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어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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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면 그대로 아무 것도 만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재촉하듯 띠링 소리를 내며 반짝이는 화면에 뭐라도 해봐야겠다 싶어서 홀드도 눌러보고 끄기 위해 길게도 눌러보고 전 페이지로 가는 아이콘도 눌러봤지만 소용이 없다. 체념하며 O를 누르니 그제야 아무것도 없이 사라진 말끔한 화면에 열이 뻗쳐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옆에 있는 애꿎은 곰돌이만 쥐어 패고 있는데 개 같은 알림음이 울리며 휴대폰이 반짝인다.
"카톡! 도 아니고 3분! 이라니.. 진짜 이거 만든 사람 상 줘야겠다. 진상."
입은 꿍얼거리지만 손을 어느새 잠금을 풀고 있다. 잠금을 풀자마자 보이는 안내문에 읽기 귀찮아서 옆으로 치우는데 쓸데없이 또박또박 읽어준다. 이런 친절 필요 없는데.
"3분어플을 설치한 당신!! 운이 좋으시네요! 현재 대한민국에서 단 한명만 뽑아서 진행하고 있는 3분 어플에 유일하게 당신이 뽑혔어요! 축하드립니다."
"와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혜택 없어요?"
"이 어플을 사용하고 있는 당신에게 몇 가지 주의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대화가 안 통하네."
"이 어플은 제거가 되지 않아요. 그 말인 즉 3분 남친, 썸남, 남사친, 알 수도 있는 사람, 그냥 사람 등등을 끝낼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한 남자와 최고로 오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딱 24시간입니다. 물론 마음에 안 들 경우 X버튼을 누르면 그 남자와 있던 모든 기록들을 지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건은 사라질 수 없으므로 평생 간직해야 한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
다물라 다물라 그 입 다물라!!! 목소리가 똥꼬발랄해서 슬슬 좋아지려고 한다. 이런 내가 한심해서 휴대폰을 들어 글로 읽기로 마음먹었다. 글로 읽다보면 기분이 나빠져서 휴대폰을 부수든 뭐든 할 것 아닌가.
<주의점>
2.같이 있을 땐 절대 X를 누를 수 없습니다. 눌러도 옆에서 끈덕지게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3. 어떤 모습 어떤 성격으로 남자가 다가올지 모릅니다. 그러니 남자가 대해주는 것에 맞춰 고객님도 대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편하게 지낼 수 있겠죠?
(만약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할 경우 처음으로 리셋 되니 조심하세요!)
3.한명씩 겪을 때마다 주의점이 추가되니 그 점 꼭 숙지해주세요
4.좋은 하루 되세요. 이번 남자는 마음에 드실 겁니다.
다 읽고 벙쪄서 멍해진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화면에는 남친♥이 떠있었고 소름이 돋아 팔을 쓸다가 일단 맞서싸워보자 싶어 통화버튼을 슬라이딩해 간지 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ㅅ"
"응 여보."
"네?"
"집이야?"
"네!"
"왜 안하던 존댓말을 하고 그래?"
"그쪽이 저한테 반말하는 게 더 익숙하지 않아요.."
그 때 갑자기 통화가 끊어졌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눈알이 튀어 나올 듯이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데 또 한 번 전화가 걸려온다. 설마.. 그 리셋..?
"..여보ㅅ"
"응 여보."
"하하하 왜 전화 했어?"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나도 보고 싶다..!"
"보고 싶은 사람이 카톡 답장은 왜 안하는데?"
"카톡 했어? 미안!"
"날이 갈수록 사랑이 식나보다? 내일 약속은 안 잊었지?"
"내일..? 내가 요즘 깜빡깜빡 하잖아!"
"으이구.. 우리 내일 마트에서 장보기로 했잖아."
"아 맞다 그랬지! 기대된다..!"
"우리 신혼부부 같겠다. 드디어 내 소원 이루어지는 건가?"
와 내가 남자랑 전화를 해보다니. 조별과제 때문에 복학생 오빠한테 왜 안 오냐고 닦달한 적은 있으나 이렇게 남친이랑 통화해보는 건 처음이네. 일상 얘기를 하다 보니까 1시간이 훌쩍 넘었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게 아, 이래서 다들 연애하는 구나. 전화하고 있으니 편해져서 은근슬쩍 내 마음을 흘려보냈다.
"나 지금 되게 떨려. 그거 알아?"
"나도. 우리 항상 떨리잖아."
"얼른 보고 싶다."
"내가 더."
다 정한 남자가 노답이었구나. 이 남자는 첫 시작부터 좋은 예감이 든다. 내 말을 잘 들어주고 리액션을 잘해줘서 그런지 또 1시간이 훌쩍 넘었다. 결국 내일 만나자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고 끊어진 화면을 가만히 바라봤다. 드라마에서 보면 통화 끊고 아쉬워하던데 그게 이런 마음이구나. 끊어지고 난 후 배경화면에는 22시간이라 나와 있었고 우리가 새삼 2시간이나 통화했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뭐든 다 들어주는 남자
집 앞이라는 남친에 의해 마지막으로 거울을 확인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 떨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심장이 진짜 터질 듯이 뛰었고 슬슬 올라가는 광대를 꾹꾹 누르며 밖으로 나왔는데 누군가 내 양볼을 꾹 눌렀다.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자 잘생긴 남자가 내 양볼을 꾹 누르고 있다. 이게 내 인생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화장 하지 말라니까. 볼 못 만지겠잖아."
"..."
"왜 말이 없어? 어디 아파?"
"아니!"
통화로는 감정표현을 마구마구 했는데 막상 만나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생긴 얼굴에 고개도 못 들겠다. 와 3분어플 얼굴은 진짜 다들 장난 아니네.
"화장 하지 마. 알았지?"
"민낯 보면.. 깜짝 놀랄 텐데도?"
"민낯 봤잖아. 예쁘던데 뭘."
"..그래? 혹시 너 눈이 여기달려있어?"
발을 가리키니 또 시작이라며 내 볼을 안 아프게 꼬집고는 가자며 내 손을 잡는다. 와 세상에.. 이거지.. 진짜 좋아 어떡하지.
손을 잡고 마트로 향하던 중 어떤 아주머니가 강아지를 잃어버렸다는 말과 함께 전단지를 주셨다. 보면 꼭 말씀드린다고 말한 뒤 가려는데 남친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본다. 개 같은 어플 발동 시작인가?
"어쩌다 잃어버리셨어요..?"
"네? 아.. 잠시 목줄 놓고 똥 치우는 사이에 사라졌어요.. 예쁜 아이었는데.."
"아, 그러셨구나.. 이 아이와 함께 했던 소소하지만 알찬 얘기 들려주세요."
"네?"
"얘가 왜이래..! 하하하! 죄송합니다!! 야 너 뭐해!"
"난 단지 얘기 들어주고 싶어서.."
"얼른 가자. 나 얼른 장보고 싶어!"
장이라도 봐야 아무 것도 안 하고 뭐라도 사겠지 싶어 마트로 끌고 왔다.
큰 마트여서 그런지 시식코너들이 널렸다. 하나만 먹을까? 콕 집어 한입 넣어주고 나도 하나 먹는데 갑자기 남친이 어딘가로 뛰어간다.
"어디가..!?"
"떨이입니다 떨이! 달달하고 속이 꽉 찬 수박이 무려 9900원입니다! 떨이입니다 떨ㅇ.. 사시게요?"
"아.. 저 들어주려고요. 얼마나 혼자 목청 터지고 힘드실까.."
"네?"
"아니에요! 계속하세요! 진짜 왜 이래!! 쪽팔리게!"
저게 진짜. 등짝을 때리며 최대한 사람 없을만한 곳으로 끌고 가는데 이제는 시식코너 아주머니에게 다가간다.
"한 번 먹어볼텨?"
"감사합니다. 우와 진짜 맛있어요."
"내가 또 만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구워! 바삭한 게 맛있죠?"
"진짜 제가 먹었던 만두 중에 최고에요. 이거 만두 굽는 비법 책 출판해도 되겠어요."
"어머 청년 뭘 좀 아는 구나!? 또 내가 고등어도 기가 막히게 잘 구워! 촉촉한 고등어 안 흔한 거 알지?"
"알죠, 알죠!"
"내가 아들이 하나 있는데 학교에서 야자하고 오면 뭘 그렇게 구워달라고 난리야, 난리! 내가 이래 봐도 되게 동안이거든. 그 비결이 뭔 줄 알아?"
제발 내 얘기도 좀 들어주라 새끼야. 마트에 장 보러 혼자 온 느낌이잖아. 환멸난다는 듯이 보다가 좀 물러나서 X를 누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나에게 달려온 남친에 식겁해서 휴대폰을 뒤로 숨겼다.
"미안. 내가 듣다보니 정신 팔려서.. 아주머니 동안비결이 고기 많이 드시는 거라고 하니까 너 생각나서 뛰어왔어!"
"대체 왜 그런 거에서 내 생각이 나는 건데."
"이제 장보자. ㅇㅇ야 우리 뭐 해먹을까?"
"뭘 해 먹는다고?"
"너가 우리 집 오고 싶다며. 마침 우리 부모님께서 여행가셨는데 그게 너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더라고. 대박이지?"
"정말..?ㅎㅎ"
입 꼬리가 실룩인다. 금방이라도 빵 터질 듯한 볼에 애써 두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끄덕이니 얼른 장보자며 카트를 밀고 출발한다. 머지않아 멈췄지만.
"민수야 그거 아니? 이걸 먹으면 키가 쑥ㅆ, 어머 누구세요?"
"아 뭐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서 저도 들으려고.."
"이거 먹으면 키 큰다고 아이한테 알려주는 건데요?"
"아.. 맞아 민수야 이거 먹으면 키 쑥쑥 커!"
한숨을 쉬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카트를 뺏어들고 가는데 내 어깨를 잡고 기차놀이를 하며 따라오는 남친이다. 미워 죽겠는데 귀여워서 뭔 말을 못하겠어.
"아, 알겠다. 뭐든 다 들어주는 남친이 얘기를 다 들어준다는 거구나. 미친 세상아.."
"응?"
"아냐. 나 어디 좀 다녀올게. 급히 뭐 할 일이 생겼어."
"어디?"
"기다려봐."
빠르게 안 보이는 곳으로 숨어 X 버튼을 누르려는데 알림창 하나가 뜬다. 만난 지 2시간 전에는 X 누르는 거 안 된다고. 이게 뭔 경우래. 터덜터덜 무거워진 발걸음을 다시 마트로 들여놓는데 벌써 다 산건지 계산하고 있는 남친을 보며 빠르다는 생각을 하다 현타가 왔다. 이런 거에 감탄하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해...
뭐든 다 들어주는 남친
"우리집이야. 어때?"
"조, 좋네."
아무래도 3분 어플로 처음 해보는 게 많은 것 같다. 남자 집까지 와보다니. 엄마 ##0ㅇㅇ 성공했어요. 이제 결혼 해도 되겠어.
"이제 만들어볼까?"
영상을 봐야겠다면서 틀었는데 안타깝게도 광고가 나온다. 스킵이 떠서 누르려는데 날 제지하더니 끝까지 광고를 다 보고나서야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아니 이새끼 좀 어떻게 해주세요. 안 들으면 병에 걸리나봐요.
"하나는 해결 됐고, 하나는 하는 방법은 알아."
"진짜? 나 알려줘."
"이거 일단 야채 다듬고."
"다듬고?"
"다듬고 나서 말해줄게."
"다듬고 나서 어떻게 하는데?"
"그만해 이제"
"얼른."
엄하게 말해봤자 소용없어. 무시하며 야채를 다듬고 있는데 불안한지 자꾸 안절부절 못하는 남친을 보며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가만히 좀 있어!! 이정도 했으면 됐잖아!!!!!!"
"...미안 ㅇㅇ야.."
"됐고 얼른 다듬어."
"..응!"
열심히 다듬고 있는데 자기꺼 다 했다며 내가 하던것도 가져가 해준다. 그 모습을 보자니 다음 할 것도 쥐어줬고 곧잘하는 남친을 보며 박수까지 쳐주었다. 호응을 해주되 시키는 못된 컨셉으로 갈까 싶어 뭐 할 때마다 환호하며 좋아했다.
"이것만 해주라."
"그래.."
눈치챘나보다. 해달라는 걸 하다가 사심을 채우기 위해 얼굴을 보려는데 날 뚫어지게 보고있다. 와씨 존잘이네.
"왜?"
"손 되게 작다. 나랑 손 대보자."
작아서 귀엽다고 손깍지를 끼며 아빠미소를 짓는 남친을 보다가 수줍어서 손을 확 빼버렸다. 제발 나란 사람아 즐기라고.. 이런 기회 흔치않단말이야ㅠㅠㅠㅠㅠ
"얼굴 왜 이렇게 빨개?ㅋㅋㅋㅋ"
"안면홍조야."
"없던데. 부끄러워서 그래?"
"..아니."
얼굴을 들이대는 남친에 의해 밀어내는데 갑자기 훅 다가와 볼에 뽀뽀를 하더니 벌떡 일어나 냄비를 찾는다. 와 내가 살다살다 볼뽀뽀도 받아보고.. 진짜 세상 살만하네.
끓이면 완성되는 요리에 이것저것 넣고 끓이다 드디어 완성됐다. 먹으며 오래된 커플처럼 편히 먹여주고 장난도 치는 이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다 먹고 나서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먹었냐고 묻는데 와.. 개좋아.
"설거지 할 동안 티비 보고 있을래?"
"같이해."
"어떻게 널 시켜. 앉아서 티비 보고 있어. 다 하면 갈게."
싫은데.. 입으로 내뱉으면서도 어느새 난 티비 앞에 앉아있다. 티비를 틀어 채널을 돌리다 방금 먹고도 정신 못차린건지 요리프로그램을 봤다. 침을 질질 흘리며 보고있는데 갑자기 남친이 뛰어온다.
"이건 이렇게 해서 먹는 게 맛있어요. 상추 위에 고기 넣고 이게 중요하거든요! 부추!"
"...아 그렇구나."
"설거지 안해?"
"아 맞다."
빠른걸음으로 가서 다시 설거지를 시작하는 남친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속해서 이쪽으로 출석도장 찍는 남친 덕에 벌떡 일어나 설거지를 도와줬다. 다 하고 바닥에 늘어지게 앉아 한숨을 푹 내쉬는데 남친이 박수를 치더니 뭘 가져온다.
"우리 주문한 커플링 왔어."
"커플링..?"
"응. 껴보자."
껴서 인증샷까지 찍은 남친은 오늘 봤던 모습 중에 가장 즐거워보였다. 날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건가? 궁금해 은근슬쩍 떠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넌 내 어디가 좋아?"
"솔직하게 말해도 돼?"
"아니. 안 돼."
"그럼 말고."
"아니! 한 번 말해보던가. 궁금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너 입술."
어차피 한 번 보고 안 볼 사이에 한 번 입술박치기 해 봐? 용기를 내서 천천히 다가가니 남친도 다가오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티비를 주시한다. 와.. 아주머니가 산나물에 대해 설명하고 계시네. 그냥 말자. 화장실을 간다고 말하고 밖으로 뛰쳐 나와 더이상 못해먹겠어서 X버튼을 눌렀다. 역시나 모든 게 없어지는데 커플링만이 내 손에 남아있을 뿐이다.
날 짝사랑하는 팀장님 실행하시겠습니까? O
이제 별 게 다 의심되네. 집착하는 건 아니겠지? 내일이 두려워진다.
내 정신 좀 봐 작가의말 안 쓰고 올렸네요!
빠르게 올리려다가 깜빡했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 편은 팀장님이에요! 팀장님은 대박적이죠..
하지만 이 글은 3분어플이라는 것만 알아두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