알게 된 네가 더 예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황민현이 너를 쳐다보는 눈만 의식해서 몰랐는데, 그 눈빛이 두려워서 몰랐는데, 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 아이가 너를 쫓는 시선이, 네가 그 아이를 쫓는 시선과 마주할 것 같아서 두렵다.
아니, 결국에는 그렇게 되겠지. 아직은 마주보지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지만, 나는 너희의 시선이 맞닿을 걸 알고 있다.
나와 너는, 너와 나는, 이제 비로소 가까워졌는데 어쩐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너무도 환하게 웃는 너의 손을 잡고 싶은데, 나는 영원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졌다.
내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가까워질 수 없는 빛, 넌 내게 어느새 빛 그 자체였다.
너를 좋아한다고, 비로소 말하는 지금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이미 늦었다는 것, 아니 어쩌면 나는 너를 놓쳐버린 채로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음에도 어쩔 수가 없었다.
너를 흔들어보려고? 아니. 네가 나에게 미안해하라고? 혹은 너에게 내 감정을 강요하기 위해? 그것도 절대로 아니.
그저 내 마음이 너무 예뻐서 예쁜 너에게 주고 싶었다. 갑작스러운 결심이지만, 사실은 오래된 결심이기에, 버벅거림없이 ‘좋아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1년 넘게 묵혀두었지만 그래도 단 한 군데도 바라지 않은 이 예쁜 마음을, 이 예쁜 말을 비로소 너에게 건넸다. 내가 좋아하는, 매일 마주보고 싶었던 그 동그란 눈이 다시금 더 똥그래졌다. 어떤 대답이 들려올 줄 알면서 웃음이 나오는 거 보면 나 미친놈인가.
이 고백이 당황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었어 정말.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내가 가져본 마음 중에 단연코 가장 예뻤으니까.
서로 마주보는 시선 둘,
하나 남은 시선. 길을 잃은 시선.
굳게 닫혀버린 시선 둘,
늦어버린 시선. 너를 놓친 시선.
큰 착각을 했어,
내 안에서만 자라왔던 꿈.
저 시간이 바람처럼 널 내 곁에 데려 올 거란, 그런 꿈.
* * * * *
어떡하지.
오빠가 만약 내게 어제 고백했었더라면 상황이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어제 전까지만 해도 나는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으니까, ‘좋은’ 사람인 그의 고백에 흔들렸을지도.
허나 오늘의 나는 너무나도 확실해져서, 이미 내 마음을 너무나도 투명하게 봐버려서 차마 받아줄 수 없었다. 순간의 미안함으로 빚어낸 어리석은 행동이, 훗날 얼마나 김종현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지 알기에 그 마음에 마주 웃을 수 없었다. 나만큼이나 진지한 마음을 하고 그가 느껴져서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미안해요, 라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말을 꺼낸 건 김종현이었다.
“부담 갖지 말구. 사귀자는 것도 아니야. 하핳.”
“이거 자체가 부담스러운 건가아..? 나눈 그냥 네가 좋다는 거야. 그니까 음.. 그게 끝이얌! 나랑 같은 맘을 가져달라는 것두 아니구, 움 그냥 너를 좋아하는데, 좋아해서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서. 그게 다야.”
“오빠 저는...”
“나 근데 부탁 하나만 해두 돼? 딱 하나만.”
“네? 네.. 뭔데요?”
“방금 내 말에 하고 싶은 말은 나중에 해주면 안 될까.”
“네? 어.. 왜요?”
“그냥. 오늘 말고 다음에. 오늘은 우리 공부해야 되잖아. 힣.”
내가 어떻게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김종현에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입꼬리도 웃고, 목소리도 분명 웃는데 나를 바라 보는 눈이 자꾸만 떨리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 떨림이 부끄러움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게 전해지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태연하다는 말을 써도 되나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태연하게 같이 공부를 했다. 나는 모르는 걸 오빠에게 물어봤고, 김종현은 그 어느 때보다 성심성의껏 내게 대답해줬다. 빙수 맛있지, 그러게요 저 완전 초코 좋아해요, 어딘가 비어있는 대화들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태연하게 굴었다.
해가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카페를 나왔다. 혼자 가도 된다는데 오빠는 자기가 오랫동안 너를 붙잡은 것 같아 미안하다며 나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발 맞춰 집으로 가는 길은 어색하지 않았다. 김종현이 어떤 대학에 원서를 넣을 예정인지에 대해서 들었고, 정수정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오빠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요.”
“아냐, 내가 더 고마워. 너한테는 늘 고맙다는 말만 듣고 시퍼. 아까 내 말에 너무 고민하지 말구 알았찌? 앞으로 나 안 만날 건 아니지?”
“에이 그럴 리가, 이거 완전 내가 남는 장산데?”
내가 뭐라고 그렇게 불안한 건데요, 왜 내 눈도 못 마주치는 데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확신을 주면서 김종현에 말했다.
“오빠 진짜 고마워요. 오빠는 그냥 나한테 다 고마워요. 내일도 보고, 모레도 봐도 되죠?”
“응, 당연하지. 잘자, 나 갈게.”
*****
널 그리는 나의 마음이 작은 별이 되어도,
나는 멀리서나마, 난 마음속으로나마, 너를 따스하게 비춰줄게
그렇게 늘 웃어줘, 영채야.
예쁜 마음은 다 전했으니까, 이제는 깨끗한 마음으로 너를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할게.
여러분~~읽어주세요! |
안녕하세요 오보이입니다! 이번 편은 종현이의 나머지 속마음과 7편에 이어지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민현이 목 빠져라 기다리는 독자님들 좀만 더 기다려주세용ㅎㅎ 다음 편에 나올겁니닷!! 원래는 10편을 완결이라고 잡아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좀 더 길어진 것 같네요,, 아직 풀어야 할 이야기들 좀 더 남았지만 그래도 제 첫 글이 이렇게 얼추 끝나가고 있네요ㅠㅠㅠㅠ부족한 부분이 많았는데도 많이 댓글 남겨주시고 자꾸 초록글 알람 울리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ㅠㅠㅠㅠ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열심히 저를 응원해주셔서 뭐라도 해야될 거 같은데 제가 좀 더 생각해보고 다시 공지 올릴게요ㅎㅅㅎ (이거 해주세요! 라고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ㅎㅎ) 아 그리고!!!!!! 제가 끄적거리던 소재 몇개가 있는데 아마 단편 몇개가 이거 끝나면 올라올 것 같아요! 하나는 주인공을 정하지 않고 쓴거라 좀 고민중인데 추천 해주세요,,더불어 보고싶으신 소재나 멤버가 있으시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제가 능력 치 내에서 써볼게요.. 말이 주저리 너무 길었네요, 그럼 9편에서 만나요 |
암호닉 |
오레오 뿜뿜이 짱요 돼지바 센터 황제펭귄 시릿 포카리 다녜리 아몬드 마이쮸 0713 뿍뿍 1004 0215 과자 해솔 뉴동인생배팅 묵 멍귤 샤랑 1026 쀼쀼링 괴물 윙팤카 ☆박탱글☆ 아가베시럽 종현쩨알져아 슬 황소곱창 대니캉 어피치 쩨아리 윙지훈 어어 융융 쟈몽 우즈 황미녀 루케테 썰썰 은팔 토끼 부기부기 땁답 지오 포카 블레 황제민현 야호야호 0622 맴맴 뉴리미 배코 1231 사랑의공식 쫑쏭 8-1화까지 암호닉입니다, 공지에서 다시 만나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