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타블(이동식) 엑스레이 들어가요!!" "포타블?! 프레그 나오라해라!!" 누가봐도 나를 지칭하는 프레그(임산부의 줄임말)라는 말에 막 연결하려던 수액줄을 내려놓고 종종걸음으로 병실에서 나왔어.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자 스테이션에서 마구 달려 나온 수선생님이 보였어. "엑스레이 나오면 꼭 도망쳐요, 알았어요?" 넵.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심된다는 듯 수선생님은 돌아가시고 저 복도 코너에서 돌아나오는 백현이의 모습이 보였어. 열심히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다 고개를 들더니 나를 확인하고 종종걸음으로 내 앞으로 와. "뭐해?" 왜 멀뚱히 서있냐는 물음이었어. "안에 포타블 들어가서." "뭐? 이리 나와, 기대있지 말고." 포타블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백현이는 기겁을 하며 벽에 기대고 있던 나를 끌어당겼어. "벽 뚫고 못 나오거든요." 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백현이는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초코바를 하나 까서 내 입가에 가져다댔어. 나는 자연스럽게 입을 벌렸고 곧이어 달콤한 초코맛이 입 안을 휘어감았지. "맛있어?" "응. 언제 샀어? 있던 거 다 먹었었잖아." "아까.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 백현이는 내 입덧이 끝남과 동시에 칼퇴에 목숨을 걸곤 했어. 당직인 날이야 어쩔 수 없는거지만, 요즘에는 일주일에 적어도 세번은 백현이와 저녁을 함께했으니까. "아, 선배님..." 백현이랑 저녁을 뭐 먹을지 생각하고 있는데 복도코너에서 돌아나온 종인이가 울상을 잔뜩 지어보이며 두꺼운 책을 내밀었어. 백현이가 퇴근시간을 목숨처럼 지키게되면서 제일 피해를 보는 건 종인이었을거야. "저 진짜, 진짜 오늘은 혼자 못할 것 같아요..." "혼자 못하는 게 어디있어?" "진짠데...여기, 이 부분 시뮬레이션도 안해봤고 절대 한 번에 성공 못 할 거예요, 아시잖아요 저..." 웬 시술 절차가 쫘르륵 쓰여있는 책의 내용을 보면서 백현이가 인상을 스윽 찌푸렸어. 예전같았으면 종인이 시술하는 거 봐주고 온다며 늦게까지 병원에 남았을 백현이지만, "할 수 있어. 영상보고 연습해." 아주 단호하게 혼자 하라며 잘라내버렸지. "그러면 선배님 퇴근하시기 전에 하면 안될까요? 한 시간만 당겨서..." "말도 안되는 소리 하고있어, 약 들어간게 3시간도 안됐는데." 머리를 벅벅 긁은 종인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책에 머리를 박고 고개를 꾸벅 숙였어. 그래, 잘가고. 잘하고. 영혼없는 백현이의 응원을 뒤로하고 종인이는 쏘옥 사라져버렸어. "괜찮겠어?" "쟤도 혼자 해 봐야지. 많이 봤어서 할 수 있을거야. 그래서 뭐 먹을까?" "쭈꾸미." 내 대답에 만족스런 웃음을 띄운 백현이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어. 곧이어 엑스레이를 다 찍었는지 포타블 기계가 병실 밖으로 나왔고 나는 얼른 카트를 끌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지. 해야할 일이 산더미야. "할 일 많아?" 내 뒤로 쪼르륵 달려온 백현이가 할 일이 많냐고 물었어. "오늘 풀베드야, 못 봤어?" "봤지..." "삼십분 있으면 네가 수술한 환자도 올라올거야." "그렇지..." "왜, 뭐 도와줘?" 계속 말 끝을 흐리는 백현이를 보니 뭔가 어시를 해줘야되는게 있는 것 같아서 정곡을 찔러 물어봤어. 그러니 내 카트 위에 쌓인 약물들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아니야, 얼른 해." "뭔데? 빨리해야되는거야? 라운딩 끝나면 갈까?" 내 말에 백현이 얼굴이 사르륵 환해져. 백현이는 항상 자기 시술에 어시가 필요할 때마다 나랑 같이 하고 싶어하는 게 있었어. 물론 다른 간호사도 어시 잘 해주지만 내가 제일이라면서 듣기좋은 말을 하곤했거든. "알았어, 이따 콜 넣을게." 기분이 좋은 지 빙그르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가 병실을 빠져나갔어. 결국 할 일이 하나 더 추가 됐으니, 내 손은 더 빠르게 움직였지.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주사기로 약을 쭉쭉 뽑아 척척 믹스하고, 여러 오더 속에 익숙한 백현이 이름도 보아가면서 병실을 돌았어. 뻐근한 다리를 몇 번 굽혔다 펴가며 들락날락했더니 그 산더미 같은 투약도 끝이 났지. 아, 이제... "처치..." 백현이가 말한 처치를 찾으려고 새로 뜬 오더목록을 확인했어. 아, 찾았다. 유일하게 수행되지 않고 번쩍이는 처치를 찾아 전화기를 들었어. 백현이 콜 번호를 꾹꾹 눌렀지. "네, 변백현입니다." "함석주님 드레싱 준비할게요, 지금 올라오시나요?" "네, 바로 갈게요." 바로 올라온다는 백현이 말에 처치실로 들어가 드레싱 준비물을 챙겼어. 카트에 싣고 처치실을 빠져나오니 정말 빠르게 올라온 백현이와 복도에서 마주쳤지. "드레싱 끝나면 퇴근이지?" "응, 인계하구." "얼른 끝내고 쭈꾸미 먹으러 가자." 입덧이 사라지고 나보다 더 신난 백현이었어. 쭈꾸미 이야기를 하며 드레싱 해야하는 병실에 도착했어. "함석주님, 오늘 소독할게요." 살가운 백현이 목소리에 아이구,하면서 환자는 세웠던 몸을 침대에 눕혀. "허리 아프신 건 좀 괜찮으시구요?" "계속 아프지, 뭐...참을 만해요." "어제 허리 때문에 잠도 설치셨다던데?" 백현이가 눈을 흘기며 말했어. 이 환자는 교통사고로 머리 안에 혈종이 생겨서 수술 후에 중환자실에 있다가 병동으로 내려온 환자였어. 머리를 크게 다치긴 했지만 원체 허리가 안 좋으신 분이었는데 사고를 당하면서 허리 통증이 더 심해진 것도 문제인 분이었지. 보통의 의사들은 이런 환자에게 머리 쪽에만 신경쓰기 마련인데, 백현이는 늘 환자의 모든 문제를 파악하려는 습관이 있었기에 이런 질문도 던질 수 있었던 거야. 기특한 마음에 흐뭇하게 백현이의 대화를 지켜봤어. "원래 두통이 지금 쯤이면 괜찮아지셔야되는데 두통도 계속 있으셨잖아요. 그래서 이따 골수 뽑는 검사 할거예요. 어제 설명 들으셨죠?" "아, 들었어요. 뭐 허리에다가 한다고..." "맞아요, 그래서 허리 많이 아플 수도 있어요. 이것도 설명 들으셨죠?" "예...어제 들어온 선생이 아주 꼼꼼해서, 잘 들었네요." "그래요? 꼼꼼하게 잘 알려줬어요?" 백현이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되물었어. 어제 설명을 들어온 사람은 인턴일테니 종인이었겠지. "그 선생님이 오늘 검사도 할거예요. 너무 걱정 마시고, 주의사항 꼭 지키셔야해요." 백현이의 차분한 대화 속에 드레싱도 수월하게 끝나고 새 붕대를 꺼내 돌돌 풀었어. 백현이의 왼손에 붕대 끝을 쥐어주자 익숙하게 소독된 머리에 꼼꼼하게 둘러매. "이따 검사 잘 받으시고, 저는 내일 뵐게요." 백현이의 따뜻한 인사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어. ㅡ "자기야, 아-." "내가 먹을게..." "아, 아-!" 굳이, 굳이.. 내 입에 제 손으로 싼 쌈을 먹이겠다고 우기는 백현이 때문에 망설이다 입을 벌렸어.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괜히 쳐다볼까 싶어 얼른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지. 그제야 백현이도 제 밥 위에 쭈꾸미를 한 점 올려서 입에 쏙 넣었어. "어때? 괜찮아?" "응, 맛있다. 이런 집은 어떻게 찾았대?" "여기? 동기 톡방에 물어봤더니 여기가 맛있다고 그러더라고." "동기 단톡방?" 응.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가 내 밥 위에 쭈꾸미를 올렸어. "병원 사람들 아니야? 동기들이면?" "응, 우리병원 동기들. 나랑 입사 같이 한." "동기방에서 그런 얘기를 해?" 못 할 건 없지, 아무렇지않은 대답이 다시 돌아왔어. 그렇구나...백현이의 카톡방은 들여다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뭔가 병원 사람들이 모인 그것도 레지던트들이 모인 톡방에 쭈꾸미 맛집에 대해 이야기했을 걸 생각하니 굉장히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어. "그 방에서는 뭔가, 지식적인 얘기만 할 줄 알았더니..." "응? 아니야. 과가 다 달라서." "그렇구나...오늘 맛집은 누가 추천해줬어?" "OS(정형외과) 있는 애랑, NS(신경외과) 있는 애가 추천해줬는데 서로 자기가 추천한 집이 맛있다고 싸웠어." 백현이 말에 실소가 터졌어. 서로 이 쭈꾸미집이 더 맛있다고 싸우는 모습이라니, 또 내가 본 NS레지던트는 굉장히 지적인 모습으로 기억되어있었는데... "OS가 추천해 준 집이 더 유명하더라고, 그래서 거기로 가겠다고 했더니, NS가 그 집은 양념이 너무 매워서 임산부한테 자극적이라고..., 어, 잠시만." OS와 NS의 쭈꾸미집 추천 이야기를 한창 듣고있는데 테이블 위에 있던 백현이 휴대폰이 울렸어. 액정을 확인한 백현이는 바로 전화를 받아들었지. "응, 왜?" 뭐라뭐라 전화 너머로 들리는 말을 듣던 백현이는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어. 결국, "...알았어, 지금 갈게." 병원으로 호출을 당한 후 전화를 끊었지. 난 아직도 입 안에 있는 쭈꾸미를 우물거리며 눈으로 물었어. 백현이는 내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수저를 들었다 놨다, "아, 어떡하지..먹고 있을래? 아니야, 늦을 것 같은데..." "같이 가, 병원이야?" "반도 못 먹고..." 어쩔 줄 모르는 백현이에게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가방을 챙겨들었어. 급한 일인가보네. "미안해..." 세상에서 제일 미안한 표정을 지은 백현이가 급한 발걸음을 재촉했어. 반도 못 먹은 쭈꾸미를 계산하고 빠르게 차에 올라탔지. 한 두번 겪는 일도 아니고, 백현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기에 미안해 할 일은 아니었지만... "미안, 미안해. 함석주님 있잖아...아까 드레싱 한 분." "응? 아, 응." "골수천자 하는데 중간에 막혔나봐, 척수액도 안 나오고 스핀은 뚫어놨고." "아이구..." "허리 안 좋으신 분이라서 엎드려있는 것도 고역인데..." 백현이 얼굴에 그늘이 어두웠어. 평소보다 조금 급하게 운전을 한 백현이 덕에 생각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했어. 차에 있으라는 백현이 말에 따라가겠다고 했지. 별 상관이 없었는지 발걸음을 재촉하는 백현이를 따라 병동으로 뻐르게 올라갔어. "어, 백현쌤!" "처치실에 아직 계세요?" "네, 인턴쌤이랑 같이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는 간호사선생님과 동시에 백현이는 처치실 문을 열었어. "야, 김종인..." 함석주님은 골수천자 하는 자세 그대로 엎드려 계셨고 종인이는 그 옆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었어. "환자분, 허리 괜찮으세요? 많이 불편하세요?" "괜찮..., 괜찮아요.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은 말투로 힘겹게 대답을 해왔어. "죄송해요, 재가 한 번만 더 할게요. 조금 참으실 수 있겠어요?" 고개만 끄덕이는 환자를 확인하고 백현이는 손을 빠르게 움직였어. 인턴 시절에 골수천자를 할 때도 두어번 정도 쩔쩔 매다가 곧잘 하던 백현이었기에 손에 익은 지는 오래였지. 많이 당황한 건지 옆에서 어시도 제대로 못하는 종인이를 보고 내가 백현이 옆으로 다가갔어. 손을 멍하니 들고 서 있는 종인이를 툭툭 쳤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고 옆으로 비켜나. 백현이는 급한 손길로 척추를 짚어내고 바로 스크류를 돌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탈렛을 꺼냈어. "검체 케이스 주세요." 성공했다는 말이었어. 서둘러 검체 케이스를 백현이 손에 쥐어주니 하얀 골수가 통에 똑똑 떨어졌어. 아, 됐다... "몇 미리야?" 내가 아니라 종인이에게 묻는 백현이의 질문이었어. "네, 네?" "몇 미리 받아야되냐고. 오더 확인 안 했어?" "아..." 백현이 목소리가 많이 낮아져있었어. 빨리 나가서 확인하고 왔으면 좋겠건만, 종인이는 그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지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있었지. 결국 내가 처치실 밖으로 나가 모니터를 확인하고 돌아왔어. "5미리 하시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 와중에도 감사를 챙기는 백현이가 참... "함석주님, 다 끝났어요. 고생 많이 하셨죠, 바로 진통제 연결해드릴게요. 진통제로 통증 조절 안되면 바로 말씀해 주셔야해요." 백현이는 엎드려있는 환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며 찬찬히 설명했어. 함석주님은 원체 성격이 온화하시다고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소문 난 분이라, 이 상황에서도 고개를 끄덕이실 뿐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으셨지. "여기서 삼십분 정도 압박하면서 상태 보고 병실로 옮기실거예요. 제가 내일 아침에 뵈러 갈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백현이는 피곤한 표정으로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쑤셔넣었어. 정말 쑤셔넣는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정도로... 안경에 기스 다 날텐데. "너는 따라 나와." 백현이가 병원에서 화 내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없는데 이번은 정말 단단하게 화가 난 듯 했어. 먼저 처치실을 나간 백현이 뒤로 종인이가 졸졸 따라나갔어. 많이 혼나려나, 괜히 조마조마한 마음에 스테이션 빈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조물거렸어. "백현쌤이랑 외식 한다고 하시더니, 어떡해요?" "괜찮아요, 거의 다 먹어서. 인턴쌤이 많이 혼날 것 같네요." "정말 누누이 말하지만, 백현쌤이니까 인턴쌤 아직 버티는 거예요~. NS 갔어봐요. 벌써 사고치고 그만뒀지." 그 말에는 나도 천번만번 동의했어. 종인이가 아무리 저를 귀찮게해도, 사고를 쳐서 뒷수습을 해야 할 때도 백현이는 커피를 한 잔 사줬으면 사줬지 뒤에서도 종인이 욕을 한 적이 없었거든. 매일같이 성질 드러운 교수 욕하는 나와는 인성 자체가 다른 사람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어. "오늘은 좀 혼날 만도 해요. 말턴에 골수천자 막히는 인턴 처음 봤어요." 저도 처음봤어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 그리고 귀를 기울였더니 나지막한 백현이 목소리가 들려왔어. 복도 끝에서 얘기하는 중인가봐. 그리고 점점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가자." 피곤한 기색의 백현이가 나타났어. 아까 그 방방거리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지. 그리고... 훌쩍, 하고 코를 킁 먹는 소리가 들리더니 종인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처치실로 들어갔어.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되어서는... "어머..." 그 모습을 본 간호사쌤은 놀랍다는 듯 입을 쩍 벌렸어. "처치실 문 좀 닫아주세요." 그리곤 종인이를 배려하는 마음인지 문 쪽에 앉아있는 선생님에게 문을 닫아달라 말했어. 그렇게 처치실은 봉인 되었고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며 백현이를 따라나섰어. "많이 혼냈어?" 원래 안그랬잖아, 라는 식의 어투로 물어보자 백현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어. "조금..." 백현이도 마음이 무거운 지 두 눈을 손으로 꾸욱 눌렀어. "배고프지? 뭐 먹고 들어갈까?" "응? 아니, 아까 먹어서 그런지 괜찮아." "그래? 그럼 집에 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백현이는 아무 말 없이 차로 향했어. 말을 걸기도 애매하고, 나도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어. 차는 천천히 출발하고 백현이 표정을 살피려 고개를 돌렸는데, "백현아, 벨트!" 얼마나 넋이 나갔는지 벨트도 안 매고 차를 출발시키는 백현이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더니 차가 급정거를 했어. 반사적으로 내 앞으로 팔을 뻗어 막은 백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어. "벨트, 매야지." "아, 아..." 그제야 백현이가 주차장 한 가온데에 차를 세워 놓고 벨트를 끌어매었어. 무슨 생각을 하길래 넋이 이렇게 나갔나 싶었어. "내가 운전할까?" "아니야, 딴 생각 안할게. 미안해. 괜찮아?" 나야 괜찮지...내 대답을 들은 백현이는 그대로 집까지 안전 운전을 했지만 머리 속에는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해보였어. 백현이는 생각이 많아질 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나는 집에 도착해서도 별 말을 하지 않았어. 오늘 종인이를 혼낸 것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란 것도 짐작하고 있었지. 백현이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책상에 앉았어. 피곤할텐데...나는 주방에서 포트에 물을 담아 끓였지. 백현이 어머님이 보내주신 생강절임을 꺼내 컵에 덜었어. 물이 다 끓고 컵에 뜨거운 물을 따라 수저로 저으니 금새 생강이 우러나왔어. 안방으로 조용히 다가가 책상에 생강차를 올려놓고 나왔어. 백현이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절대 방문을 닫는 법이 없었어. 나는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었어. 따뜻함이 몸을 휘감자 나른해지는 느낌에 몸이 풀려오는 것 같았지. 샴푸를 꾹꾹 누르자 다 떨어져가는 건지 공기소리가 휙휙 들렸고 새로 사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로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수건으로 만 채로 화장실을 나왔어. 머리를 탈탈 털며 고개를 들어올리자 방에서 저벅저벅 걸어나오는 백현이가 보였어. "차 다 마셨어?"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머리 위에 올려져있는 수건에 손을 가져다 대. 그리고 익숙하게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부드럽게 쓸어내려. 기분이 좀 풀린건가, 아니면 아직도 다운인가 싶어 백현이 표정을 살피다 눈이 마주쳤어.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을 몇 초간 마주치다 백현이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나를 끌어당겼어. 자연스럽게 안긴 나는 백현이 등을 감싸안고 살짝 토닥였지. "기분 안 좋아?" "나..." "응, 왜?" "휴직 할까?"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말에 나는 토닥이던 손길을 턱 멈췄어. "뭐?" "일 잠깐 쉴까? 아기 낳을 때까지..." 아,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어. 내가 일을 쉬는 건 많이 상상해봤어도 백현이의 휴직이라니. 그 당황스러움에 나는 선뜻 대답을 해 주지 못했어. 백현이의 목소리에 너무 많은 지침이 묻어나서 더더욱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 상황에 선뜻 휴직을 내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조차도 당혹스러웠어. ㅡ 늦어서 넘나리 죄송ㅠㅠ....다음 편은 좀 빨리 오겠다고 감히 약속드려봅니다❤️ 저도 다들 너무 보고싶었어요❤️ 그나저나 글잡에 엑소글은 저밖에없는 것 같은 느낌은..기분탓인가요? ㅠㅠㅠㅠㅠ 그래도 여러분 반겨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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