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에서 부부까지
"지은아. 동거하자. 우리."
동거. 익숙치않은 단어가 민현이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
나는 요즘 사람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신 없이 바빴다. 민현이 보다 일년 먼저 졸업하고 운 좋게 바로 대기업에 입사하게 돼서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힘들었다.
신입의 기를 뽑아먹을 듯이 엄청난 양의 일들이 매일 쏟아졌다. 덕분에 야근은 필수였고 쉬는날도 당연하다는 듯이 반납해야 했다. 선배들은 일 잘하는 신입들을 견제하며 자신이 맡은 일도 하기 벅차하는 신입에게 잡다한 심부름까지 시켜 더 정신없게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어마어마하게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겨우 틈을 내 만나도 나는 늘 집중을 못하고 피곤해 했고 그런 나를 민현이는 많이 안타까워했다.
오늘 이 만남도 민현이의 배려로 이루어 진거다. 티는 안냈지만 민현이도 졸업준비에 바빴다. 그래서 데리러 오겠다는 민현이의 말에 괜찮다고는 했지만 사실 보고싶은 마음에 굳이 오겠다는걸 거절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마냥 밝지만은 않아 마음아팠지만 피곤함을 참고 보러와준 민현이가 너무 고마웠다. 그런 민현이가 동거라는 말을 뱉었다. 동거. 생각해본적이 없다. 막연하게 나중에 민현이와 결혼해야지 라는 소녀같은 꿈은 꾸고 있었지만 동거라는 얘기를 들으니 꿈으로만 꾸던
결혼이 현실로 다가온거 같은 착각이 든다.
"왜? 싫어?"
민현이는 운전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쓸쩍 날 쳐다본다. 글쎄.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창문에 머리를 기대며 담담하게 말했다. 민현이는 내 말에 풀이 죽은 강아지 마냥 시무룩해진다. 내심 동거를 기대했었나보다. 동거라. 황민현과 같이 산다면...날 애틋하게 보는 민현이를 무시한채 천천히 생각해봤다. 확실히 편하긴 하겠지. 이렇게 시간내서 볼 필요도 없고 황민현은 깔끔하니까 청소도 잘 할꺼다. 흠... 좋긴하지만 동거라는 상황이 만들어 낼 또 다른 관계의 전환이 나는 조금 걱정이되서 선뜻 좋다고 말하기가 그랬다. 음.하며 생각하는 척 민현이를 바라보니 눈이 축쳐진게 삐진거 처럼 보였다. 그런 민현이의 모습에 아까의 걱정들은 깨끗하게 사라지고 에이 제가 저렇게 바라는데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하며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우리 동거하자!"
"진짜?"
고개가 돌아가고 어두운 차안에서 눈이 마추친다. 날 바라보더니 민현이는 정말 행복한듯 눈을 반달로 접으며 사르륵 웃는다. 아 또 꽃미소 나왔네. 황민현의 이지은 한정 꽃미소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항상 복잡하고 피곤하게 살아가는 민현이가 저 미소를 지을 때면 아무생각없이 순수하게 정말 행복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럼 됐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민현이는 날 위해서 동거를 제안한 거였다. 비밀로 한다고 했지만 전날 과로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간걸 옹성우가 민현이에게 말해줬고 그걸 듣고 민현이는 한참을 고민하다 동거라는 대책을생각하게 된거다. 동거를 하면서 나를 챙겨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한 얘기였다.
하지만 정작 동거를 통해 제일 행복한건 황민현이었다.
"자기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직 적응이 안되는 집에 들어서면 민현이는 헤실헤실 웃으며 반겨준다. 자기야. 저 한마디에 피로가 조금 풀리는거 같다. 더불어 코끝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날 기분좋게 만든다.
"오늘은 뭐 만들었어?"
"닭볶음탕"
처음에는 이런 것들이 적응이 안되서 낯설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집에서 요리를 하고 날 기다리는 황민현과 일을 하고 온 내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냄새에 기분이 좋아져 민현이를 꼭 끌어 안으면 민현이도 흐뭇하게 내 허리에 손을 두른다. 꽉 안는 힘에 숨 쉬기가 힘들어 고개를 위로 살짝 들면 민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키스를 한다. 아. 이렇게 일하고 와서 받는 키스는 정말 달콤하다. 수고했다는 말을 키스로 대신 해주는것 같다. 하지만 가벼웠던 키스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민현이의 손이 다급해질 때 쯤 나는 오늘도 식은 밥을 먹겠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언뜩보면 날 위한것 같지만 황민현이 제일 행복한 동거가 시작됐다.
"짐은 이게 다야?"
"응. 생각보다 별로 안되네"
민현이의 차에 실린 짐은 박스 2개에 캐리어 하나가 끝이었다. 4년 간 자취를 한거 치고는 적은 편이었다. 떠나기전 뒤를 돌아 자취방을 바라봤다. 이 곳에 온 첫날 민현이가 사비를 털어 부실한 문을 튼튼한 전자도어락으로 바꿔준거 부터 새내기의 패기로 소주 2잔을 마시고 헤실헤실 웃으며 나와 함께있고 싶다거 그 큰 자신의 자취방의 침대가 아닌 좁은 내 침대에서 자는 민현이, 우리집에 놀러왔서 내 속옷을 발견하고 귀가 터질듯이 빨게 지는 민현이, 항상 집앞에서 만나고 집앞에서 헤어졌던 민현이의 모습. 이런 사소한 기억들 하나하나까지 다 떠오른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다 너와 함께였다는걸 상기하자 너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지낸 시간들이 다 행복하지는 않았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힘든 일도 많았었고 민현이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이집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은 온통 행복했던 기억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너때문이다. 황민현이 있었기에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너 덕분에 나는 행복할 것이다.
멍하니 집을 바라보고있으면 민현이가 옆에 와서 어깨를감싸 안는다. 같이 집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민현이가 이제 갈까? 하고 어깨에 있는 손을 끌어당겨 나를 차에 태운다.
차에 시동을 걸고 부드럽게 출발한다. 흘끗 백미러로 집을 보고 인사한다. 안녕. 풋풋했던 대학생의 이지은과 황민현.
"야 황민현..."
"응?"
"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입만 뻥끗뻥끗 한다. 하. 진짜 황민현.
어떤 집으로 구할까. 동거를 허락한 날 차안에서 동거와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어떤 집이 좋냐고 물어보는 민현이에게 나는 그냥 깨끗한 집. 딱 이 한 마디만 했던 거 같다. 근데 이 집은....
내 회사 주변인 이 곳은 많은 유동인구와 편리한 주거시설로 집값이 비싼 동내였다. 처음 이곳에 들어 섰을 때 어어. 하며 놀랐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나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에 가만히 서있었다. 그런 나를 민현이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순수하게 쳐다보는데. 뭐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새하얀 벽지에 새하얀 대리석 바닥. 틈틈히 블랙으로 포인트를 주고 대충봐도 가격이 제법 나갈꺼같은 새 가구들과 그리고 그 공간에 서있는 황민현.
하. 그냥 한숨만 나왔다. 왜에? 하고 내 눈치를 보는 민현이에게 아니야 하고 그냥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캐리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핫 여기가 네가 쓸 방이야. 하고 방 문까지 손수 열어주는 민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움찔움찔 됐다. 황민현 집이 좀 산다는건 민현이의 자취방이나 평소 옷차림, 분위기 등을 통해 눈치 채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런 집을 구해올지는 전혀 예상하지 하지 못했다. 20대 남여 둘이 동거를 시작하는데 그 첫 집이 방 3개에 거실이 엄청 넓은 심지어 전경도 좋은 집일줄이야. 물론 민현이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 과분한건 아닌가 싶다.
월세랑 생활비는 반반할꺼지. 라는 내 물음에 응?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민현이에 다시 한숨이 나온다. 여기 우리 할아버지 명의라서 월세 낼 필요없어. 라고 철없게 말하는 민현이에게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건지 고민이 된다. 내 고민을 눈치챘는지 민현이가 괜찮아. 이정도 쓴다고 우리 할아버지 힘들지는 않아. 오히려 동거한다고 하니까 좋아하셨어. 그래그래. 기분좋은 민현이를 망치고 싶지않아 이렇게 넘어간다.
"와 진짜 예쁘다."
"응. 정말 예쁘다."
민현이와 방 구경을 하다가 빨간 노을빛에 끌려 거실로 향한다. 창을 통해 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는 내옆으로 민현이가 조용히 다가와 자연스럽게 내 허리에 팔을 감으면서 나를 보고 말한다. 정말 예쁘다. 이 말이 나를 향한 말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새빨갛다.
지고 있는 해. 해를 둘러싸고있는 하늘도. 내 볼도 민현이의 귀도. 이렇게 함께 노을이 지는 걸 보고있는 우리 새빨갛다. 그리고 참 예쁘다.
우리의 동거가 이렇게 항상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동거를 망설였던 마음이 깨끗히 사라진다.
"지은씨 요즘 뭐 좋은 일 있어?"
"네?"
"아니 요즘 아침마다 기분 좋아 보이길래."
그래요? 하고 모른척 대리님의 질문을 피했다. 확실히 요즘 텐션이 올라가있었다. 정확히는 황민현과 동거를 시작 후 부터 일하는게 편해졌다. 늘 피곤해하며 억지로 출근한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아침마다 든든한 배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로 출근을 한다.
눈을 뜨면 보이는 황민현은 늘 새롭다. 일어나. 하면서 날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은 늘 따뜻했고 사랑으로 가득한 민현이의 눈은 내 정신을 맑게 만들어준다. 아침에는 항상 샌드위치나 딸기쉐이크 등 간편한 음식들을 준비해놓는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으면 민현이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가 입을 벌릴때마다 그것들은 한입씩 입에 넣어준다. 다먹으면 그릇을 싱크대에 두고 다시 졸졸 따라와 물건들을 같이 챙겨주기도하고 옷을 골라주기도 한다. 민현이 덕분에 출근준비가 더 빨리 될거같지만. 음식 한번에 뽀뽀 한번, 물건 하나에 뽀뽀 한번, 옷 하나에 뽀뽀 한번. 이렇게 계속 뽀뽀를 해주면서 출근준비를 하다보면 오히려 평소보다 더 늦어진다.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수 도 없는 게 나도 그 뽀뽀를 좋아한다. 내가 입으려고 산 핑크색 앞치마를 하고 졸졸졸 따라오는 민현이는 누가 봐도 뽀뽀해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거기다 화사하게 웃기까지 하면. 그 날은 진짜 출근하기가 싫어진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겨우 집을 나설때,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예쁜것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돈을 벌어야돼. 그 생각 한번하면 무겁던 발걸음이 가벼워 진다. 그리고 오늘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일찍 퇴근하리라.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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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용ㅎㅎㅎ일단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혐생과 덕질로 바빠서ㅋㅋㅋㅋ
방금 라디오 듣고 불타오르는 마음에 열심히 써서 왔어용. 암호닉 신청해주시는 분들 있던데. 나중에 다시 암호닉 받을게요!
이번에는 암호닉 수를 제한해서 받으려고요. 암호닉을 받는 이유가 열심히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을 위해 텍파라는 작은선물이라도 드릴려고 하는 건데.
암호닉만 달랑 신청하고서 나 몰라라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흠흠.
브금은 생각나는게 없어서 그냥 민현이가 부르면 좋을거같은 노래ㅎㅎㅎ
오늘도 날이 덥네요. 다들 에어컨 앞에서 시원한 하루보내세운.