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어플
01
"너네 그 3분어플 알아?"
"3분어플? 라면 익을 3분 동안 영상 틀어주는 어플이야?"
"ㅇㅇㅇ 너가 그러니까 모솔이지."
"야 난 떳떳해! 모솔 나쁘지 않아!"
만년 솔로. 초중고를 지나서 대학가면 연애한다는 말만 믿고 갔으나 미신으로 판명됐고 오피스 로맨스를 꿈꿨으나 그냥 꿈으로 남게 됐다. 없어요. 그냥 없어요. 다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유부남에 젊은 사람들이라곤 나보다 몸매 좋고 예쁜 여자들 밖에 없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이것들도 나와 친구라고 하나같이 다 솔로인 것을 위안 삼는다.
"깔아봐. 장난 아니래."
궁금함에 어플을 깔아보니 정말 대충 만든 건지 하얀 바탕에 뭔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난 없는 어플이라는데?"
"나도. 뭐야 이거.. 괜히 좋아했네."
"없는 어플이라고? 난 깔아졌는데?"
"어디 봐. 헐 진짜야 대박.."
친구가 가져가서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하나하나 읊어주기 까지 했다. 남자 파티라고. 제일 위에 있는 게 최고라며 다정한 남자 옆에 있는 하트 버튼을 누르라고 난리치는 친구들의 등쌀에 떠밀려 꾹 눌렀다. 뭐 별 일 없겠지.
"조심히 가!"
"너도."
"다음에 또 만나."
"어후 이것들은 작별인사만 열나절 해."
"너도 잘 가라. 1년 후에 보자."
"너무 빨리 보는 거 아니냐?"
"ㅋㅋㅋㅋㅋ주말에 봐. 회사 쉬면 말하고."
"응. 쉬는 날 없을 것 같으니까 주말에 보자."
"나도.. 잘가라 친구들."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눕는데 갑자기 진동이 울리며 톡이 왔다. 친구 집에 도착했나?
안녕하세요
오늘 카페 앞에서 뵀던 분 맞죠?
괜찮으시다면 내일 만날 수 있을까요?
뭐야. 언제? 나 오늘 카페 근처도 안 갔는데. 당황스러우면서도 궁금해 프사를 눌러보았다.
휴대폰에 꽉 차 있는 이 남자가 정녕 내 번호를 받아간 남자가 맞는지.. 설마 마지막 번호를 잘 못 쳐서 나에게 톡을 한 건 아닌지... 다른 말 필요 없고 내꺼하세요 그냥. 답장을 뭐라 할까 고민하다 아까 그 3분 어플이 떠올랐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답장을 보냈다.
내일요?
몇 시요?
4시까지 킹갓카페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최대한 도도한척. 막 이런 거 받아주지 않는 철벽녀인척 했으나 이미 난 빠져버린 후였다. 네 제가 바로 그 얼굴만 보고 빠져드는 금사빠입니다. 혹시 막 장기 가져가는 거 아니겠지? 무서운데 끌려. 마치 하지 말라 하는 건 꼭 해보는 어린아이 심보? 다 필요 없고 존나 전진이다.
3분 다정남
"안녕하세요 ㅇㅇ씨"
잠시 만요. 저 숨 좀 쉬고 올게요. 실물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를 돌아 나가려는데 내 팔을 붙잡더니 내 숨통을 끊어놓을 생각인지 입은 연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아리따우세요"
"네? 아.. 하하 감사합니다. 어? 음료 시키셨네요?"
"오시면 더우실까봐 미리 시켰어요. 이 음료 좋아하세요?"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이 남자 미소 한방이면 뭐든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돌이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와 진짜 인형같이 생기셨다."
이런 말이 익숙하지 않아 입에 있던 걸 테이블 위로 뿜어버렸다. 민망함에 휴지로 닦으려는데 황급히 날 제지하더니 이걸로 닦으라며 손수건을 건네준다. 어떻게 입에서 나온 걸 닦냐고 망설이는데 자기가 닦아주며 자기는 이런 거 괜찮다고 깨끗하게도 닦는다.
"제가 너무 무례했죠? 좋은 게 주체가 안 되가지고.."
"뭐 이런 걸로 무례까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남자랑 대화를 나눠본 게 까마득해서 이 상황이 마냥 어렵기만 하다. 뭔 말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그저 눈을 굴리며 죄 없는 빨대만 잘근잘근 씹고 있는데 갑자기 남자가 벌떡 일어난다.
"2시에 노래방으로 가야해서요."
"네? 노래방이요?"
"얼른 가요! 늦었어요!"
아직 2시 안 됐는데.. 내 손을 잡고 뛰어가는 이 남자를 보며 속으로 기가 차는데 숨까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곧 도착한 노래방은 그냥 평범한 코인 노래방이었다. 이때까지 이해가 안 되서 화가 치솟았지만 노래하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는 거다.
"ㅇㅇ##씨도 불러야죠!"
갑자기 노래를 예약하더니 나보고 부르라는 걸 애써 거절하는데 한 번만 불러달라며 애절하게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에코 울리니까 마이크 떼고 말해. 하.. 난 어쩔 수 없는 마음 약한 여자인가 보다. 듣고 싶다는 걸 어떻게 뿌리치겠는가. 그래 한 번 불러보자.
"ㅇㅇ씨 노래도 잘하네!"
"..부끄럽게"
"어?"
1곡이 남았는데 아까처럼 또 미어캣처럼 꼿꼿이 허리를 세우며 어!? 이러더니 또 내 손을 잡고 존나 뛴다. 그만 해 새끼야!! 힘들어!! 그렇게 뛰어서 온 곳이 고작 사격장이다.
"ㅇㅇ씨 우리 이거 합시다."
"근데 왜 이렇게 뛰는 거죠? 누구한테 쫓기는 거 아니죠?"
"..사실 제가 계획을 짰는데 하나라도 시간 안 지켜지면 다 못 할 것 같아서요.."
와 내 생각이 진짜 짧았다. 이렇게 세심한 남자한테 내가 감히.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남자가 너무 귀여워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사격 할 시간이라며 돈도 안 내고 총을 잡는다. 눈치를 보다 돈을 대신 내고 얼마나 잘하나 지켜보고 있는데 쏘는 것마다 빗나간다. 이정도면 일부러 안 맞추나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다.
"아아아!!"
"왜 그래요!?"
"다 맞춰야 하는데 한 개도 못 맞춰 버렸어요."
"..다 맞춰야 한다고요?"
"한판만 더 할게요."
"네.. 뭐.. 그러세요."
1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이새끼 통제가 불가능하다. 순간 화나서 가겠다고 나서는데 쫓아오긴 커녕 이번에도 역시나 못 맞췄다고 절망하고 앉아있다.씩씩대며 걷다가 카톡 차단을 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리며 전화가 왔다. 그것도 영상통화로. 그래 받아서 존나게 욕을 해주는 거야.
"저기요 진짜 무례하신 거 ㅇ"
"미안해요 ㅇㅇ씨 이거 뽑아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하다가.."
넘어가지 말자. 넘어가지마 ㅇㅇ야. 끊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려는데 급 아련하게 내 쪽을 응시한다. 하.. 왜 아련미 넘치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련미..
"이거 전해주고 싶은데 저 만나주시면 안 돼요?"
"일단 그거 저 때문에 받은 거니까 가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ㅇㅇ씨."
"제가 거기로 갈게요."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주변에 뭐 있는지만 알려주세요."
"아니에요 가까우니까 제가 갈게요."
전화를 끊고 아까의 사격장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가 봐도 간지를 뽐내며 서있는 그는 보호색을 가지고 있어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날 보자마자 대형견처럼 달려오더니 인형을 전해주는 모습에 아까 화났던 난 어디가고 어느새 엄마미소를 짓고 있었다.
"ㅇㅇ씨 갑자기 가버려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너무 집중했나 봐요."
"이제 가볼게요."
"배고프죠?"
"...조금?"
"제가 진짜 맛있는 집 아는데 거기로 가실까요?"
3분 다정남
들어온 곳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저번에 카드 막 긁었는데 이런 거 먹을 돈이 남았으려나.. 침을 꿀꺽 삼키며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데 와.. 비싸네. 멘붕이 온 난 최대한 싼 것을 고르려는데 이 남자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음대로 주문을 시작했다.
"A코스랑 B코스 중에 정하기 힘들었는데 B코스가 나은 것 같더라고요. B코스로 주세요."
"와인 주문하시겠어요?"
"카르멘 골드 리저브 카버네 쇼비뇽으로 주세요."
"네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카르멘 뭐요? 쇼비뇽? 진짜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긴장한 탓에 제대로 먹지도 못할 줄 알았으나 너무 맛있어서 돈 걱정 잊고 미친 듯이 먹었다. 그 와중에 설레게 고기 썰어주고 샐러드도 먹으라며 덜어주고 와인 따라주고 입에 살짝이라도 뭐가 묻으면 닦아주기 까지 했다. 솔직히 좀 부담스ㄹ, 기는 무슨. 존나 좋다. 좋은 것도 잠시 다 먹으니 슬슬 걱정이 밀려온다.
"잘 먹었습니다"
"네? 잘 드셨다니 다행이긴 한데 저 그게.."
"그럼 이제 갈까요?"
"또 어딜.."
이제 가기가 무서워진다. 벌떡 일어나 빠르게 카운터로 가는 남자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 지갑을 꺼내 카드를 후들거리는 손으로 내미니 이미 카드를 낸 후였다. 너무 놀라 그 많은 걸 왜 혼자서 계산 하냐고 하자 내가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돈 받는 기분이라며 해맑게 웃는다.
"...잘 먹었어요. 다음엔 어디가요? 제가 살게요."
"산책할 건데. 산책할 곳 사시게요?"
"..아."
"가요. 소화할 겸 산책하러."
밤바람이 선선하니 기분이 좋아지려한다. 갑자기 휴대폰을 들이밀며 이 타이밍에 셀카를 찍어야한다며 내 어깨에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했다. 어머 부끄럽게. 사진을 찍고 다시 걸으려는데 갑자기 날 빤히 바라본다.
"...왜 그렇게 봐요?"
"일정상 제가 지금 뭘 해야 하는데."
"네?"
가깝게 다가오는 남자에 놀라 뒤로 물러나자 이거 해야 된다며 다시 한 발자국 다가온다. 미친놈 아니야!? 그걸 누가 사귀기도 전에, 아니 썸타기도 전에 해!! 빠르게 도망가려는데 내 양 어깨를 잡고 천천히 다가온다.
"이봐요!! 저 침 뱉을 거예요!!"
"하지만. 이걸 정해놔서.."
"아니 누가 이런 것도 정해놓냐고요!"
"ㅇㅇ씨가 저 골랐잖아요. 다정한 남자로. 저 좋아서 고른 거 아니었어요?"
"다정한 사람 싫어하는 사라, 잠시만. 설마 모든 다 정하는 남자에요..?"
"이거 다음 코스도 있어요. 그냥 가면 후회하실 텐데."
"이거 완전 변태 아니야!!! 앞으로 연락하지마요!!"
"ㅇㅇ씨!!"
"따라오지 마!!!!"
뛰다가 숨을 고르며 3분 어플로 들어가 보니 띄어쓰기가 생겨있었다. 다 정한 남자. 시발. 그래 뭔가 이상하다 했어. 옆에 있던 x버튼을 누르자 그 남자와 한 카톡들과 통화기록 모든 게 없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곰돌이는 그대로였다. 이딴 어플 안 해. 지워버려야지. 제거 버튼을 누르는데 마음대로 다시 어플이 켜지더니 알림창이 하나 뜬다.
모든 다 들어주는 남자 실행하시겠습니까? O
X는 없고 O만 있는데 저 어떡하죠? 이제 망한 건가요?
전 인생의 반이 망상입니다. 망상의 끝은 무조건 글이죠. 워너원 3분 남친 보고 쓸까말까 생각 하다가 질러버렸어요!
생각나면 잊어버리기 전에 바로바로 써서 그런지 오늘 두글을 완성해버렸어요..!
카톡도 올릴게용 물론 완성되면요! 저 오늘 열일했죠? 다들 안 힘드냐고 물으시는데 전혀요! 글 쓰는 거 즐거워요!!
잉여라서 그래요 이해해주세요 여러분들은 이 불쌍한 잉여에게 관심만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